인터뷰
춤 예술을 만들어 가는 주인공들로 우리는 대부분 안무가와 무용수만을 기억한다. 그러나 극장예술이자 공연예술의 한 장르인 춤 예술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제작 과정에 참여한다. 만들어진 작품을 유통시키는 일 또한 중요하며 작품을 태동시키는 단초를 제공하는 기획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춤웹진>은 한국의 춤 예술을 현장에서 함께 만들어가는 또 다른 주인공들을 만나는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한다. 이번 달에는 춤 현장에서 활발한 국제교류를 실행하고 있는 무용 프로듀서(Producer) 김신아를 만난다.(편집자 주)
장광열 최근 국제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우리나라 춤계의 국제교류 프로그램 역시 보다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해외 단체의 초청 뿐만 아니라 국내 작품을 해외로 진출시키는 것에 있어서도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고,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구요. 김신아 무용 프로듀서도 그 중심에 서 있는 분 중 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끝난 독일 탄츠매세의 예술경영지원센터 코디네이터도 맡았고, 독일에서 바로 일본으로 이동해 아시아의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또 다른 문화예술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얘기부터 좀 들려주시지요.
김신아 <한·중·일 예술제>가 정식명칭입니다. 광주에서 문화중심도시를 위한 사업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로 아시아 3개국의 문화도시를 지정해 그것을 기념하는 사업이 있습니다. 작년 10월부터 올 11월까지 임시기구로 시작해 자연스럽게 광주 자산으로 포함되는 사업입니다. 그 첫해 문화도시로 일본은 요코하마, 중국은 취안저우, 우리나라에서는 광주를 지정했습니다. 지난 수개월간 다양한 행사가 있었고 동아시아문화도시 추진단이 주최한 이번 한중일예술제는 9월 4일 요코하마에 있는 가나가와 아트시어터에서 있었습니다. 일본 쪽에서는 마이미 사토(Maimi Sato)가 총감독을 맡아 산카이 주크와 콘돌스를 소개했고, 한국 측에선 제가 총감독을 맡았습니다. 중국에서는 푸첸성 실험극단과 취안저우 남소림 무술단이 참가했습니다.
광주문화중심도시에서 문화예술 관련 사업들이 드디어 하나둘씩 추진되고 있군요.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팀들이 참가했나요?
국립국악원 피리 수석이었다가 지금 남도국악원에서 파견근무중인 나영선 선생이 광주 활동을 위해 전통국악실내악단 ‘율’을 만들었는데, <수제천> <상령산> <산조합주> 등을 연주하고 그에 맞는 산조춤과 이이남 작가의 미디어 아트를 삽입했습니다. 그리고 LDP의 <노코멘트>를 공연했습니다. 묵직한 소리로 누르고 강렬한 현대무용으로 분위기를 띄우며 한국 공연예술의 다양한 모습을 전통 소리에서 컨템포러리 무용까지 보여주겠다는 작전이었습니다. 솔직히 중국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지만 일본보다는 더 많은 박수를 받고 오겠다는 계산도 하고 갔습니다.
음악이 중심이 되는 전통예술과 남성무용수 중심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있는 컨템포러리댄스와의 결합이라... 흥미로웠을 것 같습니다. <한·중·일 예술제>를 진행하면서 느낀 점이나 얻은 성과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이런 예술제가 잘만 운영하면 비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3개국이 서로 자극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예술제가 될 수 있다면 새로운 시장을 열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3개국은 공연예술의 편차가 심합니다. 전국에서 가장 좋은 팀을 골라 소개하는 일본과 달리 중국과 우리나라는 아티스트 선정에 약간의 제약도 있습니다. 물론 관객들의 취향이 다양해 반드시 무엇이 좋다 혹은 나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편차를 좁히고 예술가간 협업 등으로 확대해 간다면 극동 아시아 쪽에서 새로운 콘텐츠와 네트워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물론 재정적 후원이나 지석적인 콘텐츠 개발 및 수급을 비롯해 재정지원 등 기본적인 조건 충족이 전제되어야겠지요.
동아시아문화도시 추진단과 함께 예술경영지원센터도 정부의 지원을 받는 공공기관이지요. 예술경영지원센터 추진사업으로 무용 전문 마켓인 탄츠메세를 다녀왔는데, 현지 반응은 어땠나요?
현지에서의 반응은 전반적으로 매우 훌륭했습니다. 탄츠 메세는 전통적으로 유럽이 강세입니다. 또한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마켓인 시나르에 비해 남미 쪽이 약합니다. 그런데 최근 2회에 걸친 대만특집이 성과를 내서인지 이번에 중국인들의 참가가 두드러졌습니다. 주로 유럽을 대상으로 한다 해도 유럽 남부와 북부가 확연히 다르고 동유럽과 서유럽의 취향이 틀린데 이번 한국특집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고르게 ‘매력적이다’, ‘좋다’라는 평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입니다. 게다가 단순히 ‘흥미롭다’를 넘어서 상세한 감상평까지 쏟아낼 정도로 관심이 많았고, 일찌감치 공연이 매진이 될 정도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 중 가장 반응이 좋았던 것이 박순호씨가 대표르 맡고 있는 브레시트무용단입니다.
박순호씨가 안무한 <조화와 불균형>이 공식 쇼케이스로 소개되었지요? 초연된 지 3년 정도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사이 여러 차례 공연되면서 작품의 완성도도 더 높아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5분짜리 작품이라서 덴마크의 데니스댄스씨어터와 같은 무대에서 공연했습니다. 또한 탄츠 메세가 매우 많은 극장을 사용하나 그 중에서도 메인은 ‘탄츠 하우스’입니다. 공연 선택이 어려울 때 메인 무대인 ‘탄츠 하우스’ 공연을 우선 골라놓고 다른 공연을 살펴봅니다. 이번에 메인무대를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기도 했지만, 당시 공연을 보고 나오는 관객 중에는 'poor danish boys‘(불쌍한 덴마크친구들)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두 팀이 극단적으로 비교 됐다”고도 했습니다. 전에 다른 리뷰에서도 “이제까지 없던 작품으로 서양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본인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평을 듣기도 한 작품입니다. 우리가 먼저 공연하고 뒤에 있는 덴마크 팀 공연을 위해 바로 빠졌었는데 커튼콜 때 덴마크 팀을 배려해 출연자들이 인사하러 나오지 않자 관객들이 일제히 발을 구르기 시작해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계속 공연하러 와줄 수 있냐는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공식 쇼케이스에 소개된 우리나라 안무가들의 다른 4개 작품도 호평을 받았다니 모두 축하할 일이네요. 이번에 공공기관과 함께 국제교류 관련 일을 하는 과정에서 보완이 됐으면 하는 점이나 특별히 좋았던 점도 있었을 텐데요?
이번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업무 추진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습니다. 예술가들이 편안히 공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항공과 ·숙박을 지원했음은 물론 리셉션도 주최하고 포럼 발제도 진행했습니다. 제작해간 자료를 본 외국친구가 나중에 편지를 보내와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외국의 전문 기획자, 극장 프로그래머, 기자한테 아티클도 받았습니다. 한국무용의 장점과 단점을 그들의 시각에서 짚어주고 향후 어떤 국제무대에 어떻게 나갈지를 얘기하는 글입니다. 프로그램과 운영이 조화롭게 협력해 만들어낸 굉장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공통으로 사용했던 부스운영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특집이 행사의 중심에 서며 아티스트들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많은 일들을 맡아 주었습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앞으로도 이러한 지원을 꾸준히 해주었으면 합니다. 한 가지 굳이 얘기하자만 앞으로도 행사건 프로그램이건 옥석을 가리는 일에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 국제교류에서 신뢰할만한 큰 기구와 민간 현장 전문가가 함께 일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의 아티스트나 극장이나 축제 측에서 보기에도 그렇구요. 이러한 점에서 이번 탄츠메세의 코디네이터인 김신아님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아트 마켓에서는 같은 시간대에 많은 공연들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서 델리게이터들이 우리 공연을 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그랬을 때 신아님이 가지고 있는 인적인 네트워킹에서 오는 신뢰가 그들이 공연을 선택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많은 것 같은데 어디에 소속되어 있나요? 아님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지요?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럼 외국인들에게 본인을 소개할 때 무엇이라고 하나요?
간단하게 ‘아트 프로듀서’ 라고 합니다만 제 명함에도 별 정보가 없어 설명을 요구받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웃음)
공연장에서도 자주 만나고, 여기저기서 글을 쓴 것도 자주 보곤 합니다. 지금 고정적으로 하고 있는 일들이 궁금해지네요.
한국일보에 칼럼을 쓰고, 동아시아 문화도시 추진위원, 2015년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 문화행사 자문위원,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교류 전임 컨설턴트, 중앙대학교 학부와 대학원 그리고 동덕여자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녀야 하겠군요. (웃음) 글 쓰는 작업을 통해 예술계의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대학에서의 강의를 통해 공연기획이나 제작 유통 등에 대한 현장 체험을 전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들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춤전공 학생들이 주로 실기나 춤이론만을 배워서 졸업하고 나오는 것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춤예술을 둘러싼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시키는 강의는 닫혀 있는 좁은 시야의 학생들에게는 어느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수업 중에 누구나 알 것이라 생각해 얘기하는 아티스트 이름이 많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알아듣지 못해 난감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 얘기 중 반복적으로 3번 이상 나오는 무용가 이름은 적고 검색해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축제, 예술경영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교양을 쉽게 전해주고 싶어 공연예술과 연계해 고대, 근대, 현대, 동과 서를 조금씩 넘나들며 얘기합니다. 학생들이 앞으로 무용인으로 그리고 작가로 살아가면서 중심을 잡고 갈 수 있기 바라서인데 지금 제가 줄 수 있는 것은 다 주고 싶습니다.
한 학기 한 학기 강의를 하면서 수강생들로부터 어떤 변화를 체감한 경험이 있는지요?
학기가 끝나면 또 다른 학생들을 만나기 때문에 변화를 실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종강 후에도 계속 찾아옵니다. 그저 같이 밥 먹고 차를 마시자고도 하고 기획을 하고 싶으니 질문을 거절하지 말아달라는 학생, 작품 들고 외국을 나가고 싶다는 학생, 작품을 제작할 때 지원받을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등 다양한 고민을 들고 오기도 합니다. 또한 수업을 들은 학생들 중에는 졸업 전인데 벌써 취업했다는 소식을 알려오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돈’이 가치 중심에서 성공의 잣대가 된 요즘 똑똑한 친구들이 필드에 관심 갖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그래서 열악한 환경이라는 것을 포함해 주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필요한 내용을 담아서 수업하고 있습니다. 고맙게도 학생들이 ‘흥미롭다’, ‘재밌다’, ‘다른 세상을 알게 된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내용으로 계속 학생들과 만나고 싶습니다.
10월에는 문화의 달이라 또 많은 일들이 신아님을 가다리고 있을 것 같네요. 서울공연예술마켓(PAMS)에 참가하는 외국인들로부터도 많은 연락이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또 어떤 일들을 하게 되나요?
항상 그랬지만 올 10월도 제게는 전쟁입니다. 서울아트마켓이나 다양한 축제 등 대형 국제행사도 놓칠 수 없지만 노리단이 대행하는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 문화행사 중 하루저녁 공연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술감독을, 친구는 연출을 맡았고 함께 프로그래밍 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크게 고려한 것은 상대적으로 문화향유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는 장애인 선수단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작은 것 하나까지도 ‘최고’를 보여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렵지 않으면서도 퀄리티가 있는 작품을 선정했습니다.
아주 좋은 이야기입니다. 어린이 청소년 등 문화적으로 취약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공연일수록 더욱 정성을 다해 준비해야 합니다. 장애인선수단을 위한 공연이라면 어떤 프로그래밍이 되었는지 이 또한 궁금해집니다.
‘풀림 앙상블’의 서정적인 연주가 들어가고, ‘플라잉 코리안’이라는 한복 입은 비보이팀이 락킹, 팝핀 그리고 탭을 섞어 공연합니다. 남성 성악가들로 구성된 ‘이마에스트리’는 유명한 아리아를 부르고, 댄싱 나인에서 이번에 우승한 블루아이의 김설진을 위시한 9명이 수작을 공연합니다. 그리고 전통악기의 대중화에 앞장서는 김효영씨의 생황연주를 고정두 화가의 아날로그 미디어 드로잉과 함께 선보이고 ‘김운태 명인과 팔산대’ 그리고 ‘더 광대’등이 전통연희를 소개합니다.
대단한 라인업이네요. 공연은 어디서 하게 되나요?
선수촌 내 야외무대에서 진행합니다. 그러나 선수단을 위한 공연이기 때문에 일반관객의 입장은 통제됩니다.
국가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국제적인 문화예술 행사의 프로그램이 전문가에 의해 짜여지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도 이제 조금은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관과 민이 함께 협력해 나가는 체재도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 인력이 더 많아져야 하겠지요. 그러한 맥락에서 신아님과 같은 전문인력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은 맡은 일들이 긍정적인 성과로 나타나야겠지요.
제가 인복이 많아서라고 생각합니다.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이러한 일들을 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신아님이 추진했던 국제교류 사업들을 소개해주는 것도 교류의 유형이나 채널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작년에는 주로 투어와 참관을 위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습니다. 명인들의 음악연주가 일본에서 있었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인코센터(인도 한국문화원)가 주최한 아따깔라리 인디아 비엔날레 한국특집도 있었습니다.
브레시트 무용단, EDx 2무용단 그리고 최상철 현대무용단을 초청하겠다고 해서 동행했고 공연을 본 주최 측이 브레시트 무용단을 재 초청해서 내년에 또 가게 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는 한국문화주관이 있었습니다. 문화원장님 요청으로 공연을 구성해 갔었는데 하용부, 노름마치, 라스트 포 원, EDx 2무용단 이었습니다. 무대공연과 행사장 공연이 섞여있었고 팀을 가르거나 붙여서 공연했습니다. 이 구성은 한국 공연을 과거로부터 현재의 모습,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발전방향까지 한 무대에 보여주겠다는 것이 나름의 전략이었습니다. 단, 작품 하나하나의 완성도는 최상급을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당시 인도네시아에서 지금까지 매번 <부채춤> 같은 것만 보며 지겨워져 공관행사로부터 멀어졌던 교민들이 “한국행사 더는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번 공연 때문에 다시 관심을 다시 가져야 되겠다고 생각했다”는 얘기를 하셨습니다.
정말 국제교류와 관련해서는 어디에 소속되지도 않고 전방위 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떻게 무용예술 쪽으로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연극을 하겠다고 극단에 들어가 조명기도 만져보고 객석인사도 해보고 아동극 배우도 해봤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배우가 될 재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고모가 희귀병으로 쓰러져 병원에 왔다 갔다 하면서 3년 정도 간병을 했습니다. 동생이 있지만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찼습니다. 그러면서 대학원은 수료를 끝으로 학업을 중단했습니다. 이 공백기 후 무용하고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이 시댄스(서울세계무용축제)였습니다.
그랬군요. 시댄스(SIDance)는 지금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용축제가 되었지만 초창기에는 힘든 일도 많았을 텐데 당시에는 무슨 일을 했었나요?
1999년도에 ‘한불합작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한국 쪽 아티스트가 저를 연합뉴스에 데리고 가 이종호 선생님하고 인사를 시켰는데 당시에는 누구신지도 몰랐습니다. 나중에 합류하고 나서야 예술감독님인걸 알았습니다. 하지만 단위공연에 합류한 것이었기 때문에 한번으로 끝내고 연극을 기웃거릴 요량으로 둘러보고 있는데 갑자기 연락이 왔습니다. 창무국제예술제를 하는데 통역이 필요하다고요. 사실 제가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닙니다. 유학을 갔다 온 것도 아니고 학원이라고 딱 보름을 다녔을 뿐인데 일은 해야겠기에 아는 단어를 총동원해 얼굴에 철판 깔고 손짓 발짓 써가면서 외국 출연자들을 데리고 다녔지요. 그런데 다른 직원들이 보기에는 그럴싸 했던가 봅니다. 그렇게 이일공 직원으로 기획 일을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시댄스를 기획한 곳이 이일공이라서 이일공 프로젝트와 시댄스 일을 병행하다가 2001년부터 시댄스에만 전념했습니다. 이렇게 1999년부터 시댄스에서 만 13년을 일하고 1년여 더 조력했으니 총 14년을 시댄스와 함께했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무용과 인연을 맺은지 16년이 된 거네요?
예술전공생이 아니어도 연극은 공연이라도 봤지만 무용은 전혀 아는 것도, 경험도 없이 시작했고,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하면서 일했던 것 같습니다.
과거와 지금 춤계를 포함한 우리나라 공연예술계의 해외시장 진출, 또는 국제교류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을 것 같기도 한데요. 어떠세요?
사실 전 처음이나 지금이나 생각이 똑같습니다. 처음에 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나라 전통에서 현대무용까지 모두 포함해 한국무용을 외국에 많이 내보내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제값을 받게 하고 싶습니다. 옛날에 비하면 단가가 많이 올라갔지만 아직까지 상황에 따라, 진출 지역에 따라 많이 다릅니다. 비교적 단가가 낮기도 하고요.
여러 번 예술경영지원센터 간담회 등에서도 얘기했었지만 PAMS 이후 콘텐츠가 패턴화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시장을 바꿔 다변화해야 할 시점에 다양성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콘텐츠 개발이 지상 과제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콘텐츠 개발이 제 본업이 되는 것은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이 만들어 주기를 바라지요. 좋은 것을 만들어 주면 저는 제값을 받고 파는 것이 소원입니다.
시장동향을 보면,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한국을 모른다”가 직면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이 매우 역동적이라는 생각에 관심을 갖고 콘텐츠를 분석하는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콘텐츠를 알고 전문 프로모터도 상품을 고르려고 하는데 정작 시스템은 콘텐츠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통공연의 단순 번역이 아닌 외국인이 이해할 수 있는 영어식 설명 자료도 턱없이 부족하고 공연단 정보를 웹상에서 공유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공연전문 프로듀서 층도 매우 얇습니다. 정책단위에서 노력을 하고는 있겠지만 혹여 경쟁력이나 자생력이 없다는 이유로 기초예술을 간과하면 장기적으로 활용 또는 상업예술 역시 풍요로울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정책적으로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기초예술을 육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 발전시키고 창작자들은 질 좋은 콘텐츠를 내놓아 프로듀서로 성장한 사람들이 제값 받고 우리작품을 유통시킬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정말 필요한 것들을 지적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축제와 같은 콘텐츠와 관련 기관의 정책수립과 운용, 또한 김신아님과 같은 개인적인 프로듀서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와 함께 외국처럼 전문 아티스트 매니저의 필요성도 언급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시장과 작품을 알고 전략을 세워 실행할 수 있는 프로듀서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전문가라고 꼽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만큼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시아 나우가 매우 좋은 성공사례라 생각했는데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현실적으로 공연예술계에서 SM이나 YG처럼 인재를 발굴해 성장일체를 책임지고 수익을 창출해내며 독점적으로 누군가를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중간지점에서 제작투자와 함께 기획력을 행사하고 유통을 활성화한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에 매우 아쉽습니다. 이렇게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약간의 희생을 감수한다 해도 이 일로 먹고는 살 수 있을 만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느냐” 입니다.
유럽 춤계를 보면 한명의 매니저가 여러 명의 안무가나 컴퍼니의 매니저를 맡아 관련된 업무를 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식으로라도 전문적으로 매니지먼트를 해줄 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춤계 상황을 보면 개인 매니지먼트는 엄두도 못내고 축제를 통한 유통이 그나마 숨통을 터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제는 우리 춤계에서도 무용가나 단체의 매니지먼트를 해줄 전문 인력이 생겨나야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앞 애기와 동일한 맥락에서 콘텐츠와 같이 갈 수 밖에 없다고 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소수에 불과하지만 국제 시장에서 한국 음악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음반제작자가 프로듀서로 합류해 유통매체를 확장하고 부가가치를 더 높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음원 혹은 음반은 공연 외 추가 유통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무용은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객석 수로만 따져도 장기공연이 가능한 연극은 그나마 조금 낫지 않을까 싶은데 무용은 발레라 해도 오페라하우스 5회 공연을 기준으로 만 천여 명, 현대무용은 많아봐야 2천석을 넘기지 못합니다. 그나마 제작비도 모자라니 국공립 단체를 제외한 대부분 프로젝트 그룹단위 공연단은 인적자산에 투자를 할 수 없습니다.
이러니 단기 혹은 조력 정도의 매니지먼트가 단체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무용이 부가가치를 창출해 약간이라도 투자여력을 가지게 되기 전까지 축제의 공연유통은 국제무대 진출을 희망하는 예술가들에게 단비와도 같을 것입니다. 여건이 좋아진다 해도 시장으로서 매력적이기 때문에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축제의 순기능은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시장을 여는데 매우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프로듀싱과 축제의 기획력이 상호보완하며 공존할 수 있다면 궁극적으로 공연예술 유통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더불어 국내 환경도 바뀌어야 합니다. 겉으로 국제행사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외국공연단을 초청하기위해 들이는 예산과 국내 안무가를 초청하기위해 들이는 예산을 비교해보면 국내 예술가들을 위한 배려가 아쉽습니다. 물론 축제가 모두 다 그런 것도 아니고, 재원의 요구에 따라 귀납적으로 집행하는데 현실적 한계가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통비와 숙박비를 지불하고 나면 출연자들 개런티는 고사하고 밥값도 모자라게 주는 축제 초청을 더 이상 실적이 필요 없을 만큼 잘 팔리는 작품의 안무가라면 거절하지 않을까요? 전문적인 매니지먼트가 해주어야 할 일이 바로 이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출연자들에게 많던 적던 공연료를 챙겨주고 싶습니다.
축제는 유통의 장을 마련해 주는 것이지, 장기적으로 해외 시장 진출의 플랜을 짜거나 유통을 책임지는 것은 결국은 전담 매니지먼트의 몫이 될 것입니다.
제가 첫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너의 10년 혹은 5년 뒤를 상상해 봐라“ 그리고 학기 중에 다시 얘기합니다. ”네가 특정 단체의 매니저라면 너와 단체의 5년 뒤를 그려야 한다“, 제가 축제에 몸담고 있을 때 항상 축제의 미래를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단체를 두고 같은 고민을 합니다. 이것으로 답을 대신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 기관에서는 국내 콘텐츠가 해외 공신력 있는 기관에 소개 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고, 민간 베이스에 있는 사람들이 콘텐츠가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실 축제도 실적과 신뢰를 쌓는데 시간이 필요하듯 인적자산의 성장에도 투자와 시간 그리고 노력이 필요합니다. 입문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경험 많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히 다릅니다. 게다가 공공기관과 일을 하는 것은 난이도가 매우 높은 일에 속하기 때문에 이미 자리 잡은 어른이 판을 깔아주면 젊은 친구들이 그 안에서 성장해야겠지요. 국가기관은 제발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시스템을 만들어 주고요.
아시아 쪽에서 봤을 때 우리나라 컨템포러리 댄스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 되는 것 같습니까?
매우 민감한 질문입니다. 또한 어느 누구의 판단도 정답일 수 없다는 것을 우선 전제하고 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시아만 해도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남아시아가 각기 다르고 동아시아에서도 많이 비교하는 한국, 중국, 일본이 다르지요. 아시아 시장에서 아시아 콘텐츠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싸늘합니다. 새로운 콘텐츠 수요가 진작 발생한 유럽은 신기한 아시아에 관심은 있으나 저렴한 콘텐츠라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작품만 가지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나라의 시장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까지를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매우 매력적인 시장을 가지고 있는데 일하기 쉽지 않은 나라입니다. 일본은 과거에는 매력적이었으나 지금은 많은 것이 어려운 나라, 우리나라는 밖에서 보기에 굉장히 활성화 되었고 문화예술에 돈을 많이 쓰는 나라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국내 두드러진 작품들은 한국음식 만큼이나 자극적이거나 화사합니다. 우리나라에 본인 것을 팔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매력적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아시아 공연을 특집을 진행한 대부분 극장이나 행사는 그래도 한국보다는 일본과 중국 혹은 싱가포르와 대만을 먼저 다루었기 때문에 한국을 바라보거나 한-불 수교와 같은 특정계기 혹은 행사진행 맥락에서 한국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불과 2~3년 전부터 유통을 활성화할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를 맞았으며 동시에 간과했던 약점이 그대로 드러나는 위기에 봉착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콘텐츠생산도 주춤한 것 같습니다. 한국공연에 대한 전반적 인상을 묻는 질문에 소수가 답을 했지만 “서양 것을 카피하지 말고 자기 것을 담으라”는 주문과 함께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이 말만 어려운 “문서자료를 차라리 들고 나오지 말라”는 주문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그럼 유럽 쪽에선 한국의 춤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위 내용에 첨언하면 한국 시장에 오고 싶어 합니다. 예전에는 일본, 중국에 이어 옵션이었다면 지금은 한국 시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경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안무가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레지던시나 공동 제작 같은 것인데, 유럽 쪽에선 한국 안무가와 작업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 하는지요?
한국 공연예술에 대한 정보가 자꾸 풀리면서 공동작업 제안도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전략적으로 진행하는 사업도 한몫했고 그간 호주 등과의 대대적인 교류에서 보여준 성과들이 유효했다고 봅니다. 또한 국내 창작공간이 계속 활성화되고 지역문화재단의 프로그램 개발이나 후원도 훌륭한 배경이 되었겠지요. 이제는 적절한 파트너 선택과 효과적인 작업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어떻게, 어디로 확산할 것인지가 관건인 것 같습니다.
장광열 적지 않은 기간 동안 국제교류 현장에서의 생생한 체험을 통한 이야기와 앞으로 개선이 필요한 내용 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외국의 무용축제나 마켓에 가서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Mr.Lee 를 아느냐고 묻습니다. 서울세계무용축제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이종호 선생을 가리키는 거지요. 춤계의 국제교류에서 네트워킹은 이렇듯 중요합니다. 국제교류 전문가들이 그동안 수고한 희생과 노력, 그리고 전문성은 칭찬받고 또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김신아님이 그동안 다진 네크워킹은 이후 한국의 춤계와 공연예술계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