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춤비평가협회는 2013년 올해의 작품상으로 〈The Road〉(대학로예술극장대극장, 7월 12-14일)를
선정했다. 이 작품에서 이윤경씨는 연출을, 류석훈씨는 안무 및 대본을 맡았다.
두 사람은 부부 사이로 이번 인터뷰는 두 사람에게 소감을 함께 듣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인터뷰 진행에서 두 사람 가운데 이름을 밝힐 필요가 있는 부분은 발언자를 따로 표기하였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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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몸의 정화,
김채현(이하 김): 수상을 축하한다. 우선 눈에 띄는 점인데, 제목을 왜 영어로 하였는가? 국제적인 느낌도 고려하였지만, 인상 깊게 봤던 스릴 영화의 제목이었다.
류석훈,이윤경(이하 류,이): 무용 작품에서 듀엣은 대개 10분 정도의 길이가 통례인데 한 시간을 진행하였다. 듀엣으로 긴 작품을 만든 데 방점을 두었다. 이전에 유사하게 <아리랑 블루스>를 하였다. 이번 작품은 <아리랑 블루스>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 같다.
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나로선 <The Road>를 인생 여정이라 보았는데, 인생 여정의 무엇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는가?
류,이: <The Road>에서 춤추며 살아가는 모습을 솔직히 노출하고 싶었다. 몸으로만 표현하고 싶었고, 그것이 삶의 형태와 너무 똑같아 보였다. 우리는 살아가는 데 있어 부수적인 데 메이기보다는 하나에 집중하는 성격인데, 춤도 마찬가지로 다른 요소보다 춤 자체만으로 전개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삶의 길은 쉬운 길만은 아니겠지만 후회한 적, 회의적인 적이 별로 없었다. 나에게 주어진 것, 할 줄 아는 게 그것뿐인 것인데, 그런 점이 이번 <The Road>에서 드러나게끔 구성하였다. 우리 부부의 삶 자체를 보여준 것이다.
우리가 듀엣을 한 이유도 환경적 요인이 많이 작용하였다. 우리 작업에 비해 외부 지원 등이 미흡하다는 판단이 들었고 갈수록 더 그런 것 같다. 우리 부부가 처한 현실은 그렇고, 우리 춤계 현실도 그런 듯하다. 우리 두 사람의 마음은 춤계 사람들의 마음이기도 할 것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말하자면 춤계 정서를 반영한 것 아닌가 한다. 그러다 보니 세트나 장치를 배제하는 방향을 취하면서 몸에 중점을 둔 춤을 보여주자는 마음이 컸다.
<The Road>는 이런 점이 작용하면서 다행히 사후지원을 받게 되어, 처음 할 때보다 인위적인 것을 더 배제하고 깊이 있는 무엇을 보여주기를 의도하였다. 자연스런 춤사위, 그리고 나이 먹어 갈수록 친근하게 마음에 와 닿는 한국적 춤사위와 한국적 소리를 사용하여 한국적 정서에 초점을 맞추었다. 인간의 마음과 한국적 정서에 포커스를 맞춘 작품이다. 특별히 무엇을 의도하기보다 우리 두 사람의 삶 또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김: <아리랑 블루스>와 <The Road>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류,이: <아리랑 블루스>는 우리 이야기를 외치고 싶은 어떤 절규에 포커스를 맞춘 감이 있다. 그래서 움직임에서도 더 역동적인 면이 있었을 것이다. <The Road>는 마음과 몸의 정화(淨化)가 더 강조되었을 것으로 본다. 세상이 어떠할지라도 우리는 우리 길을 간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The Road>이고 우리를 힘들게 하는 세상과 현실을 향한 외침이 <아리랑 블루스>였다. 그리고 국내에서 현대춤을 향해 가는 길에서 정체성의 혼란이 많이 감지되었는데, <아리랑 블루스>를 만들게 된 동기가 여기에도 있다.
이번 공연을 보고 현역 제자나 후배들이 밝힌 소감 가운데 “정말 현대무용을 본 느낌”이라고 하는 말들이 있었다. 요즘 춤에서 퍼포먼스적 요소를 추구하는 경향이 많은데, 우리는 몸으로 하는 현대무용을 하고 싶다. 우리가 춤을 출 때까지 이런 마음은 변함이 없을 것이고 이런 점을 정말 보여주고 싶었다. 순수하게 춤을 추는 무용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첫째 포커스였고, 외적인 것에 연연하기보다 춤추다보면 인정받을 것이다라는 마음이다.
또 하나는 무용수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작가 정신이란 개념은 좋은데, 작가 이전에 무용수로서 춤의 근본부터 진솔하게 연구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춤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사회성이 좀 결여되고 그런 점을 우리들도 안다. 일장일단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후배들로부터 과거에 류석훈, 이윤경이라는 무용가가 있었다는 것으로 기억되고 인정받았으면 한다. <The Road>도 그런 마음으로 췄고 후배들에게도 그런 점을 인지시키고 싶었다. 겉치레에 신경 쓰지 말고 몸으로 할 말을 하라는 취지였는데, 그런 점을 느끼는 후배들도 있었다고 본다.
이번 공연에서 우리들이 커튼콜을 할 적에 무릎 꿇어 제의적인 인사를 하였는데, 여기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었다. 관객에 대한 감사, 무대를 준비한 사람들의 마음가짐, 우리 세대 사람들의 춤에 대해서도 그런 마음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었다. 서로 위로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나가자는 다짐이 담겨 있었다. 경건한 마음에 서로 존중하는 마음을 환기하고 싶었다. <아리랑 블루스> 첫 장면에서는 제의식 같은 정화 의식으로서 장래의 다짐을 보여주며 그것을 풀어가는 모습을 전개하였다.
듀엣을 하는 이유
김: 이번 선정 이유에서 듀엣을 정규 공연작으로 다른 작품에 비해 손색없이 제작한 점이 강조되었다. 듀엣을 하는 이유를 조금 더 들려달라.
류,이: 우리로서는 다른 것에 구애받지 않고 듀엣 하는 둘의 작업이 가장 편하다.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지키며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존중하지 않아 불편한 경우도 접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배로서 화가 나는 경우이지만, 출연자들이 자기 볼 일 다 하고 작품에 출연하면 아무래도 깊이 있는 작품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작품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데 신경을 쓰기보다는 그때그때 자연스런 흐름과 감정을 타면서 진행하다 보면 작품이 이뤄진다. 그러면서 작품에 필요한 무엇을 입혀가는 과정을 밟게 된다. 결국 이번 작품의 이야기는 한 가지다. 즉 춤이 인생이고 인생이 춤이고 춤이 일상이다라는 마음이 우리를 지배한다. 우리로선 당연한 일상이다. 우리는 춤은 일상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김: 그럼 이번 작품은 달리 표현하자면 마이 웨이라 할 수 있겠다. 또 한편으로는 말을 듣고 보니 매우 구도자적인 자세도 느끼게 된다.
류,이: 그렇다. 각자의 길은 있다. 꾸준히 가면 행복이 다가온다는 것이 <The Road>에서 시사하는 바이다. 삶은 바람 같은 것이고 힘든 때도 있겠으나 구애받지 않고 가다보면 행복이 찾아올 것으로 본다. 마음가짐이 중요한 요소인 것은 분명하다. 무용단을 운영하면서 단원들이 떠나는 경우도 있는데, 성장하는 경우를 보면서 그래도 잘 가르쳤지 않나 싶은 보람도 느낀다. 긍정적 사고를 갖자는 뜻에서 한 일들을 통해 그들과 대화도 나누고 보면 좋은 인연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김: 지금 연습실을 갖고 있는가?
류,이: 목동 상가에 30평 규모로 5년 정도 되었다. 조금 낡은 편이다. 사회적 기업을 하면서 구했던 곳이다. 매월 버는 수입의 절반이 그리로 나간다. 연습할 공간으로 마음이 편한 것은 어느 무용가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바깥에 있기보다 연습실에 가면 마음이 편하다. 후배들이나 단원들에게도 언제든 열려 있다.
김: 앞서 “정말 현대무용을 보았다, 춤 공연을 본 것 같다”는 반응이나 소감의 진의는 무엇일까? 왜 그런 반응이 나왔을지 궁금하다.
류,이: 요즘 춤계 풍토가 너무 해외 경향에 쏠려 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안무가 육성 면에서 실험성이나 개성 같은 기준에 치우친 편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것도 나름 긍정적인 기준이라 보는데, 다만 움직임보다 외적 요소에 치중한다든가 즉흥적이거나 센세이셔널하거나 강한 이미지의 움직임의 강렬한 효과 치중하는 풍조가 부작용으로 대두하는 것 같다. 그런 것만이 춤이라고 여기는 풍조가 있다. 국내 페스티벌 행사에 해외에서 유입된 일부 작품들을 보고 현대춤의 전부로 여기는 풍조도 눈에 띈다. 격렬한 내용을 갖는 작품들에서 깊은 인상을 갖는 경우는 더하다. 젊은 층이 지원을 받는 비율이 커지므로 그러한 작품의 비중도 커지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부분적으로 컨템퍼러리 춤에 대한 인식이 왜곡되었다는 판단이다. 우리 공연은 그러한 작품들과 너무 대조적이어서 젊은 무용인들이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무라 딱 집어 말하지 않았지만 무용 공연을 본 것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센세이셔널하거나 멋 부리거나 파격적인 작품들을 보다가 우리 공연을 보고서는 ‘아, 저게 무용이야...!’하는 느낌을 은연중에 갖는 듯했다. 공연 후에 우리에게 인사를 하는데, 그냥 인사가 아니라 다른 인상을 받은 것 같은 태도였고 겸손 모드 같은 것이 보였다.
김: 작품 대하는 태도가 좀 진중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류,이: 먼저 번 <아리랑 블루스>에서는 운 사람도 있었다. 그 다음 <The Road>에서는 “가슴이 아리했다”는 식의 소감을 밝히더라. 센세이셔널하거나 멋 부리거나 파격적인 작품들을 할 사람은 물론 하겠지만, 우리는 입장이 다르다. 대중에 영합하거나 일부러 대중 취향에 맞추는 일은 못마땅하다. 사람들이 많이 와서 보는 것은 바람직스럽다. 그러나 작품이 즐겁고 재미있어야, 대중과 함께 호흡을 해야 대중에게 다가가는 것인지 의문이다. 우리 둘 사이에도 이 점에 대해서는 약간의 이견이 있긴 하다. 우리로서는 대중 취향에 맞추기보다 어렵더라도 예술을 중시하는 입장과 대중이 따라오도록 대중을 끌어가는 입장은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나의 춤을 보고서 싫은 사람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런데 여성 무용가라면 여성 입장에서 추고 관객이 아름다움을 느끼고 나만의 움직임을 하고 보는 사람들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관객이 와서 보고 정화되어 갔으면 한다. 일반 관객보다 춤추는 전문인들이 더욱 그랬으면 한다.
김: 시대 흐름을 외면해선 안 되겠지만, 대중 눈높이를 쫓아가지 않고 그들의 안목을 높이기를 원한다는 점에서는 두 사람 의견이 일치한다.
류,이: 우리는 춤의 기본을 중시하는 입장이다. 대가들은 항상 춤을 연습하고 다지는 줄로 안다. 요즘 젊은 층에서는 이런 점이 부족한 것 같은데, 예술인의 길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20,30년은 넘어야 무대에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않나 생각한다. 저는 이윤경 선생 춤에서 작년에 처음 감동을 받았다. 우리 둘이 듀엣으로 출연할 경우 상대의 춤을 관객 입장에서 보기 어려운데, 2010년작 <변형된 감각> 그리고 작년 춤작가 12전에서 이윤경 선생의 독무 <꽃자리>에서 제가 연출을 맡아하면서 관객 입장에서 느낄 그런 감동을 느꼈다. 배우자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윤경 선생은 45년, 저는 30년 춤을 추어왔다. 저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느낀다. 컨셉이나 즉흥 또는 대중 스타일에 치중해서 대중의 공감을 사는 흐름도 있지만, 이윤경 선생의 순수한 측면이 부각되는 공연에서 저는 감동을 받았다. <꽃자리>는 움직임이 화려하지 않았으나 마음에 꽂히는 게 있었는데, 춤의 정수라 할까 그런 것에서 받는 감동을 현대무용 장르에서 느끼는 것은 드물었다. 아, 현대무용, 현대춤에서도 그런 감동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춤에서나 인생사에서 마음에 꽂히는 경우들이 간혹 있다. 춤의 어떤 면에서 감동을 받는지, 일률적이지는 않다. 평소 봐오던 움직임이라도 유독 감동적인 경우가 있다. 젊은층에서도 유능한 무용수들이 많다. 성실하거나 진실할 경우 감동을 받는데, 그들의 춤에서 감동을 받으려면 더 연륜이 쌓여야 한다고 본다. 젊은층의 춤을 계속 관찰하며 우리가 감동 받을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김: 듀엣의 경우 특히 호흡 맞추기가 중요한 관건으로 보인다.
류,이: 우리는 작품 제작에 호흡을 중시하고 6개월 전에 함께 시작한다. 호흡이 잘 맞는다는 평을 자주 들었다. <The Road>를 보고 반성하게 되었다는 후배들이 더러 있었다. 센세이셔널하거나 파격적일 경우 진실 또는 진정성을 갖고 그런 시도를 한다면 평가는 달라질 것이다. 진실이나 진정성이 없는 공연은 텅 빈 느낌이고 좀 허무하다. 진정성을 바탕으로 호흡이 길게 작품을 끌어간다는 점이 아직도 저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덧붙여 현대춤을 하는 사람들에게 반성적 계기로 작용한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김: 그러고 보니 이번 작품은 춤계 젊은층의 풍토를 향한 반성을 담고 있는 것 같다.
류,이: 우리도 그러하겠지만, 젊은층이 진솔함을 기반으로 춤을 추구했으면 한다. 무용가로서 갖출 것을 갖추면서 파격이나 특별한 무엇을 추구하면 좋을 것이다. 겉포장에 치중하다보면 그런 사람은 계속 나타나기 때문에 오래 가지 못한다. 실력이 있으면 누가 뭐래도 나의 길을 갈 수 있고 또 갈 것으로 본다. 우리가 이 나이에 춤출 수 있는 것도 그런 점 때문일 것이다. 실력 없이 포장으로는 도태하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소신을 누군가는 알 것이라는 마음으로 지금에 이르렀다. 이번에 전혀 예상치도 않은 상을 받게 되었는데, 우리들로서는 길을 제대로 가고 있구나 하는 소감부터 들었다. 우리가 가는 길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후배들에게 많은 자극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도 꾸준히 가다보면 춤의 장인이 될 것으로 믿는다.
한국적 특성에 이끌린 작업
김: <The Road>에서는 한국적 정서를 고려한 요소들이 눈에 띄었다.
류,이; <아리랑 블루스>에서 1년 후 <The Road>로 넘어갔다. 이번에는 정화(淨化)의 차원을 염두에 두고 우리가 마음을 열고 적극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다. 구음, 종소리 등을 소재로 하되 아리랑의 한에 맴돌지 않고 힐링적 요소를 더 포착하려고 하였다. 종소리는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데, 제의적 느낌, 정화의 느낌을 준다. 뱃속에서 나오는 구음은 정확한 말이 아니라 할지라도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나오는 소리라서 속에 있는 것을 표현하는 그런 것이다. 우리는 나이들수록 신디 같은 소리는 시끄럽게 들린다. 종소리, 구음, 정가, 창 등 한국적인 음악, 그리고 한이 서린 음악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그런 음악을 몸으로 표현할 적에도 훨씬 더 편안함을 느낀다. 호흡도 편안하게 느껴진다. 때로는 대중가요도 좋다. 음악이 좋다 해서 쓰는 게 아니라 마음에 와 닿는 음악을 쓰는 쪽이다. 장면에 맞는 음악이 있고, 아니면 진심에 와 닿는 음악이 있다.
김: 그런 음악을 ‘몸에 와 닿는 음악’이라 지칭해도 무방할까.
류,이: 그렇다, 음악을 수 없이 들으며 그런 음악을 찾아내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암에 걸리면 다 버리고 산속에서 자연식으로 치유하듯이 그간 받아들여 몸에 묻혀 있게 된 너무나 많은 음악이나 그런 것들을 몸에서 씻어내고 싶다. 정말 자연의 소리, 자연의 목소리, 명인의 목소리를 들으면 힐링이 된다. 일전에 강동아트센터에서 공연한 <홀로 아리랑 8>에서는 김소희 선생의 구음을 사용했다. 그 구음을 들으면 그냥 좋고 몸에서 춤이 추어진다. 오래 묵은 소리가 하루아침에 된 게 아닐 것이다. 즉흥으로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 되게 쌓아온 순수한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김: 그러면 그 음악을 ‘몸에 녹여낸 음악’이라 지칭해도 좋을 것이다.
류,이: 지금까지 여러 장르 음악을 사용해왔는데, 한국음악이 최고이고 가장 어렵다. 지루하게 느낄 부분도 있겠으나 듣다 보니 빠져들고, 몸에 녹아 있지 않으면 나오기 힘든 음악이라는 것을 이제 좀 알 것 같다.
김: 한국음악의 묘미를 강조하는데, 한국 전통음악을 갖고 언제부터 작업하였는가?
류,이: 2011년 모다페에서 류석훈 공연작 <나는 여기 있다>에서 변성금의 거문고 산조 연주곡을 사용하였다. 신디 음악이 앞에 흐르다가 진양조의 음악이 등장하자 관객 반응이 정말이지 폭발적이었다. 현대무용을 하는 남성이 진양조 음악에 맞춰 하는 추는 춤은 한국무용과는 또 다르다. 그전에 2008년 <그들이 원하는 것들>에서 한국음악 여성 구음을 사용했고, 그 전에 10년 동안 한국음악을 쓸 마음을 갖고 있었다. <아리랑 블루스>에서 한국음악을 그렇게 많이 쓰진 못했다. <The Road>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한 편이다. 한국음악을 갖고 현대적인 것을 끌어내고 싶다. 서민적이기도 하고 고급스럽기도 한, 말로는 잘 표현되지 않는 그 무엇이 한국음악에 있는 것 같다. 1996년 이윤경 공연작 <기우는 달>에서 작곡한 한국음악을 사용했는데, 북가락 중심이었다. <하늘로 가는 길>(홀로 아리랑 시리즈)에서도 한국음악을 사용했고, 앞으로 가능하면 한국음악을 많이 쓸 것이다.
듀엣의 상승 작용 크다
김: <The Road>를 비평하면서(춤웹진 49호 리뷰) 나는 ‘이윤경의 청아한 자태의 몸짓을 류석훈이 원색적 질감의 움직임으로 유연하게 뒷받침하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다양한 양상으로 안배된 움직임들에 힘입어 <The Road>는 탄력 있게 전개되었다’고 밝혔다.
류: 엊그제 강동아트센터에서 있은 공연에 류석훈의 <굿, 조용한 비명>, 이윤경의 <홀로 아리랑 8>을 공연하였다. 제 공연은 만석중 놀이를 소재로 한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이 따로 독무를 한 경우는 엊그제 공연이 처음이었다. 관객들이 두 사람 독무가 매우 상반된다는 소감을 보였다. 이윤경 선생 스타일을 매우 좋아한다. 남성 무용가도 섬세함이나 아름다움을 간직해야 한다고 본다. 남자는 남자로서 호흡 등의 면에서 다른 점도 있다. 듀엣 춤 구성 면에서 화려함, 투박함, 날카로움, 유연함 등등을 조화시키고 싶다. 남성들은 대개 직선으로 가기 쉬운데, 이윤경 선생과 하다보면 원형과 곡선이 자주 등장하고 제 나름 곡선을 만들려고 애쓰는 편이다. 대개 남성이 지탱하나 그런 개념을 탈피해서 둘의 조합으로 상승효과 낳고 싶다.
이: 남녀 듀엣에서 남성이 지탱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는 게 일반적이다. 개별적 개체가 둘이 될 때의 상승효과는 분명히 있다. 류석훈 선생은 배려심이 강하다. 어떨 때는 류석훈의 춤이 묻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둘의 에너지를 부분에 따라 살리고 줄이면서 조화를 꽤하는 방법을 쓴다. 사실 둘 사이가 춤에서 가장 어려운 관계이다. 우리는 서로 배우자이지만 선의의 경쟁을 하는 관계에 있다. 가정을 벗어나면 사회에서는 그런 경쟁을 하기 마련이다. 선의의 경쟁도 상승효과를 낳을 수 있다. 그리고 둘의 삶의 과정에 차이가 있다. 저는 삶의 과정이 평탄하고 일직선적이었다면 류석훈 선생은 굴곡들이 좀 있은 편이다. 서로의 그런 차이를 생산적으로 합할 계기들을 만드는 게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제가 춤을 출 수 있는 것도 류석훈 선생을 만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나이 차가 있는 연하의 동료를 만난 게 춤을 지속할 힘이 되지 않았나 한다.
류석훈 선생의 움직임 가운데 제가 할 수 없는 게 많다. 류석훈 선생은 스펀지 같은 사람이어서 저의 것도 수용해내는 사람이다. 저는 제 춤사위밖에 못하는데, 류석훈 선생의 배려가 없으면 우리 둘의 듀엣은 어렵다. 둘의 작업에서 이런 방식이 은연중에 형성된 것 같다. 저는 저를 고집하기보다 류석훈 선생을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는데, 과거에는 사실 많이 다투기도 했다. 지금은 배려하고 정확성을 지켜야 상대방이 수용하게 되는데, 이런 조화가 훨씬 큰 효과를 낳는다. 서로 받쳐주니까 역동성이 생기고 연습을 더 해서 서로 간의 정확성을 지키려고 애쓰는 편이다. 그러면 제3의 결과로서 관객은 저희 둘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 <The Road>에서 막을 여는 부분에서 두 사람이 붉은 장갑을 낀 부분이 인상적으로 눈에 띈다. 무엇을 염두에 두었는가?
류,이: 여러 의미가 있다. 한삼을 염두에 두었는데, 옛날 중국 등지에서 왕 앞에 경의를 표할 적의 손 자세를 생각할 수 있고, 자기 것을 감춘다는 뜻도 있다. 우리의 춤과 삶에 경의를 표하고 나만의 삶을 보호한다는 뜻을 생각할 수 있다. 또 염할 때 몸을 가림으로써 털어버리는 제로(零) 상태가 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제의를 진행할 때 사람은 겸손한 상태가 되지 않는가. 사실 손은 나쁜 일의 원초적 출발점인 것 같아서, 손을 묶는 순간 우리는 무의 존재가 된다.
김: 조명이나 의상에서 살구색조가 현저하게 눈에 띄는데, 그것으로 무엇을 의도했는가?
류,이: 이것도 손을 감싸는 것과 유사한데, 인간의 맨살의 느낌을 조성함으로써 뭔가 털어버린다는 의도가 강했다. 그렇게 해서 원초적 감정을 추구해서 네츄럴한 느낌을 부여하려고 했다. 의상의 색감과 미감을 사람들이 더러 얘기하던데 시폰천을 기계로 주름을 지어 만들었다. 그런 색감을 내기가 쉽지 않은데, 민천홍 선생이 잘 처리해주었다. 의상이 순간순간 변형되는 모습에서는 인생의 동요하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조명의 경우 신호 선생이 우리와 오래 작업한 편이어서 빛이 변하지 않는 중에 은근히 변하게 하는 등으로 삶의 변화 양상을 염두에 두고 섬세하게 변화하는 조정 작업으로 대응해주어 작품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우리를 20년 넘게 오래 보아온 동반 조명작가라 해야 할 것이다. 김종석 선생의 세트 작업은 오른쪽 상수 부분 붉은 기둥은 솟대, 혹은 바벨탑 같은 인간의 상승 욕망을 은유하며 그것이 무너지는 것을 암시하였다. 아르코극장,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작업할 때 마음이 편한데, 극장 스탭진 배려가 각별하다고 생각한다. 극장에서 트러블이 일어나는 경우는 없었다.
김: 예불 드리거나 오체투지(五體投地)나 삼보일배 같은 모습으로 무릎을 꿇거나 상체를 숙이는 모습들이 자주 보였다.
류,이: 다큐에서 구경한 오체투지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삶의 고행이 연상되고 어디에 귀의하는 모습이 매우 경건하게 다가왔었다.
김: 작품에서 류석훈 선생이 이윤경 선생을 안아 올리는 부분은?
류,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상태를 은유하였다. 배우자로서 감당해내는 모습이기도 할 텐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두 사람이 춤출 수 있는 것은 서로 만났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본다. 그것이 삶의 팔자인 것 같다. 일상에서 느끼는 정서나 행복감이 작품에 많이 반영된 편이다. 우리는 결혼하기까지 좀 순탄치는 않았다. 로미오와 줄리엣 같았다고 할까.
김: 두 사람이 배우자들로서 한 가정을 이룬다. 두 사람의 작업이 상당히 많았는데, 두 사람이 함께 인터뷰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 들었다. 독자들을 위해 두 사람의 초기 이력만 간략히 소개해 달라.
류: 이윤경 선생을 첫 대면한 것은 1994년 대학을 복학한 4학년 때였고, 결혼은 2001년이었다. 대학 신입생이던 1988년 대한민국무용제에서 김해경 작 <방울소리>에 출연하였다. 육완순 선생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 빌라도 역으로 출연하면서 마리아로 출연한 이윤경 선생을 만났다. 그리고 안애순 선생과 탐무용단, 박명숙 서울현대무용단의 공연들에 출연하였는데, 청주-서울을 왕복하는 고행길이었으나 93년경 처음 개런티를 받아 크게 와 닿았고 나름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안애순 선생 작품에 출연하고 이윤경 선생 춤추는 것을 보면서 외국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고 유학을 포기하면서 국내에 남게 되었다.
이: 저는 1982년부터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 출연하였다. 1986년 <에네르기>(안애순 안무작)에 출연하고 1987년에는 공간사랑의 현대무용의 밤에서 처음으로 1시간짜리 듀엣(상대역: 박해준)을 창작하였다. 그리고 1989년 <멍>(공간사랑)을 공연해서 김태원 선생으로부터 추천을 받았다.
김: 이번 수상에 대해 소감을 듣고 싶다.
류,이: 상을 주셔서 감사하고 우리가 제대로 살아가고 있구나하는 느낌을 일깨워주어서 힘이 되는 상이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진솔하게 살아갈 용기를 주신 듯해서 더욱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