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난 2012년 국내 영화관에서 개봉한 <피나>를 기억하는가. <피나>는 독일을 대표하는 현대무용수이자 안무가인 피나 바우쉬의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독일의 빔 벤더스가 만든 영화다. 영화 개봉 일에 맞추어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는 ‘피나, 그녀에게... 사진으로 말하다’라는 타이틀로 사진전이 열렸다. 이 전시는 ‘피나의 사진작가’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잘 알려진 우종덕 작가의 사진전이었다.
우종덕 작가는 2005년부터 피나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2009년 6월 30일까지 독일 부퍼탈 탄츠테아터와 함께 세계를 돌며 피나의 사진을 자신의 카메라 앵글에 담았다. 그는 외신기자들이 피나의 공연장에서 '미스터 우의 자리'를 만들어 줄 정도로 사진기자들에게 인정받는 사진작가다. 2011년 첫 개인전 이후 지난해 10월, 서울 통의동 갤러리 메타포에서 3주간
어떤 계기로 이번 사진전시를 열게 되었나?
“2011년 과천 알레434에서 국내 첫 개인전을 열었다. 사진 전시장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곳을 선택했는데, 관객은 많이 오지 않았다. 더 페이지 갤러리 큐레이터가 그 사진전을 둘러보고 이번 사진전을 열자고 먼저 제안했었다.”
언제부터 사진을 찍었나?
“중학교 때 카메라를 처음 잡았고, 고등학교 들어갈 무렵 독학으로 사진 기술을 익혔다. 호주에서 마케팅을 전공한 후, 나의 첫 번째 일터는 축협 홍보실 사진팀이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내성적이었다. 학창시절 존 레논의 음악을 좋아해서 그의 노래를 즐겨들었고, 직장에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클래식 공연을 보러 다녔다. 특히 클래식 공연은 보러갈 때면 몸가짐이나 마음가짐이나 깨끗이 단정하게 되더라.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동물이기에 다른 사람에게 규정되고 싶은 나를 발견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남들의 시선에 나를 가두게 된 이후부터 홀로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찾게 되었고 사진·음악·미술을 가까이 하게 됐다. 그 와중에 LG아트센터에서 무용 공연을 처음 봤다. 보리스 에이프만의 공연이었는데, ‘무용이 이렇게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었고 지방공연까지 따라갈 정도 무용에 빠져들었다. 2001년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봤을 때 무용사진을 찍기로 마음먹었다. 2001년 LG아트센터가 개관할 시기부터 2003년까지 이르지 킬리안과 네덜란드댄스시어터(NDT) 1·2, 모리스 베자르,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등 엄청나게 많은 무용단이 내한 공연했다. 마치 족집게 강의를 하듯 말이다. 2003년 LG아트센터에서 피나 바우쉬의 <마주르카 포고>를 보았다.”
피나의 공연을 보면서 무용공연 기획자나 무용을 배우고 싶다는 등 다른 생각을 해볼 수 있었을텐데, 굳이 그녀의 공연을 보고 사진으로 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이유는?
“사실 공연기획을 해보려고 노력했었다. 아니 할 뻔했다. 쿠바국립발레단을 데리고 내한 공연을 준비했었는데 쉽지 않았다. 만약 사진을 하지 않았다면, 공연기획을 했을 것이다.”
피나의 <마주르카 포고>를 세 번씩이나 봤다.
“끌리는 것이 있었다. 음악선곡이 기가 막혔고, 무용수들이 몸짓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내 마음을 건드렸다. 피나의 공연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기억이나 콤플렉스를 무대 위에서 보여준다. 공연을 보면서 어렸을 때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관객은 이를 자신의 경험에 대입할 수 있게 되는데, 공연을 보면서 무대 위에 나를 올려놓았던 것 같다. 마치 내가 그 무대 위에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보리스 에이프만의 공연을 보고 미칠 정도로 좋았지만, 그를 따라가고 싶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이미 공연이 끝나기 전에 마음의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나의 공연은 내게 물음표를 던져줬다. 답을 찾고 싶었다.”
피나 바우쉬는 한 나라에 오랫동안 머무르며 그 나라의 풍경을 표현한 ‘세계 도시 시리즈’를 만들었다. <마주르카 포고>의 배경은 포르투갈의 리스본이다. 피나는 1986년 이탈리아 로마로부터 작품을 위촉 받아 <빅토르>를 만든 계기로 세계 각국에 2주 이상 장기 체류하면서 그 곳에서 받은 영감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스페인, 오스트리아, 미국, 홍콩, 일본, 터키, 인도 등을 돌아다녔으며, 2005년 LG아트센터에서 우리나라를 소재로 만든 <러프컷>을 선보였다. 한편 우종덕은 피나의 <마주르카 포고>를 보고난 뒤 다니고 있는 직장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평생 피나의 사진의 찍기로 마음먹었고 피나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피나, 그녀의 발자취를 놓치지 않았던 그
내성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 이메일을 보냈다. 용기 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인데.
“그렇다. 몇 달 동안 고민한 결과 엄청난 용기를 냈다. 부퍼탈 탄츠테아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나영씨와 접촉하기도 했다. 피나의 허락을 얻기 위해 피나의 공연이 열리는 일본으로 갔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무용수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고 나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기도 했다. 아무런 반응이 없길래 ‘No’라고 생각했었다.”
우종덕 작가는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부퍼탈 탄츠테아터를 따라다니며 피나의 공연사진을 그의 사진기에 담아냈다. 우 작가는 피나의 공연 사진을 상업적으로 팔거나 이용할 생각은 없었다. 일종의 작업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이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한 달에 한 번 이상 그녀의 무용단과 함께 해외투어를 하며 그들을 찍었다. 교통비나 숙박비 등 개인경비는 모두 우 작가가 부담해야했기 때문에 굉장히 힘이 들었지만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했다.
이제껏 춤공연들을 많이 보았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 공연은 무엇인가?
“모리스 베자르 공연을 꼽고 싶다. 그의 작품은 사람에 대한 애틋한 심정이 녹아져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보리스 에이프만의 공연도 좋았다. 그의 공연을 보고나서 무용사진을 찍겠다는 마음을 먹었으니. 강수진의 <오네긴> 공연의 경우 수십 번의 커튼콜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
만약 사진을 그만두었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 다른 방식으로 무언가를 표현하고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
“사진 전시를 계속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