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무용인들이 힘을 모아 무용전용극장까지 가야 한다
3년 임기를 마친 안애순(前 한국공연예술센터 무용예술감독)

 

 

 


2010년 7월 아르코예술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이 통합되어 재단법인으로 독립하면서 한국공연예술센터(Hanpac, 이하 한팩)로 출범했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통합의 시너지를 만들어 대학로에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예술센터를 만들자는 취지의 한팩은 무용인들에게는 무용전용극장에 대한 전 단계를 실험한다는 의미에서 관심을 모은 동시에 무용예술감독 체제를 통해 하드웨어와 더불어 다각적인 프로그램으로 무용예술의 안정적인 발전체계를 세워나갈 좋은 기회로 주목을 받았다.
‘차세대 공연예술가의 체계적 발굴’, ‘새개념 공연예술 작품 육성’, ‘주제별 공연 기획 시스템 운영’, ‘지속 가능한 공연 활성화’, ‘국내외 공공기관과의 교류 및 파트너십 구축’을 기조로 야심차게 활동을 펼쳐 온 한팩은 무용인들에게 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니더라도 레퍼토리 공연으로 춤전용 극장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는가 하면 안무가 육성사업과 새로운 형식에 대한 실험적인 공연으로 무용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아직은 초기단계의 어설픔으로 전 무용인들의 보금자리가 되기에는 품이 좁고 살림이 조악하여 전반적인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모자르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첫 무용감독(비상임)으로써 지난 2월 임기를 마친 안애순 무용예술감독을 만나 그간 활동의 겉 얘기와 속사정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무용계에서 성장한 정책과 행정전문가가 필요하다

이지현 : 만 3년간의 임기를 잘 마치신 걸 축하한다.

안애순 : 벌써 그렇게 시간이 흘렀나. 정신없이 지나간 시간이었다. 행정적인 공부를 많이 했다. 다른 장르에서 전문가들이 어떤 정보로 어떤 일을 하는 지를 보는 경험을 하게 됐고, 무용계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였던 거 같다. 극장, 페스티벌, 국제 네트워크 등을 해내는 인력이 필요한데 무용 쪽에 행정, 정책 전문가 내지는 그것을 전담하는 기능을 가진 조직과 인력이 없다는 것이 가장 문제로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이지현 : ‘안애순무용단’의 예술감독으로 주로 창작 작업만 해 왔는데, 행정적인 차원에서의 한팩 감독생활은 어땠나?

안애순 : 85년부터 독립무용가로 활동을 해왔으니 30년이 다 되가는 시간을 안무가로 살면서 현장에서 무용인들이 느끼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창작여건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무용단 운영에 대한 고민으로 한해 한해 부담과 걱정으로 지쳐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알고 무엇이 현장에 필요한지도 안다. 90년대 중반 전농동 연습실 시절과 2005년경부터 강남으로 옮겨 스튜디오에서 ‘Small Theatre’ 운동을 시작해 젊은 예술가 중심의 신작 발표회를 꾸준히 해왔다. 일찌감치 영상과 미술 등 타장르와 예술적 고민을 나누고 협업을 시도하면서 컨템퍼러리 춤에 대해 고민을 했었다. 그런 경험들이 무용예술을 위해 한팩의 무용감독으로서의 활동을 세워나가는데 바탕이 된 거 같다.

이지현 : 그간의 진행한 사업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

안애순 : 스파프(SPAF,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무용감독으로 축제의 방향성을 잡고 프로그래밍 하는 것부터 무용PD를 두고 여러 기획 사업을 펼쳤다. 우선 무용중심극장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의 기초를 세우는데 초점을 맞췄다. 좋은 레퍼토리를 세대별로 나누어 잘 발굴하고 배치하는 일, 춤 관객-마니아층 형성, 아르떼(Arte,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와 함께 명사 프로그램 진행으로 청소년 교육 사업,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업이었던 안무가 육성사업을 공동으로 주최한 것 등을 했다. 안무가 육성사업은 젊은 안무가를 위한 교육으로 춤중심극장의 중요한 사업이라 생각했으나 내부에 예산이 없었기 때문에 연계해서 하는 게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추진했다.

이지현 : 춤중심극장에서의 가장 중요한 사업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안애순 : 무엇보다 예술가 발굴과 성장에 대한 시스템을 갖추는 데 주력했다. 어느 정도 추진하니 로드맵을 잡게 됐는데, 서울 컬렉션, 안무가 육성사업, 라이징 스타, 스파프까지 작가의 발굴부터 인큐베이팅, 공연기획까지 4-5년의 걸친 작가 인큐베이팅 사업에 대한 틀이 잡혔다. 무용중심극장은 예술감독의 예술적 안목으로 작가에 대한 보호와 관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컨템퍼러리 춤의 상황이 많이 발전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기능적이고 그러다 보니 경연대회가 중심이 되는 경향이 있으며 작가 발굴에 대한 관심이나 시스템은 미약한 편이다. 모던 댄스의 경향에서 컨템퍼러리, 즉 진정한 현대화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이지현 : 비상임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 속에서 일했나?

안애순 : 비상임이었지만 그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벌이는 모든 일에 책임을 느꼈기 때문에 매일 나갔다. 조직적으론 처음에는 예술감독 밑에 PD, AD를 두기로 했지만 불안정했다. 결국은 대부분 혼자 공연기획부와 문화사업부와 직접 일을 진행했다. 초기라 이사장 밑에 예술감독을 둔다는 정관이 있는 정도였고, 권리와 책임에 대해 정해진 바가 없어 일을 찾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런저런 조건보다는 무용계의 중요한 기회라는 생각으로 연극 쪽과 비교하면서 균형에 맞게 무용의 위상을 확보하느라 애썼던 거 같다. 무용과 졸업생도 프로젝트마다 인턴으로 고용하면서 인력으로 성장시키려고 했다.

이지현 : 1~2년 지나면서 사업의 형태가 겉으로 보이니 의도와 방향을 관찰 할 수 있었다. 무용계의 평가는 어땠다고 생각하나?

안애순 : 중심극장으로써 70~80% 넘게 레퍼토리 프로그램이 진행되니 떠돌이 생활하다 자기 집이 전세라도 생긴 것 마냥 무용인들이 좋아했다. 극장이라는 하드웨어를 누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무용인들이 모이고 대화하는 장이 열렸고 젊은 작가들이 분주하게 극장을 드나들며 창작 작업을 하게 된 거 같다.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타장르 작가들과 경험을 공유하고 접촉하고 예술적 파트너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싶고, 기획, 제작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획인력까지 포함된 창작을 위한 시스템이 극장에서 모두 모이게 하고 싶었다.

이지현 : 가장 성과로 꼽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안애순 : 주변에서 가장 우려했던 것은 '무용중심극장이 되려면 극장을 계속 공연으로 채울 수 있어야 하는데 무용으로 어떻게 레퍼토리가 될 수 있겠냐'였다.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고 극장을 줘도 지켜내지 못할 것이라고 다들 생각했다. 여태까지의 무용공연은 매표능력이 있는 대학교수들의 발표회나 객석을 채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적으로 볼 때 무용 쪽의 유료관객률이 연극보다 높았다. 무용관객이 없다는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제대로 된 공연이나 관객의 관심을 끌만한 공연을 한다면 얼마든지 객석은 채울 수 있는 거였다. 라이징 스타나 솔로이스트 공연을 하며 젊고 의욕 넘치는 안무가들의 무대를 보러 오는 마니아층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완전히 성장한 안무가는 아닐지라도 젊은 안무가들의 실험적인 무대로 인해 한팩이 한국에서 가장 최첨단의 공연예술 조류를 볼 수 있는 곳이라는 것과 가장 실험적인 예술을 한다는 이미지까지 생겼다. 대관심사를 할 때도 세대별도 고려했고, 유료관객에 대한 열정을 얼마큼 보이느냐로 판단하면서 신경을 써나갔다. 이제 무용도 그런 불명예를 벗어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이지현 : 춤의 마니아 층 형성에 대한 생각을 좀 더 듣고 싶다.

안애순 : 작가들의 공연을 올리면서 연극은 물론이고 미술, 영화, 건축 등 분야의 전문가 평가단을 초청했고, 일반 관객평가단을 구성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설문지와 리뷰를 받아 자료로 만들었다. 역으로 무용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관객층을 공략하면서 형성해 나가는 방법을 쓴 것이다.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무용을 이해시키는 데 주력했고 그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춤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게 보였다. 우리의 실험정신을 이해해주는 관객은 한명 한명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의 생각은 일간지에서 무용을 다루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기자들이 무용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있다는 걸 알았다. 전용극장이 생기고, 예술감독이 방향성을 잘 가진다면 타장르와 기자 등 주변의 전문가들을 끌어 들여 춤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도록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춤이 우리에게 많은 친화력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체세대 안무가 육성에 필요한 것

이지현 : 안무가 뿐 아니라 작가라는 말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안무가 육성사업을 진행하면서 젊은 작가들에 대한 견해는 어떤가?

안애순 : 두 번에 걸쳐서 진행했는데 새로운 세대만의 감각이 돋보였다. 하지만 한국의 다른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젊은 무용가들도 문제의식이나 고민의 두께는 얇아 보였다. 그건 그들이 대학에서 스스로 질문하는 법을 자극 받지 못해서 인 거 같았다. 작가라는 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사람이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정보화시대 속에서 답은 너무 뻔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뿐이라 재미가 없는 거 아닌가. 그런 상황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자극을 좀 주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 예술가를 교육시킨다는 건 사실 맞지 않는 얘기다. 오히려 그들에게 자극을 주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좀 더 명확히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뿐이다. 그래서 안무가 인큐베이팅에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게 하는 프레젠테이션을 중요하게 다룬다. 예년에 참가한 안무가들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다. 올해는 좀 다르더라. 올해 참가자들은 프레젠테이션에는 강점을 보여 멘토들 뿐 아니라 자신들도 놀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이 결과물로 잘 이어지지 못했다. 개인편차도 상당히 컸다.

이지현 : 계속 지켜보고 있는데 너무 많은 인원, 긴 공연시간 등 쇼케이스의 형식에 적합지 않아 보기 힘든 면이 많았다. 하지만 앞으로 해를 더해 가면 현장에서의 막힌 부분을 뚫어 줄 수 있는 사업이 될 만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전망은 어떤가?

안애순 : 무용예술에서 안무란 영역을 깊이 있게 다루고 안무가를 양성하는 기획은 아직은 중요해 보인다. 그런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인큐베이팅 사업 전체의 존폐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다른 장르에서 이 사업이 진정한 육성사업으로 되지 못하고 지원금을 주고 멘토를 지원하는 정도에서 그쳐 지원사업과의 차별성을 갖지 못해서인 거 같다. 나는 무용감독의 임기를 마친 사람이지만 이 사업이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무용계에서도 이런 상황에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무용인 중에 행정과 정책전문가가 나와야한다

 

 

이지현 : 별로 좋지 않은 조건에 비하면 왕성한 활동, 좋은 결과를 낸 것으로 보이고, 예술감독이 창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적이고 정책적인 사업을 추진했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무용계에서의 성과나 효과가 평가되기도 전에 사업의 존폐가 오락가락하는 건 문예정책의 오류라고 볼 수 있다. 굉장히 적은 예산으로 이 모든 일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안애순 : 맞다. 무용쪽 예산은 말하기 창피 할 정도다. 그래서 대개의 사업을 다른 기관과 연계해서 추진할 수밖에 없었고, 사업은 필요한 데 예산이 모자랄 경우 직접 예산을 끌어와야 했다. 그렇게 진행을 해도 있던 사업이 사라지는 건 순간이고 그것에 대해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아 안타까웠다. 내가 개인적으로 그런 것을 진행하고 막아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무용계에서 이런 정보에 민감하고 무용계를 위한 일에 힘을 합쳐 함께 목소리를 내고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무용예술 활성화의 기반확립을 위해선 무용전용극장까지 가야 한다. 한팩에서의 예술감독체제도 앞으로 여러 고비를 거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변동하는 상황 속에서 가만히 앉아있으면 무용쪽에 유리하게 진행된다고 생각할 수 없다. 어른 세대, 젊은 세대 할 것 없이 무용계라는 우리 공동의 환경을 위해 마음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반드시 행정 경험을 쌓은 무용인들이 나오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무용인이 무용만을 하던 시대는 지났다. 꼭 춤추는 일 만이 아니더라도 무용을 위해 해야 할 일은 점점 더 많아지는 추세다. 대학에서도 무용 실기에만 주력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를 키우는 데 필요한 소양도 물론 가르쳐야 하고 무용계의 변화하는 상황에 대한 감각을 갖고 교육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이지현 : 굉장히 동의할 수 있는 얘기다. 결국 무용인은 춤만 춘다는 관념에서 벗어나 무용인이 스스로를 위해 어떻게 함께 일할 것인가가 화두로 던져진 듯하다. 한팩에서의 무용감독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더 좋은 활약이 기대가 된다. 오랜 시간 감사하다.

 

 

2013. 04.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