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어느 덧 제법 가을 냄새를 품은 바람이 산밤을 툭툭 떨어뜨리던 날, 퇴촌의 관음리 선생님댁을 방문했다. 한국춤비평가협회가 매달 내는 <춤웹진>에 지난 2월부터 “뜰을 거닐며”라는 글을 싣고 계시는 데 그 글들이 품어져 나온 바로 그 뜰을 선생님과 함께 거니는 기회가 온 것이다. 12년전 이 집을 지은 후로 사모님과 함께 선생님은 그 뜰에서 채소도 키우고, 풀도 뽑고, 진돗개도 키우시며 자연 속에서의 삶을 살고 계신다. 그 뜰은 담도 없이 산 바로 아래에 있으며, 산으로 난 오솔길과 작은 연못, 온갖 들꽃들 그리고 선생님이 잠시 머무시며 생각에 잠기는‘별들의 무대와 나의 객석’이라고 이름 붙여진 소박한 나무 의자를 갖춘, 세상의 소란스러움과 거리를 둔 새로운 행성이었다. 내가 그곳에 몇 시간 머물면서 나눴던 것은 대화가 아니라 풀벌레, 산새, 시냇물 소리와 선생님의 부드러운 음성을 통해 나오는 맑은 말씀에 푹 빠져 온몸이 투명해지는 그런 신성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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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듣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거실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선생님과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지난 2010년 겨울 첫 번째‘Kore-A-Moves’의 유럽투어에서이다. 뒤셀도르프의 카페와 거리에서 유럽의 르네상스와 관련된 이야기부터 수많은 예술과 미학에 관하여 선생님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그때의 말씀들이 하나하나 주옥같아 언제 한번 지나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좀 더 집중해서 들을 기회를 만들고 싶었었다.
- 선생님, 이번‘中安 조남순 아름다운 삶 추대상’을 수상하시게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특히 상명이‘아름다운 삶’인 것이 특히 선생님께 잘 어울린다고 느껴집니다. 오늘 선생님댁에 와 보니 그런 느낌이 더욱 강해지네요. 제 개인적으로는 이런 기회에 선생님께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많이 모자라서 좋은 질문을 하게 될지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많은 무용인들과 선생님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게 되어 기쁘구요. 이 지면을 통해 많은 무용인들이 보게 될텐데 여러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많은 사람이 보긴 뭘 보겠어… 그냥 듣고 싶은 게 있으면 물어 보세요.
-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선생님에 관한 몇몇 기록들을 찾아 보았습니다. 이미 기록이 된 것들은 조금 피하면서 아직까지 많이 전해지지 않은 귀한 얘기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몇 번 사석에서 선생님의 어린시절이나 지병과 얽힌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었는데 콧병으로 인해 책을 보는 일이 힘들어 지면서 산속을 헤매셨고, 그런‘방황’이 많은 공부가 되었다고 하신 부분입니다. 생애와 관련된 얘기부터 들어 보고 싶네요.
“제 생애는 복잡해요… 학교는 안다니고 산속만 헤맨 얘기… 지독한 콧병때문이었지만 어린시절은 서울 가회동과 전남 구례의 집을 오가면서 서울 있다, 시골 갔다의 반복이었어요. 음… 집이 두 군데 다 있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재동초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서울이라는 곳은 정말 불쌍한 사람만 살았어요”
- 불쌍한 사람들 이랴뇨?
“자기 동네가 전부인 줄 아는… 그때 가회동 사람들은 가회동이 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사람들이었어요. 내가 서울에 와서 보니 시골에서 온 사람이 드물었어요. 나 밖에 없었는데 아이들이 많이 신기해했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시골 얘기를 해줬어요. 우리집 얘기를 하는데, “시골 우리집은 대문에서 몇십리를 가면 중문이 나오고, 거기서 또 몇 백리를 가야 사랑채가 나오고, 또 거기서 한참을 들어가면 안채가 나온다”고..
- 거짓말을 하신건가요?
“아니, 거짓말이 아니라… 들어 보세요. 제 얘기를 듣고 아이들이 주로 소풍을 가서 알던 “창덕원, 경복궁보다 더 크겠네?”하고 물으면 그건 비교가 안된다고 호언했지… 근데 나중에 다시 시골집에 가보고는 스스로 얼마나 실망을 했던지… 왜 그랬나 했더니, 내가 3살 때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그 큰 집에선 살 수 가 없어 읍으로 이사를 왔어요. 그러니까 3살 때 아장아장 하던 걸음으로 하면 그 집의 마당이 몇백리 몇십리로 느꼈던 거죠. 왜 그랬나 처음엔 그게 이해가 안되 내가 고작 천평 정도 되는 집을 보고 어떻게 그렇게 크다고 기억을 했을까 나중에 깨달았죠. 어릴 때의 것은, 어린 눈으로 본 것은 모든 것이 멀고 크고,… 개미 한 마리가 집을 돌아다닌다고 생각해보세요 이 집에 얼마나 넓겠어요…”
- 그럼 서울에서 구례로 다시 돌아가신건 언제세요?
“2차대전 말기, 해방되기 직전이니 1944년. 서울에서 저녁마다 B29가 지나가기만 해도 싸이렌이 울리면 반공호로 가야하는 시절이었어요. 한밤중이건 뭐건 그랬으니 언제 폭격이 있을지 모르니까 그리고 전쟁이 언제 끝날 줄 몰라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모두 시골로 돌아갔죠. 거기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서울로 다시 왔죠. 그리고 또 6.25때 다시 내려갔어요.”
- 콧병은 언제부터 앓으셨나요?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콧병나기 전에는 기억력이 참 좋았는데… 콧병이 나면서부터 책을 전혀 볼 수 없었고 기억력도 많이 안좋아졌어요…시골로 가기 전 가회동 사람들은 가회동이 전부인 줄 알고 그곳에서 벗어날 생각을 전혀 안했는데… 난 어떻게 하다 남산엘 가보니까, 가회동과 남산은 완전히 다른 세계야… 우리나라인데도 우리나라가 아닌 이국정취… 그게 신기해서 매일 남산을 간거예요. 책가방 집에 내던지고 남산을 가는데 당시는 전차가 있었지만 노선이 어정쩡했고, 남산을 걸어갔다 오면 밤중이예요. 돌아오면 피곤해 쓰러져 자고… 그러자니 숙제를 해본적이 없어요. 근데 아주 독한 일본 여선생이 있었는데, 매일같이 모노사시(대자)로 손바닥을 맞았어요, 피가 날 정도로… 그런데도 왜 매번 숙제할 생각을 안하고 매일 남산을 갔는지… 그 나이 때는 우리가 일본의 침략을 당했는지 그런 거 잘 모르고 잖아… 집에선 한국말을 학교가면 일본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냥 그런 건가 하고 생각했지… 학교가서 한국말하면 벌금을 내던 시절인데 일본인들이 모여 살던 남산은 전혀 다른 세계인거야.”
- 처음에 남산은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학교에서 아마 남산 견학을 갔던 거 같애. 남산에 과학관, 명치신궁 그런 게 있었고 학생들이 단체로 견학 참배를 했지. 그렇게 한번 보고 충격을 받은 거지. 예전엔 남산 밑에서 긴 계단이 있었는데, 그게 372계단이었어. 교과서에도 나와요. 거기에 가면 선생이 맨날 372개가 맞는 지 세어라 하셨지…
- 초등학생이 스스로 남산을 찾아가고 배회했다는 게 좀 놀라운데요. 왜 그랬을까요?
“뭔가 신기하다… 음… 이국정취가 호기심을 끌었지. 그 때 계동, 가회동, 재동, 화동, 팔판동, 사간동이 어울려 피워 낸 향기 같은거, 그 분위기가 참 좋았거든. 꿈같은 세계였어. 그런데 그런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있구나를 알고는 방황벽이 생겼을거야. 코가 아팠을 때 이 버릇으로 시골가서도 산속을 헤맸던거지 책을 읽고 싶어도 머리가 아파 못 읽었지만 난 산속에서 모든 것을 얻었다고 생각해요. 다짜바나 다까시라는 일본 사람이 7층건물 전체가 책으로 가득한 세계적인 책소장자인데, 그는 젊은이들을 만날 때 마다 헤어질 때면 으레 하는 말이 있데요. “책을 읽으시오”.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방황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다찌바나 다까시가 불쌍하지요. 내가 수업 중에 이 얘기를 했더니 이 말을 들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다까시가 책읽는 것보다 방황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고 알아듣는 거예요. 이런 오해들을 많이 겪는데 바로 사람을 앞에 두고 얘기를 해도 여기서 여기로 가는 사이에 그 사이에도 이런 오해가 일어나고 왜곡이 일어나… 사람 사이의 소통이란… 참… 어려운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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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자기의 그릇만큼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씀이죠… 그리고 그 그릇을 키우기 위해 방황과 사색이 필요하다는…
“그런 의미에서 공자도 불쌍해요. 논어의 제일 첫마디가“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인데, 거기도 배우고, 익히고 밖에 없어요. 익힌다는 것은 달달 외운다는 건데 그것도 중요하지만.. 뉴톤이 해서 유명해진 말이“거인으로부터 배워라 Learning from giant 또는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 거인의 어깨 위에 서기”란 말, 이건 Google Scholar라는 검색창의 첫 화면의 표어로도 쓰이고 있는 말이지. 거인의 어깨에 선다는 건 거인보다 더 멀리 내다 보기 위해서지. 푸생(Poussin)의 그림을 보면 거인의 어깨에 있는 난장이가 바닥만 바라보고 있어요. 그러면 거인의 어깨는 아무 의미가 없지. 그냥 배우고 익히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거인보다 더 멀리 봐야 돼요. 그러기 위해 올라가야지. 본다는 건 그냥 익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것을 만들기 위해 올라가는 거지… 그런 자기의 것을 만들기 위해 배우고 익히는 것을 넘어 사유하고 방황하는 것이 필요해요.
- 참 좋은 말씀입니다. 저 역시 배운다는 것은 그저 가르친 대로 따라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것이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 자기 것을 만들기 위한 것이란 말씀이 깊이 다가옵니다.
관음리 선생님댁에 이름을 붙인다면‘관음행성’이라 하고 싶다. 이곳은 하나의 행성이라 할 만큼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갖추어져 있다. 모든 풀과 나무, 연못과 시냇물이 자연인 듯 하나 이 행성의 주인의 손길속에 탄생한 완벽한 자연이다. 그 완전성과 자연성의 조화가 뜰안의 어떤 공간도 모두 살아 있게 한다. 또 이 행성은 지구 안에 있으되 지구란 별을 바라볼 수 있는 묘한 곳이다. 결코 작지 않은 채마밭을 마주하고 있는 항아리를 받침으로 나무판 하나 걸어 놓은 긴의자, 선생님이‘별들의 무대’또는‘나의 객석’이라 이름 붙이신 곳으로 이곳‘관음행성’에서 선생님은 또 다른 별을 바라보신다.
-“내눈에 이상이 있다”(2008. 10. 13. 웹진 춤추는 거미)란 인터뷰 기사를 보았습니다. 1960년대 전설의 소프라노(슈바르츠코프)의 내한공연에 대해 소개 글을 신문지상에 싣게 되셨고, 관행을 넘어서는 긴글이 2회에 걸쳐 문화면에 실리게 되면서 음악평론을 시작하게 되셨다는 이야기부터, 1970년대 초 <독서생활>이라는 잡지에 글을 쓰신 걸 조동화선생께서 보시고 <춤>지에 칼럼을 주시겠다는 제안을 하셨다는 이야기, 그리고 결국 무용가들에게 선생님 평론이 많은 상처를 주신다고 판단하여 절필하시면서‘내 눈에 이상이 있는 것 아닌가’로 겸손하게 표현하신 이야기요. 저는 특히 그 제목이 너무 인상적이었는데요. 감상이나 비평을 한다는 건‘본다는 일’에서 시작되고 철학적으로 그것으로 은유할 수 있을 만큼 본다는 것이 중요하쟎아요. 그런 과정을 겪으신 선생님께 듣고 싶네요. 우리는 무얼 보고, 어떻게 봐야 할까요?
“…보는 사람을 Voyant(브와이앙), 또는 Jurovidi(유로비디)나 Teirezias(떼이레지아스)라고 해요. 그냥 눈 뜨고 보는 것이 아니라 남이 못보는 걸 보는 사람이라는 뜻이지. inner eye, insight 즉 통찰력이라고 하지요. 말 그대로 내면의 눈, 몸의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볼 때 보이는 것을 봐야 하는 거지요. 노자의 도덕경에 시지불견(視之不見), 청지불문(聽之不聞) 이라는 말이 있어요. 기가 막힌 얘기예요. 이래서 도덕경이 논어와 비교가 안되는 지점인데, 흔히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듣고도 듣지 못한다고 해석을 하는데 시이(視而)라고 하지 않고 시지(視之)라고 한 건 목적격 조사를 붙여 ‘볼 수 없는 것을 본다’라고 해석하는 게 적합해요.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것, 즉 눈깔을 뜨고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것과 비교해서 노자는 voyant(브와이앙) 이걸 얘기했던 거지. 비평가들이 봐야 할 것도 그런 거 아닐까요. 비평가는 볼 수 있어야 비평가지요. 이건 훈련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마음속 깊은 곳의 눈을 떠야 하는 거지요….
-그렇지만 저희들은 대부분 눈에 보이는 동작이나 보여주려는 것만을 보기에도 바쁘지요.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춤의 영역이란 어떤 걸까요?
“공간에는 파장이 가득한데, 그건 움직일 때만 생겨나는 건 아니예요. 우리가 꽃을 볼 때 시각적인 것 뿐 아니라 꽃의 싱그러움, 향기, 이런 걸 빼놓고 얘기하면 뭔가 빠진 거죠. 시각에만 의존하면 그것이 전체라고 생각하기 쉬어요.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것처럼 코끼리 다리도 코끼리가 아니고, 코도 코끼리가 아니고, 이빨도 코끼리가 아닌 것처럼 춤도 움직이는 것만이 춤이 아니지요. 춤추는 사람이 풍기는 향기, 아우라 같은 것도 춤의 일부지요. 눈으로만 보는 것도 아니고 코로, 피부로 받아들여 춤을 봐야 하는데, 대부분 눈으로만 보지요. 모든 것을 마음을 다해, ‘혼신’으로 봐야지요. submerge, emerge 라는 말이 있쟎아요. 바다 위에 떠있는 부분을 주로 본다면, 바다 밑 그 밑에 숨어있는 부분까지 봐야 보이지 않는 걸 본다고 할 수 있지요. covert, overt도 마찬가지고.
남이 뭐라고 지껄인 것을 끌어 들여 설명하는 것만으로 아름다움을 설명할 수는 없지요. 11세기 영국 Warwick의 지독한 영주와 그의 아내 레이디 고디바(Lady Godiva) 얘기에서 중요한 것은 레이디 고디바가 백성들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느껴 자신의 권위나 체면을 쉽게 버릴 수 있었던 것처럼 예술에서 창조자가 뭔가를 느끼고 만들어 낸 것을 보는 사람이 함께 느껴주지 않으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죠. 공감 sympathy가 중요한 개념인데 우리는 compassion을 연민으로 sympathy를 동정으로 번역하고 이 동정을 연민에 가까운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어요. 아픔, 괴로움을 함께 느끼는 것이지 그냥 동정하는 것은 아니지요.
평론의 기능이라는 것은 analysis, interpretation, appreciation, evaluation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계몽적인 게 있어요. 관객들이 못보고 놓쳐버린 것을 여기에 이런 것이 있다고 알려주는 것이 중요해요. 아름다운 꽃이 있을 때 그냥 쓱 보고 넘어가 버린 것을 그 아름다움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마나 향기가 있는가 이 꽃이 어떻게 나를 끌어당기는가를 이야기 하면 그런 것을 못보고 내가 그냥 지나갔구나 하면서 다시 꽃을 보게 되는, 다른 사람을 이끌어 주는 그런 기능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하지요. 셰익스피어 역시 혼자서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잊혀져 버린 것을 후대의 많은 평론가들 드라이든, 사뮤엘 존슨, 알렉산더 포프, 콜드리지 이런 사람들이 계속 다른 사람들이 느끼지 못한 것을 느끼도록 해주었지요. 우리 무용가들이 “비평가들은 욕만하지 우리가 하려는 것들을 보지도 않고 못알아 듣는다”고 불평을 하는 것을 들으면서 감짝 놀랐는데 문제는 셰익스피어 속에는 정말 무궁무진 한 것들이 있어요. 그런데 아무 것도 없는 속에서 그걸 찾아내라고, 안본 다고만 하는 건 답답한 노릇이지. 송범의 작품에 뭐가 있어요. 아무리 뒤져 봐도 아무 것도 없는데 저는 했다는 거예요. 그건 저나 하는 거지 저 혼자 그런거지, 송범의 제자들이나 헛소리하는 거지… 양파같은 거지요 끝까지 까봐도 있는 게 구린네 밖에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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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은 굳이 사진도, 대화자리도 피하신다. 몸이 안좋아 이곳으로 이사오게 되었고, 이 뜰을 가꾸며 건강도 되찾으셨다는 사모님은 불교신자시다. 사모님의 방엔 30대때 선생님과 찍은 사진이 있는데 초록색 한복에 서글한 눈매가 보통 미인이 아니시다. 새벽에 일어나 법화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여 온갖 집안 건사를 오전에 마치신다는 데, 이 행성이 불필요한 티끌하나 없이 정갈하고 단정한 이유을 짐작할 수 있겠다. 점심식사는 인근의 자주 가신다는 소박하나 맛있는 집된장이 있는 곳에서 함께 하였다. 식사 자리에서 또 하나 중요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춤만 보면 춤이 사라져
이순열: 얼마전 김매자 선생이 주최하는 세미나에 초대받아 사회를 봤어요. 그날도 얘기를 했지만 단순히 춤만을 얘기하지 않고 다른 장르의 전문가들을 모아 춤과 더불어 자리를 마련한 것을 보고 마음에서 우러난 칭찬을 했지요. 흔히 우리가 잘못하는 것 중 하나가 무용으로 시작해서 무용으로 끝나는.… 무용무용무용무용… 흔히 그래요. 이런 말 있지‘모든 사람의 친구는 그 누구의 친구도 아니다’무용무용만 하면 무용이라는 것은 없어져 버려요.‘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가 그런 얘기인데, 요즘 multidisciplinary라는 말 많이 하는데, 여러 학제가 통합되어 바라봐 져야 해요. 춤비평가협회 <춤웹진>에“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2011. 6. 15. No. 35) 라는 글을 무용가들이 읽어 줬으면 하고 썼는데 아무 도 안 읽는 것 같아. 그게 헤밍웨이가 만든 말이 아니라 16세기 존 던의
이 얘기로 봐도 무용 하나만 외따로 떨어진 섬이 아니예요. 오히려 춤을 잘 보려면 다른 것들과의 연결속에서 함께 바라봐야지요. 춤만 보면 춤이 사라져요.
그리고 다시‘별들의 무대 나의 객석’으로 돌아 왔다.
-춤을 잘추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무용가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샘이 깊은 우물은 아니 그칠새라… 우리 가까이 있는 말이면서도 우리가 잊어버리기가 쉬운 말인데 가끔 딱하게 여겨지는 것은 고인 물이 아무 것도 없는 데, 샘솟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데 빡빡 긁어서 춤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것 같은 그것을 볼 때 답답하고 딱해. 우선 물을 흠씬 받아 들여서 땅속 깊은 곳에 가라 앉혀서 그것이 분출해 춤이 되야지. 손과 발로 춤을 추는 것이 아니고 우선 가슴으로 춤을 춰라고 하고 싶어요. 신명도 가슴에서 생겨 그것이 손발로 분출하는 거지, 손끝 발끝 만으로 춤을 추려고 억지로 만들어 내는 건 아니지. 기법을 배운 다는 것은 저절로 넘치는 춤을 약간 손질할 때 필요한 거지… 알렉산더 포프의
“Music resembles poetry: in each
Are nameless graces which no methods can teach,
And which a master hand alone can reach.
음악이든 시든 무릇 모든 예술에는
형언키 어려운 고귀함이 깃들어 있다.
어떤 메소드로도 가르칠 수 없는,
오직 그 세계가 삭아서 푹 젖은 이라야
도달할 수 있는”
말하자면 메소드라는 것은 우선 표현할 것이 있고나서의 문제인거지. 너무 메소드 메소드 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 바가노바 메소드가 아무리 훌륭한다 한 들 그것을 받아 들이는 학생의 가슴 속에 춤이 없으면 메소드만으로는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아무데도 없다고 생각해요.
"이 성스러운 육체보다 더 드높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지현: 그런 충만한 춤을 추고, 볼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거 같아요. 춤은 몸이라는 곳을 통해 나오쟎아요? 근데 몸은 춤만을 추는 곳은 아니고 생활도 하면서 살아가는 곳이지요. 우리는 몸으로 살기도 하고 몸으로 춤추기도 하는 데 무용가들은 그 몸을 어떻게 바라 봐야 할까요?
“원래 춤이라는 것은 삶속에서 나오는 것이지 삶과 동떨어진 예술이라는 것은 없는 거지요. 아무리 뛰어난 춤이라는 것도 우리 몸을 통해서 나오는 거지 몸에서 동떨어져 나오는 것이 아닌 것처럼 춤은 우리의 일상성과 밀접해요. 노발리스(Novalis)가“이 세상에 단하나 뿐인 성전이 육체다”라고 했고, 그다음에 한 말이 더 중요한데“이 성스러운 육체보다도 더 드높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라는 말이 따라 나와요. 지난 <춤웹진>에“Mens sana in Corpore sano”(2012. 8. 15. No. 37)란 제목으로 글을 썼는데, 이 유명한 문구도 잘 못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보통은“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라고 하죠.‘정신이’가 아니라‘정신도’예요. 이 말에서 쥬베날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도 갖춰라’라는 말을 한거거든요. 이 의미를 알려면 이 글이 풍자집 속에 있다는 걸 알아야 하는데, 그냥‘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라고 하면 풍자가 될 수 없는 문장이지. 건강한 몸에 건전한 정신도 있어야 할텐데 어떻게 저렇게 머리가 텅텅 비었을까하며 세태를 한탄하는 이야기지요. 그리스 시대는‘이원주의’시대인데, ‘하늘과 땅’‘육체와 정신’‘museum과 gymnasium’이런 식으로 두 세계가 분리가 아니라 화합을 화두로 삼았던 시대였어요. 그래서 짐나지움 옆에는 라이브러리 Library가 꼭 있었어요. 하지만 로마시대에 와서 글라디에이터를 양성하고 육체미를 뽐낸답시고 근육을 어마어마하게 사육시켜 기름을 발라 번지르르 한데 머릿속은 텅 빈 상태가 된거죠. 그런 사실과 로마가 기울어진 것이 무관하지 않은데, 바로 쥬베날이 그것을 한탄하면서 토해낸 말이 Mens sana in Corpore sano입니다. ‘건강한 육체 속에 건전한 정신이’라는 말은 가당치 않은 왜곡이지요. 건강한 육체만이 아니라 건정한 정신도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한 거예요.
‘이 세상에는 단 하나의 성전이 있을 뿐이고 그것이 곧 인간의 육체’라는 Novalis의 말에는 육체를 더욱 드높은 차원으로 제고시키자는 쥬베날의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쾰른에 있는 무용박물관에도 이 글 귀가 적혀 있던데, “이 성스러운 육체보다도 더 드높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라는 중요한 뒷부분이 빠져있어요. 오해와 왜곡이 곳곳에 있어요.
- 선생님 말씀 듣고 보니 오해없이 무엇을 이해하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라파엘의“To understand is to equal”이라는 말이 기가 막힌 말이예요.“이해한다는 것은 대등해진다는 것이다”인데. 어떤 대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대상의 눈높이, 대상의 수준에 이르렀을 때만 가능하다는 거지요. 인간은 눈높이 이상은 아주 보기 힘들어요.. 자기 눈 보다 조금만 위에 있어도 잘 안보이는 거야. 사람을 만나고 온 개구리에게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달라고 했더니 발만보고 와서 발이야기만 하더라는 거예요. 셰익스피어 비평을 한다는 것도 셰익스피어의 수준에 이르러서 그가 본 것을 봐야 제대로 이해를 하는 것이지. 가령 세익스피어의 <헨리 5세>는“O for Muse of fire that would ascend. The brightest heaven of invention”이라는 불길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많은 문학 비평가들은 그속의 불길(fire)도, 상승(that would ascend)도 휘황한 하늘(the brightest heaven)도 보지 못한 채 잿덩이만 뒤지고 있어요. 그런가 하면 엉터리 작가들은 잿더미만 남겨 놓았으면서도 그 속에 불꽃이 있다고 우기기만 하죠. 모두 웃지 못할 희극입니다.
- 선생님, 요즘은 주로 무슨 생각하며 보내세요?
“무슨 생각을 하는 건 아니고 하루 종일 뜰에 나와 풀을 뽑아요. 풀을 만지고 있으면 뭐가 스쳐 지나가요. 산책하고, 깊은 산속을 헤매면 거기엔 모든 것이 있어요. 내가 얻은 게 있다면 전부 산속에서 얻은 거예요. 산속에서 나는 모든 걸 다 봤어요. 춤도 산속에서 보고… 그러다가 내려와 춤을 보자면 저건 춤이 아니다고 느껴질 때가 많아요… 예전에 마고트 폰테인은 기사로 접하고, 책으로 읽어 알고 있었는데, 굉장한 무용가라고 느껴진 게 1955인가 56년 같이 살았던 레이너라는 친구가 타임지를 구독했는데, 그때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었어요.“Fonteyn is essentially an adagio girl overtoned with allegro”이글은 무용가를 칭송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이예요. 오버톤은 배음이라는 뜻이죠. 하나의 소리에 겹쳐 들리는, 깔려지는 소리가 있는 거지요. 아다지오 뿐 아니라 알레그로가 겹쳐져 있는, 두 개의 세계를 다가지고 있는, 없는 게 없는 이라는 표현이예요. 그렇게 기가막힌 글을 먼저 읽고 나중에 <백조의 호수><불새><온딘>등 그녀가 나온 비디오를 봤는데 약간 실망했어요. 기대가 추락한거죠. 무용에 대해 최초의 글이 바로 이 실망을 쓴 글이예요."
- 선생님이 무용평을 쓰신 후 심한 반응들이 있어 결국 절필까지 하시게 됐다고 들었는데요.
"잡아먹고 싶다. 볶아 먹고 싶다. 그랬다고 하네요. 나야 사람들을 별로 안만나니까 주로 조동화씨 통해서 들은 얘기인데, 76년 그 무렵에 음악 쪽에서 레슨비리 사건이 터졌어요. 그때 음악평론가중 누가 “레슨을 못하게 할 순 없다. 벼룩 한마리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울 순 없다” 이런 글을 신문에 실었죠. 내게도 원고가 청탁이 와서 “그건 벼룩 한 마리가 아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갈아 먹는 쥐새끼다. 초가삼간이 아니라 더 한 것도 태워야 한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당시 서울 음대학장이었던 J교수께서 신문에 “총소리 안나는 총이 있으면 쏴 버리고 싶다”고 썼죠. 그 후 고명하신 어느 원로 무용가와 대담을 하는데, 그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J교수께서 오죽했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참으로 공감이 가는 말씀’이었다고. 돌려 말하는 척 하면서도 결국은 소리 안나는 총으로 나를 쏴죽이고 싶다는 말을 한거죠. 그러나 그런 말 때문에 평쓰기를 그만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무용가 한분이 내 면전에서 이순열의 평은 가슴을 갈기갈기 도려내는 듯이 쓰리고 아리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나는 참으로 큰 충격을 받고 가슴이 아팠어요. 남의 가슴을 갈기갈기 도려내다니, 내가 그렇게도 못할 짓을 했나. 그만 두어야겠다고 그 때 결심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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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란 두려움의 시작일 뿐이리"
이지현: 오늘 너무 중요하고 굵직한 얘기를 들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좋은 얘기는 무슨… 헛소리만 했는데…”
-선생님, 아름다움은 뭘까요? 그 얘기를 해주시면 좋은 마무리가 될 수 있겠네요.
“릴케가 기가 막힌 얘기를 했는데, ‘아름다움이란 두려움의 시작일 뿐’이라고.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라면 그 앞에서 어떻게 떨지 않겠어. 릴케의 그 시를 읽고 나서 나는 하루종일 떨고 있었어. 그것은 백지 앞에서 겪는 두려움과 황홀감 같은 거지. 존 키츠의 그리스 항아리 송가(Ode to Grecias Urn)은“Thou still unravish'd bride of quietness”(너 아직 그 누구의 손때도 묻지 않은 정적의 신부여) 그렇게 시작돼요. 신부를 정적과 연결시킨 그 발상이 참으로 놀랍지. 정적의 신부... 그건 백지처럼 두려움과 떨림 그리고 황홀 바로 그거야. 정적의 신부.…… 얼핏 듣기엔 좀 어려운 말인 듯 하지만 키츠는 한참 뒤에 그걸 이렇게 풀어 좀 더 알기 쉽게 해줍니다.
“Heard melodies are sweet, but those unheard
Are sweeter: therefore, ye soft pipes, play on:
Not to sensual ear, but, more endear'd,
Pipe to the spirit ditties of no tone.
들리는 멜로디는 아름답지만 들리지 않는 멜로디
더욱 아름다워라: 그러니 부드러운 피리들아, 계속 연주해다오.
육체의 귀에다 불지 말고, 더욱 친밀히,
영혼에게 불어라 소리없는 노래를”
그‘정적의 신부’앞에서 키츠의 황홀한 두려움의 떨림은 시작되지요. 정적과 멈춤을 좀 더 깊이 음미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시지불견, 청지불문, 박지부득… 드러난 것보다 더 무한한 세계가 숨쉬고 있는 이^희^미 (夷^希^微)의 초월계(超越界)에 대한 동경에서 아름다움은 움트게 되지 않나 봅니다.
-무릉도원에 온 것처럼 멋진 뜰과 좋은 말씀에 흠뻑 취했습니다.
“앞으로 더 하고 싶은 이야기는“뜰을 거닐며”에 쓸게요.‘뜰을 거닐며’라고 했지만 사실‘예술가이기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가 부제예요. 그런 젊은이를 생각하며 써요. 그럼에도 헛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한 사람의 관객만 있으면 된다. 한사람만 읽어도 된다… 그 한사람의 관객이라도 있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