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난 30년간 한국 공연예술의 산실이었던 아르코예술극장이 일대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1981년 아르코예술극장이, 2009년 대학로예술극장이 개관하여 이제는 한국공연예술센터(약칭: 한팩)로 통합 운영되고 있다. 우리 공연장들이 극장의 공공성 측면에서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는 화두는 지금도 강력하다. 한팩은 지난해 예술감독제를 다시 도입하여 변신을 꾀하고 있으며, 이번 봄부터 ‘한팩 라이징 스타’ ‘한팩 솔로이스트’의 두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무용예술감독의 역할을 선보이기 시작하였다. 한팩의 무용예술감독을 맡아 업무를 수행중인 안애순씨에게서 그간의 소감과 앞으로의 전망을 들어본다.
대담: 김채현 (본회 공동대표 / 무용원 교수)
2011. 6. 13. 한국공연예술센터 무용예술감독실
예술감독으로 선임된 지 2년차에 때늦은 축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춤계에서 무용예술감독의 역할이나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해 하는 점이 많다.
안애순 축하 감사드린다. 2010년 1월 3년 임기로 임명되어 이제 절반이 지난 셈인데, 이제야 맡은 업무를 진행할 입장에 서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예를 들어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공공극장의 성격상 지난해에는 그전에 이미 정해진 사업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올해 사업부터 예술감독으로서 구상한 바를 실현해나가는 단계이다. 아직 이렇다 할 실적을 말하기에는 시기상조라 생각되고, 그래서 궁금한 점도 있을 것 같다.
이번 봄에 ‘한팩 라이징 스타’, 이번 6월의 ‘한팩 솔로이스트’ 같은 춤 프로그램을 내보였는데, 처음 소개되는 행사라 그런지 낯선 점이 있다.
그럴 것이다. 이 두 가지 프로그램이 즉흥적으로 추진된 것은 아니고, 한국공연예술센터가 마련한 새로운 운영 방향에 바탕을 두고 개발된 프로그램들이다. 그러므로 한팩의 새 운영 방향을 알고 있어야 두 프로그램을 더 잘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공연예술센터가 전문예술법인으로 출범한 것이 작년 7월이고, 그에 맞춰 5대 전략 과제를 세웠다. 이 전략에 준해 운영과 대관을 진행하고 있고, 두 프로그램도 각각의 전략에 발맞춘 행사들이다. 그런데 먼저 말하자면 이 전략 과제를 숙지하지 않은 채 대관을 신청하고 탈락하는 아까운 경우들도 있었다. 한팩의 새로운 변화에 대해 조금만 신경 쓴다면 서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한다.
이 대목에서 안애순 감독은 ‘한국공연예술센터 공연 사업 현황’ 자료집을 짚어가며 사업을 소개하였다. 이 현황 자료집에 명시된 5대 전략 과제는 차세대 공연예술가의 체계적 발굴(실행 프로그램: 차세대 안무가 육성 공연 등)과 새 개념 공연예술 작품 육성(실험과 대안을 모색하는 공연예술 시리즈 등), 주제별 공연 작품 육성(공연예술계 이슈와 요구를 반영한 주제별 공연 기획 시리즈), 지속가능한 공연 활성화(우수 공연예술 단체의 대표 레퍼토리 공연 등), 국내외 공공기관과의 교류 및 동반자 관계 구축으로 나뉜다. 5대 전략 과제는 한팩이 공공 극장으로서 정체성을 설정하고 자기 위치를 찾아가는 실행 방안으로 해석된다. 전략 과제의 실행 프로그램은 2011~12년도의 것이므로, 앞으로 수정될 여지도 있을 것이다.
5대 전략 과제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방식은 제작 지원, 기획 지원, 대관 지원의 셋으로 나뉜다. 이 수행 방식은 말하자면 한국공연예술센터가 극장들을 운용하는 데 있어 간여하는 방식에 따라 나눠지는데, 제작 지원은 한팩이 직접 제작하는 것을, 대관 지원은 대관을 공모하는 것을, 기획 지원은 한팩이 50% 할인된 저렴한 대관료를 전제로 홍보와 마케팅을 지원하는 것을 일컫는다. 지원 사업별 비율을 연간 공연 일정으로 보면, 제작 지원이 10%, 기획 지원이 40%, 대관 지원이 50% 정도를 차지한다.
지난 3월의 ‘한팩 라이징 스타’, 이번 6월의 ‘한팩 솔로이스트’는 제작 지원에 해당하는 행사로서, 5대 전략 과제 가운데 전자는 차세대 공연예술가의 체계적 발굴에 해당하고 후자는 주제별 공연 작품 육성에 해당한다.
전략 과제와 수행 방식이 비교적 다양한데, 이런 속에서 무용예술감독의 업무를 요약해서 소개하자면 무엇이라 말하겠는가?
한팩에서 예술감독은 무용과 연극 부문으로 나뉘는데, 예술감독은 해당 분야의 프로그래머로 풀이될 수 있다. 한팩에서 해당 분야의 주요 프로그램을 정해서 추진하는 것이 핵심 업무이고, 대관 심의에도 참여한다. 연 4회 있는 제작 회의를 비롯하여 프로그램의 구체적 실행 등 공연의 실제 기획을 정하고 감독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다.
한팩은 아르코예술극장을 무용 중심 극장, 대학로예술극장을 연극 중심 극장으로 할 것을 표방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그 성격을 보다 분명히 해나가야 하는 것이 또 하나의 과제라 생각된다. 그러자면 앞서 소개된 전략 과제와 수행 방식을 널리 알려 무용인들이 적극 동참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공연작 개발에서도 자극을 줘야 할 것으로 본다. 말하자면 춤의 입지를 강화해나가는 데 있어 무용예술감독의 역할은 물론 중요할 것이다.
동감이다. 앞서 말한 대로 한팩의 전략 과제를 무용인들과 함께 공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무용 중심 극장이라는 목표를 대관 수요에 해당하는 대관 기일에서 달성하는 동시에 공연 내용에서도 실질적인 성과를 내도록 무용인들과 많은 대화를 통해 여론을 접수하고 있으며 중지를 모으는 작업을 지속할 것이다.
이번에 ‘한팩 라이징 스타’ 프로그램은 안애순 감독의 첫 기획작이라 할 만한데, 수행해본 소감은 어떠한가?
이 프로그램은 차세대 공연예술가 발굴과 육성을 지향하는 프로그램으로 기획되었고 욕심 같아서는 그들을 스타로 만들자는 생각에서 제목을 그렇게 붙였다. 결과의 평가에 관해서는 말할 입장이 아닌 것 같아서 유보하고 싶다. 지금으로선 그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프로그램에 대한 인식부터 돕고 싶다. ‘라이징 스타’는 춤계에서 얼마간 안무작을 발표한 경력의 신진을 선발하여 그들을 2차로 검증하는 징검다리 같은 구실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번에 8명을 선발하여 춤과 매체의 융합을 주제로 공연할 기회를 부여하였다. 그 가운데 호평을 받은 안무자에 대해 3차 검증 단계로서 내년에 다시 기회를 부여하고 혹은 서울국제공연예술제 등에서의 공연을 주선할 예정으로 있다. 이 정도의 과정이 신진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기본 작업일 것이고, 이후 육성을 어떻게 심화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을 수렴하는 중에 있다. 이번에도 행사가 끝난 후 레스토랑 장에서 안무자와 출연진 그리고 비평가, 타장르 전문가, 연출가, 애호가 등이 모여 의견을 나누는 모임을 가졌다. 뽑은 사람을 끝까지 관리할 필요 있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이번에 참가한 안무자를 선정한 때가 작년 하반기여서 선정부터 공연까지 기간이 좀 짧았던 점이 아쉽게 느껴진다.
이에 덧붙여 안애순 감독은 ‘라이징 스타’에 CJ영페스티벌에서 선정된 사람이 더러 있었다는 점을 소개하였다. 이제는 중단된 이 페스티벌처럼 젊은 안무자를 적극 발굴하는 작업이 춤계에 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라이징 스타’를 기획하는 주요 동기로 작용하였다고 밝혔다. 동기야 어떠하든, 참신하며 견실한 안무가가 다수 늘어야 한다는 점이 춤계의 중론인 만큼 ‘라이징 스타’는 프로그램으로 지속하면서 창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운영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한국공연예술센터에서 안무자를 육성하는 다른 프로그램도 운영하는 줄로 안다.
이전에 예술위원회에서 하던 사업의 연속이라 보면 된다. 올해 1월 공개 오디션으로 예비 안무자를 10명 선발하여 안무자로서 경험을 다지고 해외 연수도 병행한다. 그들에게 1년간 안무 강좌를 제공하여 실력을 다듬도록 해서 ‘라이징 스타’나 서울국제공연예술제 댄스 컬렉션에 추천하여 안무 작가로서 홀로 서기를 유도하는 사업이다.
‘한팩 솔로이스트’ 프로그램은 어떤가. 춤계에서 형제, 자매나 가족 관계인 사람들이 드물지 않지만, 그들을 다수 묶은 공연 프로그램은 아마 처음일 것이다. 이번에 한 형제와 한 자매, 그리고 두 남매처럼 4쌍의 가족을 대상으로 각각 제3자가 안무한 작품 4편에다 한국춤 춤꾼을 대상으로 현대춤 안무자가 솔로작으로 꾸미는 등 4편의 솔로가 덧붙여지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 프로그램은 하나의 주제에 초점을 맞추는 행사인데, 올해는 춤계의 세대와 장르 간의 소통 트기를 주제로 잡았다. 20대부터 40대까지 모두 8작품을 준비하였다. 4편의 작품에서는 춤꾼들이 형제, 자매 등으로 가족들인데, 올해 1월에 춤꾼을 먼저 섭외한 다음 그 춤꾼들이 안무자를 섭외하도록 하였다. 형제, 자매의 듀엣 출연진은 신진 세대에 중점을 두었고 솔로 출연진은 예효승, 김은희, 김용걸, 이경은 등 중견층들이다. 전체적으로 작품 소재에 제한을 두지는 않았고, 오히려 한국춤, 현대춤, 발레 사이의 경계를 털어내어 장르 간 소통도 염두에 둔 편이다. 컨템퍼러리 댄스라는 측면에서 춤들의 범위를 재설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 중견층에서 춤꾼과 안무가를 연계하면서 장르의 벽을 허무는 작업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는 점을 주목했으면 한다. 내년에도 이런 포맷은 계속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윗세대층이나 해외 작업자를 초청할 수도 있겠는데, 현대성 확보와 관객 개발이라는 두 측면을 중시하고 있다.
문예회관대극장, 아르코예술극장 시대를 넘어 이제 한국공연예술센터로 이행하면서 한팩이 기획에서 적극성을 띠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 같다. 공연예술에서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려는 의지가 가시화되고 있다.
이와 연관해서 하나만 더 소개하면 이번 9월에 ‘한팩 하이브리드’ 공연이 제작 지원 사업으로 예정되어 있다. 5대 전략 과제 가운데 새 개념 공연예술 작품 육성에서 실험과 대안을 모색하는 공연예술 시리즈를 발굴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새 개념 공연예술 작품 육성에서 제작 및 기획 지원은 모두 10편의 작품이 예정되어 있고, 여기서 춤 6편, 연극 1편, 다원 3편이 올려질 예정이어서 전체적으로 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제작 지원 사업인 ‘한팩 하이브리드’는 미디어 퍼포먼스인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올리는데, 전문단체 Y-MAP과 한팩의 협력 제작 공연이다. 그리고 올해 새 개념 공연예술 작품 육성 분야에서 기획 지원작으로 4편의 춤이 올려진다.
공연예술계와 춤계가 이미 보여 온 다원적 흐름이 한팩의 전략 과제에도 반영되고 춤에서도 이제 프로그램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에서는 특히 시대 정신과 뉴미디어가 결합해서 발휘할 창조성이 관건일 것이다. 한팩 새 개념 공연예술 작품 육성 분야에서 춤이 강세를 보인다 하더라도 춤계 전반에 걸쳐 미디어 활용은 어딘가 미진한 감이 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미디어를 접근하는 관점에서 적극성이나 창의성이나 덜한 데서 기인하는 것 같다. 이런 점을 극복해나가는 장으로서 새 개념 공연예술 작품 육성 사업이 정착하기를 기대하는 바 크다.
지난 1년 남짓 예술감독을 수행한 데 이어 이제 본격적인 입장에서 예술감독직을 수행할 텐데, 그간 소감을 춤계 중심으로 소개한다면 어떻게 요약될 수 있는가?
춤이 다원 시대에 돌입하고 타 장르와 적극 만나야 하며 젊은 층을 힘닿는 대로 육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항상 맴돈다. 그런데 젊은 층은 경제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매우 바쁘다는 인상을 받는다. 우리 때도 그랬는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주변 여건으로 보아 이해되는 점이 많다. 좋은 여건으로 그들이 작업에 전념하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 그리고 한팩이 극장을 차별화하는 데 있어 춤이 해야 할 역할을 항상 생각하는 점이다. 솔직히 춤의 시장성을 내세우기가 시기상조이긴 하나 언제까지 춤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워야 할지 고민스럽다. 그래서 춤의 자립을 염두에 두고 또 마케팅 방법을 생각하게 되는데, 기획 인력과 경영 환경 그리고 관객 면에서 춤이 부족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개인적으로 무용단을 운영할 때와는 다른 입장에서 그런 점을 더 절실히 느낀다. 그래서 인력-환경-관객을 향상시키는 면에서 한팩의 프로그램이 일조를 했으면 하고 또 무용인들이 잘 활용할 필요도 있다. 지난 소감을 말하다 보니 좀 길어졌는데, 한마디로 압축해보면 인력-환경-관객을 향상시키기 위해 조그만 것이라도 긍정적으로 확대 창조해야 한다는 의식이 절실해졌다고나 할까.
안애순 감독은 이와 관련하여 대학에서 춤 인력-환경-관객을 염두에 두고 관련 분야 인력을 적극 양성할 필요성을 한참 설명하고 강조하였다. 지금 여러 분야 공연예술계가 처한 여러 입장 중에서도 근래에 춤이 관객 유치 면에서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다. 예술감독이 한팩의 중요한 일원인 한에서 한팩의 역할은 예술감독의 역할에 좌우되는 바 클 것이다. 공연예술계의 현안을 풀어가는 데 있어 한팩의 역할을 긍정한다면 예술감독의 진단은 더욱 중요하다. 춤계 현장에서의 느낌과 유사한 예술감독의 진단이 앞으로 또 어떤 프로그램으로 구현될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한국공연예술센터는 이사장-예술감독-사무처장-지원부(4부) 체제로 운영된다. 한팩 이사들 가운데 선임되는 예술감독은 비상근직이고 듣건대는 무보수직이라 한다. 안 감독은 한팩의 예술감독실에 매일 출근한다는 후문도 들린다. 국내외 춤 스테이지에서 한국 현대춤의 선두 주자로서 입지를 굳힌 안애순 감독이 중년에 들어 이렇게 열성인 것은 무엇 때문일까.
끝으로 개인 무용단 예술감독이다가 한팩의 예술감독을 맡았는데, 예술 활동에 지장은 없는가?
언제나 그랬듯이 지금도 순간 순간 춤을 만들고 싶은 때가 있다. 하지만 한팩의 비중을 생각하고 또 공인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하고 개인적 욕구를 삼가야 하므로 갈등도 없지 않았다. 당연히 무용단의 예술감독을 후진에게 맡기고 지금은 한팩 예술감독직에만 전념하고 있다. 춤계에서 혜택을 누려온 저로서는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고 특히 후진들을 위해서라면 더욱 그렇다. 우리 때보다는 나은 환경이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그들의 처지가 어려워진다는 생각이 교차하기 일쑤다.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지금 예술 휴지기를 맞은 셈이고, 이 휴지기를 한팩과 함께 생산적으로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