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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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시
- 20222년 3월 23일(화) 오전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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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소
- 아카데미아인(서울 동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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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석자
- 양병현, 임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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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2020년대에 춤의 흐름에서 유동적인 경향이 더해지고 있다. 춤이 분화되는 양상들이 증대함으로써 나타나는 경향이다. 젊은 세대일수록 그런 경향에 노출되는 정도가 높을 것이다. 획일적이지 않고 불투명한 미래로 나아가며 시행착오를 회피하지 않고 자구책을 찾으려 하는 작업들에 대해 현장의 목소리로 들어본다. 잠수함은 바깥을 관측할 때 잠망경을 이용한다. 보이지 않는 잠수함처럼 작업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고심어린 잠망경으로 꿈을 추적한다. - 편집자” |
초록고래 양병현, 임유정 ⓒ춤웹진 |
김인아: 결집력이 강한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젊은 무용인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연속 기획 인터뷰를 마련하였습니다. 일정이 가능한 첫 순서로 초록고래와 함께 하는데요, 먼저 〈춤웹진〉 구독자들께 신생 단체인 ‘초록고래’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양병현: 2020년 창단된 초록고래는 ‘정서’를 키워드로 활동하는 단체로 저를 포함하여 구성원이 2명입니다. 우선 제가 단체를 만든 이유를 말씀드리면, 특정 단체에 소속되면 멤버가 주목받으면서 안무하는 경우가 드물어요. 저는 단체 멤버가 안무할 때, 어떤 이의 단체에서 안무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어떤 단체가 안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또 누구든 주가 되고 주목받을 수 있는 단체가 되길 희망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전혀 상관없는 단체명을 만들고 싶었고, 막연하게 단체의 주요 키워드인 정서가 떠올려지는 단체 이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초록고래’를 떠올렸을 때 바다 속에서 신비롭고 포근한 전설의 동물이면서 모든 물고기를 포용하는 이미지가 그려졌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어감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단체명을 초록고래로 선택하게 되었죠.
지난 연말 성수아트홀에서 했었던 〈바람소근〉 마지막은 영화의 엔딩 같더군요. 영상으로 크레딧이 올라가고, 초록고래의 심벌이 비춰지며 끝났어요. 어쩌면 초록고래의 시각화를 염두에 두고 단체명을 만든 것은 아닐까 생각했고 단체명과 어울리는, 단체의 특성을 살린 작업이 이어지겠다는 기대감이 들었어요. 초록고래의 ‘헤엄쳐고래!’는 짧은 춤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프로젝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나요?
양병현: 공연을 하려고 단체를 만들었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더군요. 공연만 기다리는 게 아니라 우리끼리 프로젝트를 만들고 꾸준히 활동하길 원했습니다. 초록고래는 ‘정서’를 다루다 보니 이성적인 것과 반대편에 치우치게 되었고 우리가 추구하는 것과 반대된 것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관심이 없는 것에 관해 대화를 나누면서 알게 되고,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폭을 넓히고자 했어요. 그러면서 ‘헤엄쳐고래!‘라는 영상제작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죠.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한 사람이 주제를 선정하고 자료를 찾아서 공유하고, 주제에 대해 4시간 동안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주제로 안무를 짜고 간단한 영상을 만들려고 했죠. 우리는 알리는 목적보다는 가볍게 꾸준히 짧은 춤 필름을 게시하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었어요. 점차 단체를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다 보니 영상에 더 신경을 더욱 쓰게 되었고 지금은 춤뿐 아니라 대사나 이미지, 사물 등으로 구성된 영상을 올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1년 동안 시행착오를 겪고, 영상을 게시하기 시작했어요.
임유정: ‘헤엄쳐고래!’는 단순하게 춤을 좋아하고 작업을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활동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입니다. 우리가 지원사업만 바라볼 수는 없고, 우리끼리 즐거운 일을 하고자 생각했던 시기에 한참 SNS에서 숏폼이 유행했고, ‘짧은 영상을 제작한다면 사람들이 춤을 볼까?’라는 의구심도 생겼습니다. 초기에는 안무를 간단히 구성해서 짧은 영상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했어요. 그런데 점점 욕심이 생기면서 퀄리티 높은 영상을 시도하고 만들게 됐죠.
초록고래 양병현 ⓒ춤웹진 |
영상에서 다루는 소재가 춤만이 아닌 언어나 이미지, 사물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 흥미롭습니다. 프로젝트 기획할 때 어째서 영상을 선택했는지요?
임유정: 코로나 발생 이후 댄스 필름이 다양해지면서 우리 역시 온라인으로 활동하려면 영상이 필요할 것 같다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영상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무대춤과 영상춤은 완전히 다르기에, 댄스 필름 형식에 맞춘 춤을 만들었고요.
양병현: 앞으로 영상을 병행해야 할 텐데, 우리가 오프라인 공연만을 기다린다거나 영상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어요. 그래서 당장 마음먹고 작품 영상을 찍기보단 꾸준히 관심을 가지면서 시도해보자고 했죠.
영상을 매개로 움직임을 구현하는 방식에서 우여곡절도 겪고 희열과 매력도 느꼈을 텐데, 어땠나요?
양병현: 솔직히 처음에는 매력을 전혀 느끼지 못했고, 영상에 춤을 담아내는 것에 별 흥미가 없었어요. 영상은 편집 예술이어서 영상을 찍을 때 춤추는 기분이 나지 않았고 영상에 담아낼 수 있게 움직여야만 했어요. 제가 그동안 안무한 작품은 섬세한 움직임이 담겨있고 무대에서 관객과 대면할 때 잘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영상은 내가 무엇을 표현하고 있다는 걸 그대로 섬세하게 전달하기보단 어떻게 담아낼지 고민하고 잘 보이도록 만들어서 전달하는 또 다른 재미가 있더군요. 그래서 ‘헤엄쳐고래!’를 통해 여러 시도를 해보면서 영상에 조금씩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죠.
임유정: 일반 공연에서의 춤은 프로시니엄 극장에서 보기 때문에 한정적입니다. 큰 그림이나 본인이 선택한 부분을 볼 수 있지만 정면에서만 봐야 합니다. 반면에 영상은 360도 회전이 가능하고 공간성을 담아낼 수 있어요. 범위가 굉장히 넓고 연출에 따라 달라집니다. 큰 무대에서 관객들이 보는 섬세함과 영상에 담긴 섬세함은 질감도 다르고, 영상은 연출가의 의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양병현: 영상 작업을 하면서 생각의 충돌이 있었습니다. 전 작품 만들 때 무언가를 보여주려 하기보단 하고 있기에 보이길 바랐어요. 그런데 영상은 ‘어떻게 보일까’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는데, 내가 왜 거부감을 느끼는지 더 알고 싶었고 오히려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초록고래 임유정 ⓒ춤웹진 |
프로젝트 진행 방식을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1년 이상 진행하면서 안정적으로 구축된 시스템이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양병현: 올해 상반기는 프로젝트를 잠시 쉬면서 숨고르기를 하고 하반기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제작했던 방침은 2주에 한 번 영상을 게시하는 거였어요. 첫 주에는 한 명이 대화 주제를 선정해서 함께 대화를 나눈 것을 토대로 둘째 주에 안무를 가볍게 만들어서 영상 촬영을 합니다. 그리고 둘째 주가 끝날 즈음, 대화 중 선정한 의미 있는 문장들과 창작의 밑거름이 되어주는 그림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개합니다. 마지막으로 인스타그램에 댄스 필름을 1분 이내로 압축해서 티저 영상을 올린 후, 유튜브에 풀버전을 올렸습니다.
임유정: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에 짧은 영상을 올려야만 봅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긴 영상이 있다면 굳이 눌러서 보게 되진 않더라고요. 이러한 특성 때문에 풀버전은 유튜브에만 올렸습니다. 인스타그램에 티저 영상만 올리고, 풀버전이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프로필 상단에 링크를 통해 유튜브로 바로 접속할 수 있게끔 했습니다. 그래서 짧은 영상과 긴 영상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서 따로 올렸죠.
양병현: 유튜브에 올리는 영상은 최대 5분 길이로 제작했습니다. 유정님 말대로 인스타그램에 IGTV 영상을 올릴 순 있지만, 1분이 넘어갈 경우 귀찮아서 보지 않게 되더라고요. 최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길이는 피하자는 생각에 인스타그램은 1분 이내, 유튜브는 5분 이내로 만들었습니다.
초록고래 프로젝트 SNS 계정(www.instagram.com/leafy_whale) 화면캡쳐 |
SNS에 업로드한 초록고래 〈멘도롱선샤인〉 영상 화면캡쳐 (인스타그램에서 보기 www.instagram.com/tv/CTT9A6spfB3) |
‘헤엄쳐고래!’를 통해 만든 여러 영상 중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작업이 있나요?
양병현: ‘헤엄쳐고래!’는 하지 못했던 것 혹은 해보고 싶은 것을 시도해보자는 게 주목적이어서 가볍게 만든 영상이 많아요. 영상을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끼리 콘티도 그려보고 시행착오의 과정을 기록하는 느낌이다 보니 영상 퀄리티가 사실은 낮습니다. 농담으로 초록고래가 유명해지면 ‘헤엄쳐고래!’ 영상을 삭제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도 했습니다.(웃음) 그래도 한 영상을 꼽자면 ‘가벼운 것’을 주제로 한 〈무시하지 마쇼〉입니다. 작업할 때 상대방을 배려하면, 오히려 웬만하면 수용해준다는 생각에 선을 넘을 때가 있잖아요. 결국엔 배려를 계속해주던 사람이 폭발해서 욕을 하는 영상이었어요. 그때 제가 영화를 제작하면서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 만나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사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 시기였던 터라 관계에 대해 느낀 것을 솔직하고 가볍게 만들었어요. 사람들은 요새 가볍게 보기 부담스러운 무거운 영상이나 정성스럽게 만든 영상을 잘 보지 않잖아요. 그래서인지 오히려 이 영상을 공감해서 좋아해 주시고 조회 수도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초록고래 ‘헤엄쳐고래!’ 프로젝트 〈무시하지마쇼〉 |
임유정: 시나리오가 전날 밤에 나왔어요. 밤에 줌으로 리딩을 몇 번 하고 잘 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촬영했습니다. 장소 대관비가 비싼 탓에 2~3시간 만에 찍어야만 했는데,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려다 보니 복잡했어요. 그리고 시나리오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병현님에게 이 시나리오가 맞는지 계속 물어봤어요.(웃음)
양병현: 또 한 가지 꼽자면 〈시간을 멈춰두고 말할 수 있다면〉이라고 초기에 만든 영상이 있어요. 이 영상은 어떤 시도를 한다기보단 기존의 현대무용과 같은 느낌을 담아냈어요. 실험적이지 않고 깔끔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많이 봤던 것 같아요.
초록고래 ‘헤엄쳐고래!’ 프로젝트 〈무시하지마쇼〉 |
유튜버들을 보면 조회 수가 눈에 보이니까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민감한 것 같아요. 기존 작업할 때는 사람들의 반응을 생각하지 않았잖아요. 앞서 말씀과 같은 맥락인 듯합니다. 보이는 것과 보여지는 것 사이의 고충이 담겨 있달까요?
양병현: 네, 공연 작업은 마음 놓고 했다면, 미디어 쪽으로 작품 할 땐 사람들의 반응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요즘 추진하는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소개해주세요.
양병현: 댄스 필름을 다룰 거라면 더 확실하게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들더라고요. 어설프게 공부해서 얕게 알기보단 영상을 깊이 공부하고 제대로 접근해서 필름을 제대로 만들 수 있는 발판을 만들고자 두 개의 프로젝트를 추진하려 합니다. 하나는 영상에 대한 기본을 다지자는 취지로 ‘다시 멜로’라는 로맨스 웹 드라마를 제작 중입니다. 다른 하나는 작업하거나 춤출 때의 방식, 안무법을 정리하자는 취지로 ‘병현 메소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어요. 하나의 음악을 정하고 제 안무법을 통해 안무를 만드는 과정을 필름에 담아내는 프로젝트가 될 것 같아요.
임유정: 제가 주축으로 가는 프로젝트도 있습니다. 영상물을 업로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인데, 음악 저작권 위반으로 비공개로 전환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영상 만들 때 무료 저작권 음악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원하는 느낌을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었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더군요. 또 춤에 도움이 되는 장르가 무엇이 있을지 생각하다가 제가 원래 음악에 관심이 있었어요. 음악을 전문적으로 작곡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디로 작곡하는 것을 시도해봤습니다. ‘헤엄쳐고래!’ 때도 제가 몇 가지 음악을 만들어서 영상에 입혔어요. 아마추어이고 경험이 없다 보니까 퀼리티가 아쉬웠어요. 그리고 제가 작곡하는 사람이 아닌데, 주제에 맞는 음악을 만들다 보니 아무래도 버겁더군요. 이번엔 더 깊이 있게 공부한 다음 제가 생각하는 대로 음악을 만들고 완성된 음악을 객관적으로 들어보면서 주제와 컨셉을 생각하고, 뮤직비디오로 만들어보고자 해요. 영상의 형식은 댄스 필름이 될 수도 있고 풍경물을 찍는 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양병현: 기존의 ‘헤엄쳐고래!’ 프로젝트는 영상이 메인이고 음악이 도와주는 역할로 들어왔다면, 이 프로젝트는 음악이 메인이고 영상이 음악을 도와주는 역할입니다. ‘병현 메소드’는 저작권 때문에 클래식 음악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단체에서 춤만 하는 게 아니라 관심 있는 분야와 병행하고자 해요. 그래서 서로 다른 분야도 같이 공부할 수 있게끔 도와주고, 꾸준히 도전해볼 수 있는 프로젝트를 열려고 합니다. 따라서 저는 영상을, 유정님은 음악을 공부하고 있어요.
프로젝트를 통해 만든 영상은 이전처럼 주기적으로 업로드되나요? 구독자 입장에서 좋지만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중도에 과제처럼 생각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양병현: 네, 꾸준히 올리려고 합니다. 춤이 아닌 익숙하지 않은 것을 시도하는 거라 힘들긴 하지만 제가 원해서 스스로 과제를 만들어내는 거라 괜찮습니다.
임유정: 제 성격상 주어지지 않으면 스스로 타협하고 미루는 경향이 있는데, 프로젝트가 있어서 도움이 됩니다. 제가 힘들어도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엔 결과물이 영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무용 작품의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병현님이 작년에 작품 음악을 만들 기회를 줘서 〈바람소근〉 도입부 음악을 만들긴 했어요. 병현님이 옆에서 믿음과 확신을 줘서 힘을 받았고, 잘 끝낼 수 있었어요. 제 목표는 올해 하반기에 계획한 솔로 작업을 온전히 제 음악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초록고래 〈바람소근〉 ⓒ옥상훈 |
그간 프로젝트라는 밑거름을 통해 결실을 맺은 작업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양병현: 〈바람소근〉을 만들 때 일반 관객들이 어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설명적으로 움직임을 하거나 쉽게 만드는 것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오히려 본질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무용이 추상적이어서 어려운 게 아니라 추상적이기 때문에 덩어리로 사람들이 느낀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연기는 텍스트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감정이 전달되는 반면, 춤은 두루뭉술하지만 작품에 담긴 분위기와 정서가 통째로 전달됩니다. 이것이 춤의 핵심이라고 생각했고, 정서를 잘 담아내서 전달할 수 있다면 대중적일 수 있다고 봤어요. 대중적인 걸 한다고 해서 대중적인 작품은 아니잖아요. 좋은 작품을 만드는 방향은 춤의 특성을 살려서 잘 전달하는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단체 키워드를 ‘정서’로 잡은 것이고요. 〈바람소근〉을 만들면서 느낀 건 의도적으로 정서적인 작품을 만들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정서적인 작품을 하고 있더라고요. 어쨌든 늘 작품을 쉽게 만든다고 생각했고 설명이 되길 바랐는데, 관객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어요. 그렇다고 움직임을 마임처럼 하고 싶지 않았어요.
또 다원예술과 같은 작품은 저와 맞지 않았어요. 제가 춤에 입문하기 전 춤 작품을 볼 때 느꼈던 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했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리고 춤에 대해 깊게 알지 못했을 때 춤 작품보다 오히려 다원예술을 볼 때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다원예술 쪽은 저와 먼 세상이라는 걸 느꼈고, 차라리 다른 분야를 가져오고자 했어요. 〈바람소근〉 작업할 때 제가 느끼는 대로 만들고 최대한 무용수가 잘 담아내서 관객에게 표현하되 더 잘 전달할 수 있도록 다른 영역을 끌어와서 도움을 주고자 했어요. 그래서 초연 때 작품 중간마다 내레이션을 넣었습니다. 예를 들면 바람 부는 움직임 중간에 “바람 하나가 불어옵니다. 지나가던 낙엽이 바람의 눈을 가려버립니다”라는 식으로 내레이션을 했죠. 그러다 내레이션을 쓰지 않고 춤 작품을 몰입해서 보려면 어떤 방법으로 도와야 할까 고민하다가 영화를 들고 오게 되었어요. 영화를 보다가 자연스럽게 춤 작품으로 넘어간다면 사람들이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빠져서 볼 수 있을 거로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시나리오를 너무 어렵게 써서 오히려 춤 작품보다 영화의 대사가 어렵다고 하더군요.(웃음) 설명을 돕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는데,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어요.
텍스트에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내레이션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아까 이야기했던 것처럼 보통 춤을 덩어리째 받아들이고 감각하는데, 자꾸 의미를 이해하려는 것에서 상충하는 점들이 생기더라고요. 결국 들어보면 추상적인 말이었고 그 의미를 굳이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의도라고 생각했어요.
양병현: 친누나가 매번 공연을 보러오는데, 제 작품 중에 〈바람소근〉이 제일 자기 취향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이유를 들어보니, 전 설명하려고 만든 작품이지만 오히려 제일 어려웠다는 거예요. 누나가 춤 공연을 볼 때 이해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지 않고 간다고 해요. 그러니까 어려운 걸 감안하고 본다는 거죠. 그런데 〈바람소근〉은 텍스트를 사용하니까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지 않을까?’라고 기대하고 이해하려고 해서 오히려 어려웠다고 얘기 하더라고요. 상업적인 영화와 비슷하다는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쉽다고 생각했는데, 추상적이면서 아는 단어이긴 한데 무언가 맞지 않는 대사를 통해서 어렵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던 것 같아요. 사실 예산 부족으로 잘라낸 부분이 많았어요. 지원 사업 예산이 훨씬 초과된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영화에서 더 설명적으로 가고 싶었는데 대사를 쳐내다 보니 잘라낸 부분이 많았어요.
신진안무가이자 신생 그룹으로서 지금 하고 있는 생각과 고민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양병현: 처음 단체를 만들 때나 단체를 만들기 전에 예술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미숙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것을 잘 만들려고 하는 순간, 제 기준에서 좋은 작품이 될 수 없었거든요. 제가 생각한 좋은 작품은 하고자 하는 것을 꾸밈없이 잘 담아내는 것이었어요. 잘 만들려다 보면 계속 꾸미게 되고 꾸며질수록 담아내려는 것이 가려진다고 봤어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재밌게 볼까?’ 혹은 ‘어떻게 재밌게 만들 수 있을까?’가 아닌 ‘내가 담아내려는 걸 어떻게 잘 담아낼 수 있을까?’라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필름을 만들 때 사람들을 의식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필름 작업할 때도 제가 생각했던 지점과 방향성으로 어떻게 끌어올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이슈를 다룬 게 아니라 정서이고, 게다가 포괄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지원 사업에 잘 선정되지 않더라고요. 처음 단체를 만들었을 때는 1년에 1건도 되지 않았어요. 지금 역시 서류가 계속 떨어지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우리의 방향을 문장화시켜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어떻게 공연을 올릴 수 있게끔 할지 고민됩니다.
임유정: ‘과연 좋은 안무자가 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정해진 답은 없지만, 스스로 답을 내리고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이 생각한 좋은 안무가의 방향이 있는데, 전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겁을 내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직 그걸 깨지 못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이것저것 참여하면서 조금씩 만들고 있지만, 총책임을 맡아서 내 것을 만들기엔 제 방향이 구축되지 못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제 것을 찾는 것이 큰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춤 작품은 무용수의 역할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하거든요. 국내 작품을 볼 때 무용수들이 깊게 빠져있지 못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무용수의 의식이 너무 살아있어서 작품에 집중이 안 될 때가 많고요. 무용수들이 작품 안에 깊게 들어가는 게 아니라 보여지는 것에만 신경 쓰다 보니 그 신경쓰임들이 보이는 것 같아요. 감정적이든 이성적이든 정말 작품에 몰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록고래 작업에서 작품 안에 그 역할로서 존재할 때 집중력, 몰입, 에너지가 완전히 달라지는 걸 느꼈어요. 〈바람소근〉 초연 때는 많은 생각을 가지고 했다면, 공연을 하면 할수록 이야기 안에 빠져있는 경험을 했어요. 보여지는 것에 신경쓰는 게 아닌 작품에 빠져서 한다면 관객들도 충분히 느낄 거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그 방향을 지향하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희망하는 것이 있나요?
양병현: 많은 사람에게 작업물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기보단 제가 작품으로 담아낸 것들이 잘 전달되길 바랍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들이 사람들한테 전달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조금 쑥스럽지만, 첫 목표를 콜드플레이로 잡았어요. 제가 콜드플레이 음악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그들의 음악을 들을 때 어떤 느낌을 구체적으로 전달받거든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저의 작업이 온전히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에 콜드플레이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두 번째 목표는 새벽 방송 조정 시간에 클래식 음악과 함께 어떤 화면이 나올 때가 있어요. 그때 나라에서 추천하는 영상으로 초록고래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부푼 꿈이 있습니다.(웃음) 무엇보다 앞으로 행복하게 작업하길 바라지요. 우리가 무엇을 위해 활동하는지 생각했을 때 그저 ‘좋아서’ 하는 거예요. 그러려면 힘들거나 불행해지면 안 되잖아요. 초록고래는 꾸준히 정기적으로 일주일에 4회 4시간씩 연습을 하고 회의를 하는데, 이 시간 동안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특별하지 않은 것을 특별하게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후배들이 가끔 고민 상담을 하는데, 작품 만들 때 어떤 주제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전 “특별한 주제나 이슈를 가져와서 풀어낸다고 좋은 작품이 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생각했을 때 별것 아닐지라도 내가 특별하게 느끼는 것을 잘 담아내면 특별해질 수 있다”고 조언해줍니다. 저 역시 이 마음을 잃지 않고 갔으면 좋겠어요.
행복하게 춤 작업을 이어나가는 초록고래를 응원하며 다음 활동을 기대하겠습니다. 꾸준히 업데이트될 채널도 주시하고 있을게요. 긴 시간 인터뷰에 감사드립니다.
김인아
한국춤비평가협회가 발행하는 월간 〈춤웹진〉에서 무용 전문기자로 활동 중이다.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하여 무용인 인터뷰를 포함해 춤 현장을 취재한 글을 쓴다. 현재 한예종에서 무용이론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