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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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시
- 2021년 6월 13일(일) 오전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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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소
- 아카데미아인(서울 동교동)
김남식&댄스투룹-다 김남식 예술감독 ⓒ춤웹진 |
김인아: 출연한 무용수들과 공동안무로 작품이 완성됐는데 이유가 있나요?
김남식: 시작과 대관, 일차까지의 안무를 제 이름으로 했어요. 저도 자살을 시도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깊이 있게 나가려고 하니까 내 얘기보다 무용수들의 얘기가 들어가야 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 들더군요. 초반에 안무하고 디렉션을 하다가 무용수들에게 “내가 만든 작품이지만 공동 안무로 갔으면 좋겠다. 너희들의 얘기가 들어가야 한다. 너희들이 감정 이입하지 않으면 객석으로 전달이 안 될 거 같다”고 말했어요. 4마리 백조 장면에서 무용수 정지윤이 이바다의 손을 뿌리치는 그 순간, 공동안무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정지윤이 감정 이입하는 걸 느꼈어요. 전 출연진 개개인의 일면을 다 알고 있어요. 서울예고 때부터 가르쳤던 학생이고, 어떤 사연이 있고 아픔이 있는지 압니다. 소년이 4마리 백조 무리에 들어가려 하지만, 뿌리치는 그 친구는 아픔이 있어요. 그런 경험을 했고, 당시 느꼈던 것들이 나온 겁니다. 이번 작품에서 내가 예술감독으로서 모든 요소를 구성했지만, 움직임은 각자 만들었어요. 4마리 백조는 송예슬이 전체를 디렉션했고 가슴을 치는 장면도 각자 만들었습니다. 소년이 춤추는 것도 “감정은 이러하다. 무엇보다 너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서 완성됐습니다. 춤에 들어가는 안무는 무용수의 얘기가 들어갔습니다. 53살에 느꼈던 옛날얘기보다 불과 몇 년 전에 느꼈던 얘기가 깊이 개입되는 게 나을 거 같아서 공동안무를 한 것이지요.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를 낭독했지요. “싸워야지. 죽을 때까지 싸우는 거야”라든지 “희망을 갖지 않은 것은 어리석다”와 같은 구절을 읊었던 이유가 있을까요?
조사한 바로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고, 270번을 퇴고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노인과 바다〉를 읽으면 군더더기가 없다고 하죠. 전 이 작품을 세 번 정도 읽었는데요. 제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낭독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삶의 의지에 대한 겁니다. 정신병원에서 봤던 그 청년이 자살을 시도한 건 삶의 의지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84일 동안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던 산티아고 노인이 마지막 3일 동안 물고기에게 끌려갑니다. 나와 물고기가 연결된 줄만 자르면 나도 물고기도 자유로울 테지만, 줄은 끊는다는 건 청년이 손을 그어버리는 것과 같아요. 내 삶을 끝내버린 것이라 해석한 것이지요.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절대 패배하지 않은 존재이다. 인간은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노인과 바다〉의 명대사 때문에 선택하게 됐습니다. 노인이 줄을 끊지 않고 물고기를 잡았으나 결국 상어 떼에게 뜯어 먹혀 선착장에 은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뼈다귀만 남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사진찍으면서 “저렇게 아름다운 건 본 적이 없어”라며 끝이 나는데, 삶은 그렇습니다. 삶이 화려할지 모르지만 내가 그것을 포기하지 않았을 때 비로소 삶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지요. 그러니 쉽게 포기하면 안 됩니다. 그 의지를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파트 1, 2를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사회문제와 세계적인 명작, 춤이 어우러진 작품을 기획하고자 해요. 파트 1 〈내 이름 아시죠?〉는 〈노인과 바다〉와 현대무용이 들어간 것이고, 내년에 사회 문제와 세계적인 명작과 춤을 합친 파트 2를 만들려 합니다. 만 18세가 되면 청소년은 고아원에서 독립해야 합니다. 500만 원 받고 독립하는데, 99%는 안 좋은 길로 빠져요. 하지만 그 친구들은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해맑아요. 이번 작품은 ‘T0 BE OR NOT TO BE’라는 수식을 달았습니다. 파트 2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수식을 달고 18세에 독립해야 하는 청소년 얘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허먼 멜빌 〈모비딕〉 혹은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두 가지 문학 작품을 고민하고 있어요. 이런 구조로 사회 문제와 꼭 알아야 하는 책, 그리고 춤을 지닌 작품을 하려 합니다. 청소년들에게 우리보다 훌륭한 삶을 살고 꼭 알아야 하고 되새겨야 하는 좋은 글귀를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것, 〈노인과 바다〉의 명대사처럼 〈모비딕〉 또는 〈갈매기의 꿈〉의 한 대사를 서칭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면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명료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이번 공연에서 배우에게 낭독을 의뢰하고 싶었습니다만 재정적인 문제로 제가 하게 됐어요. 낭독하면서 감정이입을 해야 할지, 내 목소리로 해야 할지, 아들과 딸에게 읽어주는 톤으로 가야 할지 고민했어요. 정말 공부가 됐습니다. 파트 2는 제가 아닌 전문성 있는 사람과 협조해서 하려 합니다.
사회적 예술활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그 계기는 2006년에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공연을 가서부터입니다. 그때 문화부 장관이자 교육자이자 사회운동가이자 작곡가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Jose Antonio Abreu) 박사를 알게 됐어요. 이분이 엘 시스테마(El Sistema) 운동을 했어요. 마약과 폭력에 노출된 청소년들에게 악기를 하나씩 지급해서 연주하게 하고, 그들과 악단을 만들어서 이런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의지를 심어주는 운동을 했습니다. 15년 차에 접어들 때 즈음, 구스타보 두다멜(Gustavo Dudamel)이라는 천재적인 지휘자를 발굴했습니다.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Orquesta Sinfónica Simón Bolívar)를 창단하고 전 세계 투어를 다니며 남미 일대 그리고 지구촌에 큰 이슈를 남긴 사회 운동이 바로 엘 시스테마입니다. 사회적 변화를 꿈꿨던 예술 활동을 직접 봤습니다. 몸으로 체험한 것이지요.
베네수엘라 하면 흔히 아름다운 나라라고 생각하는데, 가서 보니까 그런 곳이 아니에요. 너무나 폐쇄, 낙후돼있고 앞뒤로 경호원들의 가드를 받아야 합니다. 게다가 전세계에서 1분에 살인 사건이 가장 많이 나는 곳이 카라카스예요. 제가 상상했던 것과 너무 다른 곳이었고 사람이 살 수 없는 구조였어요. 그런 곳에서 ‘구스타보 두다멜’이라는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어떻게 발굴됐나에 대해서 자신 있게 “우리는 예술가들에 대한 존중이 있는 나라다”라고 하며, 이를 토대로 세계적인 아트 페스티벌을 개최하더군요. 그렇게 엘 시스테마 운동을 알게 됐고 자료를 찾아보니 베네수엘라 옆 나라 콜롬비아에는 몸의학교(Colegio del Cuerpo)가 있고요. 파라과이에는 쓰레기 하치장에 사는 청소년이 쓰레기에서 나온 부산물을 갖고 악기를 만들어서 연주하는 쓰레기 밴드(Garbage Band)가 있더군요. 우리나라 새마을운동이 마치 동남아에 영향을 끼쳤듯이 예술가들의 의미 있는 행보가 남미를 넘어서 여러 곳에서 운동을 펼치는 걸 보면서 ‘춤을 통해서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진 재능으로 무언가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어요.
이번 공연 외에도 지금까지 해온 사회적 춤활동이 있다면 자세히 소개해 주세요.
2015년 우연한 기회로 충북 음성에 단일 병동으로 있는 정신병원 ‘현대소망병원’에 방문했어요. 80명 정도의 정신질환 환우를 봤고 그들이 있는 공간에서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현대소망병원 이사장님과 원장님께 정신질환 환자들과 네트워킹을 통해 무언가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1년에 한 번씩 환자들과 함께 백일장 같은 걸 한대요. 그러니까 환자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비누, 찰흙으로 만든 것, 시 등을 전시하는데 내년에 그 일을 같이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어요. 2015~2018년까지 그런 네트워킹 작업을 쭉 했지요. 매해 5월에 가서 정신질환자들과 같이 움직이고 무대 위로 불러내고 춤뿐 아니라 국악, 비보잉, 힙합, 발레, 서예 등 다양한 아티스트가 참여하는 ‘꽃을 그리는 시간’이라는 타이틀의 ‘멘탈아트페스티벌’을 개최했습니다. 어떠한 도움도 없이 병원에서 재정을 담당하고 저 역시 무보수로 일했어요.
2019년, 3년차 되면서 큰 프로젝트로 확장하고자 했어요. 하나의 법인을 설립해서 정신병원과 아티스트들이 모여 1회성 공연으로 끝내지 말고 ‘닥터포레스트’라는 차별화된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전국 병원과 취약한 지역을 순회하려는 계획이었어요. 그렇지만 준비하던 중 코로나가 발생했습니다. 특히 현대소망병원에서 200명 가까이 코로나 집단 감염이 발생하면서 현재는 잠정 중단된 상태입니다.
멘탈아트페스티벌 (충북 음성 소재 현대소망병원, 2018) |
사회적 활동을 시작한 후 2019년에는 이를 확산하고자 경기문화재단의 후원과 성공회 김대술 신부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수원역에는 ‘수원 다시서기 노숙인종합지원센터’가 있어요. 수원역에 있는 노숙자들 다섯 분들과 한 달 동안 서예, 한국무용, 현대무용 등을 연습하고 수원역 다시 서기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수원역 바로 옆에 그들이 밥 먹는 식당이 있어요. 종교단체들이 후원해주는 곳입니다. 식당 식탁을 밀고 한 달간 공연 연습을 했는데, 자기 이름 쓰는 서예 연습, 한국무용 연습을 하고 같이 ‘꽃들에게도 이름이 있었다’라는 공연을 했습니다. 보람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정신병원에서 했던 3년보다 더 의미 있었지요.
노숙인들이 뒹굴고 자고 있던 수원역 바로 앞에 무대를 만들었는데, 가로·세로 4m의 파란 잔디밭을 만들고 그 위에 의자 5개와 A4용지 5장을 놓아 붓으로 자기 이름을 썼어요. 그리고 행인, 아직 뒹굴고 자는 동료,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의지가 없는 노숙인 앞에서 “여러분! 제 이름은 000입니다. 어릴 때 꿈이 축구선수였습니다. 오늘부터 조기축구회를 가입해서 제 꿈을 이뤄내고 싶어요. 그 꿈이 이뤄졌다고 생각하고 그걸 춤으로 보여주겠습니다”라고 외치고 잔디밭에서 춤을 췄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봤고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이 울었어요. 이 일의 지속성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 노숙인 분들과 “지자체 도움을 받아서 세계 투어를 가자. 한국이 경제적 부흥도 됐고 세계적 인식도 좋아지고 있으니 동남아부터 투어하자”고 약속했어요. 그렇지만 지원이 없다 보니 한 번으로 그쳤습니다.
그리고 2018년 강원도 정선군에 삼탄아트마인이라고 있어요. 폐탄광이에요. 탄광에서 500명의 광부가 매몰돼서 죽었어요. 뜻있는 분이 아픔이 있는 그곳을 인수했고 극장, 식당, 레지던스 룸도 있고 10만여 점의 유물들을 전시해놓은 복합적인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역명소활용이라는 명목 하에 지원받아 그곳에서 석 달 간 광부 아버지와 방황하는 청소년 아들과의 관계를 다룬 〈아빠의 방〉이라는 상설 공연을 했어요. 공연하면서 ‘내가 했던 일들이 연속성을 갖고 가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광부와 그의 아들에 관한 마음 치유 프로젝트 〈아빠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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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이야기를 담은, 더 나아가 사회 이슈와 맞닿은 춤 작업이 청소년과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과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제가 사회적인 이슈를 갖고 공연한다고 말했지만 부끄럽습니다. 고중곤 이사장님은 15년간 이 일을 했어요. 수원역 다시 서기 프로젝트 ‘꽃들에게도 이름이 있었다’에서 도움을 주신 성공회 김대술 신부님은 노숙자들을 자립하는 일을 하셔요. 언젠가 신부님께서 “수원역 정문을 보고 왼쪽으로 150m 정도에 다시서기 센터가 있는데 노숙자들이 자기가 있는 곳에서 저기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릴 거 같아요?”라고 물으시더군요. ‘지난(至難)하다’는 표현을 씁니다. 1m 옮기는 데 1년 걸린다고 해요. 그 1년을 위해 지난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거예요. 아침마다 가서 얘기하고 어땠냐고 물어보고 먹을 것도 주고 껴안기도 하고 얼굴을 익혔을 때 1년 만에 옮긴다고 합니다. 오다가 그만둔 사람도 있고 10년 만에 온 사람도 있고요. 투철한 의지가 없으면, 견뎌내지 못하면 이런 일 못한다고 하시더군요. ‘끝까지 할 거 아니라면 안 하는 게 좋다’라는 말 같았어요.
파트 2도 어렵죠. 그래서 이번 공연이 중요했던 거 같아요. 이 공연이 많이 알려지고 ‘김남식이 이런 일을 했구나’ 매체에 다뤄진다면 이 일을 더 크게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용기와 자신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 번 했다고 해서 사회에 큰 변화가 있을 거로 생각하지 않아요. 신부님이 말씀하신 ‘지난한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처럼 한 번으로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고 견디고 견뎌려고 합니다.
수원역 다시 서기 프로젝트 〈꽃들에게도 이름이 있었다〉 (수원역 광장 무대, 2019) ⓒ손관중 |
앞으로도 사회적 춤 활동을 지속하실 계획인가요?
네, 제가 기쁘게 달려올 수 있었던 이유는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저를 보고 말을 쉽게 한다고 해요. 저는 1985년 12월 3일 오후 6시에 무용을 시작했고 전라남도 장성군 동안면 구룡리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무용학박사가 됐어요. 이 얘기가 무엇이냐면, 저는 말의 힘을 믿는 사람입니다. 말하는 대로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원하면 힘이 생긴다는 말이 있잖아요. 가난한 집 2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나서 전 수없이 말했어요. 구체적으로는 무용을 시작하던 때 입시생 19명 앞에서 3가지 말을 했지요. “나는 대학 졸업 전에 군 면제 이룰 거야. 30세 되기 전에 나랏돈 받아서 외국에 갈 거야. 35세 전에 교수 소리 들을 거야”라고요. 그때 19명 모두 웃었어요. 그런데 전 운 좋게 다 이뤄냈어요. 전 계속 내뱉을 거예요. 그러면 거짓말쟁이 아니면 신념이 있는 사람, 두 가지 중에 하나가 되겠죠. 다행히도 아직 거짓말쟁이 소리는 안 들은 거 같아요. 전 말의 힘을 믿고 끝까지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내 입에서 뱉어낸 대로 거대하고 화려하고 대단하지 않겠지만, 묵묵히 천천히 포기하지 않고 지속성을 갖고 해나가려 해요. 신부님한테 받았던 의지를 갖고 제가 잘하는 방식으로 할 거예요. 관심 있게 지켜봐 주세요.
앞으로 사회적 춤 활동도 투철한 의지와 열정을 담아 이어나가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청소년 마음치유프로젝트’ 파트2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긴 시간 인터뷰에 감사드립니다.
인터뷰_ 고중곤 (사)우듬지 이사장
2021년 7월 19일(월) 오후 12시30분아카데미아인(서울 동교동)김인아_〈춤웹진〉 기자
고중곤 (사)우듬지 이사장 ⓒ춤웹진
〈내 이름 아시죠?〉 창작과정을 함께 한 (사)우듬지 고중곤 이사장님과 작품 이야기를 더하고자 합니다. 도움 말씀을 위해 김남식 감독님도 다시 한 번 자리해 주셨습니다. 먼저, 이사장님께서 운영 중인 (사)우듬지가 궁금합니다. 어떤 활동을 하는 단체인가요?
고중곤: 26년째 운영 중인 (사)우듬지는 아이들의 대안교육으로 출발했습니다. 융합교육을 모토로 창의적인 활동을 위해 과학과 자연 생태를 갖고 대안교육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지속 가능한 대안교육을 위해 숲유치원을 운영했는데요. 결국은 교육 콘텐츠를 통해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우듬지’는 나뭇가지 끝을 일컫는 순우리말입니다. 옛날에 며느리가 손주를 혼내면 시어머니가 “우리 손주 왜 우듬지 꺾니?”라고 혼냈어요. 즉 “왜 커가는 아이 기를 꺾니?”라는 말입니다. 우듬지에 생명의 기운이 모여 있다는 것이지요. ‘나뭇잎은 언제 피어나는가?’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봄’이라고 하는데 엄밀하게 개인적 관점으로 보면 ‘자기 때’입니다. 때가 돼야 잎을 피워냅니다. 생명을 재순환하는 작업이 나뭇잎의 광합성 작용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살린다는 개념이 생명을 살리는 개념도 있습니다만 기가 꺾여있는 사람들의 기를 세워주고 북돋아 주고 이끌어주고 미래를 향해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유아, 아동, 청소년 비전 포럼, 청년 멘토링 포럼 등 학교, 초등 방과 후 대안학교, 엄마 학교, 아빠 학교, 부부프로그램, 치료노인 프로그램, 치료예술 프로그램, 전인적 콘텐츠를 갖고 있습니다. 문화예술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사람들의 가치를 높여주는, 기를 북돋아 주는 단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낮은무릎경청 캠페인 활동과 낮은무릎경청학교를 운영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소개 부탁드립니다.
고중곤: (사)우듬지를 20년 넘게 운영하면서 한국 교육의 현실에서 힘들어하는 아이들, 생명의 경계에 선 아이들을 봤고 부모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꼈지요. 그때 찾았던 게 생명과 사랑이었습니다. 생명과 사랑을 어떻게 캠페인 할지 고민하다가 무브먼트를 생각했던 것이 낮은무릎경청 캠페인입니다. 2005~6년경 숲유치원과 같은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고민하면서 캠페인을 했던 것이 ‘낮은무릎경청’입니다. 부모들을 대상으로 ‘낮은무릎경청 양육법’이라는 교육 캠페인을 십몇 년 했습니다. 아동 청소년들을 계속 만났고 부모들과 함께 아이들의 이야기를 깊이 들어주고 눈높이를 맞추고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며, 아이가 가진 기질과 가치를 끌어내고자 했어요. 이것이 낮은무릎경청 양육법의 핵심이 됐습니다. 이 캠페인을 그대로 갖고 길거리 캠페인을 했고, 청소년을 찾아다니는 캠페인을 했습니다. 서울, 대전, 부산, 대구, 인천 등 굵직한 지역들에 가서 300~500명의 청소년을 모아놓고 캠페인을 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잃어버린 배움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 ‘이제는 사회에 화두를 던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2017년 청소년의 미래 교육을 위한 ‘국제교육혁명포럼’을 만들고 진행했습니다. 국제교육혁명포럼과 함께 낮은무릎경청학교가 발족됐습니다. 낮은무릎경청학교를 통해서 아이들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그들은 그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못한다고 느꼈어요. 관련 작업을 몇 년째 계속하면서 데이터가 모였고 현재도 매주 온라인으로 낮은무릎경청 캠페인과 자살예방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십여 년 이상 캠페인을 지속하고 교육으로까지 확장시켰다는 점이 깊게 와 닿습니다. 코로나 이후에도 비대면으로 청소년들을 만나는군요.
고중곤: 네, 그렇습니다. 경기도 분당에 본부가 있어요. 경기도 청소년 상담 복지 센터를 통해 통계들을 보면 작년 코로나 전반기에 아이들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상담이 오히려 줄었어요. 학교에 안 가니까요. 상대적으로 심리·정서적인 문제가 더 커졌어요. 무망감, 소망도 없고 의미도 없고 자기 안에 계속 고립되면서 자살 이슈가 늘어났습니다. 작년엔 직접 찾아가거나 전국에 다닐 수 없는 상황이어서 1:1 또는 소그룹, 청소년 관련 자그마한 단체들, 지역아동센터를 대상으로 캠페인과 교육을 함께 진행했어요. 청소년들의 생생한 이야기들이 울림과 아픔으로 다가왔고 이런 부분에 대해서 사회적 이슈를 끌어내기 위해서 고민하던 차에 귀한 만남이 있었던 것이지요.
김남식 감독님과는 어떻게 만나게 됐나요?
고중곤: 저희와 캠페인 활동을 함께 하시는 문화기획자 정혜령 선생이 브릿지 역할을 하셨습니다. 김남식 감독님과 교류하면서 이 프로젝트를 듣고 제가 생각이 났었나 봅니다. 올해 1월 연락을 받았고 그날 바로 미팅이 이루어졌습니다.
김남식: 정혜령 선생과 고 이사장님의 분당 사무실에 갔는데 그날 굉장히 바쁘시더라고요.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계셨고 그 순간 느꼈어요. 열정적으로 일을 하시는데, 나는 수박 겉핥기 식으로 쉽게 하는 게 아닌가란 생각에 참 죄송한 마음이 들더군요.
처음 뵌 뒤로 재원 확보와 작품에 대한 기본금을 준비하느라고 얼마 동안 연락을 못했어요. 재원을 확보해야 일정한 후원금을 드리면서 도와달라고 할 텐데 시간에 쫓기고 있었죠. 그럼에도 “연습실에 한 번 와주시겠습니까?”라고 여쭈었는데 너무 흔쾌히 와주셨고, 작품을 보시고 “매주 한 번 정도 연습에 참여하겠다”고 하시더군요.
앞으로도 이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싶고 재원이 부족한 건 서로 도우면서 문화재단 등 어디든 지원해보려 합니다. 이사장님과 제가 이 일을 조금씩 개진시키려 하고 단원들 또한 적극적으로 일을 해보고 싶어 해요. 앞으로 일이 진척되는데 조금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어쨌든 저는 빛나는 한 분을 만나서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고중곤: 김남식 감독님이 저에 대해서 과찬의 말씀을 해주셨네요.(웃음) 저도 공연예술을 공부했던 사람이고 무대에 서보기도 했습니다. 대학 때 공연예술과 상담심리학을 복수 전공했고 석사 과정에서 무용동작치료를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80년대에는 유아교육 쪽을 공부했고 지금은 신학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 배경은 생태심리학이에요. 한국에 없는 학문인데 자연에서 모든 걸 찾아가는 겁니다. 숲유치원은 결국 자연이 최고의 스승이라는 거예요. 자연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무엇인가 이루어 보려할 때 최고의 기량과 창의성을 끌어낼 수 있어요.
특히 민감기에 있는 유아기에 어떻게 보듬어주느냐에 따라서 아이들의 아동기, 청소년기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지요. 민감기에 있는 아이들의 행동 패턴을 보면 왜곡된 정서가 많아요. 왜곡된 정서라 함은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기 기능을 못하는 겁니다. 유치원에서 사회적 관계, 정서, 인지, 이런 모든 부분이 건강하게 발달하지 못했기에 잘 적응을 못 하는 거예요.
아이들이 숲에서 활동할 때 생태미술, 생태음악 등 예술적 요소를 많이 접목했습니다만 거기서 느끼는 한계들이 있었어요. 이 한계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 몸과 움직임이었습니다. 움직임에서 정형화된 하나의 예술이라고 한다면 춤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요. 독일에서 융의 분석심리학으로 유명한 이보섭 선생님을 모시고 일주일 동안 숙박하면서 워크숍을 했습니다. 그때 몸이 깨어진 경험을 했어요. 이를테면 아침에 눈을 뜨면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 정체는 제 맥박 뛰는 소리였습니다. 모든 감각이 깨어나니까 몸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미세한 변화들에 대해서 민감해지면서 그 소리를 듣게 됐고 무용동작치료를 깊게 공부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숲에서 하는 아이들의 활동에 무용동작을 접목해 움직임과 움직임 속에 들어있는 의의들을 분석했습니다.
이 모든 게 결국은 융의 분석심리학입니다. 분석심리학은 심층심리학이라고도 얘기합니다. 핵심은 우리 안에 무의식이 있다는 겁니다. 개인과 집단 무의식이 있는데 우리의 꿈이나 신체 움직임을 통해 무의식에서 올라오는 내용을 의식화하는 작업, 과정에서 자기가 알아차리게 되고 그 알아차림은 자신을 성숙하게 하는 과정인 거예요. 분석심리학으로 상담하는 사람들은 깊게 자기 내면, 꿈을 분석하고 의미들을 찾아다니는 것이지요. 자기가 알아차린 것을 삶에 적용하는 과정으로 가는데 거꾸로 숲에서 유아들의 몸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관찰하면서 움직임과 몸이 갖는 의미에 대한 굉장한 인사이트를 경험했어요. 실제 연구를 진행했고요.
저는 예술공연을 많이 관람합니다. 특히 무용과 움직임, 난해한 것까지도요. 김 감독님 작품 내용을 들었을 때 두 가지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너무 열정적이고 정리하는 과정마다 인사이트가 강한 분이라는 거였어요. 그러기 때문에 생명, 청소년 자살이라는 걸 어떻게 담아낼지 기대됐어요. 또 하나는 염려됐습니다. 왜냐하면 청소년 자살과 생명을 무용과 움직임을 통해서 표현한다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보면 융 심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것들이 많이 끌어졌을 때, 그 의미가 관객들에게 울림으로 전달될 수 있어요. 처음에는 그 부분까지 말씀을 나누지 못했어요. 재원 확보도 안 됐고 언제 오픈할지 대략적인 아웃라인만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의 기대와 하나의 우려들이 제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연습실에 갔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 연습하는 모습을 봤을 때, 마치 공연에서 큰 망치를 뚜드릴 때 울림과 같은 전혀 다른 개념이지만, 저러한 움직임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호기심이 생겼어요. 제가 봤던 것은 부분이었죠. 그런데 소품을 봤을 때 울림이 매우 컸습니다. 소품의 의미를 분석심리학으로 표현하면 우리 무의식 속에 있는 무의식, 쉽게 말하자면 우리 마음속 깊은 지하창고에서 꺼내 보고 싶지 않은 것들입니다. 차곡차곡 쌓아놓은 작은 상자가 있기도 하고 또 언제라도 꺼내보고 싶은 아름다운 추억이 있기도 하지요. 평소에는 우리가 잘 기억을 못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어떠한 이미지나 상황, 사건들이 내 안으로 올 때 나도 모르게 그 무의식 속의 상자가 열립니다. 힘들었던 상자가 개봉되는 순간 잊고 있었던 트라우마가 올라오는 거예요. 내가 굉장히 외로웠을 때, 슬펐을 때, 참담한 속에서 혼자 울고 있었을 때,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순간이 올 때, 우리 마음이 철렁 가라앉기도 합니다. 작은 소품들은 그런 무의식의 참담함과 외로움과 고통을 담아내기에 너무 강력했어요. 저한테 너무나 강하게 다가왔기 때문에 기대가 계속 확장됐고 염려와 우려는 또 다른 기대로 변화했습니다. 작품이 진행되는 과정마다 사실 많은 코멘트를 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단지 주인공이 가진 감정, 표현을 거꾸로 언어로 표현해주려고 노력했어요.
창작 과정에서 자문과 드라마투르그의 역할을 해주신 거네요.
고중곤: 네, 예술심리 혹은 무용동작치료, 심리학자로서의 관점으로 그 상황들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대로 받아서 작품에 녹여내는 탁월함이 감독님에게 있었어요. 매번 연습할 때마다 깜짝 놀랐습니다. 감독님이 작품을 더 다듬을 수 있다고 한다면 이 작품이 가진 의미가 더 커질 것이라고 봅니다.
고중곤 이사장님께서 공연 시작 전에 직접 무대에 올라 관객에게 말씀하셨는데, 열린 마음으로 작품을 마주하게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 때 말씀하신 세 가지 관전 포인트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고중곤: 공연 시작 전에 제 관점에서 작품 전체를 소개했는데 저로서는 큰 미션이었습니다. 첫 번째로 심리학적 관점에서 융 심리학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했어요. 칼 구스타프 융이 의미 있게 표현했던 것 중 하나가 그림자입니다. 융 분석심리학에서 말하는 중요한 요소들이 작품에 많이 녹아 있다고 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그림자였고 그 그림자는 무대에 있는 주인공의 역할 뿐 아니라 관객으로 참여한 사람들의 모든 내면의 그림자를 그대로 투영할 수 있는 요소입니다. 그날 관객에게 “이 무대는 여러분들의 무의식이고 어린 시절이며 여러분들 삶의 현장”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세 번의 공연마다 조금씩 다르게 표현했는데요. 두 번째 표현했던 것 중 하나가 소품에 대한 거였어요. “소품이 가진 의미들을 잘 보면 울림이 클 것”이라고요. 감독님이 쓰는 소품들이 예술에서 흔히 쓰이는 소품은 아니에요. 굉장히 디테일하고 섬세한 소품들을 썼습니다. 평균대, 모루, 송곳, 청소기, 수정된 버전이지만 라면, 나무젓가락, 자기 자화상을 그리는 것 등 예술심리치료에서 각각이 의미 있는 활동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깜짝 놀랐어요. 심리 치료에서 활동으로 들어갈 수 있는 요소요소들이 소품으로 들어왔다는 것, 특히 무용동작치료와 예술심리치료의 복합적인 요소에서 활용할 수 있는 걸 잘 풀어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세 번째로 “〈내 이름 아시죠?〉의 중요한 세 인물이 있다면 융과 헤밍웨이, 그리고 김남식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융은 전체 배경과 숨어있는 모든 복선 속에 깔려있는데, 그런 걸 읽어내는 감각이 감독님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중요한 대사를 감독님이 독백했어요. 새로운 시도라고 생각했고 울림이 컸어요. 인류학적 관점에서 노인의 의미는 만물 백과사전입니다. 헤밍웨이의 작품 〈노인과 바다〉에서 등장하는 노인도 마찬가지지만, 그의 경험과 삶에서 녹여낸 삶의 기술과 노하우, 매뉴얼, 암묵지들은 하나의 도시와 마을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그 정도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노인이 사투를 벌이는 장면과 고독 속에서 풀어내는 한마디 한마디를 전부 스토리 라인과 일치시켰습니다. 노인의 독백은 하나의 메시지였습니다. 이것이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은 개연성을 찾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감사하게도 제가 초대했던 분 중에 대사 하나하나를 기억하신 분들이 있었어요. 특히 마지막 대사 “인간은 파멸될지언정 절대 패배하지 않는다”에서 큰 울림이 받은 분들이 많았지요. 〈노인과 바다〉의 노인이 가진 상징성, 실제 감독님이 경험했던 현장의 노인을 그대로 할아버지로 소환했다는 현장성, 그리고 노인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문학 작품의 독백 하나하나가 이 작품의 완성도를 더 높일 수 있었습니다. 무용만 갖고 풀어내면 난해해요.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디테일한 장치를 통해서 잘 표현했다는 것인데, 헤밍웨이의 작품이 던져주는 독백이 순간 의미 있는 메시지로 전달됐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작품에서 세 사람을 초대한다는 의미로 융, 헤밍웨이, 감독님을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캠페인 했던 피켓을 들었습니다. 청소년들이 듣고 싶었던 말을 적은 건데 “사랑해”, “괜찮아”, “여기 있을게”, “얘기해봐” 중에 “괜찮아”라는 표현이 가장 많았습니다. 친구들이 듣고 싶은 말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입니다. 아이들이 듣고 싶은 말을 우리는 충분히 해줄 수 있는데 못하고 있지요. 예산이 충분하다면 마로니에 공원에서 공연과 연계하여 캠페인도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움이 있어요. 공연 전 작품 소개하는 7~8분 안에 이걸 다 녹여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양 옆 관객에게 “괜찮아”, “사랑해”, “힘들었지?”라는 표현을 나눠달라고 제안했습니다. 생명을 이야기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관객과 소통하고 누구라도 듣고 싶은 말을 한마디씩 해보았으면 싶었습니다. 배경 설명을 하고 관객들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하고 나면 다소 어렵고 난해할 수 있는 것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런 부분이 적중했던 것 같아요. 많은 분이 이 부분에 대해 피드백을 많이 주셨습니다.
고중곤 (사)우듬지 이사장 ⓒ춤웹진
김남식: 조금 더 쉽게 작품을 대하도록 관객의 마음을 열고 싶었습니다. 조금 다른 접근, 보는 방법에 대한 다른 관점을 주고 싶었기 때문에 이사장님께 말씀드렸어요. 첫 번째는 이 공연을 왜 하는지, 두 번째는 어떻게 할 것인지, 세 번째는 무엇을 보여줄 건지, 이 세 가지를 갖고 이사장님께 의뢰했습니다. 제 제자가 공연을 보고 낯설었는데 기분이 좋았다고 했어요. 공연장에 가서 앞만 보는데, 옆에 있는 사람과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았고, 의식의 공유, 생각의 공유, 공간과 작품에 대한 공유를 모두 함께 한다는 경험이었다고 하더군요. 불이 꺼지면 공연이 시작되고 불이 켜지면 공연이 끝나는 구조가 아니라, 보는 관점을 다르게 했지요. 저 혼자였다면 못해냈을 거예요. 10분 이내였지만 이전까지의 해설 방식이 아닌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이 작품에 몰입이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은 것이 가장 중요했던 결과물이라 생각해요.
〈내 이름 아시죠?〉를 마무리한 지금 작품의 의미를 다시 살피게 됩니다. 김남식 감독님께서 사명감을 갖고 이 작업을 지속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고중곤: 코로나와 함께 예술인들은 예술 활동에 대한 참담한 현실을 겪고 있어요. 무대와 관객이 없어요. 그렇지만 또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는 시점인데, 〈내 이름 아시죠?〉는 시대적 터닝포인트의 상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이름 아시죠?〉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생명’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겁니다. 작품에서 한 소년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어요. 그 경계에서 소년은 자기만의 의식 작업을 계속하고 있고, 단계별로 점점 확장되면서 큰 공이라는 오브제를 통해서 도와달라는 사인을 계속 보내지만 거부되는 모습이 그려지지요. 이는 현재 코로나와 함께 현실적으로 굉장히 힘들어 하는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의 초상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다룬다는 관점에서 우리가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상황까지 가보지 않은 사람은 그 경계의 사투를 절대 느낄 수 없다는 겁니다. 사실, 이 부분은 앞으로 감독님이 작업을 계속할 때 조금 더 숙고해주셨으면 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2012년 삼성생명이 광고 기획사에 예산을 줬고, ‘생명의 다리’ 캠페인 프로젝트 광고를 만들었어요. 많은 한강 다리 중에 마포대교에서 투신율이 높았습니다. 죽음을 선택하려는 사람들의 감성을 붙잡아, 죽음에서 생명으로 되돌리자는 것이 컨셉이었습니다. 1.8km 구간 양쪽 난관에 센서를 만들었어요. 사람이 다리를 지나가면 센서에 의해 난관에 불이 켜지고 난관에는 감성을 건드리는 글귀가 쓰여 있습니다. “요즘 어때?”, “밥 먹었어?”, “많이 힘들었지?” 등 감성을 자극하는 글들이 걸을 때마다 불이 켜지면서 보이는 거예요. 이 광고가 완성되고 많은 사람이 그 길을 걸으면서 뿌듯해했어요. “죽으려고 왔던 사람들이 이 글귀를 보면 마음을 돌이키고 다시 희망을 품게 될 거야”라면서 환호했지요. 그런데 1년 후, 9시 뉴스에서 생명의 다리에서의 투신율이 4배 증가했다는 보도를 합니다.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알기로 그 광고기획사는 전 세계에서 40개 이상의 광고상을 휩쓸었어요. 그리고 대한민국 어느 지역에서는 짝퉁 생명의 다리를 만들 정도였지요. 그런데 어째서 1년 후에 오히려 투신율이 4배나 늘었는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술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혁명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이 핵심을 찾아야 합니다. 죽음을 선택하려했던 소년, 그런 삶을 경험했던 아이들은 “센서에 불이 켜지고 저 글귀를 본다 해서 마음을 돌이킬 수 있을까요?”라고 반문합니다. 그 얘기는 멀쩡한 사람 눈에는 감성적으로 보이지만 죽음의 경계에 선 사람들은 전혀 의미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실제 2017년 몹시 추운 겨울에 낮은무릎경청 캠페인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티켓을 갖고 다리에 갔어요. 가는 길에 “정말 죽음을 선택하고 여기 다리 난관에 첫발을 디디려는 사람은 어떤 마음일지 그들의 마음을 저에게 느끼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멀쩡한 우리의 멘탈로는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을 품고 다리 난관에 갔는데 이 프로젝트가 실패한 이후, 2m 높이 이상의 펜스가 다리에 전부 설치되어 있더군요. 불이 꺼져있고 청춘남녀들의 흔적만 남아있었어요. 실제 몇 년 전에 그런 상황이었다고 하면 어땠을까 생각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거예요. 청소년들이 저한테 던졌던 이야기, ‘불빛과 좋은 글귀가 죽음을 선택한 내 마음을 돌이킬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그 마음이 느껴지더군요. 사투를 벌이는,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눈빛, 손잡아줌, “괜찮아요. 얼마나 힘드셨으면, 얼마나 참담했으면, 오죽했으면 그곳에 서 있겠어요”라는 따뜻한 말이라는 거예요.
벼랑 끝에 있는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을 어루만져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에 참여하는 아티스트들이 가장 힘들고 참담하고 죽고 싶었을 때의 상황에 대해 무용동작치료 등 예술치료의 형태를 경험하고 관객의 마음과 영혼에 울림을 줄 수 있게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골방에서 힘들어하는 이 소년의 마음 깊은 부분에 부족한 무엇인가를 찾아야 하는 숙제를 갖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예술로 사회를 변화시키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 〈내 이름 아시죠?〉를 통해 진정한 시대적 터닝포인트를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리: 이슬기 〈춤웹진〉 인턴기자
한국춤비평가협회가 발행하는 월간 〈춤웹진〉에서 무용 전문기자로 활동 중이다.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하여 무용인 인터뷰를 포함해 춤 현장을 취재한 글을 쓴다. 현재 한예종에서 무용이론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