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코로나 길찾기: 허성임
코로나가 터닝 포인트였어요
  • 일    시
    2020년 11월 14일 오후 4시 30분
  • 장    소
    경인미술관 전통다원(서울 인사동)
김인아_〈춤웹진〉 기자


허성임 ⓒ춤웹진




김인아: 춤웹진은 ‘코로나 길찾기’라는 기획연재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영국에 거주하며 국내외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온 허성임 안무가와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11월 말에 선보일 SPAF 영상 작업 〈넛 크러셔〉와 플랫폼엘에서의 공연 〈시간과 시간 사이〉를 위해 한국에 오셨는데요. 영국에서 언제 입국하셨죠?
허성임: 10월 15일에 입국해서 2주간 자가격리를 마쳤어요. 격리가 끝나는 날 바로 극장에 가서 리허설을 했죠. 그동안 영상으로 만나던 무용수들과 처음으로 만날 수 있었어요. 한 달 반 정도 체류하고 12월 초에 영국으로 돌아가는 계획이에요.

가족들이 한국에 간다고 했을 때 불안해하진 않았나요?
안전하니까 오히려 가라고 했어요. (웃음)

코로나로 인해 올해 한국은 공연이 취소되거나 잠정 연기되는 상황이 꽤 있었어요. 창작을 놓지 않기 위해 거리두기 객석제나 영상 작업으로 공연을 이어가기도 했고요. 허성임 안무가는 유럽 예술계 상황을 몸소 겪으셨을 텐데요.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나라마다 달라요. 특히 영국은 내년까지 완전히 셧다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영상으로 공연한다는 걸 들으면 깜짝 놀라요. 결국은 펀딩이잖아요. 그만큼 지원이 있다는 것인데, 영국은 파운데이션이 없는 거죠. 뮤지컬 쪽도 아예 폐쇄됐고요. 한 정치인이 ‘예술 하고 싶은가, 꿈을 깨라’는 말을 할 정도로 현재 문화예술계에 대해서 아주 비관적이에요. 극장은 아예 문을 닫았고 온라인도 그렇게 많지 않아요. 온라인으로 서로 대화하거나 줌으로 미팅하지만, 촬영해서 송출하는 것도 다 돈이거든요. 우리나라의 예술 지원은 대단한 거 같아요.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모두 작업하고 있더라고요. 방식이 바뀌었을 뿐이죠. 외국은 정말 막막해요. 내년도 보장할 수 없고 극장 문을 다 닫는다는 소리도 들리고 아마 대거 인력이 줄어들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준비됐는지 모르지만 엄청난 혼란이 시작될 거예요.

힘든 상황이네요. 영국에서 예술가들은 어떻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나요?
정말 힘들어요. 아는 분은 꽃 배달을 하거나 아예 다른 쪽으로 일합니다. 완전히 다른 데이 잡으로 살고 있어요. 지금은 유럽 전체가 다 봉쇄예요. 상황이 아주 안 좋아서 올해는 크리스마스 마켓도 없다고 해요. 우리나라가 정말 잘하고 있는 거예요. 반면 프랑스 같은 경우는 코로나 감염자가 5만 명씩 나오지만, 극장 오픈하고 관객도 꽉 차더라고요.

프랑스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평소처럼 가까이 앉아 공연을 보더라고요. 방역에 대한 인식이 그리 높지 않은 듯 보여 걱정스러웠습니다.
유럽인들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너무 크다 보니 남의 건강보다는 나의 자유를 더 중요하게 여기죠. 벨기에 친구는 코로나 위기에서 그런 점에 회의감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코로나 초기에 독일 연방정부가 예술가에게 큰 액수의 지원을 보장한다고 했었고, 유럽국가들은 위기 상황에서도 예술지원만큼은 잘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였어요.
맞아요. 저도 긴급 수혈처럼 300만원 정도 지원받았어요. 지금까지 예술 활동한 게 있으면 활동에 따른 지원금을 받는 것도 있고,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있는 거 같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수혈식 긴급지원이 있긴 한데 그걸로 살아갈 순 없죠. 벨기에는 조금 달라요. 나라에서 예술인 수당이 나오죠. 여태까지 예술인으로 일 년 반 동안 살았다는 증명만 하면 평생 예술인 보장금이 한 달에 200만원 정도 나와요. 우리나라에선 불가능하죠. 벨기에 세금이 50%니까요. 장단점이 있는 거 같아요. 벨기에는 제약 없이 평생 받을 수 있지만 프랑스, 독일은 제한이 있는 거로 알고 있어요.




〈넛크러셔〉 온라인 오디션 현장 ⓒ허성임




사회 전분야가 비대면 온라인을 수용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예술계도 방안을 찾아 실행해보는 과정 중에 있어요. 이번 SPAF에서 〈넛크러셔〉 영상을 송출하는데 오디션, 리허설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하셨다고요.
SPAF 오디션을 온라인으로 했고 세 명의 무용수를 뽑은 다음 날짜 체크를 하고 온라인으로 리허설을 시작했어요. 감사하게도 좋은 무용수들을 만났어요. 리허설은 줌(ZOOM)을 이용해서 했구요. 한 달 반 정도 연습했고 재밌었어요. 제가 가만히 의자에 앉아있는 것처럼 보이게끔 그 각도에 핸드폰을 놓으면 그 반경으로밖에 볼 수 없지만요. 리허설이 어느 정도 온라인으로 가능하다는 건 새로운 발견이었어요. 안무를 영상으로 할 수 있는 새로운 단계인 거 같아요.
 한국과 영국은 시차가 8~9시간 정도 납니다. 저에겐 오전 리허설이었지만, 한국 와서 보니까 저녁 리허설이었어요. 시간, 공간, 모든 감각이 갑자기 교차됐어요. 이런 부분이 새롭더군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기도 했고요. 줌으로 레코딩해서 그날 한 걸 보내요. 그럼 무용수들이 모니터링하고 제가 1분 몇 초에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해줍니다. 시간이 걸리지만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도록 리허설을 공유했어요.
 코로나가 끝나더라도 온라인을 더 이용하게 될 것 같아요. 제롬 벨도 절대적으로 온라인으로만 리허설 하잖아요. 저도 리허설해 보니까 가능했고요. 구조가 있으면 앞으로 직접 왕복하지 않아도 작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울-런던의 〈넛크러셔〉 온라인 리허설 ⓒ허성임




현장과 다르게 온라인 리허설에서 문제점도 있었을 텐데요.
일단은 2차원이잖아요. 촉감을 비롯해 감각을 예민하게 느낄 수 없습니다. 얼굴 표정과 디테일한 부분이 느껴지지 않아요. 〈넛 크러셔〉는 2차원적인 것이 많았기 때문에 가능했고 큰 차질 없이 진행됐어요. 다른 작업할 때는 그런 부분에 봉착하지 않을까 싶어요.
 극장으로 들어가서부터는 온라인으로 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느꼈어요. 분명히 파란색 조명이라고 하는데 하얀색으로 보였어요. 그 강도와 디테일한 지점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죠. 한 부분에서 음악이 살을 스치는 듯 아주 조그마한 느낌이었으면 했는데, 컴퓨터를 통해선 느낄 수 없는 거예요. 그다음에 볼륨이 올라가야 하는데, 계속 끊겼어요. 마지막 정리 과정에서 실제로 대면해서 리허설 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더라고요. 어느 정도 형식을 따라갈 수 있지만 감각적인 부분을 놓치는 게 많았어요.

〈넛 크러셔〉 영상 촬영은 어땠나요?
SPAF촬영 때 카메라 6대가 들어왔어요. 새로운 체험이었죠. 무용수들이 움직이지 않아도 카메라가 움직이니까 그게 또 다른 코레오그래피로 느껴졌어요. 이것 자체가 새로운 코레오그래피라는 걸 느꼈을 때 인상적이었어요. 지미집도 들어오고, 카메라가 밑에서 자동으로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천장에서 찍기도 하고요. 재밌었어요. 우리가 볼 수 없는 걸 눈으로 바라보는 거잖아요.
 편집도 3초 또는 5초에 한 번씩 바뀌었으면 좋겠냐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5초 이상 안 바뀌면 관객들이 지루해한다고요. 저는 작품상 앵글이 자주 바뀌지 않으면 좋겠고 만약 바뀐다고 하더라도 불규칙적으로 바뀌었으면 했어요. 어떻게 보면 이것도 코레오그래피였죠. 촬영과 편집에서 안무 가능성이 무궁무진해요. 좋은 체험이었어요.

영상 작업에서 아쉬웠던 점도 있었나요?
올해 SPAF가 영상으로 전환되면서, 급하게 진행됐어요. 편집할 때 제가 같이 앉아서 하나하나 짚어드리고 일주일을 투자했으면 좋았을 텐데 시간상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아쉬웠어요. 편집한 영상을 보내주시면 제가 보고 “3분쯤 ~해 주세요”라고 말씀드리는 게 어떻게 보면 절충해야 하는 느낌이었거든요. 결정이 빨랐으면 댄스필름화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있는 공연을 다이내믹하게 찍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연구해서 콜라보레이션으로 했으면 영화처럼 만들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넛 크러셔〉 영상작업 현장 ⓒ허성임



SPAF 온라인 공연_ 허성임 〈넛 크러셔〉 ⓒ영상화면 캡쳐




SPAF에서 〈넛 크러셔〉를 송출하는 날짜에 플랫폼엘에서 〈시간과 시간 사이〉라는 공연을 선보이는데요. 작품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시간과 시간 사이〉의 첫 시작은 정체성의 변화였어요. 친구를 만나서 수다 떨다가 무용수가 됐다가 집에 가면 엄마가 됐다가 딸이 돼요. 저한테 요구되는 여러 가지 사회적 마스크들이 있고 그 마스크를 충실하게 이행하죠. 한 사람의 아이덴티티 체인지에 대한 작품을 생각하다가 코로나가 왔고 락다운되면서 집에만 있게 됐어요. 그러면서 시간에 대한 생각이 들었어요. 9시 지금은 엄마가 될 시간, 10시 지금은 와이프가 될 시간이었던 게 뭉개지면서 하나로 통합된 상태가 됐고, 이것을 작품을 풀어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벨기에 친구들, 음악하는 분, 영상하는 분, 콜라보레이터와 화상으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죠. 제가 고민을 얘기하면 그 친구들이 비디오를 찍어주는 거예요. 예를 들면 유리창에 얼굴을 스매싱하는 비디오를 찍어서 보내면 고민하고 ‘그거에 대해 나는 이런 느낌을 받아’라며 또 다른 영상을 찍어서 공유하고 이런 식으로 과정을 쌓아왔어요.
 이번에 4시간 공연을 하는데요. 2가지 이유가 있어요. 한 가지는 기승전결식의 작품을 하기 싫었어요. 우리의 삶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는데, 삶에 기승전결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회사 가고 이런 루틴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에 스펙터클한, 감동을 줄 수 있는, 대단하고 평생 뇌리에 박힐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보다는 아주 소소하고 일상에 가깝고 우리와 가까운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한 시간 작품을 한 다거나 한 시간 반 작품을 한다면 짜여있는 작품, 쇼, 영화 이런 것 안에 있고 기승전결, 결말이 있어야 할 거 같잖아요. 그래서 이걸 확장하기 위해 4시간 작품을 하게 된 거에요. 물론 4시간 전부 보지 않아도 되요. 들어오고 싶을 때 들어와도 되고 나가고 싶을 때 나가도 되고 관객에게 선택권을 주고 싶었어요. 코로나 시대에 사람이 많다 하면 피해도 되고 나가도 되고 다시 들어왔다가 또 나가도 되고 관객들이 가질 수 있는 초이스도 중요해요.
 전체적인 작품은 3일의 반복이에요. 24시간을 하루로 봤을 때 데이 1, 데이 2, 데이 3가 있을 거예요. 3일의 반복, 똑같은 일상의 반복을 체험하고 싶었고 그러면서 우리의 몸이 변하고 구성한다고 만들었던 것들이 점점 해체되는, 어떻게 보면 크게 봐선 인생에 관한 얘기일 수도 있고 삶과 죽음의 얘기일 수도 있어요. 한 시간 안에 삶과 죽음을 얘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장시간 작품을 하게 된 거예요. 3일은 인생에 있어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거 같아요. 예를 들면 삼일장을 치르거나 3일 이후에 예수님이 부활했다거나 3일에 대한 의식이 있는 거 같고, 그렇기에 3일의 반복을 선택하게 됐어요. 우리는 일상의 쳇바퀴를 돌리고 아이덴티티를 바꿔가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삶은 계속 이기다가 언젠가는 지는 거라는 말이 있어요. 삶이란 게 결국 끝이 있는데 끝을 모르고 살아가잖아요. 오늘이 있고 내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당연히 내일이 있는 거처럼 살아가죠. 아버지가 쓰러지시고 나서 그런 두려움이 생겼어요. 끝이라는 건 누구한테나 올 수 있는 건데 그걸 무시하고 매일 사는 거죠. 이런 부분을 공유하고 싶었고 이것을 관객이 느낄 수 있다면 값진 경험이 될 거 같아요.




허성임 〈시간과 시간 사이〉




어떻게 보면 〈시간과 시간 사이〉는 가장 혼란스럽고 위험천만하고 예상할 수 없어요. 계산할 수 없고 위험성이 큰 작품이어서 더 흥분하게 만드는 작업인 거 같아요. 대부분 즉흥일 거고 짜여있는 구조 안에서의 해프닝일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플랫폼엘을 선택했고, 관객과 갭을 허물 수 있는 작업이었으면 했어요. 퍼포머로서, 관찰자로서가 아니었으면 해요. 사방에 관객이 앉을 수 있다는 건 관객이 그 방에 안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관객은 벌써 공간 안에서 놓인 거고 작품 안에 깊이 들어와 있는 거잖아요. 제 포즈가 어느 쪽에 가느냐에 따라 또는 어떻게 연관시키느냐에 따라 관객과의 갭은 벌써 사라지는 작업이 될 것이고 그런 부분이 흥미롭지 않을까 해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3~4개월 투자하는 시간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관객들은 보고 재밌었다 하고 가는 작품이 아니라 우리가 시간을 투자하고 관객도 같이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작품이었으면 해요. 덜 소모적인 작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작업을 영국에서 한다 하면 아주 작은 리허설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거죠. 관객 분들은 어떻게 보면 시간을 투자해야 할 작품인 거예요.

공유하고자 하는 내용이 관객 스스로 개입해야지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기꺼이 투자할거라 생각되네요. 관객들은 또 다른 경험치를 쌓을 것으로 보여요.
4시간 다 관객들이 투자할 것을 요구하지 않아요. 굉장히 힘든 시간이어서 마지막 한 시간만 봐도 되죠. 결국 선택이에요. 각자 가져가는 부분이 다른 거죠. 공연이라 하면 규격화되어 있고 최대한으로 효과를 넣어 마지막에 터지게끔 포장되어있는 느낌이에요. 그런 것 없이도 관객과 호흡할 수 있을까, 우리가 현대인으로서 같이 고민하는 부분을 어떻게 공감하고 어떻게 서로 이야기를 꺼내나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나온 거죠.
 작품이 꽉꽉 채워지지 않고 빈 부분도 있으면 좋겠어요. 전시 공연이라 하니까 어떤 전시를 하느냐고 많이 물어보시는데, 제가 의미한 전시 공연은 몸의 전시예요. 4시간 안에 순차적으로 두 무용수의 몸이 변화되어가는 걸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공간이 더 비워져 있으면 좋겠고 몸에 더 집중을 해주셨으면 해요.




  



허성임 〈시간과 시간 사이〉




코로나 상황에서 진행했던 다른 작업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세요.
제가 몸도 많이 상하고 다쳐서 올해는 몸을 힐링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마침 Reahel Cherry라고 무용했었고 지금은 메인으로 포토그래피를 하는 친구가 저한테 접근했어요. 카메라 자체가 무겁고 한쪽으로만 계속 쓰잖아요. 그래서 팔이 일정 부분 이상 안 올라가요. 직업병이 생긴 거예요. 두 팔을 다 올려봤자 많이 안 올라가요. 몸이 완전히 상한 거죠. 전 반복적 요소를 좋아하는데, 우리 일상은 반복이고 무용수도 반복적인 동작을 하기 때문에 몸이 상하죠. 그걸 사용해서 힐링할 수 있는 작업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Siobhan Davies 레지던시와 Wellcome Collection 레지던시가 운 좋게 돼서 시작하려 하는데 락다운 때문에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됐어요. 그래서 마련한 게 한국에 네거티브 스페이스 작가의 인상적인 메소드를 차용하는 것이었어요. 큰 창호지를 만들어서 그리는 거예요. 초크를 갖고 제 몸으로 그리고 네거티브 스페이스를 채우는 거죠. 그림을 그리고 나갔을 때 사람의 몸이 나와야 하는데 이 친구가 할 수 있는 반경은 한정적이었어요. 집에서 할 수 있는 거니까 상황에 맞게끔 만들었죠. 원래는 같은 공간에서 고무줄을 갖고 오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집에서 서로 각자 그림을 그리되 똑같은 그림을 그리고 그다음 날 몸이 어떻게 느끼는지 체크했어요. 여기까지밖에 안 올라갔는데, 다음에 더 올라가기도 하고…. 코로나 시간 동안 이런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시각-퍼포먼스 작업인 거 같아요.

온라인상에서만 한 건가요?
필름을 찍었고 락다운이 잠깐 풀린 동안 스튜디오 레지던시에서 같이 했어요. 이걸 10분짜리 필름으로 만들어서 공유했고 내년 초에도 이어질 거예요.




Percolate residency from Sung Im Her on Vimeo.

 




코로나로 인해 주어진 시간은 허성임 안무가에게 어떤 시간이었나요?
올해 전 쉬고 싶었어요.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서 조금 놓고 싶었죠.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고 싶었던 차에 코로나가 터진 거였어요. 공연이란 걸 다시 들여다보고 싶었고 나는 왜 사람들이 보기 원하는 것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나란 생각을 했어요. 제가 아까 말씀드렸던 기승전결, 멋진 피날레,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 아티스트 허성임으로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관객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고 이번 코로나가 터닝 포인트였던 거 같아요. 재정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저로서는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정말 필요한 시간이었어요. 집에서 머물면서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내년 일정이 꽉 찼어요. 의도한 게 아니라 올해 못한 게 내년에 쏠렸고, 아마 다른 아티스트 분들도 그럴 거예요. 이런 시간이 특히 예술가들한테 필요한 거 같아요. 빈 엔진으로 돌아가기보다 비우고 채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어요.
 전 형식화되고 연출된 걸 안 좋아해요. 이번 〈시간과 시간 사이〉는 덜 연출되고 어떻게 보면 실수가 있고 부정확하고 정비되지 않은, 그렇기 때문에 순수하고 인간적으로 보일 수 있는 작품이었으면 해요. 정말 깔끔하고 정갈하면서 실수 한번 없는 건 또 다른 테크닉이고 대단한 거죠. 그렇지만 제가 관심 있는 건 조금 더 인간적인 거예요. 우리 삶은 실수투성이잖아요. 인간적인 게 녹아있는 작업이면 좋겠어요. 이번에 재정비한 시간을 통해 그런 게 조금 더 진실하게 나타나지 않을까 해요. 그러면서 무엇이 진짜일까, 대중예술과 현대무용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생각했어요. 대중성을 갖고 가는 것도 중요하고 힘이 있죠. 제가 관심 있는 부분은 대중적이진 못하지만 그래도 소통을 포기할 수 없으니까 다른 방법으로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가를 찾는 거였어요.




허성임 ⓒ춤웹진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덧붙여주세요. 무용인에게 힘이 될 수 있는 말씀이라면 더욱 좋겠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다 힘들어요. 예술하는 사람은 더 앞날을 볼 수 없고 깜깜해요. 혼자만 힘들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 힘들다는 거죠. 어떻게 보면 이런 상황들을 잘 이용하면 이것이 축적돼서 내년, 내후년에 바람직한 메소드가 나올 수도 있어요. 우리나라는 잘하고 있어요. 자랑스럽습니다. 외국에서 한국을 너무 좋아해요. 드라마, 케이팝, 음식, 한국 인기가 장난 아니에요.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아요. 한국에서 활동하는 분이 외국에 나갈 수 있는 루트도 많아질 거 같단 생각도 들더라고요. K-아트 페스티벌이 영국에 있잖아요. 그런 식으로 한국 페스티벌을 열고 싶다는 곳이 나오지 않을까 싶고 한국 현대무용이 좋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관심이 모이는 거 같아요. 지금 잘 준비해야죠. 재밌게 작업하는 친구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으니 앞날이 밝다고 생각해요.

코로나 위기에서도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는 허성임 안무가를 응원합니다. 유럽 상황이 개선되어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긴 시간 인터뷰에 감사드립니다.

 


정리: 이슬기 <춤웹진> 인턴기자

김인아

한국춤비평가협회가 발행하는 월간 〈춤웹진〉에서 무용 전문기자로 활동 중이다.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하여 무용인 인터뷰를 포함해 춤 현장을 취재한 글을 쓴다. 현재 한예종에서 무용이론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 ​ ​ ​ ​ ​ ​ 

2020. 1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