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무용가 이미리
하이텐션의 즉흥을 추구하지요
  • 일    시
    2020년 7월 27일(월) 오후 5시
  • 장    소
    아카데미아인(서울 동교동)
김인아_〈춤웹진〉 기자

이미리 ⓒ춤웹진




김인아: 올해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즉흥 워크숍’을 통해 이미리 무용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현재 〈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독립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계신데요, 〈춤웹진〉 독자를 비롯해 한국 춤계에서 이미리님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미리: 이번 방문은 한국을 떠나 거의 12년 만에 이루어진데다가 코로나19로 우여곡절 끝에 성사되어 개인적으로 매우 의미 있고 뜻 깊었습니다.
 한국에서 무용 교육을 받고 여러 안무가 선생님들과 무용단 활동을 했어요. 2005년 무용단에서 나와 개인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어 2008년까지 여러 협업작품들을 발표했습니다. 기존 무용 교육에서 안무작품이라 하면 안무가가 있고 특정동작 위주의 레퍼토리와 반복연습을 통해 안무가의 작가성이 표출되는 작업을 하는데, 이런 방식에서 벗어난 즉흥이란 걸 서울국제즉흥페스티벌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됐어요. 계속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2006-7년, 2년 간 즉흥안무가 케이티 덕(Katie Duck)의 즉흥의 구성과 룰에 관한 워크숍에 참여했었고 이후 즉흥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져서 심도 있게 공부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러다 2008년 케이티 덕이 이끄는 맥파이 뮤직 댄스 컴퍼니(Magpie music dance company)의 어프렌티스 과정에 발탁되어 1년 정도 참여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네덜란드로 가게 됐죠. 내가 추구하는 안무법이나 즉흥의 본질과 확장성에 대한 리서치를 진행하며 지내다 보니 벌써 12년이란 시간이 지났어요. 지금은 그 결과로서 ‘임프로그래피(Imprography methode)’라는 방법론을 전문무용가들을 위한 플랫폼으로 확장시키기 위해 다양한 예술장르의 예술가들과 협업을 위주로 활동하고 있어요.

케이티 덕 즉흥 그룹 ‘맥파이’에서 활동하셨다는 프로그램 소개 글을 봤어요. 어떤 활동을 했고 작업 방식은 어땠나요?
맥파이 뮤직 댄스 컴퍼니라는 그룹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처음에는 제가 일반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댄스컴퍼니라는 개념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 그룹은 엄브렐라 개념의 콜렉티브 그룹, 즉 여러 독립 예술가들이 프로젝트에 따라 모이고 또 그 작업이 끝나면 다시 자신들의 개인 활동을 이어가는 매우 자유로운 방식으로 활동하는 컴퍼니 그룹이었습니다. 제가 맥파이에 참여한 2008년도에는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있었고 국제적인 활동을 위주로 하는 맥파이에서 여러 사정과 재정적인 문제가 발생하여 2010년에는 거의 해체되는 수준에 있었어요. 맥파이의 독립예술가은 여기저기로 흩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기대와는 다르게 그들과 작업을 한다거나 작품 활동을 할 기회를 많이 갖진 못했어요.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일들이 꼭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케이티 덕이 공연 위주의 무용단에서 즉흥 메소드를 연구하는 워크숍 전문 단체로 그룹의 성격이 바뀌게 되면서, 유럽 예술계에서 독립 예술가로 자립할 수 있는 역량과 예술적 목표를 이루어 나가는지 옆에서 관찰하고 경험할 기회를 갖게 됐죠. 제가 독립 예술가로서 자립하고 활동하기 위한 방향성을 세우는 매우 값진 경험이었어요.

맥파이에서 하는 즉흥론은 어떤 것이었나요?
60-70년대 미국의 포스트모던댄스의 발생과 히피문화의 발단으로 주류예술계에서 파생된 즉흥 예술은 미국의 무용가, 재즈 뮤지션, 예술가들의 유럽 이주로 확장되었어요. 제가 체류하는 암스테르담은 다른 유럽도시들과는 다르게 유독 미국 출신의 즉흥예술가들과 유럽 예술가들이 함께 하는 활동이 많이 이루어졌었고, 그 영향으로 재즈와 로큰롤, 실험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아 굉장히 화려하고 실험적인 작품들이 많이 발표되었어요. 맥파이의 즉흥론의 핵심은 정리가 되지 않은 다양한 즉흥에 간단한 룰을 적용하여 작품으로서 보다 명료한 작가성을 부여하는 것에 있어요. 예를 들어 ‘무대 위의 상황을 보지 못하면(이해하지 못하면) 등장하지 말 것’ 같은 간단한 룰인데요. 간단하고 작은 룰이지만 사실 굉장히 포괄적이고 어려운 룰이기도 합니다.




Doek Festival, BIMHUIS Amsterdam, 2019




작업방식을 비롯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 새로운 걸 체득하면서 작업하는 것이 매력적이었을 거 같아요.
한국에선 계단식으로 기회가 오잖아요. 어느 정도 레벨이 됐을 때 가능한 사람을 만나고 어렵게 또 한층 올라갔을 때 또 다른 그 위의 레벨의 사람을 만나게 되고요. 제가 활동하는 암스테르담의 특별한 경우일지는 모르겠지만 예술가들 간의 레벨 구분이 거의 없어요. 언더그라운드 씬, 중간규모의 중견예술그룹, 메이저 컴퍼니그룹 이렇게 나뉘는 것은 한국과 마찬가지지만, 레벨에 따른 벽은 상당히 낮은 편입니다. 여러 레벨의 아티스트들이 함께 구성되어 작업할 수 있는 공연이 산발적으로 이루어졌다가 없어지고, 그런 기회가 폭발적으로 있다가 없어지는 기묘한 경험을 하기도 했어요.

예술 현장의 레이어가 다양한가 봐요.
네. 초기에 인상적으로 느꼈던 게 처음 시작하는 신인 아티스트의 단계여도 평등하게 작업하고 동등한 퍼포머로서 목소리를 내며 공연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다수의 아티스트들이 위치와 장소에 전혀 구애받지 않아요. 예를 들자면 어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정식 공연을 마치고 오늘은 콘서트홀 근처의 작은 레스토랑에서 다른 예술가들과 어울려 즐겁고 프라이빗한 공연을 합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관객들과 가까이 대면하는 공연을 많이 선호하는 거죠. 그리고 예술 아카데미 출신이나 단체의 소속과 무관하게 활동하고 각자의 개인적인 작가성의 발전에 중점을 두고 작업하기 때문에 다양한 예술가들과 전문적인 레이어를 이루어 작품활동을 이어 갑니다.

스스로 길을 만들 기회가 충분하군요.
네. 2008년도부터 지금까지, 기회는 항상 충분히 있었어요.






Herz Ensemble 〈Night of Tarantula〉 Muziekgebouw, Amsterdam, 2019




‘Collectief Imprography’라는 단체를 만들어 리더로 활동하신다고 알고 있어요. 어떻게 만들어지고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Collectief Imprography를 생각한 건 처음 즉흥을 시작할 때였어요. 서른이 넘어서 제 활동 범위를 유럽으로 옮긴 경우라 다시 학교에서 아카데미 교육을 받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독립적인 아티스트로서 제 방향을 만들어 가야겠다는 목적의식은 있었죠. 2009년부터 매년 여름 케이티 덕과 뮤지션 알프레도 제노베시와 함께 암스테르담에서 6-7주 정도의 정기즉흥 워크숍을 시작했어요. 전문 뮤지션, 무용가, 연극인, 즉흥 메소드를 배우고 싶어 하는 예술가들과 학생들이 모이죠. 매년 워크숍을 통해 즉흥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됐어요. 케이티 덕의 즉흥 메소드에 대한 여러 가지 반응이 있었고, 여러 나라에서 온 예술가, 학생들과의 작업들 또한 매우 강렬한 경험이었죠.
 더불어 제 개인 협업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즉흥 메소드를 통한 다른 분야의 협업에 즉흥의 확장성이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넓은 범위로서 무엇이든지 다 가능하다는 의미의 즉흥이 아닌, 즉흥을 전문적이고 명료하게 축약해서 나만의 방법론으로 만들어 나가는 방향을 잡고 매해 리서치를 업데이트해 나갔습니다. 항상 여름에는 온전히 즉흥 메소드에 대한 연구 그리고 다시 리마인드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협업, 이렇게 매년 단위의 리서치를 반복 연구하며 발전시킨 것이 임프로그래피 메소드입니다.
 현재는 파인아트와 미디어아트를 함께 포함하고 있는 비주얼아트, 씨어터퍼포먼스, 사이언스아트 그리고 재즈, 클래식음악 및 실험음악 현대음악 등의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임프로그래피 협업을 진행하면서 하나의 플랫폼을 목표로 작업을 진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Collectief Imprography에 모인 아티스트와는 어떻게 작업하고 계신가요?
 저와 같이 움직이고 비슷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무용수나 아티스트와 하는 작업은 더 이상 흥미롭지 않았어요.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과 고유의 작가성을 가진 아티스트들을 찾는 것에 많은 고민과 시간을 들였어요. ‘오브젝트와 서브젝트의 개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이것을 자신만의 고유의 작가성으로 어떻게 발현할 것인가’ ‘발현 시 발생하는 에너지들을 어떻게 컨트롤할 것인가’와 같은 주제로 개인 워크숍과 협업을 중심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현재 코로나 시대이기도 하고 어려워지면서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잖아요. 앞으로 크리에이션하는 방향이 많이 달라질 거 같아요. 더욱 더 언택트의 시대로 가고 있고요. 하지만 우리가 하는 예술, 무용계는 접촉이 필수인데 장기적인 크리에이션 기간은 짧아질 수밖에 없고 국내에서 해외로 나가는 기회도 더 없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가질 수 있는 대안적인 방법은 각자 개인의 작가성을 가져야 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개인적인 예술가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개인의 역량이 강화되는 게 앞으로의 미래에 생존 전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미리 ⓒ춤웹진




공연과 워크숍에서 ‘Imprography’를 소개해주셨는데요, 기존의 즉흥(improvisation)과 임프로그래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요? 즉흥 메소드 바탕의 안무법인지, 일반적인 안무방식과 임프로그래피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임프로그래피 메소드는 즉흥예술에서의 케이티 덕의 주요 즉흥 메소드를 이어 받아 공유되고 구체적 방법으로 발전되었습니다. 부모와 자식 같이 동일한 유전자를 가졌지만 각자가 독립된 다른 인격체인 것처럼 말이죠. 즉흥 예술가의 작가성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부과된 여러 가지 규칙들이 작동하는 것이 케이티 덕의 즉흥 메소드인데요, 제 방법론인 임프로그래피는 실시간으로 흘러가는 시간 위에 자리하는 즉흥예술가가 써내려가는 시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Graphy에 writing이라는 의미가 있고 임프로그래피의 그래피는 ‘즉흥적으로 쓴다’라는 뜻을 더 많이 내포하고 있어요. ‘쓴다’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한데요. 인지하는 것을 대상화하여 쓴다는 개념으로 표현하는 거죠.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을 대상화하여 주관적인 감정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쓴다’는 개념을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것이 중요해요. 이것이 훈련되면 어떤 소리나 빛, 공기의 흐름, 물체 같은 것도 객관적인 판단과 직관적인 선택만으로도 대상화하여 몸으로 쓰는 행위가 가능해져요. 무대 위의 시간과 공간에서 제가 보고 듣고 안다는 것은 인지한다는 것이고, 끊임없이 교감을 하는 것이고 실시간으로 모든 것이 상호 연결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 공연이나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 협업을 하는 예술가와 알 수 없는 유대감이 생겨요. 이때 형성된 텐션을 어떻게 조절하고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느냐에 따라서 긴장을 담은 무언가가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업할 때 주제를 가지고 시작할 때도 있고 정말 백지의 상태에서 시작할 때도 있는데요, 작품에 필요한 요소들을 찾아내고 이렇게 모여진 이미지와 소리들을 엮어 실시간으로 쏟아내는 예술적 언어들이 해체되고 조합되어 조립되어가는 과정이 임프로그래피의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안무방식과의 차이를 제가 감히 정의 내리긴 어렵지만 연습을 통해서 심화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임프로그래피의 작품은 그 결과물을 공연이 끝나기 전까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상하게 들리실 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공연의 결과물을 나중에 비디오로 보고 면밀히 분석해서 다음 공연에 하나의 단서나 전체적인 작품의 시발점으로 차용하기도 합니다. 공연마다 결과물이 다르다는 것이 기존 안무 방식 작품과 가장 구분되는 지점인 거죠. 이번에 참여한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의 공연도 매회 달랐을 거예요. 공연 당일의 나와 인지하는 소리와 이미지, 관객에게 받는 텐션은 매번 다르기 때문에 다를 수밖에 없었어요.

초청공연에서의 〈Void of Text〉는 즉흥이라기보다 프로시니엄 무대에서의 짜여진 안무작이라고 느낄 정도로 기존에 봐왔던 즉흥보다 훨씬 정교해 보였어요.
네. 어떤 결과물을 미리 만들어놓고 이것들을 발전시켜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의 프로세싱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것이 임프로그래피 작업이에요.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요소가 더 있어요. 퍼포머의 기술적 숙련도와 퀄리티, 그리고 무엇보다 다양한 무대경험이 매우 중요해요. 불확실성과 불명료함에 마주한 퍼포머는 굉장히 하이텐션 상태가 되요. 이 상태를 컨트롤할 만한 기술의 자신감과 표현에 있어 거침없는 자존감 그리고 무대에서 유연할 수 있는 무대경험이 무대를 촘촘하고 정교하게 컨트롤할 수 있고 이것 역시 관객에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겠죠.
 컨템퍼러리 아트는 확장을 제한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야 해요. 나아간다는 과정은 결국 해체시키고 다시 만드는 과정의 반복으로 이루어지는데, 저는 이미 공연을 하기 전에 틀을 만들어버리면 그 안에 갇히게 돼서 신체의 동력 자체가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더라고요. 한 번 시도하고 다음번엔 다른 각도로 시도를 반복하면 1, 2가 나오다가 갑자기 3이 나오기도 하고, 정체되지 않은 깜짝 놀랄만한 재미를 느끼기도 해요. 이렇게 계속 스스로 환기시키는 과정을 반복하는 거죠.






〈Void of Text/ 부추기다〉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2020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이번 공연과 워크숍에서 국내 관객과 참여자들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국내에서도 그랬지만 유럽에서도 제 작품이 짜여진 건지, 즉흥인 건지 궁금해하는 반응들을 자주 접해요. 애매모호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고요. 이번 초청공연에서는 연습시간과 리허설 공연 과정에서 발레 무용가들이 궁금하셨나 봐요. 무대 리허설 들어가기 전에 다가와서 정말 즉흥인지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렇다고 했는데 굉장히 놀라셨어요. 그 반응이 저도 흥미로웠어요.
 워크숍은 정말 따뜻했어요. 무엇보다 기획자를 비롯하여 많은 참여자들과 짧았지만 큰 교감을 나눴다고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느끼는 예의와 꼼꼼한 배려에 정말 큰 감동을 받았어요.

말씀 중에 많은 분과 협업을 한다고 하셨는데요, 작업방식에 조금 더 활기를 북돋아 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국내에서도 시도되고 있습니다만 미디어아트, 실험음악 아티스트 등과 협업할 때의 주안점과 흥미로운 지점은 무엇인가요?
미래에서 오는 크리에이팅, 그 점이 가장 흥미로워요. 반복을 통해서 작업하는 방식은 이미 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필수 요소로서 선행되고 있죠. 지금의 저는 엄격하게 연습하고 트레이닝하는 것이 큰 가치를 결정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해요. 좀 더 엄밀히 말하면 기량이나 테크닉은 기술의 범주에 속하게 된 거죠. 하지만 저는 한국무용의 전통적인 호흡법과 발레의 바 워크를 기본 트레이닝으로 해요. 익숙하지만 엄격한 프랙티스를 제 나름의 의식처럼 진행하죠. 이런 과정이 서로의 작업에 포함되는 게 진짜 협업이라 생각해요.
 언제나 관심을 갖는 분야인 사이언스아트 분야로 예를 들자면, 근육의 강도에 반응하는 센서들을 이용하여 작은 집을 짓기도 하고 벽을 두르기도 하며 빛과 소리를 컨트롤하는 작업들을 해요. 이런 협업작업에서 모든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은 바로 퍼포머의 신체 반응이죠. 협업에 있어 중요한 것은 서로의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동반해서 서로 상호적으로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려는 예술적인 욕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Dissense〉 Todays Art Festival, 2017




불현듯 2014년 SIDance에서 공연했던 링가무용단 〈신체지도 다시 그리기〉가 떠오르네요. 근육에 부착된 생체모니터가 음향, 조명과 상호작용해서 움직일 때마다 소리와 빛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작업이었거든요. 안무가께서 하신 작업이 구체적으로 어떠했는지 더욱 궁금해져요.
2017년 네덜란드의 Todays Art Festival에서 미디어 코딩 아티스트 Chris & Tez 와 〈Dissense〉라는 협업작업을 발표했었어요. 뇌파의 파동, 근육의 강도, 호흡과 무브먼트 변화를 이용해 실시간 코딩이 이루어지는 매우 직관적인 솔로 공연이 기억에 남습니다.
 제 머리에 부착된 센서로 뇌파의 파동 변화를 감지해 사운드를 제어하고, 움직임에 따른 각 근육의 강도 변화는 조명과 사운드와 인터랙션되었어요. 제가 직접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적 시야와 모든 관객들의 가슴 부위에 부착되어있던 호흡 센서가 연동되어 드라마틱한 조명의 효과와 더불어 센서의 물리적 진동이 발생했어요. 관객들과의 교감에 따라 제가 주도적으로 컨트롤해서 섬세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웅장한 사운드와 조명을 만들어냈는데, 마치 제가 그 공간 안에서 기후를 자유자재로 조정하는 신화적 존재가 된 듯한 혹은 그들의 공감각을 지배하는 듯한 엄청난 몰입이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이 공연의 짧은 영상과 이미지들은 저의 홈페이지에서도 보실 수 있어요. (www.mirilee.nl)

유럽의 춤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테크놀로지 매개의 작업이 국내에 많이 소개되었으면 좋겠네요.
제가 컴퓨터 코딩과 같은 테크놀로지와 순수 예술을 접목시킨 협업프로젝트들을 오래전부터 하면서 네덜란드에서 체류했던 혹은 공연을 위해 방문을 했던 한국의 미디어아트 작가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어요. 그리고 EU 협력 메타바디(Metabody)라는 사이언스아트 플랫폼에서 다양한 그룹들과 꾸준히 협업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미주를 비롯한 전 유럽국가에 아트랩 형식의 소규모 리서치 그룹들이 많이 있는데 네덜란드에는 대표적으로 iii, STEIM과 같은 단체들과 꾸준히 작업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STEIM에서 상주작가로 활동하셨던 한국의 미디어 아티스트 권병준 작가님과 오랜 시간 인연이 되어 작가님의 섬세한 작업과 퍼포먼스에 관심이 많아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권병준 작가님과 협업 작업을 꼭 해보고 싶어요. 더불어, 한국의 젊은 미디어아트 작가들과의 만남도 매우 고대하고 있습니다.




Meta Body project 협업 프로젝트 Dablab, London, 2015




오랜 기간 해외에서 춤 활동을 이어가기란 언뜻 생각해보아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게다가 어떤 무용단,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프리랜서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계신데요. 어떻게 생활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유럽에서 프리랜서 아티스트로 살아가는 법에 대한 쉬운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임프로그래피의 주된 모토는 경쟁을 통한 쟁취가 아닌 조화로움 안에서 자신의 색깔과 개성을 스스로 강하게 구축하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매우 긴장감 있는 작업을 마친 후에는 예술적 만족감이 온전히 제 개인적 성취감으로 다가와요. 이러한 정신적 보상이 다음 작업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였고요.
 또한, 케이티 덕의 예술 작업 방식을 비롯해 여름 워크숍에서 만났던 수많은 아티스트들을 직접 옆에서 관찰하면서 다양한 방식을 가진 예술가들의 인정에 관한 긍정적 영향과 부정적 영향을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는 것이 자립의 큰 버팀목이 되었어요.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는 학교에 입학하고, 졸업 후에 커넥션을 만들고 조심스레 네트워크를 넓혀가고, 홀로 아티스트로서 자립하는 것이 시간적, 금전적으로 굉장히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와 같이 아시아에서 온 인맥도, 이름도 없는 평범한 아티스트가 스스로 작업을 찾고 네트워크를 쌓고 독립 아티스트로서 서기까지 길고 고된 시간을 보내야 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점은 대체 불가능한 유니크함을 찾아야 했어요. 나만의 유니크함을 찾으려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를 생각했고, 무엇보다 유럽인들의 기본 사고방식이 무엇일까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이들의 문화를 수용하고 이해하는 노력들이 수반이 되고 나니, 오리엔탈적 마인드의 아시안이 아닌 독립적인 자아로서의 제 고유의 색깔과 태도를 이 사회에 어떻게 자연스럽게 배치시킬 수 있을지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 관점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컨템퍼러리 아트의 범위는 광범위하고 추상적이죠. 그러므로 추상을 표현하려면 고유의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해요. 피카소가 그의 초기 회화를 매우 섬세하고 정교하게 그렸던 것처럼, 그런 전문적 과정이 선행되어야 비로소 자연스런 해체가 가능해 진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초기 소외감과 불안함에 매우 약해졌을 무렵, 처음부터 엄격한 기초 트레이닝을 다시 시작했고 제 백그라운드가 한국 전통무용인 것에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무용수로서 이들과 우아하게 경쟁을 할 수 있는 저의 유니크함은 서양 무용수들이 가지고 있지 않는 한국 전통무용의 독특하고 부드러운 라인, 곡선의 패턴, 무거운 호흡법 그리고 즉흥판의 경험에서 오는 리버럴한 무대 장악력이었어요. 그래서 이러한 요소들을 조금 더 다이내믹하고 견고하게 자유자재로 접목하는 리서치를 병행했어요. 사상누각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나만의 강한 코어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자립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매일 생각했습니다.
 한국을 떠나 유럽으로 진출하고 싶어하는 아티스트가 있다면 구체적인 방향과 주체적인 마음가짐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인적 역량과 실력에 따른 각자 도생의 룰이 내재되어 있는 유럽의 예술계는 일종의 정글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그리고 유럽 예술계에는 더 이상 예전처럼 아시아권에 대한 신비와 환영이 없어요. 왜냐하면 전문적 공연의 기회가 공급에 비해 수요가 월등히 많은 상태이기 때문에 매우 경쟁적으로 변해서 더 심화된 정글 사회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가장 중요한 건 묵묵히 스스로의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인내와 노력, 마음가짐일 듯합니다. 그런 아티스트에게는 언젠가 기회가 생길 수밖에 없죠.
 유럽에서 활동하면서 무용수들에 대해 가장 안타까웠던 현실이 컴퍼니에서의 제한적인 활동 수명과 안무가의 오브젝트화가 되는 현실이었어요. 그것도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그 화려한 무대의 시절이 끝나면 다시 자신의 방향을 찾기 위해 쓸쓸히 유랑하는 것과 같은 무용수들을 많이 봐왔어요. 그들은 정말 잘 움직이지만 혼자임에 쉽게 경직되고 지금까지 반복적으로 해 왔던 움직임 패턴으로 숨는 경우가 많아요. 유럽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한국에서는 즉흥 교육이 매우 필수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 코로나19 팬데믹 시간에 관련하여 전문 댄스컴퍼니들의 온라인 워크숍 등의 개설은 시대적 현상과 더불어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Sculpting Fear by Julian Hetzel, 2015-2016




자립과 자기화에 대한 말씀이 프리랜서 아티스트, 해외진출에 뜻을 가진 국내 안무가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앞으로의 바람은 무엇인가요?
점점 비대면, 개인화의 시간으로 흘러가고 있고 다양한 매체에서의 예술 퀄리티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시도하고 허락되는 즉흥은 아마추어 레벨의 즉흥입니다. 복합적 공감각을 이용하여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고 선택하여, 직관적으로 자신 혹은 그룹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능력은 사실 절대 쉬운 방식이 아닙니다.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성이 전제가 된 공연에서 퍼포머의 노련미와 예술적 경지를 가감 없이 목격할 수 있는 공연의 퀄리티가 제가 이상적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임프로그래피 공연의 형태입니다. 저는 이 과감한 방법론이 더욱 선명해지고 명료해지는 경지로 발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할 생각이에요.
 또한 이와 같은 형태의 공연이 전문 아티스트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아, 큰 프로덕션, 지원금, 제작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적은 제작비로도 고 퀄리티의 작업들을 유지시키고자 하는 것이 저의 큰 바람입니다. 나아가 전문적 협업 형태의 플랫폼 개념으로 확장되어 다양하고 노련한 아티스트들의 참여를 자유롭게 이끄는 좋은 본보기가 되는 아티스트가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네덜란드에 돌아가고 나면 어떤 작업을 하시나요? 향후 계획도 알려주세요.
현재 계획되어있던 뮤직 페스티벌이나 공연 프로젝트들이 계속 업데이트가 되고 있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올해 모든 계획들이 내년으로 미루어 졌습니다. 그래서 이미 계획된 프로젝트들의 선행 연습이 온라인을 통해 비대면으로 이루어질 것 같아요.그 외에 제 개인적으로 많은 풍족한 시간이 주어진 만큼 미뤄두었던 혹은 바빠서 하지 못했었던 음악 공부를 나름 계획 하고 있습니다. 매우 기대가 돼요.
 임프로그래피 메소드를 이용한 신작 공연, 비디오 아트 작업도 구상중이고, 온라인 매체의 효과적 방법 등에 대한 리서치 등도 병행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라는 자발적 격리의 시간이 창작의 밑거름을 다지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겠군요. 앞으로의 작업을 기대하고, 또 멀리서나마 응원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정리: 이슬기 <춤웹진> 인턴기자

김인아

한국춤비평가협회가 발행하는 월간 〈춤웹진〉에서 무용 전문기자로 활동 중이다.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하여 무용인 인터뷰를 포함해 춤 현장을 취재한 글을 쓴다. 현재 한예종에서 무용이론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 ​ ​ ​ 

2020. 9.
사진제공_춤웹진, 이미리,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