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코로나 길찾기: 무용가 이원국
자기 개발에 집중할 소중한 기회입니다
  • 일    시
    2020년 9월 12일 오후 12시
  • 장    소
    KBEC발레아카데미 사무실(서울 방이동)
김인아_〈춤웹진〉 기자


이원국 ⓒ춤웹진




김인아: 〈춤웹진〉은 기획 인터뷰 ‘코로나 길찾기’로 코로나19 재난에서 춤계 안부를 묻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원국 무용가를 모셨습니다. 코로나가 잦아들면서 공연이 재개되는 듯했지만 광복절 이후 다시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올해 상당 공연이 취소 또는 연기되었을 텐데, 불안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원국: 처음에는 코로나가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었는데 지금까지도 이어지니 주위 사람들이 많이 힘들어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학교 두 군데에서 강의하는데 비대면 수업을 하느라 더 바빠졌어요. 이원국발레단은 올해 3번 공연했어요. 보통 때라면 1년에 최소 100회 정도 공연하니까 벌써 수십 회 공연을 마쳤을 텐데 말이죠.

3회 공연은 어떤 것이었나요?
‘수원발레축제’ 첫날 공연을 마치고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나머지 공연이 갑자기 취소됐어요. 그전에는 부산에서 코로나 잠잠해졌을 때 금정문화회관에서 기획한 ‘부산을 빛낸 발레 스타’라 해서 저, 신문섭 씨, 김길용 단장, 김용걸 씨, 김옥련 씨가 출연, 총 2회 공연했어요. 그래서 총 3회인 거죠. 그때는 코로나가 안정세를 보였을 때예요. 취소된다는 말이 있다가 결국 시기를 잘 만나서 했죠. 그밖에 기존에 있던 공연들, 산발적 공연들이 코로나로 없어졌어요.

1년에 100회 이상의 공연을 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어떤 공연을 해 오셨는지요?
무용계 공연은 참가를 안 한 지 오래됐어요. 한국무용협회에서 하는 것도 발레STP협동조합을 통해서 하는 거고요. 나머지 공연은 외부, 관객들의 수요에 의해서 하는 경우, 지자체에서 초청해서 하는 경우죠. 그러다 보니 일 년에 많이 했을 때 150회 이상, 최근엔 100회 정도 했어요.
 ‘월요 발레’를 만들어서 8년 정도 했어요. 월요발레는 성균소극장에서 해오다 지난해 이 공간(KEBC발레시어터, 서울 방이동)으로 옮겼고 자리 잡으려던 차에 코로나가 터졌어요. 여기서 1년 반 정도 했네요. 아카데미 스튜디오 중에 가장 큰 홀을 극장시설로 만들었어요. 자동수납식 객석으로 최대 120명까지 수용할 수 있어요. 한 달에 2회 정도 해서 꽤 많은 공연을 했어요. 수익이 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무용수들의 급여를 마련할 수 있고, 관객들에게 발레를 보여줄 수 있어요. 앞으로는 모르겠어요. 거리두기 객석제 2미터 정도면 10분 정도 모실 수 있을까요?(웃음) 오히려 소수 정예 멤버로 티켓 가격을 올리거나 후원 형식으로 하는 방법도 있겠죠.
 그리고 성암아트홀에서도 재작년부터 1년에 10회 정도 공연했는데, 코로나 이후로 다 막혔죠.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겠어요. 하고 싶지만 자칫 많은 사람에게 불편함과 혐오감을 주는 일이 발생하면 안 되니까 조심해야죠. 이원국발레단이 공연하는데 확진자 몇 명 나왔다고 하면 곤란하잖아요.




월요발레 ⓒ이원국발레단




강의 활동은 어떠신가요?
몇 가지 특강을 하는데, 이를 테면 ‘발레로 행복 찾기’, ‘발레 이해하기’, 세종문화회관에서 CEO 대상 강의, 포스코에서 하는 강의 모두 연기됐어요. 그렇다고 해서 주눅 들거나 어렵게 생각하진 않아요. 현실이 그러니 받아들이는 거죠. 대신 학교 강의는 비대면을 하면서 수업준비로 더 바빠졌어요. 중앙대학교와 단국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는데, 일주일에 긴 시간의 수업영상 두 가지를 찍어야 하죠. 영상을 만들고 올리는 것에 상당히 애먹었어요.

교육 활동도 코로나로 인해 변화된 것이 많죠. 발레단 활동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네, 교육에서 특히 실기 수업은 문제가 상당해요. 영상으로 무용수, 학생이 하는 걸 보고 분석해서 다시 영상으로 보낸다든지 이야기를 한다든지 어려움이 많죠. 현장 예술이어서 직접 움직이는 순간에 보고 얘기를 해줘야 하는데 영상으론 잘 안 보이죠. 느낌과 분위기 전달도 잘 못 받을 거 같아요. 게다가 군무 같은 경우는 할 수가 없잖아요. 그게 좀 곤란하죠. 1대1 수업은 대면 수업을 하더라도 한정된 공간에서 하면 되는데 군무 같은 경우는 힘들어요. 또 마스크를 착용하다 보니 표정도 안 보이고 본인이 춤추면서 표정을 한다 해도 숨이 차니까 어려움이 있어요. 한계가 있지 않나 생각해요.
 코로나 시대에 발레라는 예술 행위에 어려움이 있어요. 당장 돌파구는 없는 거 같아요. 어떻게든 단체 연습을 한다면, 어떤 특정한 공간에서 바깥에 나가지 않고 외부와 차단된 상황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생활해야 해요. 자체 격리하는 거죠. 음식도 조달하고 그 안에서 모든 생활을 해야 하는데 만약 그런 공간이 생긴다고 해도 들어가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개인 생활이 있고 각자의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어요.
 코로나는 서로 조심하는 것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어 무섭죠. 하다못해 커피 사러 가는 것도 굉장히 조심스러워요. 카페에 오가다 잘못됐는데 학생들과 수업하면 큰일이잖아요. 요즘은 강력한 거리두기 때문에 9시 이후 영업을 못하니 모든 사람이 일찍 귀가하고 거리가 깨끗해지면서 치안이 더 좋아졌다고 하더군요. 크고 작은 범죄가 줄고 사회는 더 안정되고요. 인간이 스스로 반성하면서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이야기도 있죠. 이전 세대에는 전쟁도 있었고 많은 자연재해, 불가피하게 역사적 흐름에 따라서 인간이 통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때가 많았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이것도 하나의 삶인데 받아들여야죠.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조심하는 거예요.

올해 수원발레축제는 무관중 온라인 공연으로 개최됐죠. 관객 없는 공연장에서 영상으로 관객과 만나셨는데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해요.
관객은 없었지만 17,000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으니 대단하죠. 상상을 초월하는 거예요. 이렇게나 많은 분들이 극장에 올 수 없잖아요. 극장 공간에서는 현장감 있는 라이브를 집중해서 볼 수 있고 영상공연은 좋아하는 무용수들을 보다가 바쁘면 다른 일을 하고 다시 보고, 편안하게 게임을 하듯이 볼 수 있는 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영상공연 때문에 직접 공연장에 가서 공연을 관람하는 문화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긴 하지만 쉽게 그렇게 되진 않을 거 같아요. 어쨌든 내 춤을 17,000명이 봤다는 것은 떨리는 일이에요. 긴장되고 아드레날린도 솟는 거 같고 재밌었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공연할 때 찍는 기록영상이 아니라 네이버 팀들이 전문적으로 촬영해서 영상도 깨끗하고 만족스러웠어요. 지금 해외 교류가 끊긴 듯 하지만 영상 매체로 더 활발히 공유하고 교류가 살아나지 않을까 생각해요. 마찬가지로 ‘수원발레축제’도 세계적으로 공유할 수 있고요.




ⓒ수원발레축제 네이버TV https://tv.naver.com/v/15321170




올해 많은 공연이 취소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부분을 알고 싶어요. 무용수들의 현실적인 상황에 대해 발레단원, 후배들의 처지를 대변하면 어떨까요.
개인적으로는 괜찮아요. 집사람이 학원 운영을 하고 제가 수업하니까 괜찮아요. 무용수로 봤을 땐 무용 공연이 없으니까 수입이 없다고 봐야죠. 실질적으로 발레를 해서 버는 돈은 없어진 거예요.
 우리나라는 프리 무용수, 직업 무용수라는 무용수 시장이 아직도 형성되지 않았어요. 큰 발레단에 속해 있는 무용수 외에는 프리로 활동하는 무용수들이 드물잖아요. 간혹 좋은 무용수가 있으면 이리저리 바쁘기도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막막할 뿐이죠. 단체에 속하지 않은 무용수라면 직업무용수로 살아가는 게 힘들어요. 제가 알고 있는 무용수, 단원이었던 친구들이 뮤지컬 쪽으로 대부분 전향했어요. 우리나라는 무용수가 레슨을 많이 하잖아요. 가까운 일본도 마찬가지고요. 다만 일본은 전반적으로 봤을 때 프리 무용수들이 우리나라보다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고, 숫자도 훨씬 많아요. 국공립발레단 대신 민간의 작은 단체들이 많죠. 그래서 무용수들이 로테이션돼요. 일본에 진출한 제 후배들 말로는 코로나로 주춤하다가 다시 공연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무용수들이 정말 힘들죠.
 그런데 지금이 개인에게는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코로나로 강제 휴식하는 지금이야말로 자기 발전을 위해서 투자하고 미래를 위해 무용수의 자질을 훨씬 높이기에 적기죠. 평소엔 공연이 계속 있으니까 무용수들이 개인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요. 제자들에게 지금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본인들도 동감하고 있어요.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훨씬 많으니까요.

코로나를 기회삼아 스스로를 개발하는 것만큼 진취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미래를 위해 새로 시작한 활동이 있으신가요?
발레를 삼십 몇 년 했어요. 비디오는 없지만, 머릿속엔 내가 어떻게 춤췄는지 기억나요. 그걸 다 정리하면서 저만의 메소드를 바꾸고 있어요. 저는 발레학교를 나오지 않아서 체계적인 커리큘럼 없이 발레를 배웠죠. 그런 것들을 정리하고 있어요. 무대를 떠나지 않아 다행인 게 중간에 하지 않았다면 기억들이 없을 테니까요. 저의 활동을 10년 주기, 3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어요. 첫 번째 시기는 외국 발레단에 초청받아서 갔을 때, 두 번째는 귀국해서 은퇴하기까지, 세 번째는 은퇴하고 나서 지금까지 무대에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가면서 했던 시기예요. 시기별로 정리해보면 제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생각나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있어요. 오히려 가르치는 데 도움이 많이 돼요. 오늘도 내가 한 걸 영상으로 찍어서 봤었어요. 과거에 피루엣을 한 번 돌았다면, 오늘은 이 동작을 위해서 뭘 해야 하는지 생각하면서 단계별로 높여 봤어요.
 새로운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지금까지 해왔던 걸 꾸준히 하는 것도 중요해요. 하루도 쉬지 않고 연습하는 게 가장 어렵죠. 다행히도 경제적으로 집사람이 잘 해줘서 어려운 것도 없고 가장으로서의 역할이 쉽지 않은데 이해를 많이 해줘요. 전 발레만 열심히 하면 돼요.(웃음) 하루도 안 쉬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할 수 있게 됐어요. 쉬었으면 못 했을 거예요. 어제까지 했으니까 오늘도 하는 거죠. 오늘 했으니까 내일도 할 수 있고요. 40살 때부터 그렇게 했어요. 40살이 돼서 은퇴할거야가 아니라 어제 했으니까 내일도 하고, 내일 했으니까 그다음 날도 하고…. 가끔 무대를 통해서 자극도 받고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온 거예요. 이제는 일상이 돼버렸어요. 밥 먹는 것처럼요. 밥은 굶어도 발레를 굶어본 적은 없어요.

삼십년 넘게 발레를 하면서 하루도 쉬지 않았다고 담담하게 말씀하시는 모습에 감동했어요. 발레단 은퇴 이후엔 내려놓으실 수도 있었을 텐데요.
이제는 주위에서 이해하더라고요. 이해를 바란 건 아니지만 처음에 의아해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왜 하냐는 얘기도 들었죠. 은퇴할 즈음엔 ‘내가 은퇴할 만큼 뭘 했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부족한 거죠. 당시엔 무대도 없다 보니 스스로 만들었고, 서툴지만 만들다 보니 조금씩 방법이 생겨서 큰 작품도 만들었어요. 에너지를 쏟아부을 만큼 동기부여가 돼요. 단원들하고 동고동락하면서 그 친구들의 생각들을 읽고 마음을 같이한 것도 동기부여가 컸죠. 이 친구들이 큰 단체도 안 가고 작은 단체에서 자기 젊음을 보냈는데 나와 함께한 시간을 절대 허비하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제가 더 열심히 살아야 했어요. 그 친구들이 모두 잘 된 건 아니지만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더라고요. 굉장히 좋은 거고 다행이죠. 시간이 이렇게 흘러왔어요. 매일 하다 보니 나이 들면서 근육이 변화하고 있다는 걸 느껴요. 참 신기해요. 할수록 겸허한 마음을 갖게 되죠. 옛날에 몰랐던 걸 느끼니까 어떨 때는 소름 끼치기도 하고요. 당최 모르겠어서 30년간 생각한 것도 있는데 하루아침에 ‘이거네!’ 하고 알게 될 때가 있어요. 갑자기 어떻게 알게 됐을까 생각해보면 하루도 쉬지 않고 해왔기 때문이에요.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선물 같은 느낌이에요. 그럴 땐 신이 존재한다는 생각도 들고 재밌어요.




〈여명의 눈동자〉 ⓒ이원국발레단




발레 활동 가운데 작품 창작도 적지 않은데요. 혹시 코로나 휴식기를 활용해서 안무 계획도 있으신가요?
작품 생각을 가끔 해요. 대부분 작품이 내가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한 게 아니고 발레단이 살아남아야 하고 작품이 있어야 하니까 만든 거예요. 하기 싫든 하고 싶든 간에 만들었어야 했는데 만들면서 많이 배웠죠. 그러면서 겁도 없이 대작들도 많이 만들었어요. 〈여명의 눈동자〉를 만들기 위해 김성종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책이 10권이에요. 어릴 때 읽었던 책이고 드라마로는 36부작이죠. 그걸 발레로 만들겠다니까 저보고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발레는 모르시지만, 직접 관람도 하셨어요. 노원에서 초연했고 두 번 정도밖에 못 했어요. 예산도 그렇고 대작을 올리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맥베스〉, 〈춘향〉 등 한 시간 반 2막 공연을 10 작품 정도 만들었어요. 물론 클래식을 새롭게 재안무해서 구성한 것도 있고요.
 〈춘향〉은 한국적 소재가 세계적인 공감을 이끌어냈으면 하는 바람에서 만들어졌어요. 벌써 10년 정도 됐네요. 차이코프스키 음악을 썼어요. 소품들을 전부 다 편집해서 발표했는데, 크게 이슈는 안 됐죠. 작은 극장에서 하는 거니까요. 차이코프스키 음악은 세심히 들어보면 굉장히 한국적이기도 해요. 동양적 색채와 정서가 강하게 느껴지더라고요. 하차투리안(Khachaturian), 림스키코르사코프(Rimsky-Korsakov) 음악도 마찬가지이고 동양적인 색채가 짙은 음악들이 많이 있어요. 그런 음악으로 발레를 만든 경우로는 대표적으로 존 크랑코(John Cranko), 케네스 맥밀런(Kenneth MacMillan)이 있죠. 물론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Jean Christophe Maillot)도요.




〈춘향〉 ⓒ이원국발레단




 기존에 작곡된 음악에 상상력을 더해 안무하기도 했어요. 말러(Mahler)의 제일 유명한 〈교향곡 5번〉 아다지오를 모티브로 말러의 인생을 그려봤어요. 알마(Alma)라는 사랑했던 여인부터 스토리 라인을 만들어서 작품 〈말러 교향곡 5번〉을 만들었죠. 만들어보니까 나름대로 괜찮은 거 같았어요. 이후에 차이코프스키 음악으로 〈춘향〉, 멜데스존(Mendelssohn) 음악으로 〈맥베스〉를 만들었고 〈여명의 눈동자〉까지 만들면서 안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됐어요. 습작처럼 연습한 거죠.
 앞으로 안무를 한다면 한국적 소재로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물론 작곡까지 하면 좋겠지만 그 외에도 발레 창작에서 어려운 점이 많아요. 음악, 의상, 소품, 장치, 디자인 등 저만 잘해선 안 되고 팀이 완벽해야 하는데 그렇게 갖추기엔 우리나라 발레 역사가 너무 짧아요. 러시아엔 차이코프스키, 밍쿠스(Minkus)와 같이 발레 작곡자로서 활동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클래식 발레 레퍼토리를 만들 수 있었죠. 피카소(
Picasso​)는 디아길레프(Diaghilev​)와 함께 작업하며 발레 뤼스(Ballet Russe)의 무대장치, 의상을 맡았어요. 당시 니진스키(Nijinsky), 안나 파플로바(Anna Pavlova) 같은 수많은 대가가 참여하기도 했어요. 우리나라엔 발레 작곡자가 없어요. 뛰어난 미술가는 많지만 무대 디자인을 하진 않죠. 좋은 발레작이 나오려면 문학가를 비롯해 음악가, 미술가, 의상 디자이너가 같이 가야 해요. 물론 누구나 자기가 만든 작품이 세계 최고였으면 좋겠다, 나만의 예술세계를 인정받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죠. 다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건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최근에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있는데 발레를 위해서 작곡된 음악은 아니지만, 발레 감성으로 옷이 입혀진다면 또 다른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기회가 된다면 작품을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구체적으로 안무 노트를 쓰고 있진 않고요. 우선 개인의 메소드를 정리하는 게 우선이라 막연히 생각하고 있어요.




〈말러 교향곡 5번〉 ⓒ이원국발레단




코로나로 인해 새롭게 발견되는 풍속, 감지되는 현상이 있다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영상 매체, SNS 활용이겠죠. 우리 세대는 잘 모르니까 수줍어하는 편이긴 해요. SNS 활동은 단편적인 콘텐츠 중심이고 빠르게 확산되기 때문에 한편으론 걱정도 돼요. 젊은 친구들 생각이 앞서고 우린 따라가기 힘들죠. 반면에 옛것, 스승께서 해줬던 말씀들은 요즘 친구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정보 교류는 쉽지만 우리가 어디서부터 왔는가에 대한 물음과 답변은 원활하지 않은 거죠. 저보다 위 선생님들은 이 친구들과 거리가 엄청나고 우리 같은 경우는 가까이 있음에도 거리가 있고요. 예술작업을 같이 하거나 서로 관심을 갖는 계기가 필요해요. 전 선배들이 걸어온 길을 기억하거든요. 그런 얘길 해줘야 할 거 같아요.

콘텐츠가 다양하고 그만큼 정보가 많기 때문에 단편적으로 수용하는 듯해요. 흐름과 맥락을 이해하기보다 당장 필요하고 좋은 것을 사전적으로 흡수하고 나머지는 폐기하는 느낌이랄까요.
젊은 친구들 춤을 보면 인스턴트 식품처럼 테크닉을 연결해서 해요. 거기에 철학적 깊이가 더해진다면 좋은 거죠. 영상을 보면 대단한 친구들도 많거든요. 그렇지만 그게 다가 아니란 걸 본인이 깨닫는 건 굉장히 어렵죠. 코치해주는 사람이 없어요. 그 친구들이 볼 수 있는 건 한계가 있고요. 저는 유튜브를 보더라도 옛날 발레리나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걸 보는데, 요즘 친구들은 현재의 것에 더 관심 있더라고요. 발레는 무용수들 층이 두터워야 하는데, 큰 단체들도 다 젊은 친구들밖에 없잖아요. 관록 있는 무용수들이 부족해요. 제자를 가르칠 때도 그런 부분을 신경 써요. 선배들이 걸어온 길을 이야기해주고 발레의 흐름과 맥락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하죠.




이원국 ⓒ춤웹진




마지막으로 코로나 시기에 스스로를 지탱하고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이 되는 말씀을 덧붙여 주세요.
코로나로 인해 전반적으로 우리나라 문화가 많이 위축됐어요. 2주 동안 2.5단계를 시행했는데 결국 예술 분야에 막대한 피해가 왔죠. 무용계 전체가 침체돼있는 상황이라 안타까워요. 그렇게 일상으로 스며든 코로나에 적응하고 있어요. 하루 이틀 지내다 보니 누구나 다 마스크를 끼는 일이 자연스럽게 됐어요. 불편하다고 생각하기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참고 있는 거니까 잘 이겨내고 건강해야죠. 충격을 받으면 쓰러지는 사람도 있지만 한편으론 방어하기 위해 더 지혜로워지고 슬기롭게 되잖아요.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자신이 끄집어내야 해요. 나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온 거니까 두려워할 필요 없어요. 건강히 이 시간을 잘 활용해서 그동안 몰랐던 걸 찾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코로나 이후 더 나은 일상을 꿈꾸며 현재를 슬기롭게 보내야겠습니다. 안무가, 무용수로서 이원국님의 춤 활동을 응원합니다. 긴 시간 인터뷰에 감사드립니다.

 

정리: 이슬기 <춤웹진> 인턴기자

 

김인아

한국춤비평가협회가 발행하는 월간 〈춤웹진〉에서 무용 전문기자로 활동 중이다.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하여 무용인 인터뷰를 포함해 춤 현장을 취재한 글을 쓴다. 현재 한예종에서 무용이론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 ​ ​ ​ ​ 

2020. 10.
사진제공_춤웹진, 이원국발레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