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비평시각 심층 공개 인터뷰: 김은희
우리춤움직임원리 연구자 김은희 심층 공개 인터뷰 제2편
  • 일    시
    2024. 09. 14.(토) 13:30 ~ 16:00
  • 장    소
    예술가의집(서울 대학로)
인터뷰이│ 김은희        
인터뷰어│ 채희완·김채현·김영희 

후   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난 9월 14일 오후에 있은 춤작가 김은희 초빙 비평시각 심층 공개 인터뷰, 예술가의집, 서울 대학로, 한국춤비평가협회 주최 ⓒ춤웹진



주요작 코멘트

김채현: 이제 김은희님이 자신의 영상 자료를 편집한 것을 보면서 코멘트를 듣는 시간을 한 15분 내지 한 20분 정도 갖기로 하겠습니다.

김은희: 먼저 1988년 국제무용제전에 출품한 〈이 땅 저 하늘〉 영상입니다. 무대에서 거꾸로 뒤집어지는 저런 몸도 썼네요. 제가 35살 때입니다. 지금 큰 천 속에 제가 들어가 있어요. 그 천이 문예회관 대극장 무대를 꽉 덮었어요. 이 사진이 객석 잡지에 게재됐죠. 땅의 암흑과 하늘의 희망... 어떤 희생자가 저처럼 보이죠. 무대를 다 휘젓는 저걸 연습하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이게 이제 첫 장면이고요. 당시 국제무용제 참가 10팀 중에 9팀은 대학 교수 팀이었어요. 나머지 한 팀은 무용학원을 하던 저의 팀이었죠. 레슨비는 없었고, 의상비와 숙박비도 제가 모두 부담했습니다. 여기에 인간이 쫓기는 장면이 나오고 제가 도망을 막 가다가 이제 힘을 좀 잃었죠. 아까 그 벽에 탁 부딪히는 그 장면이 지나가 버렸는데, 제가 막다른 길에 이르렀다는 그런 느낌을 보여준 거죠.





김은희 〈이 땅 저 하늘〉, 1988 ⓒ김은희



김영희: 선생님 안무작이지요? 군무진은 어떤 인물들로 설정된 거에요?
 

김은희: 네, 제가 안무했어요. 이것이 김은희의 성향이라고 보시면 돼요. 저는 이쁜 춤을 한 번도 쳐본 적이 없고, 무대에서 웃음을 지은 적도 없어요. 군무진은 죄를 짓고 남한테 책임을 전가하는 그런 인물들로 설정됐어요. 이 사람들이 나를 학대하고 사회에 죄를 짓습니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 나는 그런 적 없어 해요. 여기 오케스트라피트로 제가 떨어지죠. 제가 오케스트라피트 사용을 작품마다 했더라고요. 군무들을 편집에서 다 잘라내고 마지막 장면이에요. 저기 철장은 현대 사회나 현대의 빌딩을 의미합니다. 제가 있는 이 장면이 KBS 문화가 산책에 타이틀로 나왔어요. 다음은 지역간연합무용제전에 출품한 〈질식〉으로 그 시대에 평양축전에 참가차 방북을 강행한 임수경에 관한 얘기입니다. 그다음에 〈유관순〉(원제: 〈하늘 가까이 두 손들어〉), 이게 지금 90년 작품이죠. 서울, 대구, 진주에서 모두 세 번 했기 때문에 소개합니다. 지금 소품 사용하는 장면만 나올 거예요. 지금 저 장면은 제가 직접 그리고 글도 손으로 직접 썼습니다. 그때는 컴퓨터 같은 게 없었거든요. 첫 장면에서 그물망 속에 제가 들어가 있어요. 그 안에서 제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자유를 잃고 뭘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을 표현했고요. 저 무대에서 이렇게 놓인 모습들은 우리 백성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무거운 짐을 표현한 거예요. 3.1운동을 생각해서 한 거죠.
 근데 김은희는 왜 이런 류의 작품을 좋아할까? 시대를 얘기하고 싶었던 거지요. 항상 시대를 얘기하고 아픔을 나누고 싶은 그건 지금도 갖고 있습니다. 내가 tv를 봐도 사실적이고 억울한 거를 잘 보고, 실제로 있었던 내용들만 잘 보는 편입니다.
 지금 여기 대나무 위에 있는 김은희는 우리 한민족의 꿋꿋한 의지에요. 저 뒤 높은 단상에 있는 제자는 대구 효무회 회장이었던 김효은이라는 대구에 있는 제자인데 온몸에 쇠사슬이 칭칭 감겨 있어요. 나머지는 검은 천들로 허리가 다 묶여 있어요. 우리는 모두 구속돼 있는 거죠. 눈은 다 가렸고 암흑 세계죠. 우리가 당한 일제시대의 그 암흑을 얘기한 겁니다. 백성들의 고통과 감옥에 있는 독립투사의 고통과 절규하는 유관순의 고통을 한 장면에다 한꺼번에 다 설정한 거죠.



김은희 〈유관순〉, 1990 ⓒ김은희



김채현: 〈유관순〉 작품을 만들 적에는 완전히 사비로 다 하신 건가요?

김은희: 100%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작품을 정신대 할머니 기금 모금 공연으로 했어요.

김채현: 그 공연 수익금이 나왔으니 하는 말입니다만, 국내에서 정신대 문제가 처음 표면화된 게 1991년이었거든요. 김학순 할머니가 그런 증언을 처음 했고요. 그러면 91년부터 그 공연 수익금을 전부 기부하였는가요?

김은희: 100% 다 기부를 했습니다. 자, 이 빨간 선은 민족의 핏줄을 의미했어요. 저 끝에서 부터 제가 끌려 나옵니다. 위안부라고들 하는데 그때는 정신대 할머니라고 했잖아요. 정신대 할머니 사건이 굉장히 이슈가 된 91년에 만든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시대를 얘기하는 사람이죠. 그리고 힘든 부분도 많았지만 청렴하게 살아야 한다는 의식이 좀 강한 편이에요. 지금 일본군들이 나옵니다. 얼굴에 스타킹을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강도를 표현하다 보면 저렇게 스타킹을 씌우곤 하잖아요. 저 의상은 일본의 기모노와 훈도시를 상징한 겁니다. 제가 저 핏줄을 지금 무대 끝까지 내가 손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힘들었겠죠. 그리고 제가 일장기를 찢습니다. 이 작품은 제가 지방 곳곳에서 공연하고 일본까지 가서 공연할 것을 각오하고 매년 했습니다. 일장기를 찢어버리는 장면이 일본에서는 완전히 문제될 수도 있었겠죠. 이거는 나이트클럽 같은 곳에서 많이 쓰는 조명으로, 억울하게 죽은 독립 투사 혼령들이 구천을 헤매는 장면입니다.

김영희: 이런 작품들 만드실 때 전통춤을 이용한다든지 응용하시나요?

김은희: 저는 전부 전통춤 기법을 사용합니다. 왜냐면 저는 신무용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자, 산산조각 난 태극기 장면이 너무 짧지요. 좀 긴데 제가 통곡을 해야 되기 때문에 한 컷 밖에 못 넣었어요. 태극기가 저렇게 산산조각 나서 흩어졌어요. 지금 봐도 춤은 형편없는데 김은희 30대 때 이 소재라든가 표현 방법이 대단하지 않았는가 합니다. 지금 저 머리는 산발을 하고 있습니다.

김영희: 지금 작품 후반부인가요?

김은희: 중반부예요. 이제 독립운동 부분이 나옵니다. 서서히 춤추고, 이제 사람들을 울리고 들어갔겠죠. 방방곡곡 독립운동하며 만세를 부르고 있어요. 이게 90년대 작품이면 당시 전통춤 추는 사람들은 저보고 그런 말을 했어요. “너무 창작이지 않니?” 제가 그랬어요.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저는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 똑같이 했기 때문에 전통춤이 따로 있다 이렇게 인정하지 않아요. 표현 방법이 다를 뿐이지 움직임 원리는 하나니까요. 바디 랭귀지는 세계 공통어예요. 유관순이 육시(六屍)로 죽었지요. 육시를 표현했고 여기서도 오케스트라피트를 썼어요. 제가 피트에서 올라와요. 철조망을 해놓고 바닥에 짚 볏단을 깔은 그런 무대 장치를 한 다음 이제 감옥에서 올라오는 거예요. 나타나죠. 저 사진은 한국일보 등 언론에도 많이 나왔어요. 철조망 속에 제가 들어 있다가 사형장으로 끌려가고 유관순은 여섯 토막이 나서 죽는 거죠.
 그다음 작품이 1993년 서울무용제 출품작 〈이도 저도 아닐레라〉이에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백담사에 피신해 있을 때를 안무한 거예요. 광주 사태를 얘기했고, 또 제가 전두환으로 나설 수가 없어서 장희빈으로 등장한 거예요.



김은희 〈이도 저도 아닐레라〉, 1993 ⓒ김은희



김채현: 이해를 돕기 위해서 말하자면 전두환을 장희빈에 빗대서 그린 작품이군요.

김은희: 네, 그렇지요. 지금 독 항아리가 보입니다. 장희빈도 잘 보세요. 셰도우막에 뭐가 던져지지요? 피가 터집니다. 이때 관객들이 전부 비명 질렀어요. 피를 사방에다 흩뿌리는 거예요. 제자들이 장희빈때문에 고통당하는 그 시대에 백성들을 저렇게 육성을 지르게 해서 표현했어요. 그다음에 저 사람들에게 의상은 오직 고쟁이만 입혔어요. 그리고 고쟁이에 맨다리가 다 나와서 버선을 신겼어요. 나 장희빈의 욕망과 권력을 위해 희생자들을 만드는 거죠. 당시는 이런 말 감히 하기 어려운 분위기였어요. 전두환이 백담사에 피신한 사실은 엄청 보도되었죠. 그래서 저는 시대를 말하는 안무가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현대무용을 제일 좋아했어요. 발레도 나름 잘했고요. 한국무용 끝까지 하고 있고요. 그래서 제 움직임은 전통의 기법이면서 현대무용적인 동작들로 많이 구성돼 있어요. 이런 걸 군무로 안무하면 10분씩 하잖아요. 지금 잘라서 장면 바뀌는 것만 여러분들이 볼 수 있어요. 근데 제가 별로 잘하지는 못했어요. 그때 뭐 얼마나 했겠어요?

김영희: 선생님, 버선은 왜 꼭 신기셨어요?

김은희: 이건 무수리(시녀)이니까요. 그게 가장 우리 한국적인 거니까요. ‘우리 전통 그런 것은 지켜야 한다’라는 생각. 그러니까 제가 〈순환〉할 때도 버선을 신었는데, 지금 보니까 저 버선을 벗었어야 되는데 〈순환〉에서도 그랬어요. 제가 맨발로 춤춰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박금슬 선생님 〈태초〉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맨발로 췄어요. 이제 욕망 춤 장면이 나옵니다. 아까의 그 옷을 벗고 이제 저 독살스러운… 터벌림 장단이죠.

김영희: 선생님의 저런 모습은 처음 보네요.

김은희: 저게 김은희의 실체입니다. 제가 저렇게 못돼 먹었어요, 처음 보죠? 그래서 난 이런 자리가 고마워요. 김은희는 그냥 전통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 4명의 남자가 사랑, 권력, 명예, 돈을 나타내지요. 핑크색은 사랑을 표현한 것이고 돈과 명예 권력을 다 갖고 놀아요. 법 위의 권력자가 왕좌에 앉습니다. 저렇게 사지를 경련을 일으키듯이 하는 표현은 
연습한 것도 아니고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있은 것도 아닌데 제가 저렇게 했더라고요. 신들린 거죠. 등장인물인 나는 항상 이 돈과 명예와 사랑 권력을 가지고 놀아요. 그러다가 내가 그들한테 당해요. 이 장면도 지금 보세요. 이 키 작은 김은희 아니면 못하는 그런 행동이에요.


김영희: 선생님 이런 작품들 대본은 선생님이 쓰신 건가요?

김은희: 이 대본은 지금은 돌아가신 분이 쓰셨는데 이름 생각이 안 나네요. 그리고 최종실 선생님이 음악을 했어요. 이때는 무조건 음악은 작곡한 것을 써야 했어요. 지원금 740만 원이었고, 지금 경비로 근 5천만원 들였을 거예요. 출연진 의상까지 제가 다 부담했어요. 저 부분은 항아리를 두들기는 장면이에요. 8개는 조선 팔도를 말한 거죠.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항아리를 두들기면서 올라오는… 출연진들이 공공무용단 주역들처럼 참 잘했습니다. 그후 무용단들에서 활동했는데, 지금까지 춤을 계속하는 사람은 없어 아쉽습니다. 자, 이제 백성들의 원성이 들리고 그들이 나서기 시작합니다. 당시 서울예술단에서 했던 공연 중에 항아리가 터지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게 너무 인상 깊어서 도움을 받아서 했어요. 이제 백성들이 각오를 하죠. 이것이 광주 사태를 표현한 부분이었다는 걸 밝힌 것은 전두환씨가 세상을 뜨고 나서부터에요. 채찍을 휘두르고 장희빈이 무수리를 때려서 항아리에 가두는 장면이죠. 거기서 새 세상이 나오는데, 문민정부예요. 이 문민정부는 과연 역사에서 어떻게 되었는가. 당시로서는 알 수 없지요. 슬로모션으로 ‘우리는 이제 살았어. 나는 당신한테 갈 거야’ 뭐 이런 느낌의 장면이죠. 희망을 안고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거예요. 독이 깨지자 거기서 사람이 나왔어요. 역시 그 사람 손에서 황금색 채찍이 나왔어요. 그래도 세상은 잘 안 변한다는 거죠. 이때 우리 아들이 극장에 왔고 내가 나오니까 “엄마다” 하다가 내쫓긴 그런 일도 있어요.
 

김채현: 방금 보신 그 작품 〈이도 저도 아닐래라〉는 1993년 10월에 하셨지요? 문민정부가 1993년 2월에 출범했어요. 그러니까 한국에서 군부 정권이 노태우 정부로서 92년도에 끝나고 김영삼 문재 정부가 93년에 집권했는데, 그 집권 첫해에 사회 역사적 소재를 갖고 올린 작품이군요.

김은희: 맞아요. 사회에서 딱 이슈일 적에 그걸 작품으로 구성한 거죠.

김채현: 앞으로도 사회적 이슈를 계속 춤으로 잡아낼 건가요?

김은희: 잡아낼 거예요. 이제 2022년도의 〈순환〉 영상을 보도록 하지요. 박사 과정 졸업 작품으로서 점, 선, 원을 토대로 한 이 춤은 창작인데요. 논문은 제출하지 않아도 되고 공연을 하면 졸업된다고 해서 진학했습니다. 요새는 국내에 중국 유학생들이 많은데, 중국에서는 논문이 없으면 취업이 안 된데요. 그래서 논문도 쓰고 공연도 해야 해서 좀 힘들었어요. 반드시 창작을 해야 하고 그 창작 제작 과정을 써야 하는 게 논문이었거든요. 그래서 논문 분량이 좀 적습니다.
 이게 지금 해금 연주자의 목소리, 아쟁, 이거 라이브로 다 한 거예요. 음악 작곡비를 엄청나게 들였습니다. 저 꼭대기에서 승무가 나타납니다. 점, 선, 원으로 태극을 그리면서 제가 M극장 무대 벽면에서 영상으로 종횡무진하고 있죠. 저 동작은 아마 승무의 도드리일 것 같아요. 저 도드리로 바꿔 바로 하는 게 아니고 저렇게 돌면서 하면 동작이 풀려요. 그래서 나는 제자들한테 “잘 안 되는 게 있으면 빨리 해봐라”고 합니다. 빨리하면 균형이 안 잡히는 건 있을 수가 없으니까요. “잘 되면 천천히 해봐라. 그래도 답이 안 나오면 원으로 돌아 돌아가 보아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면 답이 나와요. 근데 요새는 그냥 형태만 배워서 무대에 올리는 것을 보면 좀 안타깝죠.





김은희 〈순환〉, 2022 ⓒ김은희



김은희: 여기 가운데 점, 선, 원으로서 승무의 장삼이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거예요. 하나의 점이 생성됩니다. 처음에 관객들이 저 안에 내가 들어 있는 줄 알고 엄청 기대했다는데요. 현대무용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동작이기 때문에 장은정 현대무용가가 출연했지요. 그렇게 해서 나오니까 장삼이 되지요. 여기서 선이 나오고 원이 나오고요. 하나의 태극을 점, 선으로 나타내고 나서 제가 지금 어디에 있나요? 태극을 그려놓고 그 가운데 하나의 점으로 제가 있지요. 이 음악은 신쾌동류 거문고 산조예요. 생명이 잉태하는 순환 얘기죠. 일단 순환이니까 생명이 잉태된다고 해석할 수도 있죠.
 신쾌동류 거문고 산조에 진양가락 6박이나 경기대풍류 염불 6박이나 똑같은 박자잖아요. 그렇다고 여기다서 염불을 쓸 수는 없고 그래서 신쾌동류 거문고 산조를 들어보니 너무 좋아서 택했죠. 그러면 거기에도 중모리가 있고 중중모리가 있잖아요. 그런데 염불은 6박으로 계산하지만 반염불 같은 것도 6박으로 계산을 할 수도 있지만 12박으로도 계산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그 음악을 쓰고 지금 이 동작은 도드리 장단을 갖고 춤동작을 이렇게 풀어낸 거죠.
 자, 거기서 나와서 음양이 만납니다. 둘이서 즉흥 접촉하는 그런 장면이 아주 많아요. 근데 다 생략한 게 아깝고 제가 너무 못한 게 속상해서 춤인생 65년 공연할 적에 성공적으로 다시 한번 해볼 꿈을 갖고 있어요. 그때 다 오세요.

김영희: 장은정 무용가와 즉흥 접촉으로 그걸 추셨다고 얼핏 얘기하신 것 같은데, 그렇습니까?

김은희: 완전 즉흥이었어요. 우리가 할 때 순서가 없었어요. 그러니까 둘이서 서로 밀고 당기는 부분이나 음악도 그날 처음 들은 음악이에요. 이 목소리로 이 사람들은 우주를 얘기하고 있어요. 우주의 궤도를 얘기하고 있어요. 우리는 태극을 얘기하고 점, 선, 원의 음양을 얘기합니다. 지금 악사들이 앉아 있다가 구겨진 바지를 입고 나왔는데, 그건 행성이나 궤도, 그런 우주를 표현하는 뜻이 담겨 있어요. 이제 이 행성이 딱 일직선으로 만나고 딱 멈췄다가 가고 멈췄다가 가고 그러거든요. 이제 만나는 마지막 장면이에요. 마지막에 조명이 다 컷아웃됩니다.

김영희: 지금 본 작품에 왜 〈순환〉이라는 제목을 붙이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은희: 순환은 곧 윤회고 윤회는 자연의 이치이고 우주 만물은 다 순환이지요. 점, 선, 원의 원리를 몸에서 설명을 하면 그 점이 태어났는데 그 씨앗이 엄마 아빠의 씨앗이죠. 씨앗이 음양이 만나서 생명이 잉태되고, 씨앗을 가지고 농사를 지으면 뿌리가 생겨요. 점, 선이 나오죠. 척추동물 호흡에서 원이 나와요. 그 호흡하는 방법 같은 것을 제가 도형으로 그려내는 무보 작업을 하고 있는데 완성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보고 정말 최첨단 기술로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지금도 지원이 가능하다면 점, 선, 원의 원리를 정말 구현해보고 싶습니다.


우리춤움직임원리연구회
 

김영희: 이게 춤의 원리, 인생사, 우주의 원리를 함께 순환이라는 타이틀에 담아내신 것 같네요. 알겟습니다. 그리고 우리춤움직임원리연구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지금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거기서 가장 주요하게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김은희: 저도 알렉산더나 라반처럼 역사에 남고 싶으니까요. 저는 저것을 배우지 않았어요. 그냥 조금 머리를 썼다고 할까? 그러니까 자꾸 ‘이 동작을 어떻게 해야 돼?’ 하며 연구한 거죠. 알레산더 테크닉을 보면 불편한 걸 못하게 하잖아요. 우리는 불편하면서도 발을 뒤집고 막 불편해도 한국 춤은 그렇게 춰야 된다고 췄거든요. 그건 아니거든요. 모든 원리가 하나이기 때문에 장르가 발레냐 현대무용이냐 그런 질문을 많이 하실 것 같은데, 저에게는 그런 장르가 없어요. 원래 하나잖아요. 바디 랭귀지는 세계 공통어예요. 저한테 “우리 한국적인 춤사위 기법을 많이 쓰셨습니까?”고 묻지요. 이 말은 중요하니까 조금 할게요. 저는 신무용을 한번도 해본 적 없어요. 그러면 제가 창작춤은 어떻게 했는가? 하면 움직임 원리로 그냥 한 것입니다. 제가 경북예고 다닐 때 예고에서 신무용 안 배웠어요. 선생님은 이화여대 기본을 가르쳤지만 우리는 서울춤이 낯설어서 경상도 스타일로 소화했어요. 학원에서는 정소산 선생님이 가르치신 민요춤으로 〈천안삼거리〉 〈노들강변〉 외 〈수건춤〉 〈즉흥무〉를 배웠지요. 그때 우리는 살풀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어요. 제가 경북예고 재학시에는 이대 기본을 배웠어요. 제가 무용학원 할 적에는 신무용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간접적으로 신무용을 익혀서 학생들에게 가르쳤어요.

김영희: 우리춤움직임원리연구회에 초점을 맞춰주세요.

김은희: 제가 2006년도에 강습회를 처음 열었을 때 교재는 박금슬 선생님 기본이었어요. 당시에 전단지에다 “선생님, 제가 이런 강습회를 열고 박금슬 선생님 기본을 교재로 하여 선생님 춤동작 용어가 전 세계에 태권도 용어처럼 우리말로 퍼져나가도록 제가 꼭 해보겠습니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왜 박금슬 기본 강습회라고 하지 않고 우리춤움직임원리라고 했느냐면 춤추는 방법을 가르쳐야 했기 때문이에요. 춤추는 걸 가르치는 데 세 가지 방법이 있어요. 순서 가르칠 때까지, 방법 알 때까지, 될 때까지에요. 그래서 내가 제자들한테 “순서를 알 때까지는 이거 보고 베껴라. 적어도 방법 알 때까지는 해야지.” 그래서 우리춤움직임원리연구회라는 걸 결성했고요. 그 방법을 알려야 되니까 원리 연구잖아요. 그럼 될 때까지는 어떻게 해? “선생님도 될 때까지는 하나도 안 돼. 될 때까지는 죽었다 깨나도 안 되는 거야.” 예술은 완성이 절대로 없어요. 최고도 없어요. 1등도 없어요. 그냥 열심히 하는 거죠. 그래서 “될 때까지를 내가 가르치려고 노력하면 너랑 나랑 원수를 져야 되겠지만 나도 못한다.” 나 역시도 항상 내가 마음에 안들어요. 그래서 우리춤움직임원리연구라는 단어를 쓰게 됐어요.

김영희: 3단계로 지금 설명하신 거죠. 3단계로 순서 알고 그다음에 방법을 알고 될 때까지.

김은희: 우리춤움직임원리연구회 교재는 박금슬류가 기본이지만, 교재는 언제나 바뀌어요. 이매방 승무도 되고 살풀이도 되고 다 돼요. 그냥 교재가 이매방 살풀이일 뿐이지 지금 제가 무료 방송하고 있잖아요. 나는 그 살풀이의 교재로 그 순서로 움직임 원리를 가르치고 있어요. 아까도 말했지요. 반드시 업는 게 먼저고 척추가 서면 안는다. 이거 가르쳐놓고 사람들한테 이매방선생님 춤 영상을 보여주면 맞거든요. 딱 그렇게 하시거든요. 근데 다른 사람들은 그 업는 손이 치마 잡으러 가야 되는 게 잘못됐다는 거죠. 우리 인체 원리하고는 다르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춤움직임원리연구회로 제가 이름을 지었고요. 강습회 할 때 강습회 제목이 '우리춤움직임원리 이해 강습회' 강사 김은희, 3회에는 강사 000, 그다음에는 강사 △△△... 이런 식으로 언제나 제 제자 누구든지 할 수 있도록 그렇게 문을 열어놓은 거죠.

김채현: 네, 지금 그렇게 활동하고 계신다는 거죠?

김은희: 네. 우리춤움직임원리연구회라는 건 그렇게 발족이 됐습니다.

김채현: 우리춤원리연구회 활동을 이제 유튜브를 통해서 볼 수 있다는 거는 다 알려진 사실인데요.

김은희: 유튜브로는 100분의 1밖에 안 돼요.

김채현: 네 그렇군요. 앞으로 100분의 99를 기대합니다. 제가 보니까 올려진 파일 수가 293개더라고요. 거기 나와 있고 이제 구독자 수가 한 3,500명 정도인데,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그리고 파일 하나당 평균을 20분으로 잡아도 293개를 보면 6,000분입니다. 그걸 다 보려고 하면 무려 100시간이지요. 4~5일 동안 잠 안 자고 봐야 돼요. 제가 보니까 한국춤 연구 교재로서 상당히 충실하다는 감을 갖고 있습니다.

김은희: 우리춤 실행 원리로서 구전심수가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옛날 스승님들처럼 제자와 스승이 한집에서 생활하면서 모든 것들이 닮아가는 그런 구조가 아니므로 저는 구전심수를 근원으로 하면서도 우리춤을 좀 더 수학적으로 과학적으로 자연적으로 설명이 가능해야 한다고 느끼고 그러한 교수법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채현: 네, 그렇군요. 혹시 유튜브를 하면서 느끼신 점이 아마 많겠지요?

김은희: 저는 “좋아요. 구독 눌러주세요.” 한 번도 말한 적 없죠. 젊은 층은 유튜브에서 길이가 길면 안 본다고 충고합니다. 저는 구독자를 올리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렇게 짧게 짧게 해서는 어떻게 진정성 있겠느냐, 안 봐도 좋다. 제가 죽고 나서도 그 시절에 이런 말 한 사람이 있었구나” 이거면 됩니다. 일단은 그런 식으로 지금은 목마른 사람들만 보라는 거죠. 그래서 멀리 제주도, 전라도에서 춤 배우러 와요. “왜 여기까지 왔어요?” 물으면, 딱 한마디 듣고 왔대요. “춤추지 마라”는 그 소리 듣고 왔대요. 그다음에 호흡의 궁금증이에요. 그런 걸 내가 상세하게 설명하려면 만지면서 해야 돼요.

김채현: 유튜브 활동이 앞으로 좀 더 체계적이면서 활발해지기를 기대하는 바가 저도 크고 오늘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이실 겁니다. 그다음에 놓치기 힘든 부분으로서, 김은희 선생님의 작업 가운데 밀양에서 성장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접했을 일로서 〈밀양검무〉가 있지요. 원래 명칭은 조선시대 때 이인 검무라고 했는데 지금 그냥 밀양검무라고 하지 않습니까? 장검을 갖고 하는 그런 민속춤을 이전에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밀양검무뿐이에요. 그것도 대단하단 말이죠. 이 검무를 무대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올리면서 발굴 조명한 당사자가 김은희님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에 대해서 좀 말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밀양춤과 밀양검무

김은희: 네, 아까 채희완 선생님께서 제 외삼촌이 밀양춤을 출 거라고 소개하셨잖아요. 저도 밀양춤이라는 건 전혀 생각을… 밀양춤에는 밀양검무만 있는 것은 아닌데, 전에는 밀양검무 정기 공연을 하다가 지금은 밀양춤을 제가 발굴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2가지를 해놨어요. 먼저, 〈휘쟁이춤〉이라고 김타업 선생님이 하시고 이애주 선생님이 박종철 장례식 때 했던 그것이 〈밀양 휘쟁이춤〉이에요. 그다음에 밀양의 옛 지명이 응천인데, 〈응천 교방 굿거리춤〉을 정리해놨고, 앞으로 해야 할 것들이 되게 많아요.
 ‘밀양춤을 춰야 되겠다’고 생각한 지 얼마 안 됩니다. 오늘 채희완 선생님 말씀 중에 외삼촌이신 강석 선생이 밀양춤을 하겠다는 의지가 소개되었는데, 저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라 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묘한 연관성도 느껴집니다. 〈밀양검무〉는 1987년 『밀양지』라는 책에 나와 있어요. 그때는 옛날 마지막 기생들이 살아 계셨을 때였어요. 그러면 ‘이걸 누가 복원할 것이냐 그럼 밀양에서 김은희밖에 더 있나’고 해서, 할아버지들이 저를 불러서 이걸 좀 해라고 하시면서 자료를 주셨어요. 그 자료를 보니까 조선시대 박제가의 『정유문집』에 있는 검무더라고요. 그것을 부산의 한문학 교수께서 번역하셨는데 번역이 완전하게 안 돼 있길래 제가 국립도서관에서 그 원문을 다 찾아서 다시 밀양의 옛날 기생 선생님들 찾아다녔죠. 이 선생님들이 옛날 조선시대의 검무에서 권번 쪽으로 넘어온 그걸 갖고 계시더라고요. 권번 쪽으로 넘어온 것을 계속 춤 춘 게 아니고 그냥 입으로 전해졌다 합니다. 밀양에 옛날 권번이 있었어요. 대중음악 작곡가 박시춘 씨의 아버지 박남포 씨가 밀양 권번을 제일 먼저 결성했답니다. 거기에 남은 기생 할머니들이 저한테 증언해주셨죠. 그 증언을 토대로 밀양의 원로 국악인들의 증언과 고증으로  조금씩 복원하기 시작해서 1992년에 서울 국립국악원에서 올릴 때는 거의 그 권번 형식의 검무였습니다. 밀양검무를 창시한 기생 운심에 관한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 작가 상상력을 가미한 김춘복의 소설 〈운심이〉도 최근에 나왔습니다. 저는 밀양검무를 소재로 창작검무를 현재 안무하는 중에 있습니다.



  

밀양검무 창시자 ‘운심’ 무덤 근처 안내판 ⓒ김은희



김은희: 그런데 제가 밀양검무 춤동작을 가만히 보니까 이거는 보통 다른 지방에서 추는 권번 형식과는 다른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조선 정조 시대 『무예도보통지』를 연구하기 시작했죠. 사도 세자가 시작한 걸 정조가 편찬해서 정리를 해놨습니다. 그것도 다 검토하고 무예도보통지에는 쌍검보가 13가지 세(勢)가 있어요. 그 13가지 세하고 밀양 권번에서 추었던 검무를 비교하니까 과정은 틀린데 결과의 자세가 똑같은 것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러면 결과의 자세가 똑같으면 분명히 발생 과정이 있었을 거지요.
 그걸 어디서 찾아냈냐 하면 18기보존회에서 내가 배웠어요. 우리 제자들 합숙을 시켜가면서 정말 무술을 연마한 거죠. 바로 그 무술을 연마해서 이제 결과는 똑같고 과정이 틀린 거는 다시 제가 분석하고 뜯어가지고 하니까 ‘이것도 점, 선, 원이네. 이것도 태극이네’를 터득하게 됐죠. 〈밀양검무〉를 옛날 권번식으로 하라면 그것도 할 수 있어요. 그건 조금 다르죠. 다르지만 지금 이걸로 일단은 박제가의 『검무기』가 그 시대의 무보예요. 말로 다 표현해놨잖아요. 그리고 이 검무의 연풍대 도는 것도 기록에 있거든요. 칼을 허리에 끼고 한 바퀴, 한 칼 휘두르고 한 바퀴, 두 칼 휘두르고 한 바퀴, 찌르고 한 바퀴 이런 기록이 있는데 그 어느 검무를 봐도 그 기록을 복원해서 어떻게 해놓은 검무가 없더라고요. 그걸 제가 해냈지요. 그 문헌에 있는 그대로 그것을 보니까 ‘또 점, 선, 원이고 또 태극이네.’ 그래서 움직임 원리는 발레나 현대무용이나 한국춤이나 다 똑같다. 바디랭귀지는 세계 공통어라고 생각합니다.

김채현: 세계 공통어다. 이제 그런 측면에서 다시 이제 그걸 보면 아까 말씀 중에 알렉산더 테크닉이 굉장히 지금 본인한테 도움이 됐다 안 했습니까? 그 말씀을 간략히 해주세요.





김은희 〈밀양검무〉 공연(2023) 팸플릿 ⓒ김은희



춤움직임의 원리를 향하여

김은희: 알렉산더 테크닉,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어요. 그런데 어느 제자 한 사람이 와서 제가 가르치는 걸 보고 “선생님, 이거는 알렉산더 테크닉하고 똑같아요.” “그래, 그런 게 있었어?” 찾아서 연구해보니 저가 가르치는 것하고 같은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춤 배우러 오는데, 그들은 하지 말라는 것만 해요. 불편한 것만요. “너 그렇게 추면 안 불편하니?” 했을 정도로 막 이렇게 하거든요. 알렉산더는 목소리로 대사를 하는 사람인데 자꾸 목이 가는 거예요. 그게 자기 자세 때문이었다는 걸 깨닫고 몸을 바로 하고 이마를 앞으로 내밀고 어깨를 넓혔어요. 이거는 무용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미 하는 동작이에요. 그런데 그까짓 게 뭐가 대단합니까? 거기까지는 이미 우리도 하잖아요? 알렉산더 테크닉에서 추구하는 것과 제가 우리춤 움직임 원리 이해를 통하여 한국춤을 추는 방법론은 매우 비슷합니다. 그런데 알렉산더 그 분이 남긴 말씀, 불편하지 않으면 잘된 거다, 불편한 건 잘못된 거다. 이걸 강조하거든요. 그래서 우리 움직임 원리도 춤출 때 불편하다면 그건 무조건 잘못된 거예요. 우리가 음식을 씹을 때도 말하면서, 뭐 하면서 씹잖아요. 그거랑 똑같은 거예요. 움직임 원리라는 거는 그냥 이치인 거죠. 알렉산더 테크닉이 그렇게 평범해 보이는 거지만 그렇지 않다는 거죠. 사람들이 평소에 잘 걷다가도 북만 치면 절름발이가 되요. 나는 북 칠 때 못 치게 해요. 북 앞에 딱 세워두고 “걸어 걸어간다. 손에 북채 없다. 손 갖대봐. 쳐지지? 어떻게 그 모습 그림이 상상되냐? 좌우세 나오냐?” 이렇게 가르치거든요. 그게 움직임 원리고 그게 알렉산더 테크닉입니다. 정상적으로 걷는 사람이 그러면 불편하잖아요. 그런 동작은 장애 동작이잖아요. 알렉산더 테크닉은 불편한 걸 버리면 똑바로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나를 따라 그대로 해라”는 소리가 아니라 “니가 불편하지 않게 하라”는 그 이야기입니다.
 그동안 일반적으로 배우고 추는 한국춤의 기본들은 거의 신무용으로 정면을 의식하며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춤은 원형춤입니다. 한쪽 방향만 의식하고 추면 자연스러운 움직임에서 많은 제약을 낳습니다. 한국춤을 처음 배울 때 어색한 움직임이 원리에 어긋난 동작인지 모른 채 수없이 많은 연습을 하면 결국 그것에 익숙해지고 자연스럽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내가 원리대로 설명해서 춤을 추지 않는 것이 춤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오히려 이것을 어색해합니다. 내가 어떤 부위의 신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어떤 생각으로 몸이 움직여지는지, 고유수용감각을 이용해 저절로 움직여지는 단계에 이르고자 함은 알렉산더 테크닉이 추구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른자세, 몸의 인식, 즉 나 자신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는 움직임 원리의 시작이고 알렉산더 테크닉의 방법론입니다.
 

채희완: 지금 일관되는 것은 우리 전통춤 특히 김은희 선생님이 여태까지 춤 배움 길에서 터득한 것이었습니다. ‘몸에서 몸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왔던 여러 가지 국내 기법에서 전세계적으로 포용될 수 있는 기본 원리의 공통점을 찾아볼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또 ‘특히 점, 선, 원 그런 개념을 적용해서라도 우리 춤의 전통춤에서 확인될 수 있는 것은 세계의 공통적인 원리에 입각해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거기에 반쯤 동조하고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춤의 원리가 많은 종족과 많은 지역의 춤과 공통되는 원리로 돼 있다는 것, 그것을 일반적인 견해로는 얘기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말이 말로서 세계 공통의 언어적 바탕을 가졌다는 뜻과 크게 벗어나 있지 않지만은 한글의 특성을 얘기할 때는 한국 나름의 원리를 다시 천착해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는 거죠.
 지금 말하는 점, 선, 원의 원리는 가령 우리 춤의 여백, 정중동 또는 기의 흐름, 또 서양에서 20세기 초에서부터 개척한 에포트라든지 다이나믹 이미지, 운동의 벡타성, 이런 것을 얘기할 경우에는 좀 미흡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춤의 원리가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한 지반을 구축하고 있다는 선생님의 말은 우리 춤의 원리의 한 부분이 전 세계 춤의 원리의 일부분과 통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선생님의 얘기가 축소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우리 춤의 기본적인 원리와 다른 춤들의 원리가 동일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차별적인 것을 우리는 구획해낼 필요도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야 우리 춤 언어의 독특한 춤 구성 방식 더 나아가 우리 춤에 담긴 미의식, 정신세계의 독특한 측면을 밝혀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선생님과의 사전 얘기 중에 양승희씨의 “나를 알고 나의 대상을 알고 공간을 안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제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공간을 만든다고 하는 의미예요. 공간은 점, 선, 면, 원 말고도 그야말로 2차원, 3차원, 4차원, 7, 8, 9차원을 넘어 한 공간의 세계와 함께 얘기를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그런 새로운 춤의 가능성을 저는 아까 〈순환〉에서 장은정씨와의 공연 작업에서 느꼈습니다. 거기에서 우리 춤의 원리의 하나로서 우리 춤의 독특한 특성이 제 눈에는 잘 안 보였습니다. 점, 선, 면, 원 그런 관점에서는 긍정적인 어떤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춤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되 김은희님답게 우리 전래의 춤이 가진 성격들 또는 우리 춤이 미처 못 가졌던 현대적 의미나 성격들 이런 것을 더 개발해볼 수 가능성은 없겠는가, 그렇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김채현: 그래서 우리춤움직임원리연구회가 있는 것이겠죠.

채희완: 우리 춤은 우리 움직임보다는 좁은 의미니까, 조금 좁혀서 우리의 움직임보다는 차라리 우리의 몸운동, 몸짓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더 편하게 접근할 방법이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김은희: 네, 선생님 말씀이 타당하고 감사합니다. 저는 움직임 원리를 설명하고 우리 인체를 얘기하며 1차원적인 걸 얘기한 것입니다. 일단 ‘내 몸을 알자’ 다음에 내 몸의 상태를 알면 그때부터 에너지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럼 2차원이잖아요. 그러고 공간을 알면 그게 3차원이 되는 거예요. 그럼 추상적인게 되는 거죠. 내 인체는 뱀, 말도 아니고 사지를 가진 사람의 몸이니까 정확한 방법으로 쓰면서 여기다 음악을 더하고 속도를 보태면 춤이 되는 거겠죠. 저로서는 굳이 시선을 끌기 위해 춤을 꾸며서 만들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부터 제시한 거죠. 그리고 이제 〈순환〉은 반드시 창작을 소재로 작품을 해야 됐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제가 이제 승무의 기법을 가지고 점, 선, 원의 원리로 조금 추상적인 쪽으로 리사주곡선으로 가고 그러면서 4차원까지 간 것이죠. 저는 우리 춤보다는 우리 움직임의 원리를 우리 춤에다 어떻게 적용할 것이냐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김채현: 그러니까 국제적으로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공통점으로 어떤 움직임이 있다는 말씀이시죠? 거기에다 가령 나의 또는 우리의 어떤 특성, 개성, 독자성 그것을 나타내는 어떤 요소들이 또 있는 거죠. 그래서 그것들이 함께 다시 재검토해야 된다는 그런 말씀이시죠.

김은희: 제가 춤을 가르칠 때 우리춤 안 가르쳐요. 언제나 “김연아가 나오고 스키 탈 때 엣지를 어떻게 넣으면 어떻게 나오고, 박찬호가 공을 던질 때 몸에서 어디서 힘을 내서 뒷공간을 어떻게 쓰고, 박지성이 공을 드리블으로 할 때는 어떤 발이 틀이 돼?” 이걸 가르치거든요. 저는 우리 춤을 가르치는 원리를 가르칩니다. 그걸 춤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표현할 것이냐가 과제이겠지요. 승무를 한다면 승무처럼 표현하고, 이런 식으로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움직임 원리를 우리 춤에 어떻게 접목을 시킬 것이냐 하는 점이에요. 그런데 제가 간략히 소개해드리는 중에 혹시 혼선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우리 춤 원리는 이게 아니다”고 오해하면 안 되겠습니다. 우리 제자들을 보면 저는 맨날 김연아가 됩니다. “그 땅을 딛는 힘만큼 내가 설 수 있어. 반듯이 섰을 때 난 턴을 돌아. 착지할 때는 반드시 안전하게 하체를 착지시키면서 무릎과 발을 넓히고 상체는 반드시 세워야 돼. 절대 흔들리면 안 돼.” 이런 식으로요. 그럼 결국 움직임 원리죠. 그러면 우리 춤을 출 때는, 움직임 원리를 어떻게 쓰야 하는지를 설명하지요.

김채현: 우리춤의 움직임 원리가 창작에서 쓰임새가 있지요?

김은희: 우리춤의 움직임으로 자연스러운 몸의 움직임,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합니다. 아까 말쓴드렸듯이 빠른 동작일수록 움직임 원리에 어긋나면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잘 안 되면 빨리 해보고 방법이 터득되면 아주 천천히 필름을 돌리듯이 분석해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균형이 제대로 잘 잡히지 않으면 빠른 속도로 움직일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빨리 움직여서 문제가 없었으면 아주 천천히 필림을 다시 돌려서 분석해보라고 지도하고 있지요. 창작춤, 전통춤, 운동, 무술 등등 어떤 움직임이든 모두 이치에 맞게 순리대로 하는 게 움직임 원리이기 때문에 창작춤에서도 그 쓰임새가 분리되지 않는다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김채현: 말씀 듣기로는 정소산 선생님의 ‘거미처럼 추라’는 말씀도 영향을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김은희: 그 선생님의 오랜 제자이자 제가 경북예고 다닐 때 스승이셨던 대구의 백년욱선생님이 거미처럼 조용조용히 춤추는 뜻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이것을 우리춤움직임원리로 해석했습니다. 스파이더맨처럼 사지를 따로 따로 움직이며 내 몸이 상대를 빨아들이는 힘과 버티는 힘은 암벽등반하듯이 하면 된다고 느낍니다. 암벽등반을 하면 스파이더맨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참고로 저는 몸을 만들기 위해 암벽등산학교에서 2003년에 졸업장도 취득했습니다. 제 생각에 암벽등반은 움직임원리에서 반드시 필요한 훈련입니다.

김채현: 공통된 움직임 원리가 있는 중에서도 전통춤과 그 이후의 춤은 다르게 분류될 것입니다. 일례로 근래의 새로운 전통춤도 전통춤과 같지 않을 것이거든요. 새로운 전통춤 역시 창작춤의 영역으로 볼 수 있겠고, 전통춤 기법과 음악에 맞추어 안무자의 춤체가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춤 기법을 이용하여 나오는 현대적 창작품은 전통춤으로 볼 수 없겠지요.
 말씀 나눌 게 많습니다. 그 점에 대해 다음 기회를 엿보기로 하면서 공개 심층 인터뷰 취지에 맞춰 객석에도 기회를 드려서 공개 질의응답을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청중: 네, 선생님 잘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이제 밀양춤을 추겠다’는 그런 의지를 보이셨습니다. 이매방 춤을 살로 삼는다고 하셨지요. 말하자면 지역 문화에 따라 춤 언어도 다르고 그런 이질성과 차별성이 있지 않습니까. 이 부분에 대한 견해를 좀 듣고 싶습니다.

김은희: 그것은 그 지역 사람들의 성향이라 봅니다. 저의 춤은 투박하고 좀 터프한 편이에요. 제가 자란 지역 성향이 다소 무뚝뚝한 편이었지요. 대조적으로 어느 지역 춤은 아기자기하며 자상하잖아요. 그런데 김수악 선생님 춤을 보면 그런 성향들이 섞여 있지요. 현장에서 말하는 김수악 선생님 째가 엄청 들어간 춤이거든요. 저의 춤을 보면 어떤 면에선 이매방 선생님, 어떤 면에선 한영숙 선생님의 특성이 있지요. 저는 한영숙 선생님께 먼저 춤 공부를 하고 절제하는 법을 익혔죠. 그리고 이매방 선생님께는 표현하는 방법을, 그리고 박금슬 선생님께는 몸을 바로 세우는 방법을 익혔어요. 그래서 이제는 지역에 따라 논하기는 좀 어려운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청중: 그러니까 이질적으로 보이는 지역 특성의 춤들을 보완적으로 보신다는 거죠?

김은희: 네, 그렇지요.

김영희: 오늘 인터뷰 시작 초에 김은희 선생님이 아주 비밀스러운 말씀을 하실거라고 하셨는데 그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김채현: 그렇습니다. 오늘 그 결정적인 코멘트를 15초 내로 하시겠다고 밝혀셨지요?

김은희: 네, 발레에서 기둥을 세우고 발레가 기둥이 돼요. 우리가 아라베스크 포즈를 했을 때 토슈즈 하나에 의지하고 있잖아요. 그 기둥이 얼마나 섬세하게 무게 중심을 잘 세우느냐에 따라서 그 동작이 이루어지고 유지되거든요. 간략히 말해서, 발레로 기둥을 세우고 현대무용에서 자유를 느끼고 발산하고 한국 춤에서 내공(內功)을 쌓아라는 겁니다. 지금 제가 가르칠 수 있는 것이라면 기둥이라도 똑바로 세워주자는 것입니다. 어떻게 내공까지 감히 건드리겠는가. 그러면서도 뒷공간이 어쩌고 선이 어쩌고 설명을 많이 하지만, 이 공부를 잘못하면 또 사기꾼이 되기 쉽지요. 일단 기둥이라도 똑바로 세워주자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그런 때문에 저의 춤에서 어느 장르를 정하기는 어렵다는 뜻입니다.

김채현: 많은 참고가 되겠습니다. 오늘 나눈 말씀 가운데 섬세하게 분석하면 또 여러 가지 다른 의견들이 나올 수 있고 보완될 것입니다.

김은희: 저는 제자들한테 ‘이리저리 해서 좋은 점이 많을지라도 춤만 좀 잘 추면 얼마나 좋겠냐” 는 말은 꼭 합니다. 춤을 잘 받아서 잘 추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김채현: 네, 상투적인 말로서 춤계 발전을 위해 필요한 공부를 제대로 하자는 말을 하기는 쉬우나 실천에는 인내와 내공이 필요합니다. 오늘 소중한 인터뷰 잘 들었습니다. 이전 인터뷰도 그랬는데, 아쉽지만 이 정도에서 일단 마치려 합니다. 인터뷰 시리즈에 성심껏 참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김은희 선생님이 앞으로 계획하고 추진하는 작업에도 이번 인터뷰가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며 동시에 더 큰 성과도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인터뷰에 참석하시어 진지하게 경청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24. 11.
사진제공_김은희, 춤웹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