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흐름
아날로그의 물결이 다시 흐르고 있다. 디지털 혁명은 우리 삶을 빠르고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일상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공허함을 느껴 오히려 과거로부터 정서적 안정을 찾는 듯 보인다. 특히 1020세대는 직접 만지고 소유할 수 있는 물성을 중시하며, 희소성 있는 가치에 매력을 느낀다. 출력 전 확인할 수 없는 필름 카메라를 찾고,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해 음악을 듣기보단 LP를 즐기고, 손글씨로 일상을 기록한 다이어리를 꾸미며, eBook 대신 종이책을 소장한다.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아날로그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이색적인 공간 역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이번에는 그중 음악과 결합하여 문화 예술의 확장을 시도하는 공간을 소개한다.
백지화 인스타그램(https://www.instagram.com/baekjihwa/) 캡쳐 |
타인과 음악적 취향을 공유하는
‘백지화 리스닝룸 파티룸’ (서울시 강동구 풍성38길 13)
강동구청역 2번 출구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백지화’.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가청 영역대인 16Hz-20kHz를 원음에 충실하게 왜곡 없이 재생하는 하이파이 라디오를 갖춘 공간이다.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스피커를 통해 청각에 집중할 수 있는 이곳에서 음악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자리에 배치된 포스트잇에 희망하는 아티스트, 곡을 적어 제출하면 무손실 음원을 들을 수 있다. 공간 곳곳에는 LP판이 배치되어 있어 희망하는 LP를 골라 동일한 방법으로 신청할 수 있다. 또한 개인이 소지한 LP판을 들고 와도 된다. 신청곡이 공간을 가득 메울 때면, 공간 맨 앞에 마련된 쇼파에 앉아 온몸으로 음악을 느낄 수 있다. 공간감과 정위감을 고려해 배치, 음악을 생동감 있게 들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이다. 간단한 음료수와 스낵, 치즈류를 판매하며, 주류 및 음식 반입과 배달도 가능하다. 남은 주류는 4개월간 무료로 보관해준다. 백지화에서 구성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아티스트의 날’과 70-90년대 일본에서 유행했던 음악, 장르 상관없이 몽환적이라 느껴지는 음악, 90-00년대 영국 록 음악 등 그날 그날의 컨셉에 맞는 음악을 신청하는 ‘컨셉 데이’는 백지화만의 이색적인 리스닝 테마이다. 이는 백지화 인스타그램(@baekjihwa)의 음악 달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쾌적한 청음 환경을 위해 한 타임에 9명씩 예약받으며 1시간당 9,000원.
아날로그 사운드를 즐길 수 있는
황인용 뮤직스페이스 카메라타 (경기도 파수지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83)
파주 헤이리예술마을을 지키고 있는 ‘황인용 뮤직스페이스 카메라타’. 라디오 디제이로 활약한 방송인 황인용이 수집한 빈티지 오디오와 LP, CD 컬렉션을 기반으로 만들진 ‘카메라타’에는 1만 500여 장의 LP판과 1920~1930년 미국 극장에서 쓰던 웨스턴 일렉트릭과 히틀러가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클랑필름 제품 등 앤티크 오디오가 갖춰져 있다. 건축가 조병수가 설계, 진회색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건물의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10미터 층고의 공간을 아날로그 사운드가 둘러싸고 있다. 황인용 씨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선곡한 클래식, 오페라, 재즈 등이 대형 오디오를 통해 흘러나온다. 정면을 향해 배치된 의자에 가만히 앉아 음악을 감상하며 지친 마음을 달래거나 오른쪽 테이블 좌석에서 음악을 배경 삼아 독서하기에 적합한 공간이다. 16세기 후반 피렌체의 예술 후원자였던 백작 조반니 데 바르디(Count Giovanni de’ Bardi)의 살롱에 모이던 예술가 모임이자 이탈리아어로 ‘작은방’ 또는 ‘동호인 모임’을 뜻하는 카메라타(Camerata)의 의미를 살려, 방문객과 예술로 교류하는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 주말에 책 낭독회를 비롯해 음반 토크쇼, 클래식 공연이 진행된다. 8월에는 바이올리니티스 양지인, 피아니스트 김경은, 첼리스트 제임스 김이 모리스 라벨의 실내악으로 공간을 채울 예정이다. 프로그램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미국의 재즈와 블루스 선율을 적극 수용한 〈바이올린 소나타 2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춤과 말레이시아의 시에 영감을 받은 〈피아노 삼중주〉이다. 자세한 일정은 네이버 블로그(https://blog.naver.com/h_camerata)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매주 목요일은 정기 휴무이며, 입장료는 성인 12,000원, 초중고생 10,000원.
콩치노 콘크리트 ⓒ춤웹진 |
지상 4층 규모의 대형 LP 음악 감상실
콩치노 콩크리트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새오리로161번길 17)
임진강이 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콩치노 콘크리트. 라틴어로 ‘합창하다’와 ‘연주하다’를 뜻하는 콩치노(concino)와 ‘구체적인’과 ‘사실적인’을 의미한 콩크리트(concrete)를 결합한 공간이다. 콘크리트로 제작된 건물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는 공간답게 노출 콘크리트 공법으로 건축된 외관이 눈에 띈다. 이 공간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설계해 한국건축문화 대상을 받은 민현준 씨가 설계했다. 이 공간의 묘미는 크게 트인 통창을 바라보는 것은 물론 실제 연주를 듣는 듯 생생한 음악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건물 1층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 콘서트홀로 올라가면, 재즈 음악이 귓가를 사로잡는다. 콘서트홀 정면에는 대형 오디오가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웨스턴 일렉트릭 미러포닉, M2 시스템, M3 시스템, 15A 혼 시스템, 클랑필름의 유로노 주니어 등 1930년대 1500~3000석 규모의 대극장에서 쓰였던 오디오는 크기만큼이나 웅장하고 정교한 소리를 자랑한다. 방문객에게 음료를 팔지 않고 작은 생수 한 병을 주는데, 온전히 음악 감상에만 집중하길 바라는 대표의 음악 철학을 엿볼 수 있다. 공간 오른편에는 LP판 1만 장, SP판 2천 장, EMT턴테이블, 음악 믹싱 콘솔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방문객은 스피커를 향한 객석에 앉아 음악을 듣고, 일상에서 보기 힘든 빈티지 소품을 구경할 수 있다. LP를 바꿀 때마다 보면대에 LP음반 케이스를 세워두어, 어떠한 음악을 청취하고 있는지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계단을 따라 3층으로 올라가는 공간 곳곳에는 예술 작품과 포스터가 자리하고 있다. 3층은 좌우 공간에 발코니석이 있고, 임진강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트인 창가 자리는 경쟁이 치열하다. 저녁노을이 물드는 시간에는 임진강 너머의 풍광도 즐길 수 있다. 월, 화, 토, 일에 운영하며, 입장료는 20,000원.
이슬기
춤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춤현장을 취재하는 〈춤웹진〉 인턴기자. 현대무용과 무용이론을 전공, 현재 관객참여 춤의 특질과 관객성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