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흐름
지난해 11월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장에서 제작진은 이성계의 낙마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서 은퇴한 경주마 ‘마리아주’의 다리에 줄을 묶은 채 달리게 하여 의도적으로 넘어뜨렸다. 앞으로 고꾸라져 고통스러워하던 마리아주가 결국 사고 일주일 후에 사망하였고 이렇게 동물을 학대하는 연출 방식이 오래된 관행임이 알려지게 되면서 사회적 논란이 확대되었다. 동물을 단순히 촬영을 위한 소품이나 도구로 대우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어났고 이에 대한 법적 책임 및 동물 안전 보장을 위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렇다면 촬영장 아닌 공연장에서 동물은 어떻게 다루어져 왔는가? 루르드 오로즈코(Lourdes Orozco)는 저서 『연극과 동물』(Theatre and Animals)(2013)에서 역사적으로 연극과 퍼포먼스에서 동물은 인간의 오락을 위한 도구로 존재해왔다고 말한다.1) 그에 의하면 우리에 갇힌 야생동물부터 길들여 훈련된 동물까지 이들은 공연에서 화려한 묘기를 보여주거나 인간의 행동을 모방했고, 이러한 모습은 자연계를 지배할 수 있는 인간 능력의 전시이기도 했다. 20세기 중반 이래 동물복지정책 추진 및 인식 개선,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적 사유, 동물학의 발전 등의 영향을 받은 공연예술계는 동물을 도구화하는 방식을 반성하고 인간과 동물 간의 전통적 분리 및 위계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이 글은 동시대 공연예술에서 동물이 존재하는 방식들을 짚어보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과 동물의 관계 그리고 동물성을 사유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한다.
공연에서 동물 재현 방식은 다양하다. 동물을 은유적으로 암시하는 경우, 동물 모형 또는 이미지, 인형 탈 등을 사용하는 경우, 살아있는 동물이 실제로 등장하는 경우 등이 있다. 이들 각각의 재현 방식은 다른 부류의 질문과 윤리 문제를 던진다. 살아있는 동물, 특히나 인간이 친근함을 느끼는 개, 말, 고양이 같은 동물은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무대 위나 뒤에서 그들을 돌보고 대우하는 방식에 대해 우려를 낳는다.2)
사회비평가이자 예술비평가인 존 버거(John Berger)는 에세이 「왜 동물을 보는가?」(1977)에서 동물을 인식하는 방식이 산업화 전후로 차이를 보인다고 말한다.3) 산업화 이전에 동물은 노동하는 노예이자 영혼 없는 기계로 간주되긴 했지만 인간을 반영하고 친숙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반면 산업화 이후 인간성과 자연계가 분리되었고 동물은 인간 삶으로부터 멀어졌다. 인간에게 동물은 반려동물로 존재하거나 인형, 디즈니 애니메이션, 동물원의 구경거리 등 스펙터클의 형태로만 접근 가능하게 되었으며, 공연은 동물을 볼 수 있고 인간과 상호작용이 가능한 또 다른 장소로 기능하였다. 얀 파브르(Jan Fabre), 피나 바우쉬(Pina Bausch), 알랭 플라텔(Alain Platel), 빔 반데키부스(Wim Vandekeybus), 로드리고 가르시아(Rodrigo Garcia) 등 많은 서유럽의 안무가, 연출가들은 자기 작품에 살아있는 동물을 등장시켰다. 이들의 작품 속에서 동물은 그 자체로서, 날 것의 물질성을 드러내며 존재하기도 하지만 무엇을 재현하는 기호로도 존재했다.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든 간에 무대 위 살아있는 동물은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가 어렵다는 점에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고 버거가 말한 스펙터클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 아방가르드 퍼포먼스 아티스트 레이첼 로젠탈(Rachel Rosenthal)은 자신의 글 「동물은 무대를 사랑한다」(Animals Love Theatre)(2007)를 통해 예술가들이 작업에서 동물을 다루는 태도에 강하게 비판한다.
“나는 동물을 존중하고 인도적인 방식으로 사용하는 예술가에 대해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도망치거나 맞서 싸울 기회가 없는 쉬운 대상인 동물은 종종 다른 종에 대한 인간성의 냉담함 그리고 정복성을 보여주는 불편한 사례였다. 아니면 그들은 의인화되어서 인간의 약점 또는 결함을 체현하고 재현하도록 했다. 동물을 ‘예술’ 맥락 속으로 집어넣는 일은 동물에 대한 오래된 태도와 그들을 통제하고 종종 상처 입히고 죽여야 하는 우리의 필요성을 드러냈다.”4)
로젠탈이 지적한 동물을 지배하려고 또는 인간의 유희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동물을 무대에 등장시키는 노골적인 사례는 동물쇼일 것이다. 스페인의 투우, 미국의 로데오, 터키의 낙타싸움, 한국의 소싸움 등의 동물쇼는 인간이 길들여지지 않은 동물을 굴복시키거나 동물끼리 인위적으로 싸움을 붙여서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러한 동물쇼는 그 잔혹성의 궁극 목적이 인간의 만족을 채우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동물 학대의 비난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반면에 동시대 공연예술에서 동물을 대상으로 한 잔혹한 행위는 그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행위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더 논쟁을 부른다.
아르헨티나 출신 연출가 로드리고 가르시아는 시각예술 또는 무용에 가까운 공연 형태를 통해 저돌적이고 급진적인 방식으로 인간 몸의 진정성을 탐구해왔다. 그의 작품 〈사건들: 먹기 위해 죽이기〉(Accidents: Kill to Eat)(2006)에서 한 배우는 약 15분간 말없이 살아있는 랍스터를 죽여서 시식하는 행위를 수행하였다.5) 동물권 운동단체의 항의로 경찰이 출동하여 공연 중단 사태까지 벌어졌는데, 연출가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떤 죽음의 공포를 거쳐 간 것인지 느끼게 함으로써 인간의 부정직성을 고발하려 했다고 밝혔다.6) 감수능력이 있는 동물의 이익도 인간의 이익과 동등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윤리철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의 이익평등고려의 원칙에 근거하여, 루르드 오로즈코는 작품 〈사건들〉이 랍스터의 죽음을 통해 관객에게 일깨움을 줄지도 모르지만 연출가는 인간의 이득을 위해 랍스터의 살아갈 권리를 무시했다고 비판하였다.7)
위의 사례들과 달리 전통적 동물 서커스는 무대 위 학대가 직접 이뤄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동물이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묘기를 강요받고 공연을 위해 무대 뒤에서 동물 학대가 종종 자행되고 있음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서 서커스에서 동물 사용은 전세계적으로 금지되는 추세이다.8) 1985년 창단된 프랑스 기마극단 징가로(Zingaro)는 전통적 서커스의 동물 학대 악명에서 벗어나 인간과 동물의 새로운 관계 형성에 기반한 공연을 시도한다. 인간과 말이 중심이 되어 서커스, 마장마술, 음악, 시의 요소를 결합한 공연을 선보이는 징가로의 예술감독이자 연출가인 바르타바스(Bartabas)는 징가로를 말이 필수인 무용 단체로 규명한 바 있다.9) 그에 의하면 징가로 공연은 동물과 인간 사이의 대화를 바탕으로 구성된다. 그는 동물에게 자신의 뜻을 강요하지 않으며 대신 제안할 뿐이고 말이 원하는 대로 움직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열어둔다. 따라서 공연 결과물은 바르타바스와 말의 공동 창작물인 것이다. 바르타바스는 자신이 오랜 시간 동안 말과 함께 살면서 쌓아온 신뢰가 있은 덕에 이러한 공연이 가능하다고 밝혔다.10)
퍼포먼스 아티스트로서 동물권 운동가이기도 한 레이첼 로젠탈은 공연에서 동물과 함께 하는 더 윤리적 방법을 고민했다. 인간 배우들, 42마리의 동물과 그들의 인간 반려자들이 등장하는 〈타자들〉(The Others)(1985)에서 그녀는 지금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비인간 생명체의 삶을 억압하는 파시스트 정권이라고 비판하면서 동물 학대를 다양하게 예시하고 통계 수치를 관객에게 보여주었다. 이 작품에서 동물들은 묘기를 수행하길 강요받지도 않고 심지어 무대 위에 머물러 있길 요구받지도 않는다. 동물 또한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세계의 또 다른 존재로 있는 것이다. 바르타바스나 로젠탈의 방식에는 차이가 있으나 두 사람 모두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가 제안한 ‘반려종’ 관점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려종 선언』(The Companion Species Manifesto)에서 해러웨이는 자신의 반려견과의 개인적 관계에서 출발하여 반려종이라는 형상을 통해 모든 생명은 서로 반려자와의 관계 속에서 함께 구성됨을 말한다. 또한 인간이 비인간 타자들과 책임 있게 행하는 관계 맺기는 결국 인간중심적 세계가 아닌 공생하는 ‘다른 세계화’를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한다.11)
바르타바스와 로젠탈이 무대 위에서 반려종과 공존하는 세계를 그려낸다면, 인간과 동물 간의 존재론적 경계를 의심하고 인간의 우월적인 위상을 거부하는 작업들도 등장하였다. 마리옹 라발-장테(Marion Laval-Jeantet)와 브누아 망쟁(Benoît Mangin)이 결성한 2인조 그룹 아르 오리앙테 오브제(Art Orienté Objet)는 생명공학기술을 활용하여 포스트휴머니즘 시각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질문하고 인간중심주의적 사고가 자행하는 인간의 폭력성을 비판한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의 골든 니카상(Golden Nicas) 수상작인 〈내 안에 이 말이 깃들기를!〉(May the horse live in me!)(2011)은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의 카펠리카 갤러리에서 진행된 퍼포먼스이다. 라발-장테는 인체에 위험을 초래하는 적혈구와 백혈구, 대식세포를 제거한 말의 피를 수혈받고 말 다리 모양의 보철을 자신의 다리에 착용한 후 말과 함께 걸으며 교감을 나눈다. 이후 말의 세포가 뒤섞인 그녀의 혈액을 채취하고 이를 냉각시켜 관객에게 보여주면서 퍼포먼스는 끝이 난다. 라발-장테는 말 다리 보철물을 착용하여 은유적 차원의 사이보그가 되고 혈관이라는 몸속의 통로를 통해 말과 결합되어 실질적 의미의 켄타우로스가 된다. 아르 오리앙테 오브제의 타자-되기 실험에서는 지배 대상으로 도구화된 동물은 사라지고 인간의 일부로서 동물만 존재하게 된다.
전통적인 동물쇼, 서커스로부터 동시대 아방가르드 공연 및 바이오아트에 이르기까지 공연에서 살아있는 동물은 다양한 방식과 의미로 무대 위에 등장해왔다. 공연수행자로서 동물의 존재는 공연이 재현하는 방식에 변화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동물성 개념 그리고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해 물음을 던졌고, 이 과정에서 공연의 윤리성을 둘러싸고 첨예한 논쟁을 촉발하였다. 무대 위에서 동물을 학대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어떠한 행위를 강요하지 않는다면, 무대 뒤 그들의 권리를 보장해준다면 공연장에서 동물은 타자화된 존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공연이라는 맥락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동물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을 위해 존재하고 무언가를 수행할 의무가 지워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동물을 완벽하게 윤리적으로 대하는 공연은 불가능한 목표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에서 관행이 된 동물의 도구화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던지고 동물이 반려종으로서 함께 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한다면 인간이 더 인간다워지는 공연 작업과 환경, 그리고 인식론적 사유가 촉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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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ourdes Orozco(2013). Theatre & Animals. Basingstoke: Palgrave Macmillan, p.19.
2) Ibid., pp.3-4.
3) John Berger(1991). About Looking. New York: Vintage International.
pp.3-28.
4) Rachel Rosenthal(2007). “Animals Love Theatre,” TDR: The Drama Review, 51(1), p.5.
5) 〈사건들: 먹기 위해 죽이기〉 공연 전체 영상은 다음의 링크 주소에서 시청할 수 있다. https://rodrigogarcia.es/accidens
6) Tom Kingston(2007. 03. 17). “Police raid on theatre saves a lobster from certain death,” The Guardian.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07/mar/17/italy.animalwelfare, 2022. 2. 20〉.
7) Orozco, Op. cit., p.45.
8) Sena Christian(2015.11.01.). 「서커스에서 학대 받는 동물들」, 『온라인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18979686#home, 2022. 02. 15〉; 김세형(2021.11.19.). 「프랑스, 돌고래쇼·동물 서커스 못한다.. 동물 학대 근절법안 통과」, 『노트펫』. 〈https://www.notepet.co.kr/news/article/article_view/?idx=24046, 2022. 02. 23〉.
9) Orozco, Op. cit., p.33.
10) Ibid., p.33.
11) Donna J. Haraway(2003). The Companion Species Manifesto: Dogs, People, and Significant Otherness. Chicago: Prickly Paradime Press.
한석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무용이론 전공 예술사 과정 후 영국 서리대학교에서 무용학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에 출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