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흐름
작가소설
아리스가와 아리스/김선영 역,
문학동네, 2019년 07월 03일
• 창작자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이나 여타 작품은 희소하다. 자기나 자신이 속한 세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은 그다지 내키지 않는 일인 모양이다. 그런데『작가소설』은 말 그대로 작가(의 세계와 세상살이)를 소재로 한 픽션이다. 여기에 수록된 콩트 8편은 모두 문학 창작과 발표에서 작가가 놓이는 이런저런 상황을 무겁지 않은 이야기거리로 펼쳐보인다. 문학 작가가 아니더라도 춤 안무자나 타 분야의 창작자라면 겪음직한 상황들이 가상의 픽션에 기대어 스마트한 필치로 소개된다. 추리작가답게 여기 콩트들은 전개 막판에 반전 또는 역전의 묘미를 보여준다. 본 기사에서는『작가소설』부분을 옮겨 소개해도 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한 상황을 가려뽑아 원본 그대로 발췌 소개한다.
• 재능 있는 작가를 발굴해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려는 출판사 편집장이 굼뜬 작가를 설득하고 다그쳐 결국 자신의 기획을 관철해낸다. “당신은 훨씬 좋은 작품을 지금의 다섯 배 속도로 쓸 수 있어요... 당신이 하겠다면 저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히트시키겠습니다... 집필을 위해 필요한 건 전부 저희가 마련하겠습니다... 당신은 일심부란하게 글만 쓰면 됩니다... 저희 회사는 몇백 몇천 명이나 되는 작가 분들을 이곳에 모셔 소설 원고를 받아냈습니다... 그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데이터를 철저히 분석해 완성한 것이 이 특별실입니다... 자 앉아 보세요. 좋은 의자예요. 리클라이닝 의자니 휴식을 취하기에도 딱 좋습니다. 등받이도 완전히 젖혀지니 침대로서도 손색이 없어요...”(〈글쓰는 시계〉 중에서)
• 잡지에 원고지 50매 정도 짧은 글의 청탁을 수락한 작가가 원고 마감을 이틀 정도 앞두고서도 글감조차 정하지 못하고 온갖 소재를 떠올려 보며 방황하면서 곧 연락을 해올 잡지 편집자를 시시각각 의식해야 하는 처지는 글쟁이들의 일반적인 처지를 대변하는 듯하다. “가벼운 두통이 들었다. 잠깐 쉴까... 나 혼자만 괴로운 건 아니다. 마감을 앞둔 소설가는 다들 마찬가지다... 마감이 닥쳐오면 고작 한 가지 발상을 얻기 위해 여덟 시간 정도 서재에 틀어박힌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영감이 그리 내 맘대로 쉽게 솟아날 리 없다. 산더미 같은 메모를 뒤지고, 팔짱을 끼고 돌아다니고, 한숨을 쉬고, 헛되이 흘러가는 시간을 걱정하며, 모방의 유혹과 싸우고... 격코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된다...”(〈마감 이틀 전〉 중에서)
• 고등학교 문예반 학생들이 저명 작가를 모시고 인터뷰하는 가운데, 작가로 입신하려는 청소년에게 작가의 세계를 낭만적으로만 여기는 데 대해 자신의 육성으로 일침을 놓는다. “여러 상에 응모했어. 어딘가에 입선하면 그걸 계기로 일(일반 직장 일)을 그만 둘 생각이었지. 신인상 정도로는 생활을 꾸려나갈 수 없다는 건 알았지만 내가 쓰는 글에 자신은 있었거든... 포기하지 않을 것, 그게 전부야... 포기하지 않으면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아... 사람들 앞에 서서 재주를 부리는 건 힘들어 보이지. 작가가 좋아. 방에 틀어박혀 착실하게 일할 수 있고, 남들 앞에 나가지 않으니 주위에서 신비한 일을 한다고 착각해줄지도 몰라. 힘도 들지 않아, 땡볕에 땀 흘릴 일도 없어, 찬바람을 맞을 일도 없어, 만원 전철에 타지 않아도 되지, 스승에게 욕을 먹어가며 수행할 필요도 없거니와 연극이나 영화의 세계와는 달리 창작을 위한 밑천도 필요 없지. 장점만 가득한, 이상적인 일이야. 베스트셀러를 쓰면 큰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꿈도 꿀 수 있고, 선생님이라 불리면 기분 좋을 것 같아... 좋아한다면 하면 돼. 하지만 인간에게는 재능이라는 제약이 있어. 헛된 인생 보내지 않도록, 자기 한계를 깨달았으면 그때는 미련 없이 포기하는 게 좋아... 참으로 한심한 소리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과대평가를 내리지. 소설가를 동경하며 헛되이 보내는 인생을 받아들인다, 그게 가치 있는 삶일까? 생명과 영혼의 낭비야. 소설가가 되기에 걸맞은 적령기는 없어... 소설가라는 꿈을 늙어 지칠 때까지 계속 가질 수 있어. 그런 건 더 이상 꿈이 아니야. 악몽이지... 인생은 한 번뿐이니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권하고 싶어. 하지만 그런 인생의 일회성은 다른 방식으로 볼 수도 있어. 인생은 단 한 번뿐이야. 그래서 실패하면 비참한 게야.”(〈기코쓰 선생〉 중에서)
아리스가와 아리스 1959년 오사카 생. 아야츠지 유키토, 아비코 다케마루와 함께 일본 신본격 추리소설의 대표 작가. 1989년 『월광 게임』을 출간하면서 데뷔, 이후 연이은 성공으로 전업 작가의 길을 걸었다. 추리소설의 고전미를 살린 ‘논리에 충실한 범인 찾기’가 주요 작풍인 아리스가와는 『말레이 철도의 비밀』로 일본추리작가협회 상을 받았다.(예스 24 소개)
[➣ 이 책] 란은 국내에서 최근 간행된 신간을 소개하는 란으로서, 서평 형식보다는 〈춤웹진〉 독자들의 독서에 도움이 되도록 해당 신간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압축 소개하는 방식으로 서술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