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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판야무 안무방식
2009년 춤판야무 창단 이후 인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관계성에 주목하여 작업하였다. 2019년 〈나로서는〉 이후 ‘분리의 창작개념’으로 작업하고 있다. ‘분리의 창작개념’은 작품 안에 관객의 정서나 생각이 개입할 공간을 열어두는 방식이다. 작품이 이끌어 가는 대로 관객이 몰입해서 따라가는 방식이 아니라 작품을 보면서 자신의 감각과 만나지도록 하는 방식이다. 틈이나 멈춤, 반복을 통해 관객은 자신의 정서를 대입한다. 관객은 자신의 삶과 예술인의 삶, 작품과 현실을 스스로 결합시키며 작품을 보게 되는 방식이다. 이는 작품을 보고 난 후에 나란 존재가 특별히 불행하다거나 초라한 존재가 아닌 인간이란 모두 그러하다는 혹은, 삶이란 그러한다는 인식 속에서 자신의 삶을 볼 수 있게 하고자 함이다.
독일의 작/연출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연출방식인 ‘소외효과’가 아닌가 갸우뚱할 수 있다. ‘소외효과’가 감정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이성적으로 사회를 바라보게 만드는 구조라면 ‘분리의 창작개념’은 자신 안에 있는 ‘낯선 감각’을 만나게 하는 방식이라 말할 수 있겠다.
2019년 안무작 〈나로서는〉에서 분리의 창작개념을 처음 시도하고서는 작품이 망했다.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이 되었다. 이후 2021년 〈우연, 혹은 공교롭게〉를 연습실에서 쇼케이스로 선보였다. ‘분리의 창작개념’을 시도하기 위해서였다. 주변의 피드백과 제작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보게 됐다. 이후 2022년 ‘분리의 창작개념’을 세 번째로 시도해서 만든 작품이 〈WORK〉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강독하다
본격적인 무대형상화 작업에 앞서 두 달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강의를 들으며 출연진들과 워크샵을 진행했다. 작품 〈WORK〉와 어떤 이유 때문인지, 어떠한 실마리를 찾으려고 했는지 정확한 건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공부하기로 했다. EBS에서 방영했던 총 12개의 강의로 이루어져 있었고, 실제로는 2회의 강의를 묶어 영상에서는 1회로 보여줬다. 우리는 강의를 듣고 각자 25분 내외의 시간에 발표를 준비했다. 무엇이 됐든 간에 강의에서 나왔던 사상이나 철학을 눈앞에 보여줘야 했다. 무용수는 움직임으로, 작가는 글로, 영상감독은 이미지로. 잘 이해되지 않거나 결론나기 힘든 사상을 어찌됐든 각자가 표현해 보려고 애썼다. 물론, 어설프기도 하였고 너무도 엉뚱하기도 했다. 발표 후 본인이 발표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했고 서로의 의견도 교환했다.
발표 내용이나 표현법이 강의의 내용과 맞는지 혹은 잘 표현이 됐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허공에 뜬구름처럼 떠있던 사상이나 생각들이 바닥으로 내려앉은 느낌이었다. 강의를 들으며 우리의 생각과 판단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누군가의 말에 이쪽으로 쏠렸다가 누군가의 말에 저쪽으로 쏠리기를 반복했다. 마지막 강의가 끝나서야 알게 되었다. 하나의 사안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을 수도, 찾을 필요도 없음을. 허나, 이쪽으로 쏠리고 저쪽으로 쏠리는 과정은 꼭 필요함을. 나아가 춤판야무의 제작방식이나 운영에 있어서도 결론을 찾거나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얘기에 귀 기울여 듣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접근이라 생각되었다.
“도덕적, 종교적 이견은 인간의 선에 대한 궁극적 다원성의 반영인 이상, 도덕적 몰입의 정치는 서로 다른 삶이 표출하는 독특한 선들을 더 올바르게 평가하도록 도와줄 겁니다.”(마이클 샌델) 이후 우리가 정의를 찾는 이유, 가치 있는 삶을 찾는 이유를 생각하게 되었다. 마지막 강의와 발표가 끝난 후 우리는 하버드 대학교 오금동 캠퍼스를 낙오 없이 모두 졸업했다며 자축했다. 〈WORK〉는 아래와 같은 주제로 모아지면서 작품의 방향을 잡았다.
춤판야무 〈WORK〉 안무노트 ⓒ금배섭 |
완벽한 가짜를 만들기 위한: 〈WORK〉의 전체 주제
‘우리가 살면서 평생 하는 일은 무엇인가? 우리가 살면서 평생 하는 일은 나를 쏙 빼닮은 완벽한 가짜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나란 존재를 인정받고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고자 애쓴다. 나란 존재를 찾는 일이다.
나는 여기 있는데 어디서 나를 찾는단 말인가? 나를 찾을 수 없기에 나를 닮은 허구, 가짜를 만들어내서 나를 증명하려 한다. 나를 닮은 가짜를 만들수록, 나를 닮은 완벽한 가짜를 만들어낼수록 난 완벽한 가짜가 되는 거야. 무대에서 하는 일은 모두가 다 나를 찾기 위한 행위들이다. 결국 찾지 못하겠지만...
춤판야무 〈WORK〉 안무노트 개념정리 – 가짜가 되는 과정 ⓒ금배섭 |
제1부 꿈
우리가 꾸는 꿈을 생각했다. 자면서 꾸는 꿈과 미래의 희망을 담은 꿈. 둘 다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두 가지 꿈 모두 어스름하고 보일 듯 보이지 않고,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그 무엇 같았다. 그저 좋은 꿈을 잡아보려고 하는 우리의 모습을 만들고자 했다. 우리의 염원, 좌불상의 느낌과 후광이 비추는 어떤 어스름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춤판야무 〈WORK〉 안무노트_꿈 ⓒ금배섭 |
제2부 추락
추락은 떨어지는 것이며 떨어짐은 물리적, 정신적, 정서적인 요소들을 포함한다. ‘추락’이 보는 이들에게 감각적으로 와 닿아야 하며 관객의 상상과 경험, 생각의 전개를 통해 다른 지점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줄타기- 믿음이 있어야 된다. 마음을 비우고 집중한다. 오로지 줄 하나의 길로 간다. 침잠, 수련, 명상, 수행...이것들은 어딘가로 들어간다. 내 안이든 다른 세계이든. 이는 실체가 아닌 이미지(꿈)등을 만나는 것이고 그것이 나(我)이다. 실체가 없는 허상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는 자신의 내면으로 떨어지고 추락 느낌을 사격을 통해 감각하게 한다. 이들은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것이다.
애초에 ‘추락’은 ‘임상시험자 모집’이라는 장면과 두 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하나의 오브제(장대)를 사용하다 보니 다른 장면의 감각을 준다는 게 쉽지 않았다. 듀엣 부분은 임상시험자 모집이라는 장면이었다. 임상시험자는 자신의 몸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행위이다. 내 몸에 대해서 실험한다는 것, 나를 타자화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는 내가 나가 아님을 보려고 하는 노력이고 나의 구성요소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지 않음을 의심하는 행위이다. 결국 나의 상태는 어떤지 내가 누구인지를 타인에게 맡기는 행위가 임상시험인 것이다. 나를 상대로 실험하는 일. 나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을 분해해서 나를 찾고자 하는 일을 만들고자 했다.
춤판야무 〈WORK〉 안무노트_추락 ⓒ금배섭 |
제3부 대화
최초의 제목은 ‘감정 섞인 말’과 ‘남북정상회담’이었다. 이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려 했으나 최종에는 ‘대화’로 정했다. 남북정상회담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갈까? 물론, 사회정치, 경제 다방면의 얘기들을 할 것이다. 그런데 이 회담의 본질, 목표는 무엇일까. 우리는 통일이라는 단어로 결론지었다. 통일은 우리의 반쪽을 찾는 일이고, 이는 아담이 자신의 갈비뼈 이브를 찾는 사랑 이야기와 맥락을 같이 한다. 나의 반쪽. 나와 가장 잘 맞는 누군가를 찾는 일이 대화이다. 나의 반쪽을 찾는 일은 무엇인가? 지금으로서 나는 반쪽을 잃어 부족하니까 나의 반쪽을 찾아 완벽해지려는 일을 하는 것이다. 완벽한 나를 완성하기 위해. 이 역시 나를 찾는 일이기에 전체적인 맥락에서 관통한다. 나의 반쪽을 찾는 일=나를 찾는 일=나를 쏙 빼 닮은 가짜를 찾는 일.
대북확성기가 떠올랐다-상대를 설득시키기 위한, 완벽하지 않은, 결함이 있는, 아픈-강아지나 고양이가 아픈 곳을 핥지 못하게 하는 넥카라가 떠올랐다. 고깔을 만들어 왕과 같은 권위와 이후 어딘가 아픈 곳이 있는 이들을. 그럼에도 반쪽을 찾으려는 모습을 만들어보고자 했다. “어서 와, 나의 너 금을 넘어.”
춤판야무 〈WORK〉 연습사진_대화 ⓒ신재윤 |
제4부 생년월일과 쌀과의 상관관계
내 삶은 왜 그러지?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앞으로의 일은 어떻게 되려나? 올해는 어떠려나? 이럴 때 우리가 많이 하는 것이 점(占)을 보는 일이다. 우리가 보는 점이 얼마나 맞을지 모르지만 점을 보고 나면 점사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한 건 사실이다. 나에 대한 앞일이나 현실에 대한 궁굼증을 풀어보고자 했던 게 점사에 의해 갇혀 지내기 일수이다. 나란 누구인가를 찾는다는 전제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점 역시 나란 존재를 찾아보기 위해 무당이나 역술가의 힘을 빌어 행하는 일이다.
와인 잔을 우리의 인생이나 사주가 담긴 그릇으로 비유하여 풀어보고자 했고 그녀가 잔에 담긴 와인을 살피는 일을 역술가의 모습으로 그려보았다. 무당이 부를 법한 노래가 와인잔을 들었으니 와인노래로, 블루스 느낌의 음악과 노래로 만들어졌다. 결국은 사람들이 점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표현해보고자 했다.
춤판야무 〈WORK〉 연습사진_생년월일과 쌀과의 상관관계 ⓒ신재윤 |
제5부 셰익스피어 〈햄릿〉 4막7장
우리가 죽기 직전에 나는 어떤 사람이었구나고 느낄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진정한 나를 만나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만든 장면이다. 결론은 만날 수 없을 확률이 높다로 내려졌지만, 그럼에도 날 닮은 가짜를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가장 근접하게 나를 만날 수 있는 순간이라 생각했다. 나를 만난다 하더라도 죽기 직전의 순간이 나의 명확한 의식인지 혹은 죽은 후인지 구별하기가 애매하기에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무대에서의 장면은 오필리어로 보이지만 사실 오필리어가 아닌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어느 여자이다. 우연히 양동이 물에 비추어진 자신의 얼굴을 보았고 물이 시원해 보여 잠수 놀이 하듯이 얼굴을 담가 보았을 뿐인데, 오필리어와 만나지는 우연을 표현하려고 했다. 어떻게 시공간이 전혀 다른 오필리어를 만날 수 있겠는가라는 물음에 답은 할 수 없지만 그럴 수도 있을 거 같다... 라는 생각으로 만든 장면이다. 한 여자가 양동이에 얼굴을 담갔을 뿐인데 이곳과는 상관없는 오필리어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이 장면의 키워드이다. 만일 재공연을 할 기회가 생긴다면 ‘세익스피어 〈햄릿〉 4막7장’과 분리하고 이 장면의 제목은 ‘우연, 혹은 공교롭게’라고 하고 싶다.
춤판야무 〈WORK〉 안무노트_세익스피어 햄릿 4막7장 ⓒ금배섭 |
모두 5개의 구비를 통해 인간이 가진 한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치를 찾으려고 애쓰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찾을 수 없는 걸 알면서도 행하는, 그래서 안타까운 우리의 모습을.‘분리의 창작개념’ 세 번째 시도인 〈WORK〉에서는 다섯 개의 장면으로 나누기, 장면별 소제목 만들기, 장면과 장면 사이에 시간 주기, 예술 장르간 각자의 템포나 분위기로 분리하기, 움직임이나 장면에서 반복이나 정지를 적극 사용하기, 이렇게 ‘분리의 창작개념’을 적용하고자 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실행이 얼마나 관객의 정서나 감각과 같이 갔는지는 모르겠다.
‘분리의 창작개념’으로 시도한 이러한 것들은 어느 면에서는 작품을 지루하거나 맥 빠지게 만든다. 개념을 적용한다고 오로지 그것에만 꿰맞추는 것 또한 관객에게는 고문이 될 수 있다. 분리의 창작개념이 물리적인 변화만으로 가능하지는 않으리라 본다. 무작정 떼어놓았다고 해서 관객의 정서나 감각이 들어올 일은 없기에.
우리는 어느 것까지 분리의 영역에 놓아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안고 네 번째 시도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