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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 시어터 까두 〈코펜하겐 해석을 위한 고양이 협주곡 C장조〉작업 노트
어렵지만 흥미로웠다?
박호빈_댄스 시어터 까두 예술감독

 

 

 2013년 10월 11일.
 김제완 박사님과의 대면 후(물리학에 대한 첫 스터디), 비주얼아티스트 최종범, 사운드디자이너 양용준, 당시 기획일을 도와주던 아르미와 국기원 아래 강남역 근처 커피숍에서 멘붕 상태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아까 말씀하시던 힉스입자가 뭐야..”, “이거 잘못 걸린 것 같은데...”, “그 힉스입자 공식 이해했어?” “글쎄... 설명들을 땐 끄덕였는데 뒤돌아서니...”

 작년(2013년 9월 중순) 이즈음 쯤에 김제완 박사님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물리학계의 가장 혁신적인 연구결과 중의 하나인 힉스입자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싶다는, 그리고 물리학에 관심 있는 아티스트들과 꾸준히 스터디를 하며 기회가 된다면 공연으로까지 올려지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그래서 내 주변의 다른 아티스트들을 수소문해서 겨우 출발할 수 있는 작은 모임을 가졌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난 후, 11월 4일 2차 스터디에서는 주제 방향을 바꿔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힉스입자는 너무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했고 보다 인문학적으로의 접근이 필요했다. 오히려 양자역학을 다루는 것이 우리에게 더 친숙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이다. 소스코드나 인셉션과 같은 근래의 SF영화나 이외수나 무라캬미 하루끼의 현대소설에서 엇비슷한 소재로 많이 활용하고 있어서 영감받기가 더 수월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더 급한 것은 재정확보를 위해서 프로젝트명과 간단한 시놉시스와 작업 컨셉 방향을 1주일 안에 다 결정해야했다.

 



 <코펜하겐 해석을 위한 고양이 협주곡 C장조>는 양자역학 초기 가장 큰 비중으로 선택됐던 가설인 ‘코펜하겐 해석’과 여기에 정면으로 반박한 역설로 유명했던 ‘슈뢰딩거의 고양이’ 그리고 이 스터디와 토론의 과정들이 댄스씨어터 까두의 공동창작을 통해 음악의 경쾌한 장조 분위기로 협주곡처럼 풀어내고자 탄생한 프로젝트이다. 그리고 공연방식은 양자역학에 있어서 관찰자 선택에 의한 결과에서 착안한 2채널 공연방식을 실험하고자 했다.
 2014년 3월 3일, 최종범, 양용준 3인방이 모여 긴급회의겸 스터디를 했다. 지난겨울 내내 뛰어다녔지만 재정확보는 지지부진했다. 그간 온라인상으로 많은 이야기는 나누었지만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이번 작업부터는 과정중심으로 진행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4월 26일, 전열을 가다듬고 스터디에 참여자를 더 추가시켰다. 미술 쪽에서 이용훈, 댄스씨어터 까두 무용수들이 합류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모여 나름 학구적인 열의를 보였다. 하지만 양자역학이 워낙 광범위하고 물리학자들조차도 100% 다 안다고 확신할 수 없는 지금도 점진적으로 구축해가고 있는 분야이기에 우리도 중구난방(衆口難防) 여러 갈래로 헤매이는 듯 했다. 그래서 분명한 선을 그어 나아갔다.
 제목과 관련된 부분, 즉 가설과 역설, 코펜하겐 해석과 슈뢰딩거 고양이에 집중하고 이해하는데 심혈을 기울이자고. 이유인즉, 이미 댄스씨어터 까두는 2차례 과학과의 융합 프로젝트를 진행했었고 그 때에도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면서 다른 분야와 차별성을 갖지 못했었다. 이번 작업만큼은 과학자들의 사고실험을 우리도 도입하고 싶었다. 비록 허무맹랑한 아이디어일지라도 시도해보고 실험해서 그 결과를 도출하고 싶어서였다. 그러기위해서는 인내와 믿음이 필요했다.

 



 5월11일, 13일, 17일, 20일, 24일, 31일 6차례의 집중적인 자체 스터디와 김박사님의 자문은 지속되었지만 지루한 과정은 참기 힘들어만 갔다. 후반에는 다른 스탭과 무용수들이 합류했는데 반복되어지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서서히 본색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우리가 가장 경계했어야할 결과중심의 사고방식이었다. 과정중심의 과정과 결과중심의 과정은 같아 보이면서 다른 점이 있다. 양자역학과 비슷하다. 이것은 산에 오르는 마음가짐과 방법론의 차이와 흡사하다.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우리들의 모습은 동상이몽(同床異夢)과 같았다.
 6월 7일 모든 제작팀과 출연자들이 결정되고 처음으로 다 모인 자리였다. 당연히 처음 자리한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멘붕이라는 신조어가 딱 맞는 표현이다. 또는 유체이탈..
 몸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워져 땅속으로 꺼져 들어가고 정신은 냉장고에 두고 온 초쿄케익을 생각하듯 말이다. 아무튼 이때부터는 지난번부터 진행해온 아이템 리서치에 무브먼트 리서치를 병행하며 본격적인 창작과정에 들어갔다.

 



 6월14일 모든 과정은 기록으로 남긴다. 그것이 영상이든 사진이든 제작과 연습일지든. 하지만 이런 일들은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문제는 인력부족, 마인드와 습관이다. 하지만 누구를 탓할 수도 변명할 수도 없다. 우리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한계라는 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참신한 아이디어보다는 위축이 앞섰다. 초반엔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하여 제시되는 아이템에 제약을 두지 않았다. 아무리 소소한 것이라도 존중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원리적 접근은 전무하고 무의미한 혹은 더러 시도해보기에는 덩치가 커서 국가가 나서야 실현 가능한 것들이었다. 딜레마의 수렁에 빠지게 했다.
 제작팀들이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자신들의 작업방식이 물리적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면 공연 때 수행할 수 없는, 바꾸어 말하자면 예측 가능한 결과의 그림을 요구하는, 또다시 바꾸어 말하자면 지금까지 해왔던 결과중심의 작업을 요구하는 것이다. 압박이 이런 것이었다. 나로선 백기를 살짝 들 수밖에 없었다.
 첫째 그들을 완전히 컨트롤할 수 없을 만큼 나 또한 흔들리고 있었고 둘째, 그들을 끊임없이 유도할 능력과 방법적 노하우가 없었다. 더 큰 것은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져야한다는 점이다. 한 때 유행어 중에 '공동책임 무책임'이란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랑 무관한 말이다. 공동책임은 다 내 책임이다. 그래서 작품대본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7~8차례 수정 보완을 통해 토크방식의 채널A 공연대본을 구축했다.
 7월 11일 마지막 김박사님께 자문을 구하고 우리는 4주 동안 전력을 다해 달렸다. 전자가 양성자 주변을 돌때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곧 붕괴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8월 8일 1차 공연(구로아트밸리예술극장)이 끝나고 반응이 양분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렵지만 흥미 있었다", "너무 어려웠다. 따라가기 힘들었다" 품평회를 통해 수집한 피드백과 다음 공연방식에 대한 토론이 불꽃 튀겼다. 여기엔 자비가 들어오지 않는다. 많은 공격은 대부분 안무자에게 향한다. 당연하다. 2주간의 고민 끝에 2차 공연방식을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들어있는 큐빅박스 안에 남겨놓고 9월 12일 공연(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을 향하여 또 한 번 무용수와 제작팀과 함께 달려 나갔다.

 P.S. 석촌동 연습실에서 마지막 공연연습을 마치고 의자 10개와 농구공 10개, 소품용 책들, 기타 잡동사니들을 내 차에 실으려 할 때 모두가 안 될것 같다고 했다. 난 why not! 을 외치며 하나하나 포개어 집어넣었다. 편견은 수많은 가능성을 포기시키는 것으로 양자역학은 이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덕분에 난 왕복 용달비를 아낄 수 있었다.

 

2014. 10.
사진제공_댄스 시어터 까두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