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본질과 생리에 대한 재고
최근에 조금은 우려가 되는 일이 생긴 듯합니다. 발생된 일 자체가 우려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바라보는 시각들에서입니다. 작년인가요? 모TV방송에 무용경연 프로그램이 생겼습니다. 많은 출연자가 현대무용을 전공한 후배들이더군요. 그리고 심사위원으로 무용과 교수도 나오고 현대무용을 전공했던 연예인도 나오고요. 그것이 뭔가 문제 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 자체가 비난받을 이유 또한 전혀 없습니다.
후배 여러분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무용가들이 이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크다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한 시각의 차이는 우리 무용예술인들이 갖고 있는 순수예술에 대한 정체성과 가치관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비롯된다고 봅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이 무슨 문제인가?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서 현대무용을 더욱 대중화 시켜야한다"는 아주 진보적이고 개방적으로 보이는 시각을 갖고 있고, 또 다른 이들은 "그런 프로그램이 무슨 예술을 보여줄 수 있다고 현대무용인들이 호응을 해주나?"라고 얘기하는 보수적이고 폐쇄적으로 보이는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혼란은 TV방송매체와 상업프로그램의 본질과 그 생리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나타난 것입니다.
결론을 먼저 얘기하지요.
“상품”과 “작품”에 대한 인식 필요
여러분은 그 프로그램과 예술로서의 현대무용을 연관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많은 부분이 관련 있는 듯 보이겠지만, 실은 태생의 근본바탕이 전혀 다릅니다. 겉포장의 무늬가 비슷하여 착시현상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그 프로그램은 대중문화로서 상업프로그램입니다. 하나의 오락상품으로서의 상업프로그램은 시청률에 그 생사가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제작주체는 예술을 소재로 한다 하더라도 예술이 그 목적이 아니라, 시청자의 취향에 맞추어 시청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크게 변형을 가합니다. 오락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것입니다. 창작자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상품으로서의 결과물이 나오게 될 수밖에 없지요.
춤을 '소'에 비유해 보겠습니다. 예술가들은 소의 울음소리와 눈망울, 자태, 습성, 걸음걸이 등을 묘사도 하고, 풍자도 하고, 은유도 하겠지요. 하지만 상업적 대중문화에서는 '소고기'를 생각합니다. 그 소고기 육질과 신선도를 얘기하지요. 순수예술과는 거리가 먼 "상품가치" 말입니다. 소고기를 많이 판다고 해서 또 소고기를 맛있게 많이 먹는다고 해서 고객들이 소에 대한 그리움이 생겨나 들판으로 목장으로 농촌으로 누렁소를 보고자, 느끼고자, 찾아가지는 않습니다.
이렇듯 두 분야가 얼핏 보기에 공통분모가 있어 보여도, 존재의 목적이 전혀 다른 것입니다. (예외의 상황에 대해서는 이 자리서 얘기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여기서 제가 그 프로그램에 대해 비난할 뜻이 없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무용을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하였다고 하여 무용예술가가 되라는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현대무용 예술가는 대학을 통해서 배출됩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지요.
하지만 대다수의 무용전공자들은 대학을 졸업하면 자신의 길을 새롭게 찾아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자신의 경험과 재능을 살려 대중문화의 생활전선으로 뛰어드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그 사람들이 성공하길 바랍니다. 저는 그러한 상업프로그램이 무용 전공자에게 길을 하나 더 열어주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 참 고맙습니다.
“현대무용의 대중화”라는 이유는 무지와 자기 합리화일 뿐
뚜렷한 동조도 비난도 하지 않을 것이면, 그걸로 그만이지 무슨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나 싶겠지요? 그 이유는 앞에서도 비추었듯이 찬성ㆍ반대의 문제가 아니라, 아직 많은 무용인들이 그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판단하는 기준이 불명확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무용예술가들 중에는 마음은 불편한데, 이것은 아니다 싶은데, "현대무용의 대중화"라는, “현대무용의 취약점을 개선하고자” 한다는 논리로 포장한데 대해서 정확한 반박의 논리를 찾지 못하여 혼란스러워 하는 것이 안타까워서입니다. 더욱이 그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사람이 무용공연에 출연할 때면 많은 티켓이 판매된다고 하니 더욱 혼란스럽겠지요. 관객이 늘어난 것으로 당장은 뭔가 성과가 있는 듯 보이겠으나, 중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무용예술과 공연예술 환경에 모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술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저 예술을 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또 다른 방면으로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 도전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면 됩니다. 각자의 길에 대해서는 누구도 비난을 삼가 해야 합니다. 서로에게 용기를 주고 격려해 줍시다. 하지만 현대무용의 발전을 위하여 그러한 프로그램이 필요하고 또한 참여한다고는 말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런 말은, 있을 수 있는 비난에 대해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것이거나, 무지함에서 나오는 말이 아닐까요?
각자의 선택에 대한 용기와 격려가 필요할 뿐
순수예술과 상업문화(대중문화)가 다른 것은 단지 호칭만이 아닙니다.
그 두 가지 분야는 존재의 목적이 다릅니다. 순수예술은 상업문화로 쉽게 가려 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가고자 하여도 예술가가 자신의 순수성을 포기하지 않고는 쉽게 가지 못하기에 예술로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밥도 잘 못 먹여주는 예술가의 자존심이 크게 작용합니다.)
후배 여러분들은 무용인으로서 예술가가 될지, 자신의 재능인 무용을 활용하여 다른 분야에 도전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양쪽을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예술은 그렇게 하는 것을 좀처럼 허락해주질 않습니다.
여러분!
혼란스러운 마음은 빨리 정리하시고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지,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 자신을 믿고 당당하게 잘 찾아가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