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어느 하나 쉽게 일이 풀린적은 없었다. 그래서 더 절실했고 설렘 가득 했기에 행복했다. 작년부터 10주년 기념공연에 대해 많은 고민과 또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성장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가져왔다. 지난 10년 동안의 작업 중에서 안무가로써 다양한 색을 보여줄 수 있는 대표작들로 선별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 만으로는 부족한 느낌이 들어 그간 많은 영향을 주신 선생님을 모셔 보자는 의견으로 미나유 선생님과 박성율 안무가님에게 초청안무를 제안했고 흔쾌히 수락해주셨다.
동행
10주년 기념 ‘동행’ 공연을 준비하면서 많은 분들이 미나유 선생님과 박성율 안무가님과 어떠한 관계로 초청안무가로 모시게 되었는지 많은 관심을 가지셨다. 먼저 미나유 선생님과의 만남은 2015년도 창작산실 2015 작품에 무대디자이너로 참여하면서부터였고, 꾸준하게 작업에 참여해오면서 올해 창작산실 〈Body Rock〉 작품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박성율 안무가님과는 무용수로 참여하면서 알게 되어 오랜 시간 동안 알고 지내왔다. 두 분 모두 춤에 대한 생각과 열정 그리고 따르고자 하는 예술에 대한 정신을 존경해오면서 이번 기념 공연에 초청안무가로 모시게 되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좋은 무대를 만들어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리고 이 은혜에 꼭 보답하고자 한다.
미나유 〈로미오+줄리엣〉 ⓒ댄스컴퍼니 명 |
박성율 〈사물의 본질〉 ⓒ댄스컴퍼니 명 |
열정과 마음으로
턱없이 부족한 예산 이었음에도 참여하는 스태프와 출연자의 뜨거운 열정과 마음으로 진행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초청안무작 2편(미나유 선생님의 〈로미오+줄리엣〉, 박성율 안무가님의 〈사물의 본질〉), 대표작 3편(〈마음소리〉 〈사물과 인간 사이〉 〈업사이클링 댄스〉) 최초 기획한 라인업 중에서 〈발화된 몸〉, 〈시간은 무게다〉를 제외하고 진행된 기념공연 ‘동행’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다시 2차 파동이 오기 직전 무사히 올린 것만 해도 행운이라고 생각된다.
오랜 시간이 지나 2020년을 되돌아봤을 땐 급변의 시기로 기억될 것 같다. ‘동행’ 공연 한 달 전 크리틱스 초이스 댄스페스티벌에 초청되어 〈운동과 시간의 연속성에 관한 연구〉라는 작업을 올리게 되었다. 한창 작업을 하고 있을 무렵 감당 되지 않을 정도로 밀린 무용단 연습실 월세로 인해 긴박하게 연습실을 비워야 했다. 공연 막바지 2주 동안 연습할 공간을 찾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다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고 올린 공연이 이번 ‘동행’ 공연이 끝난 후에서야 속상함으로 밀려들어 왔다.
최명현 〈운동과시간의 연속성에 관한 연구〉 ⓒ댄스컴퍼니 명 |
사물과 인간사이
앞으로 보편화 될 4차 산업에서 사물은 인간의 존엄처럼, ‘로봇권’ ‘기계권’ 등등 비슷한 형태로 정의 내려지고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서 바라봐야 할 존재로 인식의 변화될 방향을 제안한다. 사물과 인간사이 에서는 인류의 변화되는 다양한 모습을 시대적 변화의 흐름으로 나열했다. 그중에서 밀집 되어가는 도시의 모습은 과거 수평적 삶에서 도시의 수직적 삶으로 변화된 모습을 그린다.
최명현 〈사물과 인간사이〉 ⓒ댄스컴퍼니 명 |
많은 작업들 중에서도 유독 여백이 많은 작품 중에 하나이다. Melting과 Thinking 장면은 정말 오랜 시간 고민했고 모든 생각들을 비우고 여백으로만 채워진 장면이다. 많은 작업을 제작해 오면서 작업의 경향은 결국 형태주의 이론을 기초로 한다. 2012년 〈제 8요일〉 이라는 작업과 2014년 〈회색인간〉 작업을 거치면서 인간의 성숙이 필연적 조건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지각해 나가는 과정이 흥미롭고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변화되어야 할 관념의 기준이 꼭 필요한 부분이고 변화되는 관념에 따라 달라지는 유연한 사고는 건강한 성숙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 알프레드 아들러
최명현 〈사물과 인간사이〉 ⓒ댄스컴퍼니 명 |
악의 평범성은 ‘무사유’ 속에 있다. 악은 단지 남의 고통과 삶을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저질러지는 것이다. 무심코 행해진 행동, 또는 말 한마디에도 선과 악을 넘나들기도 한다.
이 장면은 ‘애니멀 호더’를 만나 대화를 했던 아주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와 관련한 뉴스들을 접하면서 시작되었다. 또 동물에 국한하지 않고 넓게 바라보았을 때 인간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호더의 무의식적 본능이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최명현 〈사물과 인간사이〉 ⓒ댄스컴퍼니 명 |
빠르게 발전 되어가는 과학/기술로 인해 삶이 편리해지면서 인류는 유연한 성숙을 하고 있다. 대립과 갈등의 이유는 곧 평등하지 못한 사회구조 속에서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고자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된다. 인종, 성별, 장애 등 살아왔던 관념의 기준이 점점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다. 또 계속해서 변화되리라 생각된다. 여러 불평등한 관계가 동등한 관계로 자리 잡게 될 때 즈음 인류는 제2의 인간. AI로봇과도 존엄과 존재의 가치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 지리라 생각된다. 이번 사물과 인간 사이는 앞으로 변화된 인간과 사물(AI로봇)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유연한 성숙이 왜 필요한지를 제시하는 작품이다.
최명현 〈사물과 인간사이〉 ⓒ댄스컴퍼니 명 |
업사이클링 댄스
무대를 가득 채우더라도 사유할 수 있는 여백은 여유와도 같다. 그런 점에서 업사이클링 댄스 작품은 나에게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병맛스러운 컨셉과 B급 무용극 같은 형식은 이 작품의 메시지 전달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고 기존작업 스타일과는 많은 차이를 가진 작품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환경오염의 심각성과 지구를 지키고자 하는 생각은 상식과도 같기에 자칫 캠페인 성격으로 작품이 전개되는 걸 원치 않았기에 급격하게 제한된 미래사회의 모습을 재현한 방식을 택했다.
최명현 〈업사이클링 댄스〉 ⓒ댄스컴퍼니 명 |
생산과 소비가 인류에게 필수 불가결이 아닌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예측되지 않은 인류의 모습을 상상하고 변화된 사회 시스템에 조명한다. 자연은 인류에게 주어진 것이 아닌 공존해야할 존재로서 윤리적 소비에서 더욱 나아가 절제된 소비로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최명현 〈업사이클링 댄스〉 ⓒ댄스컴퍼니 명 |
이 작품에서도 오랜 시간 고민한 장면이 있다. 작품 초반부터 긴 호흡으로 진행되는 소비 장면은 매일매일 배출되는 쓰레기와 폐자원들을 급격하게 줄이지 않는다면 쓰레기 대란이 일어날 것 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에 기초로 했다. 두 명씩 무용수들이 나와 음료와 음식 인스턴트 음식들을 아주 무덤덤하게 먹는 장면인데 이 장면을 집요하게 이끌어 냈던 건 그만큼 중요하게 문제로 자리 잡길 원해서였다.
최명현 〈업사이클링 댄스〉 ⓒ댄스컴퍼니 명 |
더 깊이, 더 처절하게
삶이란 끊임없이 풀어야 할 과제를 던지고, 그것을 해결하려 몸부림치는 중에, 성장하고 성숙하게 된다. 성숙은 많은 것을 내려놓을 때 얻게 되는 것 같다.
작업과 작품에 대한 구분을 명확하게 하려는 편이다. 공연은 시간 예술이기에 단순히 리서치 과정에서만 머물지 않고 현장에서 전문 스태프들과 함께 만들어가며 규모, 디테일, 감각 등 수많은 선택과 협의를 통한 많은 경험이 필요한 예술이다. 시행착오와 실패의 경험이 창작자를 성장하게 만들고 성장이 곧 창작자의 직감으로 이어진다.
지난 10년 동안 무용 안무작업으로만 50여편을 제작했다. 그중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단 3작품뿐이다. 〈시간은 무게다〉 〈사물과 인간사이〉 〈업사이클링 댄스〉 다양한 리서치 작업들을 통해 얻어낸 결과물이고 또 미완성이라 생각하기에 더 애착이 간다.
그리고 다시 시작
10주년 기념공연을 준비하면서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성장해 나가야할지 많은 고민을 가졌다. 결론은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많은 변화를 거치려 한다. 끝이 있다면 시작이 있고, 비움이 있다면 채움이 있다. 그중에 하나를 공유하자면 몇몇 협의 중인 것을 제외하고 그간 만들어왔던 작업과 작품 대부분을 봉인하려 한다. 그리고 일정시간이 지나 지나왔던 과정들을 되돌아보고 싶을 때 다시 꺼내보려 한다. 아무것도 아닌 선택일수도 있겠지만 오랜 시간 쌓아왔던 작업들을 모두 내려놓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안무 작업을 시작했던 초창기 안무 구상과 연습, 곧 다가올 공연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설렘에 잠 못 이루던 신인 안무가의 마음으로 다시 되돌아가고자 한다.
최명현
댄스컴퍼니명 대표. 인간의 신체와 정신에 관한 탐구를 통해 의미 있는 방향성을 찾고, 작품으로서 올바른 삶을 제시하고자 하는 안무가이다. 무대/조명디자인 작업도 병행하는 그는 안무 작업을 위해 조명과 무대미술 등 무대 메커니즘을 오랜 시간 동안 현장에서 습득했다. 시간과 공간성 이외에 환경, 인권과 평등에 대하여 오랜 화두를 통해 인식의 변화된 과정에 집중하고 앞으로 야기될 사회적 문제를 인류애를 기반으로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