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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댄스페스티벌인탱크
7월 7~12일, 23~26일 문화비축기지에서 있은 〈2020 제3회 서울국제댄스페스티벌인탱크〉의 주제는 “Impro-llaboration”이었다. 영어로 즉흥을 의미하는 ’improvisation‘과 협업을 뜻하는 ’collaboration‘을 합친 말이다. 이렇게 큰 줄기를 잡고 나니, 곳곳에서 재미있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모두 알다시피, 현대 무용의 거장 시몬 포티(Simone Forti)는 동물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수많은 드로잉 작업과 동물 움직임 즉흥 리서치를 통해 자신만의 시그니쳐 작업인 동물작업(animal work)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프랑스 예술가 클레어 필몬(Claire Filmon)과 핀란드 예술가 요하나 파쇼(Johanna Partio)는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멈추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시작해 ‘Time is a friend’ 주제의 협업 안무작품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2020 서울댄스페스티벌 인 탱크〉 참가자들을 위한 워크숍을 개최했다. 미국 BrockusRed의 필름 카메라와의 협업 공연 〈Drift, Inner landscape〉, 프랑스 Sine Qua Non Art의 〈Exuvie〉는 왁스 100kg과 인간의 협업 공연이며, Cie Marécage의 〈Interlude(s)〉는 두 명의 무용수와 거리 관객이 함께하는 컨택 즉흥 움직임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즉흥 협업작품이다. 즉흥과 협업은 공연 예술작업을 다양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BrockusRED 〈Dust, Inner Landscape〉 ⓒscreen capture |
올해 행사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 도전의 해였다. 초유의 전염병 사태로 인해, 많은 사람이 밀집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다양한 사람들이 축제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 국제 축제이지만 해외 아티스트들이 서울에 오지 않고 축제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했다.
먼저, 해외 아티스트들이 진행하는 현장 워크숍은 온라인 워크숍으로 대체했다. 첫 번째 대안은 Skype 채널을 통해 스크린에서 선생님이 가르치고 학생들은 사회적 거리를 두고 진행하는 워크숍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방역이었기 때문에 모든 전문가 워크숍과 시민참여 수업은 온라인 줌(Zoom) 화상 수업으로 대체했다. 하지만 춤에서 현장감은 너무도 중요하고, 온라인 수업에 대한 만족도가 많이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많았다. 하지만 이런 비관적 예상을 깨고 온라인 쌍방향 수업은 21세기 새로운 수업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해주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김근희 경기 무형문화재 ‘경기검무’ 따라 하기, 최문애의 장애/비장애가 함께하는 ‘꽃춤’ 수업, 미국 Charlotte Smith & Zac Greenberg의 ‘춤이랑 놀자’와 같은 시민참여 수업은 서울, 광주, 울산, 용인, 성남, 로스엔젤레스, 인디애나폴리스, 뉴욕 거주자들이 나이, 성별, 지역, 장애/비장애를 넘어 온라인에서 춤으로 소통하고 조금이나마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참가한 Lilly Smith는 본인 집 야외마당에서, 한국인 참가자 김00는 서재에서, 그 외 참가자들은 개인 연습실, 자동차 안, 전철로 이동하면서도 수업을 들었다. 지정된 장소가 아닌 곳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비대면 온라인 쌍방향 수업이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던 성과라고 생각한다.
올해는 해외 예술가들의 초청 공연작품을 ‘무용 영상공연 Dance Film Performance’로 대체했다. Los Angeles Dance Festival 감독인 데보라 브로커스(Deborah Brockus) 컬렉션 중, 총 7개 무용단의 8개의 미국작품을 초청했다. 3월까지만 해도 미국 초청팀은 3팀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공연 영상 작품을 온라인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하자 더 다양한 미국작품을 서울국제댄스페스티벌인탱크에 초청할 수 있었다.
LADF의 감독인 데보라와의 화상회의는 나에게 언제나 많은 영감을 주었다. 처음 의도는 해외 공연팀들이 한국에 와서 공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미국 무용단의 무용공연 영상을 SIDFIT 온라인 페스티벌에 올리자고 제안했다. 아주 좋은 생각이라며 데보라는 물었다. “카메라와 무용이 협업한 Dance Film 공연도 원해?” 나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자고 했다. 그 결과, 〈2020 서울국제댄스페스티벌인탱크〉 온라인 공연 축제는 전통적인 무대공연작품과 함께, 카메라와 협업한 Dance Film 장르를 동시에 관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었다.
댄스 시어터 장르 작품인 Rosanna Tavarez/LA DANSA DANSA의 〈Hybrids of Plants & of Ghosts〉, 라이브 음악과 무용의 콜라보 Bernard Brown BBMoves 〈BOX〉, 메시아엔의 쳄버곡 클라리넷 솔로 음악적 해석을 다룬 Rosanna Gamson/World Wide 〈Quartet for the End of Time〉, 제스처를 움직임으로 변환한 작품 Laurie Sefton, Clairobscur Dance의 〈Supremacy Ride〉 등은 무대에서 공연한 무용 작품이고, 360도 회전 카메라를 사용하며 촬영한 Laurie Sefton, Clairobscur Dance 〈Edge of the Sky〉, 맵핑(Mapping) 프로그램을 활용한 무용과 디지털 프로그램 콜라보 SAUMA|mvmt 〈Coalesce〉, 무용과 필름 카메라의 콜라보 작업 BrockusRed Dance Company의 〈Drift, Inner landscape〉과 Charlotte Katherine and Co. 〈Cavernous Consciousness〉 은 무용과 다양한 기술이 접목된 작품들로 이번 온라인 축제를 위해 새롭게 제작된 작품이었다.
Bernard Brown/bbmoves 〈Foreground〉 ⓒEric Politzer, Cheryl Mann, Joe Pugliese |
Rosanna Gamson/World Wide 〈Quartet for the End of Time〉 |
SAUMA|mvmt 〈Coalesce〉 ⓒMichelle McSwain |
프랑스 무용 예술가들도 원래는 주한 프랑스 문화원의 후원으로 욕망을 주제로 한 비디오와 무용의 콜라보 SINE QUA NON ART의 작품 〈Desire〉와, 무용수와 컨택 즉흥의 협업 거리 공연인 Cie Marécage의 〈Interlude(s)〉 등이 이번 현장 축제에서 화려하게 공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외국 무용예술가들의 한국 입국이 불가능해지면서 프랑스 예술가들과의 화상회의를 거쳐, 온라인 공연으로 작품을 더 효과적으로 발표하기로 했다.
SINE QUA NON ART 무용단은 관객들이 영상으로 공연을 보는 경우 움직임의 에너지를 현장에서만큼 전달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으므로,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작품으로 대체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여 〈Exuvie〉 온라인 공연이 올려졌다. 이 결정은 훌륭한 선택이었다. 공연 제작비용 때문에 이 작품을 실제로 초청하기엔 예산상 불가능했지만, 무용 영상 공연으로 대체하여 한국 관객들과 공유할 수 있었다는 것은 댄스페스티벌의 예술감독으로서 흥분되는 일이었다. Cie Marécage의 벤자민 트리카가 안무한 〈Interlude(s)〉 작품은 거리 공연이기 때문에 아쉽게도 전체 영상이 없었다. 따라서 그의 다른 작품 〈Kairos〉와 함께 온라인 댄스페스티벌에 소개하자고 제안했다. 컨택즉흥 메소드를 활용한 안무자의 의도에 따라 공연작품이 어떻게 다르게 완성되는지 관객들이 비교할 수 있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이런 결정들은 온라인 축제로 전환하면서 얻게 된 예기치 못한 성과였다.
Sine Qua Non Art 〈Exuvie〉 ⓒJoao Garcia |
또 하나 주목할 것은 현장 워크숍과 안무 멘토링, 시민참여 수업 등이 대폭 축소되면서, 더 많은 공연팀을 수용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따라서, 먼저 마라톤 유니버시티 공연 프로그램을 새로 만들었다. 대학교와 대학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작품 중 완성도를 높이고 더 발전할 가능성을 가진 작품에 플랫폼을 제공하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경희대, 성균관대, 세종대, 한양대, 상명대, 동덕여대 재학 중인 총 11개 팀이 마라톤 유니버시티 공연에 참여했다. 무용 전공 학생들이 수준 높은 무대공연 경험을 얻고, 동시에 다른 선배 안무자들의 작품과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코로나 전염병으로 무대에 서지 못했던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피드백이 많았다.
ING콜라보그룹 〈춤을 위한 음악의 재해석: 바흐와 이자이〉 ⓒ세이지스튜디오 |
그동안에도 한국 전통무용을 알리고자 〈서울국제댄스페스티벌인탱크〉는 지속적으로 전통무용 공연단을 초청해 왔다. 댄스페스티벌에 참가하는 해외 초청 예술가들과 해외 관람객들에게 한국 문화와 전통 무용을 알릴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외국 참가자들이 한국에 오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한국전통문화를 알리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해설이 있는 K-Dance Day’를 기획하게 되었다.
전통무용을 열심히 연마하는 신진 무용가들에게 공연 플랫폼을 제공하고, 시민과 외국 예술가와 관람객들에게는 우리의 전통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이 있는 전통 무용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전통무용을 소개하는 인터뷰 영상을 녹화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영어 자막을 만들어야 하는 수고가 있었지만, 온라인 영상에서 우리의 전통 무용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바람이었다.
김단우 〈벽사 한영숙류 승무〉 │ 김서현 〈김수악류 교방굿거리춤〉 ⓒ세이지스튜디오 |
또한, 〈서울국제댄스페스티벌인탱크〉는 다 장르, 다국적 아티스트들의 협업을 적극 권장해왔다. 글로벌, 다변화, 다문화, 융복합 흐름에 맞는 공연 예술작업을 위해 진행되는 ‘Music& Digital& Dance Co-work’는 우리 축제가 지향하는 공연 예술작업 중의 하나이다. 작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축제 첫날, 아티스트 미팅을 하고, 아티스트들이 자유롭게 팀을 구성하고 문화비축기지 탱크 곳곳에서 자유롭게 작품구상과 연습을 한 후, 축제 마지막 날 즉흥 쇼케이스 공연을 한다. 2019년 미국, 프랑스, 타이완, 하와이, 한국에서 활동하는 음악가, 디지털 아티스트, 무용가 총 20명이 참여한 도발적이면서 신선한 이 창작작업은 관객들에게 좋은 호응을 얻었다.
물론, 올해는 외국 참가자들이 한국에 오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 참여자들이 같이 모이는 것도 방역이라는 난관에 부딪쳐야 했다. 하지만 제약은 창의성을 드러내게 하는 법이다. 처음엔 해외 참가자들의 페이스톡 실시간 공연연주를 대형 스크린에 프로젝트하고, 한국 예술가들이 스크린 앞에서 협업 공연하는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화상 전송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았고, 실시간 공연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미국 참가자들과 한국 참여자들이 즉흥 협업을 할 수 있을까? 그 해결책은 즉흥만이 가진 장점에 있었다.
미국 무용가, 음악가와 수많은 화상회의를 하면서 우리는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미국에 있는 무용수에게 마음속으로 한국 예술가가 당신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무엇이 보이고 느끼는지 생각하면서 즉흥적으로 움직이고, 그것을 녹화한 영상을 보내라고 했다. 그러면 한국 무용가들은 그 녹화된 영상을 보면서 즉흥적 움직임으로 반응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미국 무용가 샬롯의 영상과 그 영상에 반응하는 한국 무용가, 그리고 그 두 움직임을 디지털 프로그램 Arena가 실시간으로 캡처하여 확장, 분할, 변이하며 멋진 움직임들을 대형 스크린에 투사했다. 이 작업으로 아주 흥미로운 창작 결과물 〈Six Sense〉와 〈Sense〉를 도출해냈다.
SIDFIT Music& Digital& Dance Co-work_ 안무 차민아 & 정미영, 디지털 안무 이동원 〈Sense〉 ⓒ세이지스튜디오 |
또 하나의 방법은 미국 음악가에게 한국 아티스들과 함께 작업하고 싶은 음악을 녹음해서 보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음악을 두 명의 다른 한국 아티스트들에게 전달했다. 이 두 명의 아티스트가 같은 음악에 얼마나 다르게 반응하는지, 그들의 움직임 해석법이 어떻게 도출되는지 등의 결과물을 보고 싶었다. 예상대로 그 두 명의 음악적 해석은 아주 달랐다. 현장에서 관객들이 보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지만, 이 창작품들을 영상으로 녹화하여 온라인에서나마 관객과 소통할 수 있어서 그나마 위로가 됐다.
이지희 〈연기의 무게〉 ⓒ세이지스튜디오 |
‘위기는 기회!‘다. 아주 진부한 말이지만, 〈2020 서울국제댄스페스티벌인탱크〉를 준비하면서 몇 번이고 되새김하면서 용기를 얻은 응원의 메시지였다. 어쩌면 코로나는 21세기 현대인에게 새로운 예술작업의 방향을 모색하도록 기회를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술 교육과 창작 작업의 비대면화를 위해서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기술과 방안을 찾게 되었다. 물론 온라인 공연 축제를 위해서 한국 공연팀들은 아침 8시 반부터 저녁 11시 반까지 방역과 녹화 일정에 맞춰야 했고, 공연 후에는 곧바로 공연장을 떠나야 했다. 축제 운영팀, 무대팀, 조명팀, 무엇보다 영상팀이 무모하기만 한 일정을 묵묵히 소화해주면서, 정말 다행스럽게도 5일간의 대장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앞으로 어떠한 전염병이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예술의 언택트 시대에 새로운 방향성에 대한 질문과 연구 과제를 던지는 중요한 시발점이라고 생각된다.
무관객 공연과 온라인 공연 축제는 오히려 지역, 장르, 나이, 성별, 장애/비장애를 넘어 더 많은 관객들이 참여하는 국제 축제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유튜브를 통해 미국, 프랑스, 타이완, 한국 등 전 세계 관객들이 7월 23일부터 26일까지 〈2020 서울국제댄스페스티벌인탱크〉의 온라인 축제를 감상했고, 총 66편의 작품, 59개 영상이 4일 동안, 유튜브 총 누적 조회수 20,684회를 기록하면서 축제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최문애
4개국 다국적 콜라보그룹 ING즉흥그룹의 대표로 창작품 발표해왔다. 2018년 제1회 서울국제댄스페스티벌 인 탱크 총 예술감독으로서 개최하여 올해 3회를 마무리했다. ING콜라보그룹 대표로 성남 꽃춤 교육과 꽃춤 축제를 2019년부터 진행해오고 있으며 미국 로스엔젤레스댄스페스티벌 과 프랑스 무브먼트 슬라빌 축제 국제협력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