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넛크러셔(NUTCRUSHER)〉 제작 후기
성(性) 없는 순수의 몸
허성임_안무가

〈넛크러셔(NUTCRUSHER)〉의 여정은 2017년 겨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길다면 긴 여정이었기에 이 작품에 대한 메모리도 길다. 2017년 한참 유럽과 미국에서 #metoo 운동이 한참 일어나고 있을 때 한국이 너무 잠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잠잠한 이유는 뭐지? 수면위로 올라오지 않는 이유는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여자에 대한 억압이 강하게 누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에서 15년이 넘도록 무용단 생활을 해온 나는 유럽에서 원하는 동양 여자의 전형적인 모습에 신물이 나고 있었던 참이다. 유럽에 남성 디렉터들이 보고 싶어 하는 참하고, 얌전하면서 강인하고, 젊고 탱탱한 검은 긴 생머리의 동양 여인의 모습을 나도 모르게 연출해 가고 있었다.

 잠시 멈추고 생각을 하고 싶었다. 이것이 내가 세상에 보여주고 싶어 하는 나의 모습인가? 아님 누군가에 의해 이상적으로 만들어진 전형적인 동양 여성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나? 좀 더 솔직해지고 싶었다. 그리고 한국여자들도 좀 더 솔직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를 반박하고 누구를 탓하기 보다는 우리 스스로 우리의 모습이 어떻게 만들고 보여주기를 바라는지 먼저 생각해 봤으면 했다.

 창작산실은 먼저 서류 심사를 거처 인터뷰 심사로 이어졌다. 해외에 거주중인 상태인지라 화상 인터뷰로 진행되었다. 한국과의 시간 차이로 인해 벨기에 시간 새벽 3시에 인터뷰가 진행 되었고 비몽사몽, 졸리고 긴장된 눈을 비비며, 명쾌하지 못한 대답을 했다며 가슴 치며 인터뷰를 마쳤다. 

 심사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벌써 작업은 시작되었다. 워낙 공간 렌트비가 비싼 런던에 있는 터라 북동쪽에 있는 교회를 빌리기로 했다. 콘크리트 바닥에 춥고 습하기 짝이 없었지만 공간은 크고 분위기 있는 곳이었다. 이곳을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빌릴 수 있었다. 대만 친구 엔칭에게 함께 하자고 물어 봤다. 엔칭린(YenChing Lin)은 아크람칸과 호피쉬섹터 컴퍼니와 오랜 기간 작업을 함께 해온 경험이 많은 좋은 무용수다. 좀 다른, 실험적인 작업을 해보고 싶어 마침 무용단을 그만둔 상태여서 흔쾌히 이번작업을 함께 하기로 했다. 한국 친구 임혜연 에게도 함께 하자고 물어 봤다. 이렇게 해서 3명의 검고 긴 생머리의 여자들의 작업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오사카 하이스쿨 학생들의 공연, K pop 아이돌의 춤을 돌려 보며 가장 특징 적인 동작을 배웠고 이것을 단순화, 반복해 보기로 했다. 

 창작산실 시범공연 합격자 명단이 올라왔다. 기쁜 마음으로 연습실에 들어갔고, 우리 모두 한국에 시범공연을 올리러 간다는 기대감에 환호를 보냈다. 작업은 매일 즉흥으로 시작했다.  우리가 원하는 콘셉트를 논의하고 1시간 정도 긴 즉흥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작품의 방향을 잡아갔다.

 

 

St peter’s in the forest Church 리허설 ⓒ허성임


 

 안무자인 내가 작품 안에 들어가 있는 관계로 작품을 바깥에서 봐주는 눈이 필요했다. 그래서 자주 쇼케이스를 올렸고 받은 피드백은 작품의 방향성을 잡는 데 크게 도움이 됐다. 작업의 메소드는 무한 반복이었다. 20분의 쇼케이스에서 한 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많은 움직임을 넣고 싶지 않았다. 한 가지를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제안된 움직임의 무한 반복과 이 반복을 이용한 새로운 이미지의 창출을 해보고 싶었다. 물론 작품의 콘셉트는 여성의 대상화이다. 무대에서 우리의 몸이 어떻게 보여지고, 보여주고 싶어 하는가. 본인의 작업이 여성의 엠파워링에 초점을 갖고 있는 것은 여자라는 존재에 대한 자긍심이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남성과 여성을 갈라놓은 작업은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를 탓하는 작업 또는 교훈을 주는 작업 보다는 우리의 현실을 다 같이 다시 한 번 객관적으로 바라보자는 제시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여자의 여성성으로부터 한 번의 탈출을 시도해 보면 어떨까 했다. 우리의 몸을 그냥 그대로의 몸으로 바라봐 주기를 바라며….

 ​20분의 쇼케이스 작업은 4월에 아르코 극장에 올라갔다. 무대에 조명도, 소품도 배제한 미니멀한 무대의 쇼케이스였다. 20분이 짧다면 짧지만 제대로 숨 쉴 여지도 없이 움직이기에는 단거리 달리기를 20분 동안 하는 느낌이었다. 또 기다렸다, 결과는 한 달 정도 이후에 나온다고 했다. 작업을 빠르게 하지 못하는 나는 일 년에 작품 하나 겨우 만들어 내기도 힘이 든다. 그래서 기다리기로 했다. 다른 작업을 맞물려하기 보다는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하고 싶었다.  결과가 나왔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 오르기로 확정이 됐다. 많이 기뻤다. 그리고 함께 해준 동료들에게도 감사 했다. 추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함께 굴러준 친구들이….

 

 

2018년 6월 28일 런던 오디션 ⓒ허성임


 

 첫 공연은 2019년 1월로 결정 났지만 작업 준비를 서둘렀다. 창작 산실 시범공연을 함께 했던 한국 무용수 임혜연은 공연 리허설 감독으로써 작품을 밖에서 볼 수 있는 역할을 하기로 했다. 긴 생머리의 아시아 여자와 함께 작업을 했으면 했지만 딱히 맘에 드는 아시아 무용수를 런던에서 찾기란 쉽지 않았다. 여자 무용수를 찾는 다는 오디션 공고를 내고 80여명이 서류를 제출했고 비디오, 서류 심사를 거처 12명을 초대해 오디션을 열게 되었다. 오디션은 1차는 동작 따라하기 그리고 2차는 즉흥으로 열었으며 마지막에 최종적으로 2명이 남았다. 한명은 즉흥을 잘했고 한명은 따라하기를 잘했지만 둘 다를 잘 소화해내는 무용수는 없었다. 

 고민을 하던 중 오랜만에 그리스 무용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마르타 파사코뽀울로우(Martha Pasakopoulou)는 2010년에 함께 워크숍을 받은 경험이 있었지만 친구라고 하기에는 먼 사이었다. 마르타는 영국에서 12년의 생활을 마치고 이제 막 그리스 고국으로 돌아가 개인 작업을 한창 하고 있는 안무자이자 무용수였는데, 오디션을 보고 싶어 했지만 그리스에서 런던까지 오라고 하기에는 경제적으로 너무 부담을 주는 듯했다. 가난한 무용수 생활을 하던 나도 조그마한 프로젝트라도 구하기 위해 전 유럽을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던 경험이 있다. 기차는 비싸니까 버스로 그리고 몸이 작은 나는 버스에 움츠려서 잠을 청하면 숙박비를 절감할 수 있었으니…. 이런 경험들 때문에 멀리서 오디션을 보러 오기 원하는 무용수들을 흔쾌하게 승낙하지 못한다. 그래서 마르타와 스카이프로 비디오 오디션을 보기로 했다. 마르타의 머리는 그리 길지 않았고 동작 따라하기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즉흥이 아주 재미있었고 작업에 많은 흥미를 갖고 있었다. 동작을 잘 따라하고 소화하는 무용수보다는 작품의 방향에 계속 의문을 제기하고 내가 쉽게 갈 수 있는 내러티브한 (이야기 구성) 작품 스타일 보다는 추상적이고 함축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내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끌어가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파트너가 필요했다.

 

 

2018 공연예술 창작산실_ 허성임 〈넛크러셔〉 ⓒ최인호


 

 이렇게 3명의 무용수가 정해졌다. 나, 엔칭린, 마르타 파사 코뽀울로우. 

 우리는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리허설에 들어갔다. 아까도 말했듯이 작업속도가 빠르지 않은 나는 3개월 반이라는 시간을 꼬박 이번 프로젝트에 쏟아주길 무용수들에게 요구했다. 물론 그에 따른 무용수비용을 지불하기로 했다. 연습의 시작은 10시 그리고 점심시간 없이 오후 4시까지 중간 중간 10분씩의 짧은 휴식을 갖고 매일 달렸다. 한 달에 한번씩 Work in progress를 해 무용관계자들을 초대했고 모아진 피드백은 작품의 방향을 잡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나에게 작업을 내러티브하게 풀어 나가기는 너무 쉽다. 강렬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내 주특기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들의 나열을 깨고 깨서 하나의 이야기만을 몸으로 추상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해 분석하는 일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 작업의 구성라인은 한 달 만에 끝났지만 이것을 다시 깨고 무엇에서 시작해서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왜 작품이 추상적으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추상적으로 갈 수 있는지를 찾아내는 길은 멀고 멀었다. 작업에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구성을 따라가면 관객들도 이해하기 쉽고 전개도 쉽게 이루어지게 된다. 하지만 관객에게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배제하게 된다. 추상적 작품은 어렵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관객이 생각하고 찾아갈 여분을 남겨준다.


 







 

2018 공연예술 창작산실_ 허성임 〈넛크러셔〉 ⓒ김채현

 

 

 〈넛크러셔〉는 호두를 까는 일인지 나를 까는 일인지 아니면 나를 까는 것으로 인해 내가 나를 (여자가 여자를) 바라보는 시각을 재정비하는 것인지 그리고 이런 길은 얼마나 철저하게 잔혹한 길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나를 포함한 3명의 여자 무용수들은 처음 작품 시작부터 50분 동안 등·퇴장 없이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끊임없이 엉덩이와 머리를 흔들어 댄다. 

 이러한 반복의 연속은 여자의 몸에서 사회가 보고 싶어 하는, 또는 여자로써 우리가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에서 시작해 이것에서부터 탈출을 시도한다. 여자의 몸에서 벗어나 한 순간만이라도 성(性) 없는 순수의 몸을 무대에서 보여주기를 바라며…. 

 

 





2018 공연예술 창작산실_ 허성임 〈넛크러셔〉 ⓒ김채현


 

 구차하게 많은 설명이 필요 없는 강렬하다 못해 비참하기까지 한 작업을 만들고 싶었다. 관객들이 박수치고 나가면 잊어버릴까 고민하게 됐다. 박수를 치지 못하게 하면 더 오래 여운을 갖게 될 것 같았다. 지치고 깨져버린 3명의 몸둥이는 서로를 지지대로 삼아 무대 위에 남겨지고 아름답다 못해 쓰라린 Billie Holiday의 “I’ll be seeing you”는 무용수들의 쓰라림을 커버 해주듯 아주 살며시 무대에 울려 퍼진다. 천천히 관객석에 불은 켜지게 되고 관객들은 박수를 처야 할지, 나가야 할지, 끝까지 있어야 할지 혼돈의 시간을 갖게 된다. 이시간은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시간이다. 관객들을 혼돈에 빠트리고 스스로를 결정하게 만드는….

 ​박수를 받기 보다는 우리가 준 보여준 덩어리를 집에 가져가주기를 바랬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그리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는 머리에 남는 작품 작품이기를 바라며….       

허성임
벨기에 P.A.R.T.S 안무자 과정을 이수했으며 얀 파브르(Jan Fabre), 레 발레 세 드라 비(Les ballets C de la B), 니드컴퍼니(Needcompany), 아바토와 페르메(Abattoir Ferme)와 작업해왔다. 현재는 니드컴퍼니 객원단원으로 활동 중이며 개인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
2019. 02.
사진제공_허성임, 최인호, 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