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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프로젝트보라 더플레이스 UK 공연 후기
소통의 한계를 넘어 공감으로
김보라_아트프로젝트보라 예술감독

나의 작업은 몸이라는 위대한 과제를 갖고 매일 쳇바퀴 돌듯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즉, 나는 몸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고, 몸을 말하고 싶다. 몸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 생리학적인 본질의 다름을 인정하고 가장 초기화된 몸을 원한다. 하지만 작업 중 항시 몸은 기억의 매개로 기능한다. 개인의 몸을 표현하기 위한 과정 중 사회적인 제도적 권력과 관습 ,경험 등으로 이미 기억 되어있는 몸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안무가로서 신체를 탐구하고 거기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으로부터 모든 공연의 작업은 시작된다.
 이번 영국 더플레이스 공연은 나에게 의미있는 초청이다. 초청된 두 작품은 독무 〈혼잣말〉과 군무 〈소무〉이다. 가장 초기화된 몸을 말하기 위해 안무한 나의 처녀작 〈혼잣말〉과 여성주의를 메시지로 담은 〈소무〉가 초청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두 작품은 해외공연을 다니며 다양한 관객을 만나 재구성하며, 거듭된 공연이기에 이번 영국공연이 나에게 앞으로 어떤 영향과 영감을 줄지 기대되기 때문이다.




영국 더플레이스 극장 전경 ⓒ아트프로젝트보라




5월 29일 / 출국
인천국제공항에서 영국으로 출발하기 위해 나는 또 다시 시작하며 스텝한다. 올해 투어만 8개국 초청된 아트프로젝트보라이지만, 공항을 올 때마다 설레고 감사한 마음은 항상 나에게 찾아오는 행복이다.
 아트프로젝트보라의 공연은 6월 4일이지만, 5월 31일 더플레이스 한국특집 오프닝 행사와 컨퍼런스에 초청을 받아 무용단원들보다 나흘 먼저 출국하게 되었다. 멤버들과 함께 떠나지 못해 내심 걱정이지만, 사실 안무자보다 더 성숙한 멤버들이기에 아마도 나를 더 걱정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입국심사부터 달랐다. 대부분 초청을 받은 나라에선 여행 비자로 입국심사를 하기 마련인데 이번 더플레이스 공연은 공연비자로 심사를 받고 입국하게 되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2015년 멕시코 세르반티노 페스티벌에 초청되었을 당시에도 공연비자를 받아 입국심사를 했던 경험이 있었는데, 그때 이후로는 두 번째인 듯하다. 항상 입국심사는 왠지 모르게 떨렸던 경험에서 벗어나 당당히 예술가로써 초청된 자부심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5월 31일 / 한국특집 오프닝, 컨퍼런스, 개막공연 〈속도〉
더플레이스 극장 컨퍼런스가 시작되어 참여하게 되었다. 더플레이스의 예술감독 에디닉슨의 진행으로, 한국에서는 김신아 예술경영지원센터 본부장, 이종호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회장, 오선명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차장, 아트프로젝트보라 김보라, 모던테이블 김재덕이 참여하였으며, 2018년 한영상호교류의해 작업에 아트프로젝트보라와 함께 참여하였던 영국의 마크부르컴퍼니의 프로듀서 수잔 헤이가 함께 하며, 질의응답과 사례발표를 하였다. 영국의 기자들과 페스티벌 디렉터들 그리고 아티스트들이 참여한 컨퍼런스였다.
 한국의 예술작업의 조건들과 직접적인 아티스트들의 교류 프로그램들 그리고 작업환경에 대한 질문들이 많았고 나는 영국 안무가 마크브루와의 협업과정과 초청된 소감 등을 발표했다. 차갑지만 예의바른 그들의 자세는 나를 긴장하게 했지만, 첫 느낌과는 다르게 점점 진지하게 집중되어감을 느낄 수 있었다.




더플레이스 컨퍼런스 ⓒ아트프로젝트보라




 그날 저녁은 모던테이블의 〈속도〉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김재덕 안무가의 〈속도〉는 아쟁의 라이브 연주와 함께 관객의 집중도는 점점 높아져 가고 호흡으로 쌓여져 가는 메소드 움직임은 형태에서 상태로 거듭나 관객으로 하여금 시공간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속도〉가 초연 때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의 맨바닥에 앉아있는 라이브 연주자들과 무용수들과의 호흡, 에너지는 절묘한 한국의 바닥문화를 알리는 흥미로움이 있었으나 다운스테이지인 더플레이스 극장은 그 지점을 나타낼 수 없기에 아쉬웠다. 그러나 그날의 기립박수를 난 잊을 수가 없었다.

6월 4일 / 아트프로젝트보라 더블빌 공연 〈혼잣말〉, 〈소무〉
아트프로젝트보라 멤버들과 스텝들이 도착하여 시차적응도 못한 채, 6월 3일 리허설 그리고 6월 4일 바로 공연준비에 무용수들은 지쳐있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공연하는 그들의 눈빛은 작품을 전달하기에 충분했고 고요하지만 강한 그들의 에너지는 극장을 가득 채웠다. 충분했다.
 더플레이스의 리허설 스튜디오와 극장 스텝들은 아주 훌륭했다. 초청된 곳 스텝들이 친절하고 일을 잘 도우면 공연은 성공적으로 간다는 나의 어떤 믿음이 있기에 공연을 하기 직전까지 신뢰할 수 있는 훌륭한 스텝들이었다.
 지금도 인상 깊게 기억되고 있는 말은 더플레이스의 디렉터의 질문이다. 몇 번이고 나에게 반복적으로 물었던 질문은 “너 행복하니?”라는 질문이었다. 지금도 그 말을 들으면 긴장되며 행복해진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질문을 묻는 날을 생각해본다.




아트프로젝트보라 〈혼잣말〉 ⓒKorean Cultural Centre UK, Kii Studio







아트프로젝트보라 〈소무〉 ⓒKorean Cultural Centre UK, Kii Studio




 〈혼잣말〉과 〈소무〉 더블빌 공연이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시간이 있었고, 여성주의와 관련된 질문들과 전통성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음악과 관련된 안무적 특정 동작들에 대해 질문이 있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떠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으며, 끝난 후 로비에서 간단한 파티와도 연결되어 많은 사람들의 공연소감을 바로 들을 수있어 좋았다. 공연이 끝나고 6월 5일 바로 한국으로 출발하는 일정이어서, 고블린파티와 노네임소수, 최강프로젝트의 공연을 함께 할 수 없었지만 아티스트로써 격하게 응원한다.






ⓒKorean Cultural Centre UK, Kii Studio




 관객들은 작품을 통해 전통과 더불어 사회적 메시지에 관심을 가졌으며, 이들의 활발한 여성주의 역사와 운동이 끊임없음을 알고 있기에 동양에서 느끼는 전통과 현대시대의 여성주의가 얼마만큼 궁금한지도 알 수 있는 공연이었다.
 언어로 규정되는 많은 것들이 오히려 소통을 왜곡하고 제한하기도 하는데, 이번 공연을 함께 하며 몸의 언어에 주목함으로써 소통의 한계를 넘는 동시에 일상사회에서 잊혀가는 전통을 현대화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영국 관객들에게서 공감되길 바란다.
 덧붙여 「The Times」 등 영국 유력 일간지에 기고하고 있는 도널드 후테라(Donald Hutera) 기자의 아트프로젝트보라의 더블 빌 공연에 대한 리뷰가 「Run Riot」에 실렸다. 영국에서 영향력 있는 기자의 이번 리뷰는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http://www.run-riot.com/articles/blogs/art-project-bora-reviewed-donald-hutera).

김보라
아트프로젝트보라의 안무가이자 예술감독. 현대무용을 중심으로 장르와 공간의 개념을 허무는 작업 그리고 논리, 개념으로 박제된 작업들과는 차별화된 '이미지'와 감각의 ‘향연'을 만들어 내는 안무가이다. 2008-2019년, 바르나 국제 발레콩쿨에서 안무상, 일본 요코하마댄스컬렉션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으며, 한국에서는 무려 총 8회의 안무상 수상과 베스트 댄서 수상 등의 화려한 수상실적으로 급부상하였다. 2017-2018년 한영교류의해 공식사업으로 선정되어 영국 안무가 “Marc Brew” 와의 공동안무작 < 공•空•zero >에 참여 하였다. 안무뿐 아니라, 2018년부터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영역을 넓혀 2019년 비평가협회에서 베스트작품상을 수상하였다. 대표작으로는 <꼬리언어학>, <소무>, <각시>, <혼잣말>, <땡큐>, <무악>, <100퍼센트 나의 구멍>, <프랑켄슈타인> 등이 있다.​ 

2019. 1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