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2016년 어느 날, 무용수로서 좋은 작업을 하고자 하는 열정 하나만으로 나는 프랑스에 첫발을 디뎠다.
파리 컨서버토리에서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무용단 오디션을 준비하였다. 2013년 서울국제무용콩쿠르에서 수상한 스칼라십으로 파리 컨서버토리에서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었고 컨서버토리 교수로 계신 크리스티앙 교수께서 후하게 봐주신 덕이 컸었다.
그런 마음으로 전부터 염두에 두어 왔던 앙줄렝 프렐조카즈 무용단 오디션을 우선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전에 프랑스 낭시에 소재한 낭시 발레단 오디션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외국에서 오디션 경험이 없었던 나에게 크리스티앙 교수는 낭시 발레단 오디션에 한번 응해 볼 것을 추천하였다. 나는 내 첫 번째 해외 무용단 오디션으로 낭시 발레단 오디션에 참여하게 되었다.
낭시 발레단 오디션에서 나는 1라운드 발레 클라스, 2라운드 무용단 레파토리 따라하기, 3라운드 솔로 작품 시연, 마지막 4라운드 인터뷰까지 차근차근 올라갔다. 나의 첫 오디션이었지만 최종 파이널 인터뷰까지 가게 되어 매우 기뻤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인터뷰 마지막 단계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인터뷰는 먼저 가벼운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자기소개를 한 후, 한국에서는 어떻게 작업하였고, 이곳에 오게 된 계기 등등… 이렇게만 순조롭고도 순탄하게 인터뷰가 진행되고 마무리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인터뷰 마지막 질문에서 갑자기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데, 나의 무지함에 대해 무척이나 창피스러운 순간이 되고 말았다.
나는 내 자신을 애국자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나라를 위해 내가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으니… 그래도 내 모국은 한국이고 한국인인 내가 외국인 인터뷰 심사위원보다는 한국을 더 잘 안다고 생각하였다. 최소한 다음의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한국 역사에 대해 아시나요?”
이 질문을 받는 순간, 일단 첫째로 말문부터 막혔고, 그 다음으로는 창피하였다.
내가 창피했던 그 순간은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스튜디오 한가운데 멀뚱히 서 있기만 한다는 걸 인지한 순간이었다. 고등 교육과정에서 배운 조선 왕 이름 정도… 그게 한국 역사에 대해 내가 아는 전부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문 밖을 나서면서 창피함과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이걸 왜 이 순간에 나한테 물어본 걸까?” “과연 이 질문이 그들이 나를 캐스팅하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숙소로 돌아와 고민에 빠졌다.
길게 고민하지 않고도 곧 정답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의 의도를 나는 아직도 정확히 모른다. 나 홀로 판단한 정답이었기에.
춤을 추면서 나는 사지만 움직이는 무용수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걸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질문이 어려운 질문도 아니었다. 자기 모국의 역사에 대해 기본 지식을 갖는 건 당연했다. 그들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는 것은 생각하고 움직이는 무용수인가, 아니면 사지만 움직이는 무용수인가를 판별하기 위함이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그들이 한국 역사가 아니라 한국의 정치, 경제 등등에 대해 물어봤다고 한들 나는 똑같이 묵묵부답이었을 것이다.
낭시 발레단 오디션에 나는 당연히(?) 떨어졌다. 그들이 나를 뽑아주지 않은 것에 나는 감사한다.
불합격해서 감사했던 그 오디션…을 나는 오래 오래 간직할 것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실기과를 졸업하였다. 국내외 춤 경연대회들에서 대상을 여러 번 수상하였으며, 국내외 컨템퍼러리 장르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