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독일 베를린에서 10년 동안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는 김형민씨가 12월 하순 문래예술공장(M30, 서울)에서 공연을 가졌다. 4개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I am not on the Blacklist〉에서는 퍼포먼스 형식이 두드러졌다. 한국 사회의 첨예한 현안이기도 했던 블랙리스트와 검열의 문제를 김형민은 자기 검열의 관점에서 다루었다. 〈Tangible Freedom〉은 자유의 개념을 묻고 찾아가는 워크숍으로 진행되었다. 〈Silent Manifesto〉는 〈Silent Dialogue for…〉로 바꾸어 진행되었다. 〈퍼티그〉는 비디오 영상을 여러 시간 반복적으로 투사하는 프로그램이다. 본란에서는 본인이 직접 기고한 글을 홍보물과 함께 게재한다. - 편집자
연습 1: 〈I am not on the Blacklist.〉
2016년 4월
어느 날 암스테르담. 저녁노을이 조용히 드러나고 강 물결이 아름답게 넘실거리고 있는 암스테르담 중앙역 반대편에 자리했던 스튜디오.
리포트를 쓰고 있던 스튜디오의 조명은 동작감지센서등(Motion Sensor Light)이었다. 사실 모든 건물이 동작감지센서등이었다. 유난히도 리포트가 잘 써내려지던 그날 부동자세로 집중하여 쓰고 있는 나의 상태에 반응하듯 동작감지센서등은 껴졌고 덕분에 내 앞에 펼쳐진 압도적인 아름다운 풍경과 붉은 햇살은 나로 하여금 더욱 더 리포터 쓰기에 박차를 가했다.
‘아… 차를 마시고 싶다… 이 풍경에 차 한잔….’
약 7-8미터 떨어져 있는 다른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차가 담긴 주전자와 컵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장난스럽게 작은 게임을 시작했다. 과연 동작감지센서등을 작동시키지 않고 저 7-8미터 떨어져 있는 책상에 다가가 차를 컵에 딸아 마실 수 있을까?
게임이 시작되고 나는 몸을 낮춘다. 움츠린다. 조용히 최대한 바닥으로 가까이 몸을 밀착시킨다. 동작감지센서등에서 가능한 한 멀어지기 위해… 바닥의 찬기가 몸에 느껴진다. 피식 웃음이 났다.(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다시 마음을 집중. 오른 팔을 움직여야 한다. 숨을 고르고 오른팔의 근육이 뭉개질세라 최대한 몸을 움츠리며 결국엔 오른팔이 갈 자리를 내어 준다. 동작감지센서등 아래서 내 몸이 느끼고 있는 긴장감은 맛있게 앙칼지게 순간 순간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나의 몸은 그 긴장감을 흡수하고 어느새 내 의지 하에 움직이기 보다 동작감지센서등이 작동되는 알고리즘으로 부터 해방, 해방! 해방! 하기 위해 움직이고 변형한다… 그 알고리즘에 대한 의식은 결국 내 몸과 내 사유의 공간으로 침입해 내가 나를 감시하고 시험하게 된다. 손끝부터 작은 내 숨소리까지….
‘더 낮춰! 더 작게! 더 세밀하게! 충분하지 않아! 더! 더….’
…
Motion Sensor Light? Censor Light? Sensor(감지)? Censor(검열)? (웃음)’
얼토당토 않은 질문이 새로운 단어와 관계를 만들어 낸다. 결국 Motion S/Censor Light(동작 감지/검열등)로 이름짓고 이는 내 실험으로 초대된다….
2018년 6월
“ 빨리 걸어봐” “어! 되!”(테입) “ 조금 사람답지 않게 걸어봐.” “ 느낌 없이 걸어봐….” “어… 되! 되고 있어!” “미쳤어…”(테입) “나야? 너야?” “미안… 나야….” (150센티) “ 생각하지 말고 가봐… 그리고 천천히….” “말도 안되..”(테입) “렌덤해… 규칙이 없어….” “ 아니, 규칙이 있어… 하지만 모호해… 굉장히 모호해….” “그게 규칙이야….” (70센티) “ 다시….”
동작 감지/검열등 설명서 안에는 이의 작동 방법이 명확히 설명되어 있었다. 센서로 부터 12미터까지 감지하며, 옆으로 걸을 때 감지하고 센서를 향해 걸을 땐 감지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용할 때는 설명서와 작동방식이 달았다. 내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동작 감지/검열등은 반응하기도 혹은 반응하지 않기도 했다. 한마디로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였다.
‘어떻게 하느냐…’
모호한 동작 감지/검열등의 작동방식을 알아내는 과정은 모호한 검열의 성격을 알아내는 과정과 너무도 흡사했다. 명확한 법칙을 가지지 않고 모호하게 존재하는 검열의 구조와 메커니즘. 결국 나로 하여금 더욱 긴장하게 하고 모든 순간을 의식하게 하는 자기검열의 상태로 접어들게 하는 검열.
2017년 10월 중순 Rabih Mroué와의 미팅에서 그는 말한다.
“검열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검열의 절대적 영향력은 자기 검열은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져오죠. 검열은 결국 검열이 해야 할 일을 나 스스로 하게 하죠. 자기 검열…”(Rabih Mroué)
나 스스로 자기검열이라는 보호망 가운데 나를 가두고 안전하다, 이 선만 지나지 않으면 된다 하고 나 스스로를 만들어 가고 있는지도… 어쩌면 그래서 동작 감지/검열등 아래서 느끼는 어두움의 자유가 그렇게 달콤한지도….(쓴 웃음)
아무래도 동작 감지/검열등과 의 만남은 뭔가 중요한 실마리를 잡아 가게 해주는 듯하다.
2018년 12월 19일
텅빈 공장의 한 공간, 정제되지 않은, 날것과 같은 이 공간, 문래 M30… 이곳에서 일어날 또 다른 practice가 기대된다. 베를린에서보다 더 짐작하기 어려운 공간과 동작 감지/검열등. 언제나처럼 동작 감지/검열등은 우리를 조금은 불안하게 긴장 속으로 몰고 간다. Random! 가늠하기 어려운 작동 방식. 그도 아마 새로운 이 곳에서 어느 정도 몸을 풀고 익숙해져 상황을 감지할 시간이 필요한 듯. 가끔은 정말 이 동작감지/검열등이 사유할 수 있는 어떤 존재는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한국 관객들을 위해 자막을 준비해야 하는 것을 이미 생각하고 있었지만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우리의 대사와 공연, 즉 실제 일어나는 실험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자막은 또 다른 메카니즘을 가지고 공연에 자리해야 한다. 그렇게 현태씨는 자막을 작동하는 오퍼레이터가 아니라 네번째 공연자로 자리하게 되고… 우리의 대화를 기록하고 전하는 자의 관계를 통해 우리는 또 다른 메커니즘으로 상황을 전개하게 된다.
그렇다 이 공연은 계속해서 상황에 따라 변형되어야 한다. 정해진 스크립트와 정해질 수 없는 스크립트 사이에서 알려지지 않은 공간과 관계로 진입….
연습과 실험이 일어나는 공간. I am not on the Blacklist.
김형민 〈I am not on the Blacklist〉 ⓒ김채현 |
연습 2: 〈촉지(觸知)하는 자유〉(Tangible Freedom)
규율과 관습과 교육과 전통의 흔적아래 태어나고 살아가는 우리는 결코 자유할 수 없다.( 벤야민 쉐일리커)
자유는 끊임없는 시도이고 연습이며 정의될 수 없는 ‘상태’이다. Jaywalk은 자유의 상태에 다다르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이다.(김형민)
자유란 많은 것들 가운데 어떤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시작하고 기대하지 않은 것들이 일어나는 것이 자유이다.(한나 아렌트)
자유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뜻은 먼저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뿐 아니라 원하는 것으로 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말한다.(한나 아렌트)
너무나 방대하면서도 내 삶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개념. 결코 표현될 수 없지만 시도될 수 있는 것이라 조심스럽게 정의하며 다가간 자유. 그것에 조금 가까워질 방법은 무엇일까. 몸으로 사유하는 사람으로서 학술적 자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이에 대해 몸으로 실험해 보고 연구할 수 있는 시도가 지금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수많은 지식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주체적으로 내가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근접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자유라는 개념이자 동시에 다가갈 수 없는 꿈처럼 가슴 속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자유에 대한 갈망과 질문들. 만약 이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없고 결코 이를 만끽 할 수 없다면 이를 감지 해 볼 수 있는 방법론은 없을까? 어떤 부담 없이 내가 그 개념을 잠시 스쳐갈 정도의 접근 방법 말이다.
Tanginle Freedom.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감지, 촉지할 수 있는 자유….
워크숍을 통해 나의 Shade-Freedom(Shade Freedom: 인간 사회에 절대적 자유를 부정함과 동시에 자유에 도달하고자 하는 시도를 담은 개념이다. 절대적 자유에 대한 끊임없는 부정은 결국엔 이에 도달하고자 하는 의지와 그에 대한 시도를 강하게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과 한나 아렌트의 자유에 대한 개념 그리고 나의 개인적 방법론이 소개되고 이에 접근하기 위한 몇몇 스코어들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진행되는 가운데 몇몇 이견이 나온다. 그 스코어들로 인해 어떤 제약이 느껴진다는 의견, 그 스코어들에 좀 더 긴 시간이 보태진다면 어떤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의견, 한정된 이 공간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자유가 무엇인지 의문스럽다는 의견, 그늘진 자유를 체험하고 싶다는 의견, 혼돈스럽다는 의견 등등 많은 생각들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의견을 토대로 시도해보자 하면 다른 어떤 이의 접근 방식과 의견을 침해하게 되는 상황이 여실히 드러나게 되었다.
여덟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진 워크숍 아래 보이는 각자의 자유에 대한 견해, 그것으로 도달하기 위한 다양한 갈등들… 상대의 자유에 대한 견해로 인해 침해되는 다른 이의 자유에 대한 접근 방법들.
그렇다면 공동의 자유의 개념을 촉지하는 방향으로 워크숍이 이루어져야 하는가?
Collective Freedom. 가능한가?
나의 스코어를 담은 workbook을 덮었다. 방향을 바꾼다. 한 사람의 생각을 받아 한 문장으로 적는다. 그 생각에 다른 이의 생각을 받아 적어 두 사람의 의견을 적용하고자 했다. 이로 인해 그 문장은 다시 변형된다. 그리고 날카롭게 드러나는 다른 의견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결국 그 완성되지 못하고 태어나지 못한 한 문장만이 우리 가운데 하나의 유기체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검열의 두 가지 성격, 보호와 침해의 관계를 명확하게 본다.
보호와 침해. Protection and invasion.
각자의 자유에 대한 접근 방법을 보호하기 위해 침해하게 되는 상대의 것… 이 두가지 성격은 팽팽하게 대립하고 동시에 동역을 강하게 요구 받고 있는 듯했다.
결국 2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과 한정된 공간 가운데 8분이라는 시간이 남았고 이 시간과 공간을 모든 참가자들이 주체적으로 누리고 시도할 수 있는 자유의 시간으로 제공한다.
“8분이 남았습니다. 많은 이야기들과 논쟁들이 이곳에서 일어 난듯합니다. 많은 시도와 생각들이 이 공간 안에 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각자의 방법으로 이 8분의 시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조용한 가운데 둘은 일어나 무엇인가를 하고 소리도 지르고 발로 방석을 차보는 이도 있다. 몇몇은 자리를 조용히 떠나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를 지켜본다. 털모자를 쓴 한 사람과 긴 머리를 한 한 사람은 서로의 손가락을 연결해 조용히 한 공간으로 걸어간다. 서로를 마주보고 장난스럽게 혹은 수줍게 웃는다. 아무도 모르는 그들만의 게임이 있는 듯하다. 가방을 가로로 맨 어떤 사람은 조용히 공간의 구석구석을 살펴본다. 무엇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듯 하다. 조용히 하지만 명확한 의식을 가지고 살피고 찾는 듯하다.
그렇게 조심히 그리고 스쳐가듯 8분의 자유는 이 공간을 잠시 스쳐 지나가는 듯 했다.
대화 1 (형민:형민)
‘나에게 있어 이 한정된 공간과 시간은 그다지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오히려 이것들을 이용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지붕이 있는 이 공간, 공간의 의미를 제시하는 여러 다자인과 소품들, 규율, 규칙, 제한… 이것들은 나에게 있어서 내가 원하는 것에 도달 할 수 있는 이용가치가 있는 레고 블럭 중의 하나입니다. 나는 생각할 수 있고, 기다릴 수 있고, 움직일 수 있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나에게 있어 이 제한과 스코어 들은 자유를 구체화하기 위한 도구들이고 방법론입니다….’
대화2 (현태:형민)
현태: 난… 나에게 빨강색만 쓰라고 한다면 너무나 자유로울 것 같아요. 왜냐면 그 빨강색 안에 끝없는 우주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형민: 맞아요… 나에게도 그래요…. 제한된 그 빨강색만 쓰지 않으면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거니까요….
욕구불만, 혼동, 결론 지울 수 없는 견해들이 마구 자리를 잡아해 버린 8분의 자유… 많은 혼동과 난무하는 의견과 감정 속에서 나는 가늠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개념을 발견한다.
이 8분의 자유는 계속 시도되어야 한다.
8분 안의 자유. 계속 연습되어야 할 개념.
김형민 〈Tangible Freedom〉 ⓒ김채현 |
연습 3: 〈Silent Manifesto〉를 〈Silent Dialogue for…〉로 바꾸다
12월 21일 아침.
형민: “20대 초의 한 비정규 청년 직원이 공사장에서 처절하게 죽게 된 일이 얼마 전에 있었고 이에 대한 시위가 광화문에서 일어나고 있데… 그리고 세월호 참사 이후 이를 기리는 행렬이 일어나고 있데… 지금 한국에서….”
리자: “아… 흠… 이 묵언의 성명서…이것을 하는 가운데 한국 상황을 등한시하지 말아야 할 것 같아….”
형민: “묵언의 성명서… 이것이 과연 무엇이지? 우리에게 있어….”
….
말하고 싶지만 들릴 수 없었던 생각들이 표현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 그것이면 충분한 거 아닐까… 싸울 필요없이 각자를 표현할 수 있는….”
리자와 나는 21일 아침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사회문제들 앞에 우리가 준비한 ‘묵언의 성명서’ 프로그램에 대해 근본 질문을 하게 되었다.
열악한 일터에서 허무하게 죽어간 그 청년의 죽음 앞에서, 2014년 세상을 등지고 간 그 푸른 새싹들이 남기고 간 추억과 분노 앞에서 우리는 왜 묵언의 성명서의 근본 이유에 대해 질문하게 되는 것일까….
합리적 언어로 설명할 수 없지만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어떤 것에 의해 우리는 반응하고 있었다. 또 지인과의 대화를 통해 접하게 된 한국 사회에 대한 몇몇 견해들…. 그것들을 통해 우리가 준비한 프로그램을 다시 재조명하게 되었다.
강한 의지를 가지고 표명되고 있는 각자의 목소리에 대한 인식, 그리고 이를 소통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선택한 묵언의 의식. 묵언, 성명서 상반된 두 단어를 하나로 모아 밖으로 들리지 않는, 아니 의지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각자의 생각과 사회에 대한 태토를 나눠보자는 취지에서 계획된 묵언의 성명서…. 하지만 이가 행해지는 사회의 정치 사회 문화적 배경을 인식하고 이에 반응하여 우리는 다른 태도를 취해야 한다. 우리가 계획한 것을 포기하는 하는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반응해야 한다. 이것이 한 사회에 대한 존중이고 나 개인의 예술가로서의 책임이다.
그렇다. 우리는 반응해야 한다. 최대한의 존중과 소통으로 반응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작업 윤리이어야 할 것이다. 한국과 독일. 너무나도 다른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이 두 곳, 우리는 독일에서 살고 작업하고 한국에 방문하여 공연한다. 그리고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다른 이 두 사회 안에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으면서 한 사회와 문화에 대한 무지로 인해 실수를 범하지 않는 예술가로서의 바른 윤리를 가지고 우리의 공연과 계획들이 공연되기를 바랬다. 사실 이를 위해 우리는 이 예술가적 윤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 왔다. 공연의 모든 작업과 계획 가운데 예술가의 윤리가 거론 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렇다 우리는 끊임없이 각자의 윤리가 무엇이며 또 그것들이 실현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하고 이에 대해 노력해야 한다.
결국 우리는 매니페스토보다는 ‘Silent dialogue for…’로 바꾸어 이를 진행한다. 8명 남짓의 참가자들이 남긴 이 묵언의 대화들은 영어와 한글로 쓰여는 가운데 계속해서 구글 번역을 통해 나누는 등 서로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이것을 써 내려가는 내내 내겐 잔잔한 감동이 자리했다. 조용한 침묵과 어우러진 Fatigue 사운드가 마치 큰 바다를 항해하는 배에 우리가 자리한 것만 같은 연상을 하게 했다. 모두 ‘피로’의 상태에서 각자의 것을 은유적으로, 직접적으로 표현하며 그 이야기들을 통해 조용히 만나고 있었다.
많은 공백과 주저함, 망설임 그리고 쉼이 자리한 이 대화들 가운데 감추어진 혹은 의지적으로 감춘 개개인의 사회를 대하는 태도와 의식들이 잔잔히 배어 나오고 있었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 의식들은 그 자체로서 강하게 표현되고 있는 각자의 언명으로 자리 되고 있었다.
대화는 잔잔하고 날카로웠으며 미세하고 섬세했다.
각자의 이야기는 있는 그대로 자리를 잡아 갔고 또 조용히 방향성 없이 글은 마무리를 열고 또 다시 미정된 시작을 찾아 떠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희미하고 모호한 마무리로 이 조용한 의식은 마무리되었다. 아마도 어떤 이는 마쳤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혹 어떤 이는 가끔 이 대화창을 힐끔힐끔 들여다 보고 있는지도…
(잠시 스위치를 끈다) 딸깍-!
이건 당신의 선택이었네요!! 그죠!! 한 순간 만큼은!! 당신의 의지였습니다!!
자유는 찰나다! 순간을 포착해서 서스테인시키는 게 예술이다!
서랍에 든 게 없다.
뭐든 의미있는 일을 할 때(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항상 거대한 대한민국이랑 싸우는 느낌이다
색이 색이랑 부딪힐 때. 실패했다.
색이 색이랑 한번 부딪히지도 못하고 실패했다.
이 한 문장을 쓰기까지 15분 정도 걸렸다.
사소한 말 한마디를 쓰는데 이리 큰 용기가 필요한 걸까. 아직도 움츠러 든다. 무슨 얘길 꺼낼지 가닥을 잡으려다 놓쳐 버린(렸)다.
그럴 때랑 그렇지 않을 때. 딱딱하고 말랑하고. 하품을 하려다 삼키고. 야채를 집어 삼키고.
봐야할 것을 모를 때. 모르는게 뭔지 모를 때. 담배가 너무 피고 싶을 때. 구분할 수 없을 때.
신선한 것이 굳어갈 때. 굳은 것이 신선해질 때. 순간이 계속되어 소리가 될 때. 그 순간을 넘길 때.
괴물과 싸우는 나를 볼 때. 나를 보는 괴물을 볼 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것을 모르겠다고 못 하겠을 때.
어느덧 내가 괴물이 되었을 때. 그걸 인정할 수 없을 때. 그걸 인정할 때. 어느덧 그러고 있을 때.
저는 오늘 의자에 앉아있는 자세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되었어요. 다리를 벌려 앉는 자세는 안 좋은 자세라 생각했죠. 물론 이런 생각은 다리를 벌리고 앉는 것을 내가 절대 하지 안는구나를 발견하고 나서였어요. 그전까지는 당연하게 그런 자세를 하지 않았어요. 몸이 그것에 더 익숙해 있더라구요. 조신하게 앉는 것이 내 몸에 더 편한 자세가 되어 있었어요. 오늘 의식적으로 다리를 벌리고 앉아 보려고 했는데 너무 불편하더라구요.
I was seriously injured when I was young.
After that, I often feel like someone is living in my head.
나는 몇 주 전에 긴머리를 잘랐다. 그 결정을 하기까지 엄청난 고민과 자기검열이 있었는지. 머리 길이가 나의 취향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자르겠다고 마음을 먹고 난 후에 그것이 순수한 나의 취향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빗나간 총알이다. 태어날 때부터 과녁은 보이질 않고 영원히 멈추지 않는 (실체없는) 궤도에 올랐다.
색을 고를 때. 김치를 집을 때. 하품을 할 때. 고기를 살 때. 계산대의 담배를 볼 때. 색을 칠할 때.
색을 지울 때. 김치를 집으려다 마는. 하품을 하려다 말고. 야채를 집고. 담배를 끊고. 색을 지울 때.
그럴 때랑 그렇지 않을 때. 지금도 그렇고. 아까도 그랬고. 아마도 앞으로. 그럴 것 같을 때.
- Silent dialogue for… -
연습 4: 〈Fatigue〉(Concept: Mattef Kuhlmey·이현태, Sound: Mattef Kuhlmey, Video Art: 이현태)
끊임없는 검열에 대한 담론…
피로스러운 이 사회에 잔잔하고 젠틀하면서 파괴적고 장난끼 가득한 질문을 던지는 Thomas Brasch의 시 ‘Spielen’. 그의 시와 함께 베를린과 서울의 소리를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진 마테브의 사운드와 이 모든 것을 재조명하듯 자리한 이현태씨 비디오 인스털레이션은 우리가 살아가는 작은 순간순간들을 미세하게 두드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시 한 부분은 우리 팀에게 풀리 않는 숙제를 남겨주었다. 지극히 성차별주의적 자세를 보이는 그의 시의 한 부분은 우리가 검열의 영역과 예술에 대한 보호에 대해 어떤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표명하기를 강하게 요구하는 듯했다.
… …./ 변명을 둘러대며 아무런 처벌 없이 여자 치마를 들출 수 있도록/
혹은
/ 변명을 둘러대며 아무런 처벌 없이 여자 치마를 들출 수 있도록/
혹은
/… … … … … … … … … … … … … … … … … … … … … … … …./
페미니즘적인 시각에서(여기서 내가 말하는 페미니즘은 단순히 여성의 인권을 주장하는 차원의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관점’으로서의 페미니즘을 말한다) 바라보고 더 나아가 여성의 권리 보호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이에 반응해야 하는 큰 의무와 숙제를 가지고 있는 이 현시점에서 남성의 성적 권위가 우월 했던 시대와 그의 태도를 담고 있는 그의 시의 한 부분에 우리들의 생각은 머물 수 밖에 없었다. 70년데 독일 한 유명 남성 작가의 시…그것은 지금 ,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평가받아야 하는가. 예술이기에 검열할 수 없는 것인가, 짓밟혀 있던 여성의 성적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검열 되어야 하는 것인가, 동독 출신으로서 더 이상의 검열은 반대하고 스스로 검열을 행하기를 거부한다는 마테브의 의견, 남성우월주의에 싸여 있었을 당시 쓰였던 그의 글을 그대로 전시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한다는 리자, 유명 남성 예술가들의 성적 만행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는 오늘 한국 사회 안에서 이 문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나의 의견, 예술작품을 감히 검열할 수 없다는 현태씨의 의견. 보호와 침해의 그 치밀한 경계아래 자리한 이 논쟁…전시 마지막 날 까지도 명확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논쟁은 계속되어진다. 이는 우리에게 검열은 계속해서 인식되어야 하며 그에 대한 인식에 대한 연습과 훈련은 계속 이루어 져야 하는 우리의 숙제라는 것을 다시금 경각시켜주는 듯하다.
Mattef Kulmayㆍ이현태 〈Fatigue〉 ⓒ김채현 |
더 치밀하게 의식적으로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실험하고 모색하며 연습한다.
문득 한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가끔 어떤 결론이 나는 것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닌 듯싶다. 이 세상엔 답이 없는 질문들이 수없이 많이 있으니… 다만 이 검열에 대한 담론들과 논쟁이 끊임없이 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것, 그리고 그 다양한 생각을 담을 수 있는 자리가 사회가 존재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닐까. 답없는 질문들이 탄생하고 우리 앞에 자리하는 이유이가 이 때문은 아닐는지. 울그락불그락 우리 사회가 힘겨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도 어쩌면 이러한 것들을 담아내기 위한 훈련이고 연습이지 않을까….’
〈I am not on the Backlist〉 〈Fatigue〉 〈Silent Dialogue for…〉 〈Tangible Freedom〉 그리고 관객과의 대화. 다양한 각도에서 집요하게 그리고 관조하며 접근해 본 각자의 검열에 대한 접근방식과 생각들. 이 모든 것들이 실험과 연습으로 시작하여 끝나지 않는 실험과 계속되는 연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준비된 모든 프로그램은 명확한 결론 없이 오히려 또 다른 질문을 낳으며 마무리 되었다. 명확한 연습이다.
검열과 자유라는 방대한 이 개념아래 내가 취해야 할 자세는 무엇인지, 내가 추구 해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 조금 더 명확해 진 질문 앞에 정답과 해답을 찾기 보다 더 모호하고 더 이해되지 않는 사회속으로 계속 이 질문들을 던지고 나의 사유를 춤추게 한다.
진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