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프랑스 카롤린 칼슨 마스터클래스 참가기
시적인 순간들이 가슴을 적셨다
이선아_재불 안무가
 아뜰리에 드 파리(Atelier de Paris)는 매년 다양한 안무가들을 초청해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한다. 2017년-2018년 시즌에는 카롤린 칼슨(Carolyn Carlson), 데보라 헤이(Deborah Hay), 쟈만 아코니(Germaine Acogny), 토미오 베르제스(Tomeo Vergés) 등 모두 14명의 안무가가 초청되었다.
 그 중 카롤린 칼슨의 수업은 매년 1월에 진행되는 고정 프로그램이고, 가장 인기 좋은 수업 중 하나다. 나는 지난 1월 15일부터 20일까지 카롤린 칼슨이 진행한 마스터 클래스에 참가했다. 짧은 일주일간의 경험이지만, 수업에 관한 정보와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나누고 싶다. 

 



 카롤린 칼슨 마스터클래스는 구성과 즉흥 등으로 진행


 아뜰리에 드 파리는 1999년에 카롤린 칼슨이 설립했다. 아뜰리에 드 파리에서 주관하는 축제인 'June Events' 역시 카롤린 칼슨이 만든 축제다. 지금은 아뜰리에 드 파리와 June Events 모두 예술감독 안 소바쥬(Anne Sauvage)가 맡고 있지만, 아직도 카롤린 칼슨의 영향력은 크다.
 카롤린 칼슨은 2004년부터 2013년까지 프랑스 국립안무센터 후베(Centre Chorégraphique National Roubaix Nord - Pas de Calais)에서 작업 활동을 했다. 이후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국립극장 샤이오(Chaillot - Théâtre National de la Danse)의 협력 예술가(association artist)로 지원을 받아 작업했으며, 지금은 독립단체로 활동 중에 있다.
 카롤린 칼슨 마스터클래스는 6일간 매일 7시간씩 진행되며, 마지막 날은 오픈 공개 수업으로 마무리된다. 수업에 참가한 사람들은 이탈리아, 러시아, 독일, 프랑스 지방 등 다양한 곳에서 참가했으며, 20대 초반부터 70대 초반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대부분이 현재 활동 중인 무용수였지만, 전직 파리 오페라 발레단 무용수, 비주얼 아티스트, 프랑스 오케스트라 바이올리니스트 그리고 가수 등 직업도 다양했다.
 아침 10시부터 12까지는 테크닉 클래스로 트레이닝을 받는다. 쁠리에부터 점프, 그랑쥬떼까지, 6일간 매일 다른 트레이닝을 받았다. 카롤린 칼슨 무용단에서 15년 넘게 활동 중인 무용수 사라(Sara Orselli)가 앞에서 시범을 보이지만, 대부분의 동작을 카롤린 칼슨이 직접 선보였다.




 12시부터 1시 사이는 노트와 펜을 준비하고 동그랗게 모여 앉는다. 카롤린 칼슨은 클래스 안에서 이뤄지는 일들, 대화, 느낌을 노트에 기록할 것을 권했다. 참고로 카롤린 칼슨이 작업하면서 기록한 노트들은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BNF)에 보관돼 있다고 한다. 카롤린 칼슨은 매일 다른 주제를 던져주며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주제에 맞춰 즉흥으로 춤을 췄다. 아침마다 받는 트레이닝은 그날 우리가 춤춰야 할 주제와 연결된 움직임 훈련이었다.
 점심시간, 아뜰리에 드 파리 주변에는 음식을 사 먹을 곳이 없다. 그래서 반드시 도시락을 준비해 와야 하고, 카페테리아 공간에서 함께 먹어야 한다. 자연스럽게 함께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런 환경이 좋았다. 함께 춤을 추면서 눈을 마주치고 웃을 수는 있지만, 무용수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부족했는데, 매일 점심시간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밥을 먹고 나면 다시 동그랗게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다 함께 또는 그룹별로 즉흥춤을 춘다. 셋째 날쯤부터는 그룹이 정해지고 짤막한 안무작을 그룹별로 준비했다.




 카롤린 칼슨 마스터클래스의 메소드


 카롤린 칼슨 수업에는 매일 테마가 있다. 예를 들어 공간, 시간, 모션(motion) 등. 우리는 이 주제를 통해 상상력을 갖고 즉흥춤을 추는 시간을 가졌다. 이 수업 방식의 오리지널 콘셉트는 알윈 니콜라이(Alwin Nikolais)에서 온 것이며, 카롤린 칼슨은 이것을 좀 더 시적인 방법으로 발전시켰다고 한다.
 수업시간에 카롤린 칼슨이 자주 했던 말들은 다음과 같다.

공간. 몸으로 공간을 만들고 그 주변의 빈 공간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시간. 시간은 곧 안무다. 시간은 곧 듣는 것이다.
    우리가 공연을 보면서 지루한 이유는 작품 안의 시간이(리듬이) 제대로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존재감. 현재, 과거, 미래, 나, 그리고 다른 사람의 존재감.
보다. 나의 인식은 곧 비쥬얼이다.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사람은 같은 것을 보지만, 다른 것을 본다.
기억. 나는 기억으로 작업한다.
    우리는 안무를 통해 곧 나의 기억을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피나 바우쉬는 그녀의 고통스러운(suffering) 기억에 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나의 경험, 나의 기억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모션. 모션(Motion)은 서스펜션(Suspension)이며, 서스펜션은 곧 감정(Emotion)이다.
나눔. (Share, Give and Take)
    나는 안무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
    무용은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나의 무용은. 기공, 태극권, 무술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왜냐하면 무술은 자연과 함께 일하기 때문이다.
시적인. 시적(Poetic)으로 남기는 것이 있어야 한다. 내게 무용은 곧 명상이다. 

 



 카롤린 칼슨과 함께한 시적인 순간들

 카롤린 칼슨의 수업에는,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그리고 선생님들로부터 듣지 못했던 무엇이 있었다. 예를 들어 어디를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 내면을 들여다보는 연습. 눈을 아래로 내려 보면서 주변을 보는 연습. “저기, 창문 너머 보이는 나무를 만지고픈 마음으로 달려가 봐” 소리치면서 몸보다 가슴이 먼저인 방법을 알려줬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 그냥 천천히 걷는 시간이었다.
 모두 일렬로 서서 한쪽 벽 앞에 섰다. 카롤린은 저기 눈앞에 보이는 창문 끝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올 때는 뒷걸음으로 되돌아오라고 했다. 앞으로 걸어가면서는 나의 과거를 하나씩 되짚어 보고, 돌아올 때는 그 기억들을 다시 가슴에 담으라고 했다.
 한 사람씩 제자리로 돌아오고 모두가 제 자리로 돌아오기까지 서로가 서로를 기다렸다. 그 사이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누가 과연 이 침묵을 누가 깰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참 무거운 고요함이었다.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잠시 그 침묵 속에 그대로 있었다. 묘한 감정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카롤린 칼슨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기 시작했고, 그 침묵이 깨지면서 현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러시아 무용수가 눈물을 터뜨리며 울기 시작했다. 내 눈에 카롤린 칼슨 눈에도 눈물 맺힌 모습이 보였다. 그 학생을 교실로 나가게 하고 수업을 이어 나갔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모두가 울어버릴 것 같은 순간이었다. 그저 걷기만 했을 뿐인데, 내 내면을 여행하고 돌아온 느낌이었다. 그 순간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카롤린 칼슨은 수업을 끌어 나가는 힘과 열정이 대단했다. 하루 이틀 만에 학생들 이름을 다 외우고, 무용수들의 동작을 세심하고 보고 지적해줬다. 수업을 통해 카롤린 칼슨의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알윈 니콜라이, 로버트 윌슨과 함께 작업했던 이야기, 투어를 다니면서 기억에 남는 사연 그리고 지금도 매일 시 한편씩을 쓰고 있는데, 왜 시를 쓰게 됐는지에 대한 사연과 같은. 무용 역사책과도 같은 카롤린 칼슨. 그녀가 진행한 수업은, 무용 동작보다 시적인 순간들이 가슴에 남는 수업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뜰리에 드 파리 마스터클래스 수업 신청 방법


 마스터클래스 수업 신청은 신청서, CV, 신청 동기서, 얼굴 사진과 움직임 사진을 첨부해서 이메일로 보내면 된다. 카롤린 칼슨이 직접 신청자를 선정하고, 수업 시작 일주일 전 등록비를 내라는 이멜을 받게 된다. 이번에 신청했던 신청자들 중 네다섯 명이 이번에 세 번째 등록이라고 한다. 카롤린 칼슨 마스터클래스는 한번 듣고 나면 또 듣고 싶어지는 매력이 있나보다. (www.atelierdeparis.org
이선아
현재 파리에서 거주중이며 자신의 단체 선아당스(SunadanSe)와 프랑스 안무가 뤽 페통(Luc Petton) 무용단 “Le Guetteur”에서 무용수로 활동 중이다. <춤웹진>과 <몸>지를 통해 프랑스 무용계 소식을 전하고 있다.
2018. 0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