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지난 11월 〈호두까기인형〉 공연연습이 한창일 때였다. 단장님께서 찾으신다는 소리에 사무실로 향했다. 조금은 비장하신 얼굴로 1월 28일에 공연하나가 생겼다고 하시면서 벨기에의 프랑드르발레단에서 〈스파르타쿠스〉 공연을 하는데 볼쇼이와 여러 발레단의 주역들을 게스트로 공연을 올리게 됐고 거기에 동료 무용수 변성완은 크라수스 역으로 나는 예기나 역으로 초청을 받았다며 마침 우리 발레단 공연에도 차질이 없을 때니 다녀오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처음엔 조금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나에게 이런 기회가 오다니 두근두근 가슴이 너무 설렜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 발레단의 〈스파르타쿠스〉 공연 때 트레이너로 오셨던 루슬란 선생님께서 유리 그리가로비치 선생님께 추천을 해주셨고 우리 공연을 보신 유리 선생님께서도 오케이 하셔서 초청될 수 있었다고 들었다. 우리가 〈스파르타쿠스〉 공연을 올렸을 때 공연을 보신 유리 선생님과 루슬란 선생님께서도 너무 좋아하셨다고 들었었는데 아마 그때 좋은 인상을 주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기나긴 <호두까기인형> 공연이 끝나고 3주간의 휴가가 찾아왔지만 휴가가 끝나고 얼마 안되어 공연을 가야했기 때문에 성완이와 나는 곧바로 몸을 만들고 연습에 들어갔다.
드디어 벨기에로 향하는 비행기... 그동안 설렘과 조금의 두려움, 막중한 사명감을 가지고 연습을 했었는데 드디어 한국에서의 연습을 끝내고 이렇게 가는구나 생각하니 후련하기도 하고 벌써 손끝이 찌릿하면서 떨리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10시간 반, 2시간 반을 날아 헬싱키를 거쳐 벨기에 브뤼셀 공항에 도착하였다. 그곳에는 스티븐이라는 사무국 직원이 마중 나와 있었다. 그분이 비행기부터 호텔 많은 것들을 도와주었다고 동행한 발레단 사무국 직원이 들려주었다.
그렇게 약 30여 분을 달려 우리가 머무를 앤트워프에 도착하였다. 늦은 밤이라 거리는 고요했지만 문을 연 레스토랑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유럽이지만 이곳은 밤문화가 조금 발달한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숙소는 부띠끄 호텔로 방들이 모던하면서 조금은 특이한 구조로 되어있었다. 방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책상 위에 상자하나를 발견했는데 다름 아닌 이곳 프랑드르발레단 예술감독인 타마스가 웰컴 초콜렛을 준비해 놓은 것이다.
도착하는 첫날부터 벨기에에서 처음으로 만난 스티븐, 앞으로 묵을 호텔, 발레단의 작은 배려, 모든 것이 다 좋았다. 스타트가 좋은걸 보니 앞으로의 여정이 기대됐다. 그렇게 기대감을 갖고 잠이 들었다. 시차적응이 안 돼 다들 예상시간보다 일찍 일어났다. 첫 조식, 가짓수는 많지 않았지만 정말 알차고 다 맛이 있었다.
든든히 조식을 먹고 우리는 차를 타고 십분 정도를 달려 플랑드르발레단으로 첫 리허설을 하게 되었다. 홀을 둘러보니 5개의 큰 홀이 있었고 재활실도 조금은 부러울 만큼 넉넉한 공간에 재활에 필요한 여러 기구들도 많이 구비돼 있었다. 발레단 인원은 우리의 반 정도인 40여명 밖에 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홀도 재활실도 우리보다 훌륭한 걸 보니 부러웠다. 클래스는 우리를 위해 따로 그쪽 지도위원 선생님께서 해주셨고 리허설은 우리와도 함께 작업했던 루슬란 선생님과 악산나 선생님께서 해주셨다. 여기서 뵈니 더 반갑고 이런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했다.
우린 이렇게 첫 리허설을 마치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며칠 뒤면 우리도 곧 저 무대에 서겠지…하며. 이반 바실리에프 주역의 <스파르타쿠스> 공연을 보았는데 동영상에서도 엄청난 파워가 느껴졌던 무용수인데 실제로 보니 역시 그 에너지는 폭발적이었다. 볼쇼이발레단에서 온 프리기아 역의 아나스타샤는 섬세한 연기에 내가 다시 프리기아 역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크라수스 역에는 뮌헨발레단 조나 쿡이 초청되었는데 조나 쿡의 스파르타쿠스와의 검투신이 기억에 남는다. 그 긴박하고 수치스러운 상황에 처한 크라수스를 너무나도 잘 연기했었다. 예기나 역은 플랑드르발레단 주역이 연기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어려운 테크닉이 많은 예기나를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이 잘 소화했다.
이렇게 흥분된 마음을 안고 벨기에에 와서 처음으로 벨기에스러운 음식을 맛보았는데 이곳 음식은 한국사람 입맛에 잘 맞는 것 같았다.
다음 날에도 우린 플랑드르발레단에서 클래스와 리허설을 했는데 이곳 바닥이 우리 발레단 바닥보다 쿠션감이 몇 배는 더 들어가 있어서 조금 익숙하지가 않아 이틀간의 리허설은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아마 시차적응까지 안되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이틀간의 연습실 리허설을 끝내고 다음날 드디어 무대 리허설을 할 수 있었다. 다행히 시차에 적응하고 컨디션이 돌아와 공연 전날인 두 번째 무대 리허설은 좀 더 안정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드디어 첫 공연! 이곳은 우리와는 다르게 공연시간이 7시 반임에도 불구하고 평소와 같이 11시쯤 클래스를 했고 공연 한 시간 전에 다시 바를 해주는 프리 클래스가 있었다. 평소 하던 습관이 아니어서 조금 어색했지만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동양인의 헤어와 메이크업 해본 경험이 없으셨는지 1시간 반을 헤어와 메이크업을 하는데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다. 의상 역시 우리 팀은 5분이면 채워주고 꿰매주고 하는데 여긴 30분 이상 걸린 것 같다. 역시 한국 사람들이 손이 빠른 것 같다. 이렇게 간신히 공연 시간을 맞춰 조금 힘든 스타트를 했지만 공연은 큰 실수 없이 성황리에 끝이 났다. 커튼콜을 하는데 모두가 기립박수를 하고 있었다. 공연 때는 객석을 볼 수가 없어서 이렇게 많은 관객들이 와있는지 몰랐는데 이날 1800석 중에 1154명이 객석을 채웠다고 한다. 첫 공연이라 긴장도 많이 하고 예민했었는데 끝나고 나니 날아갈 것 같았다.
그렇게 긴장했던 첫 공연날 밤이 지나가고 다음날은 조금의 여유를 갖고 앤트워프의 관광명소인 노트르담 대성당을 구경했다. 그리고 그곳에 잠시 앉아 이틀 뒤에 있을 마지막 공연도 잘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렸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면서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결 여유로운 마음으로 공연장으로 향했다.
이날은 프랑드르발레단 주역인 빔 반레슨이 스파르타쿠스를 연기했고 프리기아 역엔 볼쇼이발레단에서 온 나탈리아가 함께 호흡을 맞췄다. 볼쇼이에서 온 나탈리아는 역시 짱짱한 무용수였고 체구가 작아 반신반의 했던 빔 반레슨은 왜 플랑드르 발레단의 간판스타였는지 알 것 같았다. 작지만 큰 에너지로 인해 무대를 꽉 채웠고, 정말 깔끔하고 안정된 춤을 추었다. 그리고 이날 크라수스에는 크라수스의 교과서라 불리는 볼쇼이발레단에 볼치코프가 연기했는데 그 느낌이 연기라기보다는 그냥 그 사람이 크라수스 같았다. 걷는 것 하나 눈빛 하나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군무들은 인원을 충당하기 위해 예례반에서 20여명의 인원이 동원되었고 우리보다 큰 규모인 볼쇼이와 같은 규모로 〈스파르타쿠스〉를 올렸다. 내가 느낀 군무의 느낌은 우리보다 섬세하고 연기가 자연스러운 반면 우리의 남성적이고 역동적인 에너지를 보여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여러 곳에서 많은 인원들을 동원해서 그동안 함께 호흡을 맞춰오던 단원들이 아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벨기에의 여정이 하루하루 지나가고 드디어 마지막 공연날이 다가왔다. 첫 공연 때 놓쳤던 부분을 캐치해서 준비도 알맞게 하고 마음에도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이란 생각과 이걸 위해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에 더욱 잘하고 싶어 첫 공연 때와는 또 다른 긴장감과 압박감이 있었다. 하지만 나가기 직전과는 달리 무대에 올라가니 오히려 맘이 편해졌다. 걱정했던 부분도 다 잘 해내고 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예기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분명 동양인, 한국인에게서만 나오는 그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아 서양인들과는 다른 내면적인 연기를 섬세하게 표현하려고 했다. 마지막 공연 역시 큰 실수 없이 잘 끝냈다. 더 많은 관중들의 기립박수를 받았고 이날 관객 수는 1554명이었다. 육안으로 보기에는 1800석이 꽉 찬 것 같아 보였다.
마지막 공연이 끝나고 예술감독 타마스와 단원들은 많은 찬사를 보내주셨고 우린 그 곳에서 함께 했던 선생님들과 무용수들과 사진을 남기며 작별인사를 했다. 이렇게 기대 반 부담 반이었던 큰 공연을 끝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비록 8일 간의 일정이었지만 많은 생각과 배움이 있었던 공연이었다. 가게 된 계기도 그렇고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 기회가 올까? 란 의문이 들 정도로 감사하고 행복한 여행 같은 공연이었다. 외국이라는 새로운 곳에 대한 동경으로부터 부러움도 많았지만 잠시나마 내가 속한 소중한 곳을 일깨워준 곳이기도 했다.
훌륭한 무용수들을 보면서 많이 배우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한국발레가 이제는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왔구나란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좀 더 한국인으로서 이곳 대한민국 국립발레단에서 춤출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져야겠다.
한국예술종학학교 무용원을 거쳐, 2007년에 국립발레단에 입단, 현재 수석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다. 〈스파르타쿠스〉 〈백조의 호수〉 〈지젤〉 등 국립발레단의 주요 레퍼토리에서 주역을 맡아 춤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