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비행기가 인천공항을 이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내에 기장 목소리가 짧게 흘렀다. '승객여러분, 해피뉴이어.'
2017년 1월 1일 0시 0분.
조금도 들뜨지 않은 기장의 어투에 나도 별것 아니라는 듯이 레지던시의 첫째 날, 그러니까 내일 있을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했다. 비행기를 타기 바로 전날은 나의 안무작 〈도깨비가 나타났다〉의 막공이었으며 당연히 꽤나 눈물 차올랐던 뒷풀이가 있었다.
2016년 한 해를 통틀어 작업한 긴 여정의 마무리기도 했고, 아직 충분치 않은 깜냥으로 준비한 공연이라 마무리를 짓는다는 것에 대한 의미가 남달랐다. 하여 그에 비례하는 긴 여운을 곱씹어보고 싶기도 한데 뒷풀이 자리에서의 술이 다 깨기도 전에 새로운 작업을 하러 떠나는 짐을 꾸리게 된 것이 무척 속상했다.
공연을 끝낸 다음날 새로운 작업에 착수하는, 이 정상적이지는 않은 일정을 이유로 Attakkalari 레지던시- FACETS에서 0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하기에는 시간이 충분치 않다고 판단되어 〈도깨비가 나타났다〉로부터의 감각과 믿음에 대한 질문을 이어나가는 작업을 하기로 했다.
아따깔라리페스티벌은 2년에 한 번, 남인도에 위치한 뱅갈로르에서 2월 초에 열흘 동안 진행된다. FACETS 국제 안무 레지던시는 이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각국의 젊은 안무가들을 선별, 초청하고 공연분야의 국제적 전문가들과의 교류의 장을 만들어 5주간의 개별 작업과 페스티벌에서의 공연을 지원한다.
올해는 4개국(한국, 벨기에, 방글라데시아, 인도)의 안무가 7명이 이곳에 모였고 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교류부에 지원, 선발되어 합류하였다. 한국 안무가로는 나연우(2013년), 황수현(2015년)이 앞서 레지던시에 참여한 바 있다.
멘토로는 Attakkalari 무용단의 예술감독인 Jaychandran Palazhy(인도)를 비롯하여 안무가 박호빈(한국), Clara Andermatt(포르투갈)가 초청되었고, 드라마트루기에 Andres Morte(스페인), 조명에 Claude Parrat(스위스)와 Antoine Mozer(스위스), 음악에 Marcel Zaes(스위스), Samar Grewel(인도)이 함께 했다. 이들은 멘토와 협업자의 역할을 오가며 함께 작업을 해주었는데 제한된 영어실력 덕에 버벅거리는 대화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달지 않기 때문일까, 부담 없이 의견을 표출할 수 있었고 그들 또한 '젊은 안무가'라는 수식을 제쳐두고 예술가로서의 존중을 친근하게 보내왔다.
과거의 멘토링에 대한 경험과 비교해보면 멘토보다는 협업자에 가깝게 보다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고 또한 안무가의 선택이 가장 우선시되어 멘토링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에서만 이들의 개입이 이루어졌다.
나 같은 경우에 레지던시 2주차에 있었던 실연 프리젠테이션에서 멘토들은 작업이 이미 어느 정도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는 의견을 보내왔고 그 이후로 연습실을 오가다 커피와 수다를 함께하는 사이로 지냈다. 물론 끝까지 함께 고민을 나눠주고 작업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해주었지만 전에 겪었던 멘토와의 관계와는 사뭇 달랐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안무가나 멘토 모두 타지에 모여든, 그것도 겨울에서 여름으로 건너온 여행자의 신분이기도 했기에 즐겁게 마음을 모으고 나눌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곳 레지던시에 지원할 때부터 '인도'라는 장소적 배경을 가장 염두에 두고 있었고, 작업 중에 있던 종교를 포괄한 '믿음'이라는 주제에도 인도의 종교적-문화적 색채가 크게 부합했기 때문에 현장성이 강한 작업으로 흘러갔다.
뱅갈로르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거리에서 물건을, 그러니까 쓰레기를 수집했다. '수집'은 작업의 시작점이었으나 그것을 목표로 삼아 특정한 물건을 찾으러 다니진 않았고 주로 숙소에서 연습실까지 걸어다니며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하나씩 모으고 기록했다.
공연 때까지 약 50개 정도의 물건을 주웠는데 인도에 가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곳의 거리는 물건과 쓰레기의 경계가 없어 보일 지경으로 온통 쓰레기다. 선택의 기준이라 할 만한 것은 없었고 '눈에 들어오는 혹은 마음에 드는, 스스로 운반 가능한' 것을 연습실로 옮겨갔다. 하루는 힌두사원 앞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사원에 있던 커다란 고목나무 밑둥을 잘라 크레인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때 1미터 길이 정도의 나뭇가지가 내 앞에 툭 떨어졌고 나는 당연히 그래야 할 것처럼 나뭇가지를 가져와 작품에 사용하였다.
작업은 수집 – 배치 – 운동, 이 세 단계로 이루어졌다. 수집한 사물들을 조합하여 상징물을 만들거나 (예를 들어 코카콜라병과 빨대, 나뭇잎 접시로 만든 고인돌 형태의 건축물) 균형/생성과 불균형/파괴의 운동성을 만들었다. 춤을 '감각적 운동'으로서 접근하는 원칙이 이 작업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으며 사물의 낯선 조합과 낯선 운동성이 작업의 가장 큰 키워드인 '감각'과 '믿음' 사이의 교각작용이 되었다.
특히 우연히 마주친 사물처럼 우연히 인연이 닿게 된 7살의 소년, Louis가 공연의 시작과 끝에 출연하였는데, Louis는 절대 가 닿을 수 없는 순수함을 가진 아이로서, 동시에 훌륭한 퍼포머로서 자신의 세계를 무대 위에 보여주었고 결과적으로 이 작업에서 던지는 '믿음'에 대한 질문이 어린 소년의 시선을 통하여 더욱 강력해졌다는 평을 들었다.
작품의 전반적인 그림이 지나치게 일찍 나오는 바람에 짧은 필름 작업 또한 함께 진행했다. 많지 않지만 적지도 않은 제작비가 지원되는데 소비와는 거리가 먼 작업이다 보니 거의 쓸 데가 없어서 금전적인 여유마저 생긴 상황이었다. 일정이 무리였지만 레지던스라는 게 해보지 않았던 것을 해보는 기회이기도 하겠다 싶어 팔을 걷어 붙였다.
급하게 필름메이커를 찾았고 FACETS의 매니저들이 직접 수고하여 몇몇을 알아보고 추천해주었다. 프레스콜을 위해 방문하였던 Alliance francaise de Bangalore의 중정이 아주 마음에 들어 촬영장소로 섭외를 요청했고 이는 곧장 디렉터와의 미팅으로 이어졌다. 촬영을 준비하는 과정이 매니저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지체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무용가 아내를 둔 비주얼아티스트 Sudeep Bhattacharya를 촬영감독으로 섭외하고 Alliance francaise에서 친절한 협조와 관심을 받으며 촬영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레지던시의 결과물이 〈Do you believe what you see? Do you see What you believe?〉라는 제목의 공연과 에필로그 정도의 영상작업 'A Choreographic Ritual', 두 가지 형태의 한 묶음으로 발표되었다. (영상작업 'A Choreographic Ritual' https://vimeo.com/200954094)
FACETS프로그램은 Marcel과 Samar, 두 명의 사운드아티스트가 함께 상주했는데 Marcel과는 공연작업을, Samar와는 영상작업을 함께 했다. 2주차에 중간과정을 선보이고 토론하는 자리에서 Marcel과 Samar 모두 한 목소리로 내 작업에 대해 재밌는 의견을 보였는데 이 작업은 음악이 필요 없다, 이미 작품 안에 충분한 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작품에 음악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Marcel과의 대화중에 음악으로서의 'silence'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다가 그가 이 작품에 silence를 작곡해보기로 하였다.
공연 전 극장을 방문했을 때 설치된 선풍기들이 눈에 들어오기에 극장 설비부에 부탁해 작동하는걸 보고 들었었다(인도 대부분의 극장이 가장 더운 철에 수십 대의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음과 함께 공연을 관람한다). 선풍기 얘기를 Marcel에게 했더니 즉각적으로 엄청난 아이디어라 치켜세우며 당장 선풍기를 틀러 극장에 가겠다 했다. 공연에서는 매만져진 녹음된 선풍기 소리와 실제로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가 시차를 두고 함께 사용되었고 우리가 만들고자 한 silence의 극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 내었다는 평을 들었다. 그는 프로그램 책자에 자신의 역할을 'Silence Design'으로 명시하였다. (Marcel의 인터뷰 기사 http://ligament.in/believe-hear.html)
Marcel과는 서로의 지난 작업들을 공유하는 시간을 자주 가지며 빠른 시간 내에 또 다른 협업을 만들어내자는 기분 좋은 재촉을 하기도 하였다.
뱅갈로르에서는 Marcel과 후일을 도모하는 사이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가슴 따뜻한 인연들이 많이 생겼다. 현지에 거주하는 2명의 안무가를 제외한 나머지 5명의 안무가들이 한 집에서 공동생활을 했고(도착하기 전까지는 정말 싫었다) 멘토들을 이웃으로 두었다. 모두가 끼니를 함께 하는 사이가 되다보니 동료라고만 하기엔 그것 이상의 시간을 나누었던 것 같다.
나의 룸메이트 Meghna는 정말 놀라운 친구였다. 잠들기 전 Meghna와 나누었던 끝날 줄 모르는 대화로부터 진하게 남겨진 몇 개의 문장들은 안무를 하는 동안 두고두고 마음을 울리고 또한 통찰력 있게 작동할 것 같다. 어쩌면 나보다 더 훌륭히 나의 작업을 꿰뚫어 관찰하고 적확한 단어를 찾아 안겨준 든든한 지지자였다. 그녀와의 대화는 레지던시에서의 가장 큰 가르침이었고, 가장 큰 즐거움이었기에 떠나는 날 가장 큰 아쉬움이 되었다.
일과 여행, 그 중간 즈음에 위치한 뱅갈로르에서의 생활은 아주 즐거웠지만 일정이 끝날 무렵 들어서는 도무지 피할 수 없는 도시의 소음과 매연으로 피곤이 극에 달했다. 자연에 가까운 인도의 다른 모습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어 공연을 끝낸 날, 신속하고 발랄하게 작별인사를 남기고 함피행 슬리핑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레지던시 식구들이 뒷풀이 자리에 모여 나에게 인사하는 사진이 핸드폰으로 전송되었다.
동트기 전 함피에 도착해 유일하게 열려있는 구멍가게에 차를 마시러 들어갔다가 홀로 인도를 여행 중인 미국인 아저씨(내가 태어난 해에 한국에 와 주한미군으로 3년간 거주했다고 했다)를 만났다. 함께 일출을 보러 사원으로 향하는 길에 그는 자신의 인도에 대한 인상을 이렇게 말했다.
“ They believe in everything. 인도 사람들은 뭐든지 다 믿는 것 같아.”
공연에 대한 이야기는 꺼낸 적도 없었고 그는 내가 안무를 하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일출과 함께 겹쳐졌던 그의 한 문장이 '믿음'을 묻는 이 작업의 여정을 마무리 지어 주었다. 혹은 또 다른 시작의 첫 문장이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공영선
바다와 햇빛과 고래를 좋아하는 여자로 춤 기반의 공연예술일을 하고 있다. 인간과 미래의 가능성으로 '믿음'과 '감각'에 주목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최근 같은 맥락 안에서 <소초리 달 뜬 밤><도깨비가 나타났다>를 안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