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2016년 8월 13일 6시, 부산 영도다리 밑,
소녀가 왔다.
1톤 트럭에 실려서 밀양에서 부산까지 왔다.
포장용 에어캡에 둘러싸여서 울며 떠났던 그 바다, 현해탄에 뿌려진 피와 눈물이 파도가 되어 밀려오는 부산포의 영도다리 아래 부둣가에 몸을 부렸다.
비닐을 풀었다.
검은 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미리 들은 얘기로 슬픔이나 한, 아픔 이런 이미지보다는 맑은 소녀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던 터라 조금은 놀랬다. 검은 몸이라니...
그러나 얼굴만은 맑았다.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있는 듯 무심한 얼굴은 뒤를 돌아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누가 불렀을까?
무대 옆으로 소녀상을 모시고 갔더니 여는 굿을 준비하고 있던 오영숙 선생께서 소녀의 모습이 좀 더 맑았으면 좋겠다하시며 하얀 지화를 한 송이 가지고 오셨다. 가슴께에서 가지런히 모아 쥐고 있는 소녀의 손에 빨간 나비 한 마리가 앉아있는 연꽃모양의 지화를 들려주셨다.
열일곱 고운 소녀의 모습이 되살아났다.
1993년 부산 해운대 바닷가에서 '정신대해원상생대동굿'이란 이름으로 시작해서 열두 번, 그리고 '일본군위안부해원상생한마당'이란 이름으로 바꾼 올해까지, 25년의 세월을 흘러왔다.
위안부로 끌려가 고향에 끝내 돌아올 수 없었던 소녀들의 한을 위로하고 살아계신 할머니들에게 따뜻한 연대의 힘을 전하기 위해 시작한 행사는 죽은 자들의 원혼을 달래는 동해안 별신굿이 뼈대를 이루고 진행되었다. 1박 2일, 밤을 새며 굿을 하면 어느새 멀리 새벽이 바다를 물들이고 오고 있었다.
2년에 한번 씩 하다가, 재정문제로 건너뛴 적도 있지만 끊이지 않고 꾸준히 이어온 것은 일본정부가 강점기의 만행을 은폐, 왜곡할 뿐만 아니라 자위대를 강화하는 등 군국주의의 부활을 획책하는 현실과 맞닿아있다. 그런 현실인식에서 '일본군위안부해원상생한마당'은 일제 만행에 대한 문화적 표현과 행동을 통해 지난 시대 역사적 상흔을 씻어내고 아시아 민중의 참다운 화해와 연대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것이 있기에 출연료에 상관없이 무대에 서고 돈을 따지지 않고 판을 만들고 스피커를 쌓고 조명기를 설치해왔다. 부산지역을 벗어나 서울 청계천에서 한 해도 있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이었는데 용하게도 행사를 시작할 무렵엔 비가 그쳤다.
올해 초 정부는 피해당사자는 물론 전체 국민의 뜻을 수렴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합의하여 소위 ‘화해와 치유의 재단’을 만들었다. 누구와 화해를 했으며 누구를 치유한단 말인가. 분노한 시민들은 일인시위와 소녀상 만들기로 항의의 뜻을 보여주고 있다. 부산에서는 청동소녀상을 제작하기로 하고 제작비 5000만원을 모금을 하고 있다. 그전에 우선 박재열 작가가 나무로 소녀상을 깎아 모시기로 했다. 박재열 작가는 금정산생명축전의 금어, 장승, 민족예술인상 목조각을 성심을 다해 제작해왔고 밀양 송전탑 싸움에서는 온갖 일을 도맡아 해왔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소녀상이 8월 13일, 열세 번째 '일본군위안부해원상생한마당'이 열리는 행사장으로 왔다.
소녀상을 모시고 행사는 시작되었다.
본행사가 시작되기 전 무대 주변으로 거리공연이 열리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미군 생화학실험실 반대 예술행동의 설치 퍼포먼스 〈8부두의 괴물과 좀비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스트릿 댄스와 정기정의 〈회귀〉, 박재현의 〈청춘아... 오늘도 어제처럼 견딘다〉의 춤 공연이 이어진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는 자유로운 공간, 길을 걷다가 바로 무대가 되는, 앉거나 서거나 진지하거나 웃거나 사람들의 표정도 가지가지다. 느슨하게 즐기는 바로 한 순간, 모두는 깜짝, 크게 놀란다. 바닷가 펜스위에 올라간 춤꾼이 그대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사람들은 우루루 몰려간다. 그는 헤엄을 친다. ‘어제처럼 견딘 청춘’이 아니라, 격하게 행동하는 청춘이다. 다행히, 건너편 방파제는 멀지않다...
로큰롤 밴드 ‘브록스 밴드’, 판소리에서 락앤롤 등 장르의 경계가 없는 ‘곱창카레’, 우포늪의 노래텃밭지기 ‘우창수와 개똥이어린이예술단’의 노래 공연에 박수와 발장단이 이어지고 그러는 사이 바다는 점점 붉은 색이 많아진다. 바다 건너 천마산 아래 작은 집들에 점점이 불이 들어오고 있다.
일찍이 버려진 자
이곳을 부는 바람에 의해서
이곳을 부는 숨에 의해서
이곳을 부는 공기에 의해서
별이 된 소녀
(중략)
그러면 가자, 이제 어둠의 끝으로 가자
별 날개 가득 실은 은하로 펄럭이자
수만리 돛으로 펄럭이자
소녀여, 소녀여, 은하의 어머니여
매번 새로운 시를 지어 주시는 강은교 시인의 ‘소녀여, 소녀여’의 낭송을 시작으로 극단 자갈치의 배우 홍순연의 〈열네 살 무자(舞子)〉가 무대를 채웠다. 김선우 시인의 동명의 시를 소리와 춤, 극으로 만든 작품이다. 홍순연은 이 작품을 할 때마다 마치 무병(巫病)을 앓듯 아프다고 한다. 중년을 넘은 여배우가 열네 살 소녀를 연기하는데 연기라고 느껴지는 게 아니라 무대 위에 열네 살 소녀, 무자, 순애의 모습 그대로 왔다.
그러니까 이건 아주 오래된 오늘 얘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순애 할머니는 1993년 수요 집회에서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한 맺힌 인생을 털어놓으셨는데 평생 묻어 둔 얘기를 털어놓고 나니 가슴에 돌덩이 하나 내려놓은 것 같다고 하셨다. 2005년 78세에 하늘로 돌아가셨다)
순애의 이야기를 이어 서라예술단과 오영숙 선생의 청신굿판이 이어졌다. 섭외를 하고 나서 오영숙 선생은 꽤 여러 번 연락을 해왔다. 어떻게 자신이 그 판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아 보였다. 굿판을 차리기 위해 세심한 준비를 한다는 말을 어렴풋이 듣기는 했으나 막상 차린 판을 보니 놀라웠다. 예산은 늘 모자랐으므로 제대로 비용을 지불할 수도 없는데 무대 절반을 채운 반주단, 제상을 수북하게 덮은 하얀 지화, 너무 정교하여 마치 하얀 레이스천으로 온통 둘러싸인 듯한 하얀 용선, 무대 주위를 감싸는 대나무와 넋전들... 정성이 곳곳에 스며있었다. 마지막에 푸른 대에 붉은 물감을 묻혀서 제단의 지화를 붉게, 붉게 칠했다. 일본군의 만행에 스러져간 꽃다운 소녀들의 피로 물드는 것 같았다.
청신마당에 이어 해원상생마당이 펼쳐졌다.
〈광야에서〉를 부르는 바리톤 김창돈의 목소리엔 힘이 실려 있었다. 춤패 배김새의 오방신장무와 지리산 자락에서 환경과 생태를 중심으로 한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 가수 안혜경의 영혼을 울리는 소리는 우리 안의 고요한 자아와 대면하는 신호음이 되어주었다.
스트릿댄스, 킬라 몽키스의 판은 일본군위안부의 문제에 함께 하는 젊은 세대의 뜨거운 열정을 보여주었다. 일상에서 길어 올린 생생한 언어로 삶의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아이씨 밴드의 흥겨운 무대에 이어 창작탈춤패 지기금지의 마당극 〈소리굿 아구〉가 한 판 놀이판을 편다.
〈소리굿아구〉는 남사당 덧뵈기 중의 먹중마당(탈춤에서의 노장과장)의 기본 골격을 그대로 원용하여 한일 간의 문제를 담아내고 있다. 60년대 초 대일 굴욕외교 이후 일본 자본이 한반도에 재진출함에 따라 정치․경제적 침투가 노골화되고 사회문화적으로도 예속화되어가는 현실을 특히 기생관광에 초점을 맞추어 폭로해 보인다. 1974년 3월, 서울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목포 세계마당페스티벌 소개 인용)
이제 판은 마지막 송신마당을 남겨놓고 있다.
망자의 넋을 불러 원과 한을 풀어주는 지전춤으로 송신마당을 열고 이어서 소리꾼 양일동의 긴아리랑이 흘러나온다. 몸 속 마디마디를 울려서 뱉어내는 듯 그의 소리엔 깊은 울림이 있다. 춤꾼 하연화가 소리꾼의 구음에 이끌리며 양 손에 꽃을 들고 소녀상에게로 간다. 오두마니 서 있는 소녀상을 춤꾼은 꽃으로 쓰다듬고 쓸어내리고 온몸으로 보듬는다. 이제 소녀는 거리로 내려간다. 밥과 노동과 사람 사는 이야기가 흘러 다니는 거리로, 사람들 사이로 간다.
관객들은 소녀상에게 다가가 스스로 접은 지화를 바치고 누군가는 돈을 꽂아주고 누군가는 목걸이를 걸어준다. 그렇게 소녀는 우리 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