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2015년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초청 메일 하나를 받게 되었다. 당시 어느 페스티벌에서 작품을 선보일 기회가 있었는데, 나의 작품을 눈여겨 본 한 러시아 무용수가 자신이 기획하는 프로젝트에 안무가로 참여해 줄 수 있는지를 묻는 이메일이었다. 예전에 다른 공연을 통해 모스크바를 가본 적이 있었지만 러시아의 다른 도시는 방문해보지 못한 터라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었고, 이내 그러리라고 답을 보냈다. 그리고나서 해를 넘긴 올 여름 드디어 주러시아 독일문화원의 후원으로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프로젝트는 러시아의 페트로자보드스크에서 2주간의 작업과 공연을 하고,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별도의 워크샵을 진행하는 것으로 계획되었다. 독일문화협회와 독일문화원 등 독일기관의 후원을 받아서인지 프로젝트는 〈Dance Laboratory Experiment Europe〉 이라는 모토 아래 이루어졌으며, 더불어 독일-러시아의 문화 교류 및 현 사회의 이슈·쟁점 등을 다루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한국 정치와 사회 현안들은 고사하고 독일이나 세계정세에 대해서도 매우 어두운 편이라 걱정부터 앞섰다. 그렇게 골몰하던 중 ‘난민’이라는 주제를 떠올리게 되었다. 사실 ‘난민’은 요 몇 년간 내가 독일에 살면서 가장 많이 듣고 말하는 주제인데, 바로 내 주변에 난민으로 독일에 와있는 친구들이 있고, 적극적으로 난민을 위한 캠페인을 하거나 난민의 임시거처에서 일을 하는 친구들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에 많은 난민들이 살고 있지만 그 중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많은 수의 난민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나라이다. 때문에 ‘난민’이라는 주제는 독일 사회 전반은 물론 문화예술계에서도 지속적으로 심도 있게 다뤄지고 있다. 최근 독일에서는 끝없는 난민의 유입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 외에도 그들의 정착을 위해 교육, 건강, 구직, 이동의 자유 등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토론과 캠페인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무용이나 연극을 포함한 공연과 전시활동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2,100만 명, 100만 명, 89만 명, 3770명, 800명. 내가 작품을 위한 리서치를 하면서 마주하게 된 숫자들이다. UN에 속한 국제난민기구 UNHCR(http://www.unhcr.org/refugees.html)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등록된 난민의 수는 모두 2,100만 명, 그리고 그 중 절반 이상은 18세 이하이다. 2015년에만 100만 명을 웃도는 난민들이 유럽으로 유입되었고, 독일에서만 89만 명이 난민으로 등록되었다. 2014년과 비교하면 5배가 넘는 숫자이고, 2016년에는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며, 공식적으로 등록되지 않은 난민의 수를 포함한다면 이 숫자는 얼마나 더 커질지 알 수 없다. 2015년에만 3,770명의 난민이 지중해에서, 800명의 난민이 터키와 그리스 사이의 에게 해에서 숨을 거두었다.
듣기만 해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숫자들, 그러면서도 이 숫자가 갖는 의미와 무게를 감히 내가, 그리고 무용수들이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그러나 생각을 거듭할수록 머릿속에 남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숫자도, 이론적 해결책도 아닌 난민들이 그리고 그들 가까이에서 생활을 하는 이들이 들려준 이야기들이었다. 그들이 등 떠밀려 도망치듯 떠나온 곳, 그들의 가족이 아직도 살고 있는 곳 그리고 언젠가는 그들이 돌아가리라 다짐하는 그 곳의 이야기.
이는 어쩌면 현실적인 문제들에서 동떨어진 감상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난민과 동떨어진 세상 속에 살고 있는 나와 무용수들이 이제까지 난민들이 겪어왔고, 현재도 겪고 있는 그 상황에 공감한다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I think. I thought. I saw you tried〉 라고 제목을 붙인 이번 작품은 난민과 관련한 현안을 해결하려는 구체적인 노력이 아니라, 그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집’이라는 장소를 매개로 자신의 상황을 투영해 볼 수 있게 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자 했다. 무용수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평범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관객은 평범한 시각을 통해서 바라보고, 듣게 함으로써 자연스러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을 작품의 목표로 삼았다.
한편 작품에서는 녹음된 음악을 사용하지 않고, 공연자들이 직접 악기와 목소리로 작품을 채워나가기로 했는데 그 과정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우선 다양한 악기의 조합과 분해를 이용해 소리가 비어있는 부분에서 발생되는 공간감과 집중력, 그리고 음악과 움직임 사이에서 발생되는 조화와 대비를 만들어보았다. 공연자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말이 가지고 있는 리듬감을 살리는 데에 주목했다. 이를 위해 많은 연습시간을 투자하기도 했는데, 의미를 알 수 없는 낯선 언어에서 느껴지는 음악적 요소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대부분의 리허설은 악기를 연습하거나 텍스트를 구성하고 말의 리듬감을 찾는데 소요했는데 다행히 전문 음악가의 도움을 받아 순조롭게 흘러갔다.
작업을 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작품의 결을 맞추는 것이었다. 주로 컨템포러리 댄스 분야에서 활동하는 무용수들과 달리 이번 작품의 무용수들은 피지컬 씨어터나 모던댄스, 연극 등 다양한 분야에 속해있었다. 이들은 자신이 가진 배경과 경험으로 인해 제각각 다른 색깔의 움직임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 장점을 활용하는 동시에 작품 전체의 통일성을 위해 움직임의 결을 찾는 작업을 해야 했는데, 여기에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또한 추상적인 표현이 주를 이루는 무용언어에서 오는 이해의 어려움은 차치하더라도 영어를 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어 설명과 토론의 시간은 늘 두 배가 되었다.
또 다른 어려움은 러시아 특유의 작업 환경이었다. 주로 독일과 서유럽에서 작업을 하는 나에게는 그 조직과 테크니션의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세세한 분업이 익숙한 작업구조로, 모든 작업 과정은 촘촘하게 나누어져 있으며 그만큼 전문성을 갖는다. 하지만 러시아에서는 나의 모든 요구사항들이 극장장 혹은 주최 측의 대표에게 전달된 이후 다시 세분화 되는 구조였기 때문에 이 역시 시간이 두 배로 걸리기 일쑤였다. 결국 나는 프로젝트 기간 내내 담당자에게 나의 요구가 해결되었냐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져야만 했는데,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의외로 느긋하면서도 책임감이 강한 러시아의 국민성 덕분에 그들은 굳이 대답을 하지는 않지만 시간 내에 맡을 일을 끝내놓는다는 사실을.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환경에서 2주간의 짧은 시간 동안 40분여의 작품을 완성한다는 것은 하나의 시험과도 같았다. 또 무겁고 힘든 주제를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것과 그것을 관객 가까이로 가져다 놓는 것 또한 어려운 과제였다.
하지만 이 작업 과정을 통해 나 스스로에게도 집이라는 장소가 주는 의미와 그것이 나의 정체성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집에 왔다고 느끼고, 독일에 돌아와도 집에 왔다고 느끼며, 수백 번은 들었을 “남한에서 왔나요, 북한에서 왔나요?” 라는 질문과 그 질문을 통해 진짜와 가짜의 정체성에서 저울질을 하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기도 했다. 어떤 맥락에서는 나에게 가장 멀게 느껴지는 일들이 나에게 가장 가까웠던 일이라는 사실,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그 사실을 관객에게 들려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춤이 지닌 사회적 과제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작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