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5월 어린이달을 맞아, 춤을 통해 아이들의 삶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며 위로하는 흰댄스의 작업을 소개합니다. 떨어지는 별(별찌)을 보며 소원(비나리)을 빌듯, 이번 작업에 참여한 안무가와 무용수, 공간대표, 사진가, 작가 등 제작진 전원이 자발적인 마음을 모아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공연 수익금 일부를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창작자들이 일궈낸 감각의 장(場), 그리고 그 장 밖으로 흘러넘쳐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아름다운 순환의 여정을 지켜봅니다. -편집자주
1. 별찌와 비나리
〈별찌 비나리〉라는 이름은 두 개의 순우리말이 붙어 있다. 별찌는 떨어지는 별, 유성을 일컫는 옛말이고, 비나리는 무언가를 위해 비는 일, 축원을 뜻한다.
나는 두 단어를 처음 나란히 놓았을 때, 그 사이에 일어나는 작은 해프닝들이 좋았다. 별이 떨어진다는 것은 사라지는 일인데, 우리는 그 짧은 순간에 소원을 빈다. 어떤 사라짐 앞에서 사람이 무언가를 비는 일은, 어쩌면 사라짐 자체를 받아들이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일지 모른다. 별찌의 하강과 비나리의 상승, 떨어지는 운동과 끌어올리는 운동—이 두 운동이 한 무대 위에서 만나는 삶의 자리가 이 작품이다.
〈별찌 비나리〉는 매해 같은 이름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같은 공연은 아니다. 흰댄스가 한 해 동안 탐구해온 작업의 파편들이 매번 새로 직조되어 들어온다. 작년에 있던 장면이 올해는 없을 수도 있고, 작년에 없던 장면이 새로 들어오기도 한다. 같은 이름을 짓는 일은 새 작품을 만드는 것과 다르다. 이미 한 번 지나간 자리 위에 새로운 삶의 파편을 쥐고서 다시 서는 일이다.
이 작품이 처음부터 객석과 무대가 분리된 극장 형태를 택하지 않은 것은 그래서다. 멀리서 본 별찌—삶의 파편은 한 줄의 빛이지만, 같은 하늘 아래 서 있던 사람에게는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별찌 비나리〉는 장소특정형 몰입 공연으로 만들어진다. 무용수들은 전통적인 극장 무대 위가 아니라 관객이 서 있는 같은 공간에서 움직이고, 관객은 객석에 앉지 않고 작품이 일어나는 같은 자리에 머문다. 같은 회차 안에서도, 각자 선 자리에서 보내는 순간은 다르다.

2. 흰이라는 도화지
흰댄스의 '흰'은 하얀 도화지를 뜻한다. 비어 있음, 무(無)의 상태. 어떤 색으로든 칠해질 수 있고, 어떤 무엇도 될 수 있는 가능성의 자리.
우리는 흰이 하나의 색으로 규정되는 단체가 아닌 계속 변화하고 확장되는 감각의 통로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가 만드는 춤이 무대 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에 작은 생명력처럼 연결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작품의 메시지뿐 아니라 우리가 걸어가는 방식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자 태도가 되었으면 한다.
흰이라는 이름은 그래서 결과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만드는 것에 가깝다. 개개인의 상상과 공상, 놀이와 실험, 그 모든 것이 그려질 수 있는 도화지. 하나의 색에 갇히지 않는 장—세계를 여는 일.
〈별찌 비나리〉는 흰의 비전이 드러나는 작업이다. 흰댄스의 공동디렉터인 김천웅과 나는 평소 각자의 작업에서는 한 명의 감독과 어시스트로 철저하게 분리된 역할을 맡는다. 누군가의 작품에서는 다른 한 사람이 보조하는 자리에 선다. 하지만 〈별찌 비나리〉에서만큼은 다르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작업에서 길어 올린 조각들을 흰이라는 도화지 위에 함께 펼쳐놓고, 그 위에서 구성을 함께 짓는다.
이것은 우리가 예술을 바라보는 방향이 같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춤이 최고의 '무엇'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행위 자체가 주는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움, 아이같은 마음으로 몸의 놀이를 계속 발견해 가는 과정이라는 것. 같은 움직임이라도 그 안에 살아있는 감각과 영혼이 담기면 전혀 다른 차원의 움직임이 된다는 것. 가장 아름다운 움직임은 몸과 감각이 솔직해지는 순간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그렇게 투명하게 삶과 삶이 연결되는 장을 만드는 것.
이 믿음을 공유하는 두 사람이 한 무대 위에 자신의 사유들을 내놓을 때, 그 작업은 한 사람의 작업이었다면 도달하지 못했을 자리로 간다. 천웅과 내가 가진 서로 다른 매력,그가 가진 결과 내가 가진 결이 한 무대 위에서 섞일 때, 우리는 종종 우리도 예상하지 못한 면모를 보고, 보러온 이들과의 관계성으로 예상치 못한 무대의 가능성을 본다. 그게 〈별찌 비나리〉를 매년 다시 짓고 싶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다.

3. 2025년, 첫 별찌
처음 〈별찌 비나리〉를 무대에 올린 건 2025년이었다. 첫 별찌는 무엇보다 '극장이 아닌 공간에서 관객과 같은 자리에 서는 것', 춤으로 이 추상예술로 삶이 연결되는 시간이 어떻게 가능한지 시험하는 작업이었다. 우리는 무용수가 정해진 무대 위에서 움직이고 관객이 객석에 앉아 그것을 바라보는 익숙한 구도를 깨뜨리고, 관객이 밟고 있는 같은 바닥 위에서 공연이 일어나면 무용수의 몸과 관객의 몸 사이에는 어떤 일이 생기는가. 그것을 알고 싶었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이 남긴 말 중에 오래 남는 것들이 있었다. "무용수의 몸과 관객인 내 몸 사이에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고 한 사람이 말했고, "시작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는 설정 속에서 내 의지와 무관하게 공연 속으로 엮여들어가고 있었다"고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어떤 관객은 "흰댄스의 공연을 볼 때마다 나는 그동안 내가 잃어버린 마법, 내게 아직 남겨진 마법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이런 반응들은 우리가 시도한 것이 적어도 한 방향으로는 작동했다는 신호였다. 동시에 첫 별찌가 남긴 질문들도 있었다. 공간을 더 깊이 활용할 수 있는 방법, 무용수의 호흡과 라이브 보이스, 미세한 움직임과 이미지, 다이나믹들로 공간 전체를 입체적으로 채우는 방식. 첫 번째 시도가 열어준 자리에서, 다음 별찌가 품을 수 있는 가능성들이 보였다.
별찌가 한 번의 공연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감각은 그때 생겼다.

4. 같은 이름으로 다시 짓는다는 것
한 번 끝낸 작품을 같은 이름으로 다시 짓는 일은, 새 작품을 만드는 일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결정이다.
새 작품은 비어 있는 자리에서 시작한다. 어떤 이름을 붙일지, 어떤 형식으로 갈지, 무용수를 어떻게 구성할지—모든 것이 백지 위에서 결정된다. 반면 같은 이름을 짓는 일은 이미 한 번 지나간 자리 위에 다시 서는 일이다. 남아 있는 것들, 떠나간 것들, 새로 들어오는 것들이 한 무대 위에서 만나게 하는 일.
2026년의 별찌가 2025년의 별찌와 다른 가장 큰 차이는 그 사이 천웅의 〈망고〉라는 작품이 세상밖에 나왔고, 나의 〈당신의 낙원〉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각자의 작품들—삶의 파편들을 기록해 나갔던 시간들을 토대로 2026 별찌를 짓는 일이 시작되었다.
같은 이름 위에 짓는다는 것은, 작년에 못다 한 말을 다시 할 때도, 혹은 지금 현재에 놓인 우리를 보여주기도 하는 일이 되기도 했다. 별이 떨어지는 일처럼 삶의 찰나를 한 번의 공연으로는 다 말할 수 없다. 매번 떨어지는 것들은 매번 다른 하강이고, 그것을 보내는 우리의 마음도 매번 다른 마음이다. 별찌 비나리라는 이름은 그래서 작품의 제목이라기보다, 흰댄스가 매년 다시 돌아오는 자리의 이름에 가깝다.
5. 별, 그리고 아이들
이번 〈별찌 비나리〉부터는 공연 수익금의 일부를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
이 결정이 작품 바깥에서 따로 붙은 결정이었다면 글에 쓰지 않았을 것이다. 단체의 사회적 책임 같은 이야기로 풀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작품 안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난 결정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별찌의 초연부터 공간을 후원해주신 Layer Studios의 허준성 대표님과 〈별찌 비나리〉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이 작업이 매년 이어지는 일이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우리가 좋은 이들의 도움을 받는 만큼, 우리의 춤도 더 좋은 곳에 조금이라도 닿는 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마음은 흰 프로덕션 모두에게 한결같이 닿았다. 김재민 포토그래퍼님과 Viia Yeon 작가님은 이번 일년동안 흰댄스를 라이브 드로잉과 사진으로 담아가실 프로젝트의 파편들을, 공연 프로덕션 일부에 자발적으로 전시로 내보이며 이 후원과 공연을 풍성하게 연결해주셨다.
별찌-비나리-아이들. 우리가 무대 위에서 보내는 순간과, 병상에서 자기 별을 지키고 있는 아이들의 시간이 어딘가에서 만나기를. 우리의 시간이 아이들이 별을 지키는 일과 멀지 않다는 것을, 작품이 끝난 자리에서도 누군가의 삶에 작은 생명력처럼 연결되는 일이기를 바란다.
6. 이번 해의 시작, 별을 보내고 나서



두 번째 별찌가 끝났다. 끝난지 얼마 안되어 아직은 조금 더 지나야 어느 곳을 지나왔는지 더 자세히 알 수 있겠지만, 이번에는 모든 회차가 공연 전 매진되었고, 전시 작품들도 팔려나갔다. 숫자로만 보면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다행이었던 것은 관객들의 행복한 시선으로 자리를 떠났다는 점이었다. 한 관객은 〈별찌 비나리〉의 움직임에 대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닿으려는 몸짓을 믿고 싶어진다. 바닥을 구르는 발의 진동이 진짜고 손끝의 기운이 진짜라고" 적었다.
우리의 작품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모두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만큼 얼마나 그것이 큰 욕심인가. 하지만, 우리가 딛고 나가는, 만들어가는 이 흰의 세계-장에서 우리가 장소특정형 공연을 하며 커뮤니티적으로 만들려고 했던, 예술 종사자들이 아닌 모두가 뒤섞여 사람들이 춤을 보고, 맛보고 듣고, 즐기고, 함께 춤추고 그리고 남은 이 순환의 고리는 흰이 앞으로 일 년 해를 나아갈 힘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작품으로 바라보았을 때 장소특정형 공연에서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의 시야를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 즉흥적인 상호작용 안에서 무용수들이 매 회차마다 다르게 움직일 때, 작품의 일관성과 매 순간의 살아있음 사이의 균형은 어디에 있는가. 같은 이름으로 매년 다시 짓는 일이 작품을 깊게 만드는 일인지, 아니면 한 번 끝낼 수 있었던 것을 끝내지 못하게 만드는 일인지.
이런 질문들은 한 번에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다음 별찌에서, 그 다음 별찌에서 조금씩 변주해가며 답할 일이다. 답이 없는 채로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는 것이 모든 창작이 가진 숙명이라면, 같은 이름 위에 작품을 또 짓는 일은 그 숙명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한 방식인지도 모른다.
별-삶의 순간을 다 보내지 못한 순간은 늘 있고, 다 비지 못한 마음이 있고, 다음에 다시 만들고 싶은 자리가 있다. 그 비어있음이 다음 별찌를 부른다. 흰이라는 이름이 결국 하얀 도화지를 뜻하는 것처럼, 별찌라는 이름도 매번 그 위에 다시 시작된다.
내년에 같은 이름의 또 다른 별찌가 올라올 것이다. 우리 삶이 이번 한해에 또 어디서 떨어질지, 어떤 빛으로 상승할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 역시 내년을 만드는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같은 이름으로 매번 다른 별을 보내는 일—그것이 우리가 흰이라는 도화지 위에서 하고 싶은 일이다.
흰댄스(HEEN DANCE) 예술감독, 안무가. 주요 작품으로 〈연지〉, 〈Universe In Me〉, 〈굴(Gul)〉 등이 있다. 2026 포스트 아티스트상 수상, 2026 춘천국제공연예술제 〈별찌 비나리〉, 2026 모다페 콜렉션 〈연지〉, 2025 파라다이스 아트 나잇 〈당신의 낙원〉 갈라 안무, 2024 크리틱스 초이스 〈연지〉 선정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