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현 시점 글로벌 문화산업으로 각광받는 케이컬쳐(K-culture)는 음악, 춤, 패션, 뷰티, 드라마, 영화, 음식을 넘어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Life style)의 범주까지 확장된다. 또 폭발적인 세계문화자본의 힘이 한국 대중문화 산업으로 집중되면서 국내 순수예술, 전통예술 분야에서도 해외에 노출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서 케이컬쳐를 받아들이는 흐름이다.
그러나 한국춤에서 ‘한국’의 의미에 대한 해석이 여전히 분분하듯, 케이댄스(K-Dance)에서 ‘K’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규명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이 모든 변화의 시발점이었던 케이팝(K-pop)으로부터 그 의미를 탐색한다면? ‘K’는 특정 문화산업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 팬의 사랑을 얻기 위해 특화된 한국식 브랜딩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즉 ‘K’는 ‘코리안(Korean)’의 앞 글자를 떼어낸 것이지만 실제로는 한국 고유의 특성이나 국적을 대변하지 않는 허구적이면서도 유동적인 꾸밈말인 것이다.1)
한국의 무용계가 정부 정책의 지지를 얻어 케이댄스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초국적이며 개인적인 취향으로 인기를 얻은 ‘K’의 실체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춤이 진정한 세계적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애정 어린 마음으로 바라고 바라지만, 이것이 단발적인 이슈를 넘어 지속적인 확장과 변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안을 날카롭게 파악하고 방향성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K’의 특성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5월 23일, ‘새로운 국제문화정책으로 세상과 현장을 연결한다’는 취지의 ‘국제문화정책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한국이 글로벌 문화 중추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4대 추진전략과 8개 핵심과제를 수립할 것을 공식 발표한 것이다. 중심내용은 ‘국제문화정책 지원체계혁신, 국제문화정책 지원사업 구조 전면 개편, 케이-컬쳐 해외 확산 전방위 지원, 국제문화정책 협력 강화’이다.2) 표면적으로는 세 번째 과제에서 케이컬쳐 관련 해외 확산 방향성이 두드러져 보이지만, 사실상 전체 과제에서 대중음악산업의 인기로부터 시작하여 케이컬쳐로 확산되고 있는 국제문화흐름을 겨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민간에서 다소 분절적으로 이루어져온 문화사업을 통합하여 제도적 차원에서 지원하고, 관련 축제의 명칭 역시 일원화하려는 시도는 국제문화 확산의 효율성 면에서 필수적인 단계이다. 또 이러한 변화가 관련 문화예술분야 종사자들에 긍정적인 영향력으로 작용하여 국제교류에 적합한 콘텐츠 창작, 전문 인력 양성, 관련 연구의 심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점은 괄목할만하다. 다만 이 모든 변화의 시발점이었던 케이팝의 본질을 생각할 때, 'K'는 한국을 의미하고 ‘Pop'은 미국 대중음악을 의미한다는 점, 실질적으로 한국 고유의 음악적인 정체성을 찾기는 어렵다는 점 역시 고려해야 한다.
‘K-community festival', 케이팝에 열광하는 팬들의 모습, 'K-community festival', 한국춤을 학습하고 공연하는 팬들의 모습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
본래 국내에서 가요라는 용어로 불리던 한국 대중음악은 1990년대 중반부터 가속화된 기획형 아이돌 그룹의 국제적 인기와 함께 케이팝의 용어를 획득하게 된다.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아이돌 가수 ’H.O.T‘는 1998년부터 일본에 음반을 발매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한국 대중음악(Korean Popular Music)의 약자로 해외에서 먼저 케이팝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0년대까지도 국내에서는 케이팝이라는 용어를 좀처럼 사용하지 않고 중국, 일본, 대만 등지에서 ‘한국 인기 가요’에 대한 번역어로서 사용하는 양상이었다. 그리고 2010년대에 들어 한국 음반 산업 및 관련 콘텐츠의 인기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그리고 대중가요 매니아층의 향유 문화를 넘어 각계각층이 모두 인지하는 일반적인 향유 문화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국내에서도 ‘K-pop’의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3) 동시에 이들 음반 산업 및 콘텐츠 시장에서 팬덤의 형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서 ‘가수’, ‘스타’, ‘아티스트’의 신체가 수행하는 ‘댄스’, ‘안무’, ‘퍼포먼스’가 케이팝댄스(K-pop dance)'라는 이름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케이팝의 조상으로 받아들여지는 ‘미8군쇼’의 특성을 보아도 근대 전후의 한국인들이 즐겼던 고유의 노래와 춤가락으로부터 연결성을 찾기란 어렵다. 1960년대 미군기지 위문 무대이자 국내 연예인의 데뷔 무대 격이었던 ‘미8군쇼’의 주요 관객은 아메리칸 팝에 익숙한 미군이었다. 따라서 미8군쇼에서 흥행했던 음악과 춤은 당시에 인기몰이 하던 아메리칸 팝의 곡을 그대로 모사하거나 개사하는 형식이었고, 한국 방송무대에서 데뷔한 가수들 역시 미국 현지의 팝 무대로부터 영향을 받아 재즈(Jazz), 컨트리(Country), 로큰롤(Rock'n'roll) , 알앤비(R&B) 계열의 음악과 그에 맞는 춤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즉 케이팝은 미국에서 발생한 대중음악과 댄스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으며 이것이 점차 국내 사정에 적합한 방식으로 브랜딩되는 전유의 과정을 겪으며 대형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케이팝 문화로 발전한 것이다.4)
엄밀히 말해 정부의 제도적 차원에서 전략화되고 있는 케이컬쳐는 그 시발점과 근거가 케이팝에 있으며, 케이팝의 본질이자 성공 요인은 해외의 문화예술을 영민하게 흡수한 방식에 있다. 케이팝에서 한민족이 지닌 전통적 가치나 예술문화의 우수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는 매우 흐릿하다. 오히려 소비자 취향을 저격하고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수입하고 융합하는 자세로 자생해온 민간의 브랜딩 전략으로서의 특성이 강한 것이다.
춤의 경우를 보아도 국내에서 창작하여 국제적 인기를 얻은 춤 유형은 국가 차원의 브랜딩 전략으로서 지지받은 춤이라기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이며 초국적인 취향을 저격하고, 한편으로는 전에 없던 취향을 만들어낸 민간의 브랜딩 전략으로 창작된 춤이 대부분이다. 한국은 춤의 장르를 막론하고 다양한 유형의 춤문화가 발달하여 문화자산으로서 독보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국가임은 틀림없으나, 그 중 케이컬쳐의 하위 문화유형으로서 실질적인 인기를 얻은 춤은 대부분 대중춤이고 컨템퍼러리 댄스의 맥락에서 예술춤 중 일부가 전통을 안무도구 내지 움직임 메소드로서 활용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선보여 국제적인 주목을 얻는 경우가 있다. 상대적으로 한국 고유의 문화역사적 가치와 예술성을 강조하며 창작, 전승되고 있는 한국전통춤 내지 한국창작춤은 정부 및 유관기관의 지원을 통해 국가 홍보를 위한 고차원의 문화예술 브랜딩으로서 활용되는 방향성에 무게를 실어왔다.
따라서 한국춤의 입장에서 케이댄스의 긍정적인 방향성 설정을 통해 한국 춤문화예술에 전에 없던 혁신적인 변화를 꾀하기 위해서는 ‘K'의 실체가 한국 고유 문화예술이 아닌, 해외의 문화예술 및 초국적 취향의 수용과 융합에 있다는 점을 직시하고 방향성을 설정해야 할 것이다. 대중문화산업의 생태계를 적극 수용해야 하며, 민간의 브랜딩 전략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한 ‘K’의 실체를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이고위감(以古爲鑑)! 과거의 춤으로부터 지혜 얻기
한국춤이 케이댄스로서 발돋움할 수 있는 방향성을 감히 단언하기란 어렵지만, 약 100년전 폭넓은 인기를 얻었던 우리춤으로부터 일말의 지혜를 얻을 수 있겠다. 한국 근대 신무용은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인기를 얻은 춤 유형이자 문화로,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근대 개화기의 특성을 그대로 흡수한 춤이다. 무용시, 무용극의 형식을 빌어 자연물, 전통설화, 민속문화 등의 소재를 즐겨 사용했으며 서구적 예술창작 기법을 토대로 한 모던댄스의 특성과 한국 전통의 움직임 기법을 적극적으로 혼합한 것이 특징이다. 조선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프로시니엄 형태의 무대를 토대로 안무, 공연된 춤이었으므로 전통의 한국춤 움직임을 확장하고 정리하는 변화가 두드러졌다. 또 안무가의 사상과 철학을 관철시키는 춤이나 움직임 방법론보다는 개인 무용가의 스타성을 강조하고 당대의 유행에 민첩하게 반응하는 활동이 주를 이루기도 했다. 1세대 신무용가인 최승희, 조택원, 배구자의 경우 무용가 뿐만 아니라 영화배우, 가수, 모델, 사회운동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아 한국 무용사에서 전례없는 사건이자 인물로서 회자되고 있다.
신무용이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의 공연 시장에 입성하면서 변방의 조선을 알렸던 사실은 현시점 케이댄스로서 거듭나고자 방향성을 찾고 있는 한국춤의 모범사례로서 가치있다. 무엇보다도 신무용이 활발히 향유되던 시대는 일본 식민지 시대로서 사실상 무정부 상태였으므로 국가 홍보를 위한 브랜딩 전략이란 불가능한 시대였다. 즉 신무용은 신식 고등교육과 예술교육을 수혜한 개인 무용가의 자체적인 브랜딩 전략이 빛을 발한 결과물이었다. 또한 신무용은 예술가, 지식인, 일반 대중 모두의 사랑과 관심을 얻는 데 성공한 춤으로서 예술무용도 대중무용도 아닌 모호한 위치에 있었다. 무용에 대한 철학과 안무기법은 고차원적인 예술관과 민족주의로부터 유래했으나 무대 연출에 있어서는 당시 유행하던 신민요 음반, 클래식 음반, 양장과 한복이 혼합된 의상, 일상과 자연의 소품을 자유롭게 활용한 것이다. 그 결과 안무가이자 무용수로서 활약한 1세대 신무용가들은 무용을 넘어 문화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명인으로서 존재했으며 그들이 창조한 제자 양성 시스템으로서의 무용연구소와 공연기획사는 민간의 브랜딩 사업에 견줄만큼 전문적인 형태를 띠었다.
당시 신무용의 유형으로 창작된 수많은 작품들은 구조와 특징 면에서 통일성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다채로운 소재와 서사, 연출 기법을 보이는데 그 이유는 넓은 대중의 흥미를 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봄처녀〉, 〈처녀총각〉, 〈목동과 처녀〉, 〈사랑가〉의 경우 한국 전통의 인물상과 자연을 표현함으로써 빠른 변화를 수용해야 했던 근대인들이 품었던 과거에 대한 동경을 작품에 담아냈다. 〈알쏭달쏭〉, 〈밤길〉의 경우 무대에 등장한 인물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한 명인지 두 명인지 정확히 알아채지 못하도록 연출하여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작품 말미에 호기심을 해결해주는 역할을 했다. 〈초립동〉, 〈신로심불로〉의 경우 무용수가 자신의 성별과 나이를 잊은 듯 소년이나 노인을 감쪽같이 재현함으로써 놀라운 연기력을 선보였으며 〈보살춤〉, 〈검무〉, 〈무당춤〉, 〈장고춤〉 등에서 아시아의 미를 타자적 관점에서 표현함으로써 이국적인 문화예술에 관심이 높아지던 해외 공연시장의 요구를 충족시켰다.
〈보살춤〉5) 6) |
이처럼 신무용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태동한 과거의 춤 유형이지만, 한국무용사에서 전례없는 국제적 인기와 상업적 성공을 일군 춤이라는 점에서 그 혁신성과 전략을 눈여겨볼 만하다. 현재 정부에서 제도적으로 전략화하는 케이댄스의 방향성은 국가유산으로서의 전통춤, 대중춤, 예술춤 모두를 아우르고 있어 구체적으로 지지하는 대상이 다소 모호한 상태다. 긍정적으로는 국내에 존재하는 수많은 춤 유형 모두가 케이댄스로의 방향성을 따라 제도적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부정적으로는 정리되지 않은 춤의 혼재 속에서 그 어떤 춤도 본연의 가치를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할 경우도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한국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케이댄스의 전략화 맥락을 파악하고 글로벌 문화산업의 성공요인인 ‘K’의 실체를 인지함으로써 차별화된 방향성을 재설정할 때, 비로소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을 것이다.
**본고의 일부는 2024년 6월 15일, 댄스&미디어연구소 국내학술심포지엄 ‘K-문화시대의 춤’에서 발제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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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수완(2016), 케이팝(K-Pop), Korean과 Pop Music의 기묘한 만남, 인문논총 제74권 제1호.
2) 문체부보도자료, 국제문화정책 추진전략 발표 보고서, 2024.5.23.
3) 신현준(2013), 가요 케이팝 그리고 그 너머, 돌베개.
4) 유화정(2023), 실용무용에서 ‘코레오그래피’의 개념과 현재적 쟁점, 무용예술학연구, Vol93, No4.
5) Judy Van Zile, 2001, Perspectives on Korean Dance, Wesleyan University Press, p.194
6) 정병호, 1995, 춤추는 최승희, 뿌리 깊은 나무, p.143
유화정
어릴 적부터 춤춰온 몸의 기억을 머리와 손끝으로 전달해 좋은 글을 쓰고자 한다. 이화여대 무용과 초빙교수, 국립극장 공연예술아카데미 강사,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 방문학자 역임하였으며 현재 댄스&미디어연구소 이사이자 충남대학교 강사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