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춤과 권리(16)
줄거리와 이름, 그리고 저작권과 부정경쟁행위
이예희_변호사

■ 사례
무용 공연을 제작하는 A 극단은 새로운 무용극 제작을 앞두고 작가 B와 무용극의 등장인물 및 줄거리에 대한 기획과 구체적인 극본 집필을 의뢰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하고자 하였다. B는 A 극단과 관련 계약을 체결하기 전, 대략적인 줄거리 및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 성격을 정리하였고, 계약 체결 과정에서 A 극단에게 위 자료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A 극단은 B와 계약 조건이 맞지 않아 결국 계약을 체결하지 아니하였다. B는 A 극단에게 자신이 제안한 줄거리 및 등장인물 이름을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하였으나, A 극단은 추후 B가 제안한 줄거리를 바탕으로 A가 설정한 이름과 성격을 가진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무용극을 제작하였다.

이 경우 B가 A 극단에 대하여 제기할 수 있는 이슈는 무엇이 있을까?


■ 해설

□ 저작권 침해 여부


저작권법에 따르면, 저작권은 창작과 동시에 발생하며 아무런 절차나 방식을 요구하지 아니한다(저작권법 제10조 제2항). 따라서 B가 A 극단에게 제공한 줄거리와 등장인물의 이름이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저작물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그러나 저작권의 보호 대상이 되는 저작물이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말한다(저작권법 제2조 제1호). 따라서 인간이 창작한 모든 작품이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되기 위하여는 아이디어가 아닌 ‘표현’에 해당하여야 하며, 그 표현은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하였어야 한다.

따라서 비록 B가 줄거리를 스스로 창작하였더라도 소설 등에 있어서 어떤 주제를 다루는 데 있어 전형적으로 수반되는 사건이나 배경 등은 아이디어의 영역에 속하는 것들로, 저작권의 보호 대상이 되는 표현 형식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대법원 2000. 10. 24. 선고 99다10813 판결 참조).

등장인물 또한 시각적인 표현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 표현된 것이 아닌 단순히 추상적인 인물 유형의 아이디어에 불과하여 독자적인 저작권을 인정하기 어렵다(위 판결 참조).

아울러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명칭은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하기에는 짧은 문구로 이루어져 있어 저작물로서 보호받을 수 없다(대법원 1977. 7. 12. 선고 77다90 판결 참조).

□ 부정경쟁행위 해당성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의 표현에 해당하지 아니하여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되지 못하더라도, B는 자신의 어떠한 투자나 노력에 의하여 줄거리나 등장인물의 명칭, 성격 등을 창작하였고, 이러한 줄거리나 등장인물이 경제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에 따라 보호될 수 있다.

우선 거래교섭 과정에서 타인의 아이디어를 부정하게 사용한 경우,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차)목의 부정경쟁행위에는 해당할 수 있다.

부정경쟁방지법은 사업제안, 입찰, 공모 등 거래교섭 또는 거래과정에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타인의 기술적 또는 영업상의 아이디어가 포함된 정보를 그 제공목적에 위반하여 자신 또는 제3자의 영업상 이익을 위하여 부정하게 사용하거나 타인에게 제공하여 사용하게 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차목). 거래교섭 또는 거래과정에서 제공받은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아이디어를 정당한 보상 없이 사용하는 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규정이다.

여기서 정보의 보유자가 그 정보의 사용을 통해 경쟁자에 대하여 경쟁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거나 또는 그 정보의 취득이나 개발을 위해 상당한 비용이나 노력이 필요한 경우 보호대상이 되는 정보에 해당될 수 있으며, 거래교섭 또는 거래과정의 구체적인 내용과 성격, 아이디어 정보의 제공이 이루어진 동기와 경위, 아이디어 정보의 제공으로 달성하려는 목적, 아이디어 정보 제공에 대한 정당한 대가의 지급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아이디어 정보 사용 등의 행위가 아이디어 정보 제공자와의 거래교섭 또는 거래과정에서 발생한 신뢰관계 등을 위반하는 경우 부정사용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대법원 2020. 7. 23. 선고 2020다220607 판결 참조).

소개된 사례의 경우, 계약 체결의 목적을 가지고 B는 자신이 창작하고자 하는 극본의 줄거리와 등장인물 등 계약과 관련된 의견 및 정보를 제공하였고, 이러한 계약 체결의 교섭과정에서 B가 제공한 줄거리나 등장인물의 이름은 경쟁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거나 상당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 아이디어라고 할 것이다. 한편 B는 계약체결을 전제로 위와 같은 아이디어를 제공하였다고 할 것인데, A 극단이 이러한 목적에 위반하여 정당한 보상 없이 사용하였으므로 위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같은 호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파)목은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를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피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원고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파)목은 그 보호대상인 ‘성과 등’의 유형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유형물뿐만 아니라 무형물도 이에 포함되고, 종래 저작권법 등 지식재산권법에 따라 보호받기 어려웠던 새로운 형태의 결과물도 포함될 수 있다(대법원 2020. 3. 26. 선고 2016다276467 판결 참조).

또한 이러한 성과 등이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여부는, 권리자가 투입한 투자나 노력의 내용과 정도를 그 성과 등이 속한 산업분야의 관행이나 실태에 비추어 구체적, 개별적으로 판단하되, 성과 등을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침해된 경제적 이익이 공공영역(public domain)에 속하지 않는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위 판례 참조).

소개된 사례의 경우 무용극 제작 과정에서 줄거리나 등장인물의 이름, 성격 등의 설정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경제적 가치가 크다는 점이 인정될 경우 B가 만든 줄거리나 캐릭터의 이름 또한 ‘성과 등’에 해당할 수 있고, 이러한 줄거리와 등장인물의 캐릭터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공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며 관련 산업 분야의 관행에 비추어 위와 같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하여 B가 투입한 투자나 노력이 상당하다는 점이 인정될 경우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A사와 B가 상호 경쟁관계에 놓일 가능성이나 성과 등의 대체가능성 등이 인정될 경우 위와 같은 성과 등을 A사가 무단으로 이용한 것은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사용한 때에 해당하여 (파)목의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이예희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변호사. 한국춤비평가협회 고문 변호사.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각각 연극과 문학을 전공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현재 문화, 예술, 엔터테인먼트 등 콘텐츠 IP와 관련된 분야에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

2024. 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