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1. 들어가며
공연예술계는 일반적인 조직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구조와 위계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리허설 공간과 백스테이지는 외부인의 접근이 어렵고, 단원과 지도자 사이의 위계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젊은 예술가의 경우, 향후 커리어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불편함을 느껴도 문제 제기를 하기 곤란한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전에는 성희롱이나 성폭력과 같은 인권 침해가 관행처럼 여겨지거나, ‘예술적 몰입’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일들이 많았고, 다행히 최근 들어 여성인권의 상승과 성감수성에 대한 인식 변화로 인해 피해가 수면위로 드러나 법적인 조치가 이루어지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이에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요즘 세상에 누가 성희롱을 하느냐”는 의견이 있지만, 사실 아직도 여성 종사자들은 성적인 피해나 차별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요즘은 무서워서 무슨 말을 못하겠다.”, “기준이 모호하고, 혐오발언으로 취급되는 것이 너무 많다.”는 등의 하소연도 자주 들을 수 있죠.
그렇다면, 이번 칼럼에서는 공연예술계에서의 성희롱이나 성폭력의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 어떤 사례가 있었는지를 살펴보고, 젠더이슈에 대한 대응방안에 대하여도 검토해보겠습니다.
2. 성희롱/성폭력의 법적 기준과 판단요소
성희롱은 일반적으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주는 언동을 말하며, 직장 내에서 발생한 경우 ‘남녀고용평등과 일,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양성평등기본법’이 적용됩니다.
직장 내 성희롱의 경우 위 남녀고용평등법에서 “사업주ㆍ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 내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또는 그 밖의 요구 등에 따르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근로조건 및 고용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정의하고 있어, 상하관계 뿐 아니라 동등한 지위에서 발생하는 성적 언동 등도 직장내 성희롱에 포함이 되고, 성적인 굴욕감을 느끼게 하는 경우 뿐 아니라 이와 관련된 요구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용에 불이익을 주는 경우까지 포함합니다. 또한 ‘성적 언동 등’은 단순히 언어적 행위 뿐 아니라, 신체적 접촉이 수반되는 육체적행위, 시각적 행위를 모두 포함하기 때문에 말 이외의 행동도 성희롱이 될 수 있음을 주의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성희롱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원칙적으로 1) 피해자의 주관적 사정을 고려하되, 2) 사회통념상 합리적인 사람이 피해자의 입장이라면 문제가 되는 행동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대응했을 것인지를 함께 고려하며, 3) 결과적으로 위협적이고 적대적인 고용환경을 형성하여 업무능률을 떨어뜨리게 되는지를 검토하게 됩니다.
법원 역시 위와 같은 기준에 입각하여 “성희롱이 성립하기 위해서 행위자에게 반드시 성적 동기나 의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당사자의 관계, 행위가 행해진 장소와 상황, 행위에 대한 상대방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인 반응의 내용, 행위의 내용과 정도, 행위가 일회적 또는 단기간의 것인지 아니면 계속적인 것인지 등 구체적인 사정을 참작하여 볼 때 성적 언동 등으로 상대방이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꼈다고 인정되어야 합니다(대법원 2008. 7. 10. 선고 2007두22498 판결, 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2 판결 등 참조).”는 입장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국립국악원 무용단 안무자가 단원들에게 "가슴이 쳐져서 덜렁덜렁 거린다" "늙어 보인다" "얼굴이 크다" "임신하고 나오는 걔도 얼마나 퍼져서 나올지 기대된다"는 취지의 언행을 한 사안에서, 국립국악원은 1개월의 출연정지 처분을 내렸고, 이에 대해 위 안무자가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법원은 “안무자는 직원들이 함께 있는 곳에서 공연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무용단 여성 단원의 민감한 신체 부위나 외모적 특징에 관하여 공개적으로 평가하는 발언을 반복하였다. 그 발언 경위와 청중의 존재, 표현의 저속함, 상대방의 명시적인 거부 반응 등을 종합하여 보면 위 발언은 객관적으로 상대방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행위인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판결을 내려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20. 3. 19. 선고 2019구합74737 판결).
그리고 한 지방자치단체 산하 시립예술단에서는 2020년 경 여성 단원이 남성단원을 성희롱으로 신고하자, 남성단원들도 여성 단원들을 성희롱으로 맞신고를 한 사례가 발생하였는데, 법원은 위 여성단원들이 남성 단원의 사진을 단톡방에 올리며 “뚱돼지”, “뒷태가 더 질펀했는데 슬림하게 나왔네요”라는 메시지를 올리고, 남성단원을 지칭해 “저 오빠는 가슴 큰 여자를 좋아한다”는 언행을 한 행위에 대하여는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반면, 남성 단원에게 다리가 얇다는 이유로 “언니”라고 부른 행위, 남성 단원이 런닝셔츠를 입고 자는 모습을 촬영하여 네이버 밴드에 올린 행위, 남성 단원의 배가 나온 영상을 단체방에 올린 행위 등은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23. 3. 10. 선고 2021구합81394 판결). 다만, 위 여성단원들의 발언 등은 성희롱으로 신고를 당한 남성 단원들의 맞신고였고(위 남성 단원의 성희롱은 이미 인정된 상황이었습니다), 위 남성단원들이 예술단 내에서 주도권을 행사하여 여성 근로자에게 성희롱을 빈번하게 하였던 점과 남성단원들의 관계상 우위를 고려하면 여성단원들이 자신들에 대한 성희롱을 장난인 것처럼 넘어가거가 맞대응하기 위해 위와 같은 행동을 하였다고 볼 여지가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위와 같은 판단에 이르게 된 것이었습니다.
한편, 성폭력의 경우, 형법상 강제추행, 강간은 물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법)’상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카메라 촬영, 허위영상물(딥페이크) 반포 등을 폭넓게 이르는 말로, 각 법령에서 정하는 요건에 따른 행위가 있었을 때 형사처벌을 받게 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공연예술계에서는 극단단원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이모 전 예술감독 사건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사례가 있습니다. 위 감독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장기간에 걸쳐 자신이 예술단 창단자이자 실질적인 운영자로 배우 선정 등 극단 운영에 절대적 권한을 가진 점을 이용하여 여배우 9명을 25차례에 걸쳐 상습적으로 성추행하고, 여성 배우 신체에 손을 대고 연기 연습을 시키키는 등의 행위를 하였는데, 법원은 위 감독에 대하여 유사강간치상죄, 상습강제추행죄, 성폭법위반(업무상위력등에의한추행)죄를 인정하여 징역 7년을 선고하였습니다(대법원 2019. 7. 24. 선고 2019도4772 판결).
이처럼, 법원은 모호한 기준으로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판단하지 아니하고, 구체적인 기준과 증거,사건이 발생한 여러 정황을 고려하여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적인 피해가 발생하였을 때 어떤 대응이 필요한지 살펴보겠습니다.
3. 성희롱, 성폭력 발생시 대응방안
성희롱이나 성폭력이 의심되거나 발생했을 경우,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사실관계에 대한 정리와 증거 확보입니다. 가해자와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 메신저 대화내용, 통화 녹음, 피해 당시 피해자가 직접 작성한 메모, 주변인의 진술 등은 추후 법적 절차에서 중요한 근거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목격자가 없다면, 피해 즉시 피해상황이 발생하였음을 메신저나 문자 등으로 주변에 알리게 되면 이 또한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연예술인을 위하여 예술인복지재단 산하의 ‘예술인권리보장기관’에서는 성희롱, 성폭력 피해에 대한 상담 및 신고를 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고 있으므로 도움을 받으실 수 있고, 공공기관 내에서 피해가 발생하였다면 여성가복부 산하 ‘공공부문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 신고센터’를, 범죄행위를 즉시 신고하고 싶다면 경찰서 등 수사기관을 통하여 도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한편, 단체나 기획자 등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평소 성희롱 예방교육과 익명 신고가 가능한 절차, 중립적인 조사 기구의 설치 등 제도적인 장치를 갖출 필요가 있고, 사건이 발생한 경우에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피해자가 단체 내 권력관계상 열위에 있거나, 가해자가 예술감독·안무자·기획자 등인 경우에는 외부 전문가나 제3자가 포함된 조사위원회 운영이 바람직합니다.
공연예술계에서는 고용 관계가 느슨하거나 프리랜서 위촉 형식으로 계약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근로자성이 인정되지 않을 것을 우려해 신고조차 어려워하는 피해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희롱·성폭력은 고용계약 여부와 관계없이 형사 또는 민사상 불법행위로 문제될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4.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과 젠더이슈
공연예술계는 다른 분야에 비해 성적 다양성이나 젠더 표현이 비교적 자유로운 분야로 인식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성소수자에 차별이나 편견, 배제에 직면하는 경우가 있고, 최근에는 남녀 사이의 혐오 이슈도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젠더 표현이나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캐스팅 배제, 아웃팅 우려, 내부 구성원 간의 조롱 등은 비단 공연예술계 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젠더 이슈에 대한 감수성의 차이로 인해, 특정 언행이 혐오 발언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이 많아지고 있고, 이에 대해 “이제는 너무 조심스러워서 말도 제대로 못 하겠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하는 등, 현장에서 오해나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현재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것도 아니고, 기타 관련 법령이나 법원 판단의 공백이 있다 보니, 혐오 발언의 기준이나 차별의 기준을 명확히 하기 어려워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에서는 ‘성적지향’을 차별금지 사유로 명시하고 있으며, 차별행위에 대하여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고, 인권위는 시정 권고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법원은 서울시 산하 체육관을 운영하는 공단이 여성 성소수자 인권단체가 한 체육관 대관을 취소한 사안에서, “대관허가 취소는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한 차별행위로서, 그 직접 상대방인 인권단체에 대한 차별일 뿐만 아니라 이 사건 체육대회의 개최·준비자들 및 예상 참가자들에 대한 차별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사건 대관허가 취소로 인하여 인권단체의 평등권과 활동가 등의 평등권이 모두 침해되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며 차별행위에 대한 위자료를 인정한 바 있습니다(서울서부지방법원 2022. 5. 13. 선고 2021나47810 판결). 한편, 혐오표현도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거나 모욕하는 경우 민, 형사상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차별금지는 헌법 제1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평등의 원칙에 기반합니다. 이에 상호간 성적지향에 대한 편견이나 성별 혐오 발언은 지양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5. 맺음말
성희롱과 성폭력은 명백한 법적 책임의 영역으로 공연예술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피해를 예방하고, 발생한 사안에 대해서는 신속하고 공정하게 대응하기 위해, 단체와 구성원 모두가 기본적인 법적 기준과 절차에 대한 인식을 갖출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모든 예술인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창작할 수 있도록, 다양성과 인권이 존중되는 무대 환경을 만드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술은 자유를 기반으로 하지만, 그 자유는 타인의 권리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만 진정한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강민주
법무법인(유)동인 파트너 변호사. 한국춤비평가협회 고문변호사. 사법연수원 수료 후 IP, 엔터테인먼트 전문변호사로 활동해오고 있다. 각종 라이선스 계약, 공연 및 스폰서 계약 등을 자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