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지난 4월 있은 국립무용단의 〈미인〉 공연은 국립무용단의 기획작으로서 관심을 모았다. 그 관심을 고려하여 다양한 진단을 소개하는 취지에서 한국춤비평가협회 회원들의 촌평을 게재한다. ─ 편집자
화려한 요리 이면의 허상
밥상 위에 차려진 요리는 많았다. 색깔도 화려했다. 일부 요리는 새로운 식감으로 미각을 자극하기도 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맛이 없었다. 식사 후 포만감은 있었으나 영양가는 없었다. 너무 넘쳐 산만했고, 일부 장면은 유치했다. 시각적 요소만 강조된 무대는 마치 버라이어티 쇼 같았다.
싸구려 느낌의 의상은 춤을 가렸고, 조명은 의상의 색감을 살리지 못했고, 이즈음 춤 공연에서 자주 보는 형광등 조명은 난삽했다. 연출가는 제대로 된 편집을 하지 못했고, 시노그라퍼로서의 역할도 실패했다. 안무가는 고군분투 했지만, 일부 춤 구성에서 비교적 잘 조합된 움직임은 시각적 과다함에 묻혀 버렸고, 여성 무용수만 출연시킨 차별성을 읽어내기도 쉽지 않았다.
국립무용단의 〈미인〉은 인간의 몸을 매개로 하는 무용예술의 특성을 간과, 극장예술로서 무용이 가진 경쟁력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 춤이 중심이 되는 크로스오버도 아니었고, 음악 의상 소품 춤 연출 조명 등 개개 장르는 분투했지만 이 뒤섞인 퓨전 요리는 밋밋한 맛으로 일관했다.
국립무용단 〈미인〉 ⓒ국립극장 |
국립무용단의 작품에 연출가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송범 단장 시절 무용극 스타일의 작품을 공연할 때였다. 연출가는 스토리텔링을 만들고 주인공을 포함한 주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창출을 위해 기여했다. 작품을 끌고 가는 것은 춤이었고 안무가는 작품의 중심에서 모든 것들을 조율했다. 그것은 분명 ‘무용’이 중심이 되는 극장예술 작업이었다.
정구호가 연출한 〈향연〉의 중심은 춤이다. 개개의 춤들을 각기 다른 안무가가 구성했고 연출가 정구호는 편집과 시노그라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특별한 예술적 감각을 발휘했다. 이로 인해 무용예술이 극장예술로서 빛을 발했다.
원래 비디오를 전공했던 안무가 조세 몽탈보는 국립무용단의 〈시간의 나이〉에서 객원 안무가로 초빙되어 작업하면서 조안무가들에게 움직임 구성을 맡겼다. 자신의 장기인 영상을 매칭한 이 협업작업이 한국적인 색채가 묻어나는 컨템퍼러리댄스로서의 경쟁력을 갖춘 요인은 이 때문이었다.
국립무용단의 〈미인〉은 제작 스태프들의 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슨 말이야? 우린 협업을 했다”라고 주장한다면 그 협업의 결과는 실패이다. 방향 설정이 잘못 되었거나 개개의 시도가 합을 이루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1시간이 훨씬 넘어가는 국가 대표 무용단의 장편 작품인데, 춤이 중심이 되어야 할 공연에서 안무가의 역할이 어느 정도였을까 의문이 들었다.
국립무용단 〈미인〉 ⓒ국립극장 |
오페라 공연에는 전문 연출가가 있다. 연극의 경우 연출가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무용예술에는 전문 연출가가 없다. 연출가가 필요 없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무용수들의 몸을 매개로 하는 장르적인 특성 때문에 춤 구성, 움직임 조합이 가장 중요하고 그 역할을 안무가가 맡았다. 컨템퍼러리댄스의 유형이 빠른 속도로 확장되면서 이즈음 안무가들은 ‘안무’라는 말 대신에 ‘컨셉트’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안무가의 역할이 움직임 창안과 조합에서 벗어나 작품의 방향 설정, 댄서들을 통한 작품 해석, 스태프들의 아이디어 조율까지 그 영역이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concept’란 표기는 이런 달라진 안무가의 변화된 역할을 대변한다.
컨템퍼러리댄스에서 안무가의 역할이 이렇듯 중요해진 만큼 국립무용단의 창작 작업은 안무가와 무용수가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 융복합을 시도할 때도 ‘퓨전’이 아닌 춤이 중심이 되는 크로스오버가 정답이다.
국립무용단 〈미인〉 ⓒ국립극장 |
국립중앙극장과 국립무용단은 일반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을 만들기로 방향을 설정한 것일까? 그렇더라도 그 전제는 예술성을 담보한 격이 있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작품이어야 한다. 대중에게 아부하기 위해, K- Dance 라는 구호성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국립무용단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립무용단의 존재 이유는 한국을 대표해 세계무대에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춤 작품을 만들고 이를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향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질 높은 예술 작품을 통한 공공성의 획득이란 측면에서 보면, 〈미인〉은 미진한 구석이 많다. 작업에 참여한 제작 스태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국립무용단이 소속된 국립중앙극장장도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 장광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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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비한 작업, 국립무용단의 방향성은?
〈미인〉은 국립무용단의 춤 철학과 방향성에 문제가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 작품이다. 어벤저스급 창작진 (연출가 양정웅, 보그 코리아 스타일리스트 서영희, 음악감독 장영규, k-pop 뮤직비디오 디렉터 신호승, Mnet 스테이지파이터 안무가 정보경)이 여성들만의 춤으로 구현할 작품에 기대를 모았으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을 실감하게 했다. 마치 패션쇼장에 춤이 조안무 정도로 참여한 다시말해 안무의 지분(역할)이 이렇게 미비한 작업은 처음이다.
이미 정구호나 이지나 연출가와 협업한 여러 작업들도 문제가 없진 않았으나 적어도 춤을 삼켜버리진 않았다. 국립측은 흥행성에만 도취된 레파토리를 발굴하려 작정한 것으로 보인다. 매진이라는 성취에 흠뻑 고무되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500여벌의 의상에 국세를 지불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창작진 선정과정도 안무가보다 연출가를 먼저 섭외했다니 작품의 키를 누가 쥐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무용가(안무가)에 대한 존중은 어디로 간 것인가.
국립무용단 〈미인〉 ⓒ국립극장 |
〈미인〉은 국립무용단 품격에 걸맞지 않거니와 전통춤에 대한 해석도 표면적이다. 전통춤을 스냅사진처럼 속도감 있게 배치하고, 화려한 색감과 장치로 변신시켜 전시하는 것이 국립이 지향하는 전통의 해석이란 말인가. 11개 춤종목 저마다의 춤적 정동(affect)을 어떻게 오늘의 언어로 치환할지에 대한 고민도 새털처럼 가볍다. 현란한 시각적 만족에 치중한 것은 차치하고 가장 기본적으로 무엇이 ‘미인’이란 말인지 오리무중이다, 여성춤이어야만 하는 이유도 제시하지 못한다. 세부적으론 의도적으로 서사를 배제해 강렬한 몸짓과 미장센을 강조했으나 보이지 않는 이면을 표방하며 삽입시킨 ‘흑자’로서의 청년단원 컨셉도 앞뒤 맥락이 좀처럼 맞지 않고 진부하다.
국립무용단 〈미인〉 ⓒ국립극장 |
최근 국·시립 무용단이 협업을 맹신하며 엇비슷한 행보를 보이는 것도 이제는 짚어봐야 한다. 상식적으로 협업이란 서로 다른 장르적 장점을 공유하며 균형감을 갖추는 게 기본값이다. 〈미인〉은 협업이란 늪에 빠져 정보경 안무가 고유의 세계관이나 전통춤 각각의 지층을 지지하고 있는 정신이 소외되어 있다. 그저 창작진의 유명세를 내세워 간편한 인스턴트 요리로 조리해 판매에만 치중한 실패한 기획이다.
- 김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