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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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시
- 2026년 5월 12일(화) 13:00~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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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소
- 예술가의집 다목적홀(서울 대학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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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회
- 김혜라_<춤웹진> 편집장
발제│ 장지영_국민일보 기자
박경숙_전 광주시립발레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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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2일 오후에 있은 국공립 무용단체장 선임 방식에 대한 긴급토론회, 예술가의집, 한국춤비평가협회 주최 ⓒ춤웹진 |
김혜라: 이제 플로어에서도 자유롭게 의견을 나눴으면 합니다. 예술감독은 임기가 되면 바뀌지만, 바뀌지 않는 행정 인력과 기획과 운영 전반을 조율하는 분들 그리고 단원들이 원하는 리더상이 있을 것 같습니다.
김채현: 플로어 의견을 듣기 전에 궁금한 게 있습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린 것은, 발레단 운영이든 공공무용단 운영이든 내부 운영 자체가 허술하기 때문에 예술감독 선임에서도 상당한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10년간 재임하신 박경숙 예술감독의 입장에서, 공공무용단 운영과 관련해 아까 말씀하신 조례처럼 어떤 기준을 분명히 못 박는 조치나 장치가 더 필요하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행정력 있는 기관장 필요
박경숙: 광주시립발레단의 경우, 단원 노조의 힘이 점점 강해지면서 청빙제가 도입됐습니다. 이 제도에서는 단원들이 예술감독 후보자를 직접 선정합니다. 단원 투표로 선정된 후보군과 시 예술회관이 전문가들을 통해 추천한 후보군을 합쳐 총 6명의 청빙위원회 후보를 구성하고, 토론을 거쳐 최종 2인으로 압축해 시장이 그 중 1명을 임명하는 방식입니다. 기존 선임 방식의 폐해 극복을 위한 대안적 시도였으나, 현재 최종 후보가 올라간 지 벌써 4개월이 지나도록 정치 일정과 맞물려 임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예술회관뿐 아니라 다른 기관들도 상황이 비슷할 것입니다.
최근 “예술기관 수장은 예술가여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예술가 출신 기관장이 늘고 있지만, 저는 이에 대해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밀한 행정은 예술가에게 익숙한 영역이 아닙니다. 저 역시 처음 자리에 갔을 때 노조 대표와 대등하게 대화하기 위해 조례집을 옆에 두고 살아야 했습니다. 예술회관장이 행정을 모르면 결국 과장급 공무원들에게 의존하게 되고, 이는 오히려 기관장의 리더십 약화와 시와의 관계에서 힘이 부족해 집니다. 차라리 시 내부에서 예술에 대한 이해도가 유능한 행정가가 수장으로 오는 편이 나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시 당국과 바로 소통하며 시의회에 대응하고 예산을 지켜낼 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대 위의 실현에 익숙한 예술가들은 의원들과 부딪히며 예산을 확보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아 예산이 깎이기도 합니다. 공공단체는 행정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소신 있게 운영하기 어렵습니다.
독일 극장, 리더 선순환 구조
장지영: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종종 “예술가는 예술만, 행정은 행정가가 하면 된다”는 식의 이중 논리가 나옵니다. 작년에 유인촌 전장관도 비슷한 취지의 이야기를 했죠. 그러나 정작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상은 극장과 예술기관 내부에서 묵묵히 성장해 온 기획자와 프로듀서 같은 운영자들입니다. 독일의 극장은 기획자가 작은 극장에서 경험을 쌓아 더 큰 극장의 장으로 옮겨가는 체계적인 성장 경로를 갖추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 극장에 오는 예술가 출신 기관장들은 낙하산 인사로 내려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용가들도 여러 지역 기관장으로 갑자기 내려간 사례가 적지 않았습니다. 안산도 있었고, 성남도 있었죠. 하지만 그렇게 온 분들이 기관 운영을 얼마나 잘했는가 하면, 기대에 못 미친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는 “저렇게 낙하산 예술가가 올 바에는 차라리 공무원이 오는 편이 낫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물론 이것은 최선을 택한 것이 아니라 차악을 택한 것입니다.
정말 더 나은 방향을 생각한다면, 내부에서 기획과 경영을 담당해 온 사람들이 성장해야 하는데 그 통로가 막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립발레단도 내부 직원의 성장은 팀장까지가 사실상 한계입니다. 실무의 요직인 사무국장은 문체부 공무원이 정년을 앞두고 내려오는 자리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며, 말로만 공모일 뿐 실상은 정해진 낙하산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현장에서 국장급까지 성장한 사람이 다음 단계로 작은 기관장 자리에 가거나, 다른 예술기관을 이끌 수 있는 경로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구조가 거의 없습니다. 반대로 낙하산으로 들어온 일부 기획자들은 그 자리를 사적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이후 더 좋은 자리로 옮겨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공적 자원을 사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를 우리는 너무 많이 봐 왔습니다.
만연한 관행
김채현: 저는 8년간 국립발레단 이사로 활동하며 문체부 공무원들이 퇴직 후 산하기관 사무국장 자리를 맡는 모습을 직접 봤습니다. 처음에는 국립발레단이 초창기 단계였기 때문에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으나 반복되더군요. 이 문제는 특정 무용단이나 공공예술단만의 일이 아니며, 수십 개에 달하는 문체부 산하기관 전반에 만연한 구조적 병폐입니다. 국가 자격의 문화예술 정책에서 큰 낭비가 벌어지고 있는 문제로, 늦었지만 이제라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재단 법인화와 임금피크제가 현실적 대안
박경숙: 광주시립발레단을 비롯한 대부분의 지자체 산하 예술단체는 시에 소속되어 준공무원처럼 운영되고 있습니다. 무용단원들 역시 공무원 신분을 유지하고 싶어 변화에 소극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에서 발레단은 나이가 들수록 임금이 올라가는 일반 공무원의 호봉제(1~33호봉)보다, 노동력이 가장 강한 시기에 더 많이 보상하고 40대 이후에는 점차 조정하는 '임금피크제'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0~15호봉에서 시작해 40대에 정점을 찍고 이후 내려오는 구조가 발레단의 특성에 더 맞기 때문입니다. 재단법인으로 전환하지 않을 경우 이러한 임금체계는 충분히 검토해 볼 만하며, 실제로 구체적인 안까지 만들어진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지겠다는 공무원이 없어 결국 실행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현재 광주시립발레단은 재단법인화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물론 기존 상임 단원들은 이를 반기지 않을 수 있으나, 국립발레단처럼 법인화 되어야 더 발전할 수 있습니다. 광주시의 8개 상주단체 중 티켓 파워와 성장 가능성이 있어 재단법인화를 통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곳은 오케스트라와 발레단입니다. 따라서 모든 단체를 한데 묶어 같은 방식으로 끌고 갈 것이 아니라, 단체의 특성과 경쟁력에 따라 차별화하고 특성화해야 합니다. 발전 가능성이 있는 단체는 보다 빨리 재단법인화를 추진하여 자율성과 활력을 키워주어야 합니다.
김혜라: 이어서 극장 현장에서 실무진으로 일하시는 분들의 의견도 들어보겠습니다. 비평가들은 비교적 국공립 단체를 엄격하게 진단하지만, 또 저희가 잘 모르는 내부 사정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3년 임기제로 장기적 비전 세우기는 불가능
익명: 내부에서도 오늘 나온 이야기들에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해외 아티스트 섭외나 중장기 사업 계획은 결코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장의 임기는 3년에 불과해, 이러한 구조 속에서 장기적인 비전을 세우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희에게는 업계와 관객을 위해 더 거시적이고 명확한 비전을 정립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문제는 새로운 단장이 오실 때마다 그분의 시각과 가치관에 따라 기존에 무게를 두고 추진해 온 사업 방향이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이전 체제에서 이쪽에 무게를 실었다면, 새 체제에서는 무게추가 다른 쪽으로 옮겨가는 식입니다. 이로 인해 외부에서는 단체의 방향성이 일관되지 않거나 정체성이 불분명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심을 잡고 단체의 정체성을 지켜내야 하는 것이 결국 자리를 지키는 실무자들의 역할입니다. 올해만 해도 여러 단체가 단체장 선임 문제를 겪으며 그 과정이 얼마나 지지부진하게 늘어지는지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습니다.
산하기관의 자율성 회피하는 문체부, 이제는 행정을 개혁할 때
장지영: 예술계 현장에서는 공공단체를 향해 “막대한 예산을 받으면서 왜 제대로 못하느냐”며 날카로운 비판을 합니다. 저 역시 기자로 일하며 재정평가위원이나 자문위원으로 참여했기에 이러한 구조를 가까이서 볼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국립단체는 훨씬 더 문체부와 철저한 수직 구조에 놓여 있습니다. 심지어 5급도 아닌 주무관 한 명에게도 조직 전체가 쩔쩔맬 정도로 문체부의 영향력은 절대적입니다.
과거 블랙리스트 시기를 돌아보면, 현장에서는 문화예술위원회나 국립극단을 향해 “블랙리스트 실행범”이라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내막을 들여다보면 위원회 직원들이나 국립극단의 기획자들은 문체부의 압박 속에서 어떻게든 공연이 무너지지 않도록 방어하며 타협점을 찾으려 버틴 이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을 일방적으로 공격해 버리니 중간에서 고군분투한 실무자들은 무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정작 몸통인 문체부를 향한 비판은 희미해지고, 중간에 낀 기관과 실무자들만 화살을 맞는 구조가 반복된다는 점입니다.
지금도 특히 국립극단은 그런 후유증이 심각합니다. 특히 국립극단은 현장 연극인들과 기획자가 소통하는 과정에서 조금만 이견이 생겨도 “너 검열하려는 거냐?”라는 반응이 쉽게 나옵니다. 기획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견 제시조차 검열로 치부되니 실무자들은 입을 닫게 됩니다. 이처럼 예술가와 기관 사이에 지나친 긴장관계가 지속되다 보니, 연극이 좋아 입사한 젊은 프로듀서(PD)들이 버티지 못하고 떠납니다. 이직률이 치솟는 것은 물론, 현장에 환멸을 느끼고 정신과 치료를 받을 만큼 상황이 심각합니다.
예술가들이 비판해야 할 진짜 대상은 개별 예술단체나 현장 실무자가 아니라, 그 위에 군림하는 행정 구조입니다. 문체부는 이런 비판이 일 때마다 “우리는 청와대가 시켜서 한 피해자일 뿐”이라며 책임을 회피합니다. 그러나 행정은 스스로 구조를 바꿨어야 했습니다. 문체부는 산하기관을 철저히 통제하는 권력 구조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으며, 자율성을 부여하는 조직 개혁에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비판의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현장에서 버티는 실무자를 공격할 것이 아니라, 그 위에서 무소불위의 권한을 쥐고 흔드는 관료 행정을 비판해야 합니다.
박경숙: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고 넣으면 되죠.
자율성을 요구하며 안정성에 안주하려는 모순
장웅조: 저는 홍익대학교 문화예술경영대학원 장웅조 교수라고 합니다. 저는 흔히 쓰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가장 잘못된 표현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본래의 ‘팔길이 원칙’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두 표현이 결합해 다니는 경향이 있습니다. 팔길이 원칙은 지원하는 단체를 방치한다는 뜻이 아니라, 자율성과 책임성의 균형을 맞추자는 원칙입니다. 공적 지원은 받으면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태도는 오히려 공공성에 어긋납니다. 이 자율성과 책임성의 균형을 맞춰주는 거버넌스의 핵심 요체가 바로 이사회입니다. 저 역시 경영평가를 갈 때마다 이사회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사실 경영평가위원들도 문체부가 구조적으로 문제를 만들고 있다는 점을 알고 평가합니다. 다만 단체의 내부 고민이나 성과가 충분히 보고되지 않아 잘못 평가받는 안타까운 경우가 있어 이를 제대로 드러내시라 조언해 왔습니다. 긍정적인 것은 최근 ESG 경영의 거버넌스(G) 측면에서 이사회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확실히 높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문체부만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왜 그런 구조가 반복되는지, 그 구조 안에서 누가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를 함께 봐야 실제적인 해법이 생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변화가 조금씩은 일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사실 우리나라 비영리기관의 이사회 역할은 1950년대 일본 민법을 수용할 때부터 법적으로 매우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문화적으로 이해하거나 실제로 작동시켜 본 경험과 훈련이 전무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국립기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활동하는 수많은 단체가 사단법인이고 재단법인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그 이사회를 제대로 활용하려고 노력해 왔는가. 누군가가 어느 날 갑자기 이사가 되더라도, 이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교육받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 문화와 훈련의 부재가 저는 굉장히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런 점도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현장을 보면 위로 올라갈수록 역량을 발휘할 준비된 실무자들이 참 많습니다. 반면 문체부에서 내려꽂은 일부 사무국장들의 위치는 저희가 보기에도 매우 황당합니다. 하지만 문체부만 일방적으로 비난해서는 실제적인 해법이 나오지 않습니다. 문체부 공무원들도 조직 내 역할 때문에 요구받는 구조가 있으며, 때로는 최종 빌런이 문체부가 아니라 기재부인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문체부는 국립단체의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기재부와 치열하게 싸우며, 그 과정에서 기재부를 설득하기 위한 논리와 세세한 항목들을 산하기관에 요구하게 되는 행정적 다이내믹이 존재합니다.
마지막으로 권한과 책임의 균형 문제입니다. 국공립 예술단체들이 문체부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원하면서 동시에 더 큰 자율성도 바라는 것은 이율배반적입니다. 진정한 자율성을 원한다면 정부 지원금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독일 등 해외 기관들처럼 민간 후원금을 확대해 재정적 독립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래야 문체부의 부당한 요구에도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1980년대 예술의전당 건립 당시, 공보부 차관이었던 허문도씨가 전두환 대통령의 뜻을 전하며 "국가가 주도하는 단체가 대표 예술기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여 민간 재원(한국광고공사 기금)을 기반으로 한 재단법인으로 출발했던 흥미로운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예술의전당은 스스로 재원 불안정성을 극복하고 존속을 공고히 하기 위해 특수법인으로 전환했습니다. 이는 구성원들 스스로가 자율성을 직업적 안정성과 맞바꾼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국공립 단체들이 준공무원적 안정성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으며, 젊은 세대조차 예술적 자율성보다 직업적 안정성을 더 중시하는 흐름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러한 한계가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사태였습니다. 따라서 이 논의를 문체부만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습니다. 과연 우리는 국가 재정에 기대면서 발생하는 그만큼의 책임성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자율성을 요구하면서 안정성에만 안주하려는 모순에 빠진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에게도 통렬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이종호: 지역적인 차이도 있겠지만, 국공립 단체들이 재정 강화를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부분은 굉장히 중요할 것 같습니다. 제가 한 10년 전쯤 뉴욕시티발레단 관계자들을 만나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후원금을 모으는, 말하자면 영업이나 대외협력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당시 32명이라고 하더라고요.
장웅조: 뉴욕시티발레단만 하더라도 이사회 이사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1년에 12만 달러는 기부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종호: “그럼 당신들은 어떤 방식으로 후원을 끌어오느냐”고 물었더니, 큰 기업을 상대하는 전담 팀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팀은 주로 자산이 많은 고령층을 공략한다고 하더군요. 꾸준히 다가가 “함께 발레나 오페라 보러 가시죠”라며 관계를 맺고, 후원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죠. 실제로 그곳은 후원금이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았습니다.
장지영: 미국과 한국은 예술 지원의 기본 전제 자체가 다릅니다. 미국은 국가 지원이 적은 대신, 강력한 세제 혜택과 '사회적 명예'라는 문화적 동인이 개인 후원과 비영리 시장을 활성화합니다. 반면, 우리는 말로는 영국식 모델을 표방하나 실제로는 프랑스처럼 정부가 중심을 잡는 국가주의 모델에 가깝습니다. 유럽의 공공극장 역시 예산의 상당 부분을 정부에 의존하므로, 우리와 구조적으로 더 유사한 비교 대상입니다. 따라서 국가 지원이 거의 없는 미국의 뉴욕시티발레단과 단순 비교하며 “왜 우리는 못 하느냐”라고 묻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물론 자체 수익과 후원 확대 노력은 필수적이지만, 시스템의 차이를 간과한 채 미국식 모델을 그대로 이식하려는 시도는 경계해야 합니다.
이종호: 그렇죠. 그런데 유럽의 극장이나 예술단체들은 정부나 공공기관의 지원을 많이 받으면서도, 할 말은 다 하고, 싸울 때는 싸웁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합니다.
익명: 최근 타 국공립 예술단체가 외부 후원을 성공적으로 유치했음에도, 주무 부처인 문체부로는 불편하게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문체부의 “정부 예산이 주가 되는 상황에서 외부 후원을 너무 앞세우는 것은 편하치 않다”는 입장을 들었습니다
박경숙: 그런데 실제로는 후원을 받는 것 자체도 쉽지 않습니다. 저희는 프로그램북도 무료로 배포하지, 판매하지도 않거든요. 기부를 받는 것도 제도적으로 자유롭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공공 지원과 후원, 관객 개발 선순환 구조 필요
장웅조: 현재 우리나라 예술경영의 가장 큰 문제는 후원과 관객 개발이 선순환 구조로 연결되지 않고 완전히 분리되어 운영된다는 점입니다. 관객 개발은 단순 구매자를 점진적으로 정기 후원자이자 이사회 구성원으로 발전시키는 관계의 확장 과정입니다. 따라서 후원 유치는 단순히 자금을 추가 확보하는 차원이 아니라, 관객과의 관계를 깊게 만드는 관객 개발의 핵심 단계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결국 예술단체는 외부 후원을 돈의 문제가 아닌 관객 개발의 연장선으로 재정의하여, 주무 부처인 문체부를 설득하고 우리만의 건강한 예술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논리를 갖추어야 합니다.
현장에서는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역력한데, 강수진 단장님 재임시 국립발레단의 후원금이 늘어난 것이 대표적입니다. 해외에서 예술단체 수장의 역할은 단순히 작품을 이끄는 감독에 그치지 않고, 외부 후원자와 관계를 맺고 단체의 재정적 기반을 넓히는 일이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죠. 흥미로운 점은 최근 유럽에서도 국가 지원이 줄어들더라도 문화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미국 모델을 두고, 프랑스 정부 인사들 사이에서 “지나친 정부 지원이 오히려 예술적 정체와 창의성 둔화를 초래한다”는 논리가 제기된 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현지 교수들이 불쾌함을 표하는 등 논쟁은 여전하지만, 민간에서 해법을 찾으려는 흐름만큼은 분명한 국제적 트렌드입니다. 결국 앞으로의 과제는 공공 지원과 민간 후원, 그리고 관객 개발을 어떻게 균형 있게 설계하느냐일 것입니다. 단순히 미국 모델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상황에 맞게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운영의 구조적 난맥상과 재정 독립의 과제
김채현: 비평가가 작품이 아닌 '운영' 문제를 2015년부터 정권이 바뀌어도 수년 간 반복 지적하는 것은 비정상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국립발레단 이사로 8년간 활동하며 느낀 이사회는 단체의 예술적 향방, 예술에 초점을 맞춘 운영 방안에 대해 논의, 하다못해 토론은 부재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사회의 부실 또는 무기력한 운영에 대해 문체부에만 그 책임을 떠넘길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사회가 제대로 기능하며 자립적으로 운영할 시스템을 갖춰야 했습니다. 문체부 파견 직원들은 단체의 자립을 돕기보다 관리·감독 수준에 머물렀으며, 결과적으로 제도의 실질적인 성과나 사명감을 뒷받침할 제도적 발전은 부재했습니다.
뉴욕시티발레단(NYCB)의 2024년 연례보고서를 보면, 지출액 약 1,500억 원 중 입장료 수입이 약 650억 원, 헤지펀드 등 자산 투자를 통한 수익이 약 200억 원에 달합니다. 전체 예산에서 투자 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을 만큼, 그들은 경영 수지 개선을 위해 엄청노력하고 있습니다. 반면, 기부금 비중은 전체 예산 규모에 비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압도적이지는 않습니다. 2024년 기준 약 60억~70억 원 수준이었으니까요.
우리나라를 보면, 국립극장의 연간 예산이 약 500억 원 수준입니다. 그런데 2024년 기준 입장료 수입은 제가 확인하기로 약 15억 원이고, 국립발레단 역시 예산 약 120억 원 정도였고 입장료 수입은 26억 원 안팎으로 기억합니다. 재정 자립이 되지 않으니, 문체부에 당당한 목소리를 내기 어렵고, 결국 '업무 협조'라는 형식으로 의존하게 되는 구조이었습니다.
문체부는 1990년에 만들어졌고, 당시에는 전문 문화행정을 구현하겠다는 취지가 있었습니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문체부가 나름대로 예술인들을 존중하며 운영해 온 측면도 있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문체부가 문화예술계를 지도, 관리하려는 태도를 본격적으로 드러낸 것은 2010년대 이후, 특히 이명박 정부 시기부터라고 봅니다. 이명박 정부가 2008년에 집권했고, 그 무렵부터 검열과 통제의 문제가 깊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때부터 문체부는 이전과는 다른 체질로 점차 바뀌기 시작했고, 결국 2016년과 2017년에는 블랙리스트 사태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문체부가 초창기에 내세웠던 전문 문화행정의 체질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체질이 엄청 훼손됐다고 생각합니다. 그 흐름을 만들어낸 데에는 당시 유아무개 장관을 비롯해 문체부 안팎의 몇몇 주요 인물들이 있었다고 봅니다.
참고로 미국은 정부가 예술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여겨 왔습니다. 그런데 1960년대 중반 미국 국립예술기금(NEA)이 설립된 이후 공적 지원은 꾸준히 확대되어 왔으며, 이를 모델로 삼아 197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전신인 문예진흥원이 설립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문화예술에 대해 공적 개입이나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짐작은 사실에서 전혀 어긋난 오해라 생각합니다. 최근 몇 년만 봐도 미국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예술지원 사업이 정치적 압력을 받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다시 집권하자마자 NEA 예산 삭감 및 폐지 가능성까지 거론될 정도로 압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 역시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를 거치며 정부와 공공기관이 예술인을 지원하는 폭이 과거보다 훨씬 넓어진 측면이 있습니다. 이 점도 함께 알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국립단체와 시·도 광역 단체 처방
장석류: 국립 예술단체와 시·도 광역 예술단체의 운영 환경은 근본적으로 다르기에 처방 또한 구분되어야 합니다. 국립 예술단체는 장관이 임명권을 갖는 구조로 어느 정도의 완충 장치가 있는 셈입니다. 반면, 시·도 예술단체는 직접적인 정치의 영향권 아래 있습니다. 지자체장이 직접 임명권을 행사하고, 예산과 정책을 두고 지방의회와 실시간으로 대치해야 하는 구조이기에 정치적·행정적 압박의 강도가 훨씬 높습니다. 특히 광역 단위 예술단체의 경우, 대표나 예술감독 한 사람이 예술적 역량은 물론 노무·경영·행정 등 모든 실무까지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지역 단체의 구조적 고충은 중앙 부처나 예술위원회 차원에서 쉽게 간과되곤 합니다.
따라서 단순히 소속의 차이로 볼 것이 아니라, 시·도 단체가 처한 특수한 환경을 반영한 별도의 지원 장치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예술위원회 차원이든, 문화부 안에서든, 지역 공공예술단체의 특수성을 검토하고 지원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단체의 자발적 비전과 기획력 강화
장석류: 그리고 하나 더, 앞서 자율성과 책무성에 대한 말씀이 나와서 이 부분도 짚고 싶습니다. '자율'의 '율(律)'은 곧 스스로 세운 규칙을 뜻합니다. 즉, 자율성이란 스스로 비전을 정하고 그에 따른 규칙을 세우는 것인데, 발레단이든 오페라단이든, 자율성을 가진다는 것은 자신의 목표를 스스로 정하고,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규칙을 스스로 세우고, 비전을 스스로 설정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예술계는 위에서 내려오는 규칙을 받아 '해주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로 인해 기획자나 예술가들이 스스로 주도하는 DNA는 약해지고, 행정적 기능만 강화되는 '행정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산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래는 비전과 기획이 먼저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예산이 필요한 것인데, 우리는 "예산을 따오는" 것을 선행 과제로 삼습니다. 따온 예산에 맞춰 사업을 끼워 맞추다 보니 주도적인 기획은 사라집니다. 공무원들조차 성과가 좋으면 '내 공'을 챙기려 들 뿐, 실제로는 예술단체가 스스로 비전을 세우고 문제를 해결하는 공적 역량을 키우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진정한 자율성은 예산에 매달리는 '수동적 행정'을 벗어나, 우리가 직접 '율'을 세우고 실현하는 주체적인 일하는 DNA를 회복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장지영: 저는 한 가지 보완하고 싶은 지점이 있습니다. 당연히 국립단체와 지자체 단체는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선임 방식도 다르고, 작동하는 정치적 구조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국립단체의 경우를 보면, 오히려 문체부를 거치지 않고 인사가 바로 내려오는 듯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캠프 출신이거나 대통령실 쪽에서 직접 내려오는 인사가 있다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국립단체의 인사 구조가 지자체장이 자기 사람을 임명하는 방식과 너무 비슷해집니다. 어떤 면에서는 더 우스운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는 셈입니다. 지금 국립이 그렇습니다.
장석류: 그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결국 장관이 패싱됐다는 이야기이고, 문화비서관도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죠.
장지영: 지금 인사는 강훈식 비서실장이 위원장으로 있는 인사위원회에서 다뤄지고 있고, 이동현 문화비서관은 사실상 입도 뻥긋하기 어려운 처지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문체부도 실질적으로는 모두 패싱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장웅조: 저는 이런 상황에서 상상해 본 적이 있습니다. 만약 명백히 잘못된 인사가 이뤄졌을 때, 해당 기관의 이사들이 “우리는 전원 사퇴하겠다”고만 말했어도 얼마나 큰 메시지가 됐을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있는 이사회들 가운데서라도 그런 역할을 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차피 평소에도 이사회가 적극적으로 작동하지 못했다면, 이런 때야말로 한 번 힘을 모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제안을 드린 적도 있습니다.
장지영: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국립발레단 이사회는 그래도 존재감을 보여준 적이 있었습니다. 국립오페라단을 비롯한 다른 단체들은 당시 문체부 뜻대로 움직였는데, 국립발레단만은 통합 논의 과정에서 그 방향에 반대하는 결의를 했습니다. 그 점은 분명히 의미가 있었습니다.
정치적 이해관계의 악화
윤지현(몸지 편집장): 오늘 선생님들의 말씀을 통해 재정 자립과 이사회의 실효성 문제가 중요하다는 점은 충분히 공감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주제를 접하며 품은 근본적인 의문은 따로 있습니다. 이 사안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아주 오래된 구조적 병폐임에도, 왜 지금 이 시점에 ‘긴급토론회’라는 형식으로 다시 다루어지는가 하는 점입니다. 앞서 박경숙 예술감독님께서 지적하셨듯, 최근 예술 현장은 과거보다 정치적 일정의 영향을 훨씬 더 직접적으로 받으며 상황이 더욱 악화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이 문제가 선거와 같은 정치적 주기와 깊이 맞물려 있음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토론회 역시 다가오는 지방선거 등 정치적 상황과 결코 무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기존의 이사회나 재정 문제라는 범주를 넘어, 왜 이 문제가 지금 더 극단적으로 악화되고 있는지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국공립 단체장 자리에 낙하산 인사가 내려온다는 우려가 팽배하고,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임명 절차가 기약 없이 지연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합니다. 현장의 선생님들께서는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최근 국공립 예술단체장 선임 과정에서 감지되는 정치적 변화나, 현장에서 체감하시는 낙하산 인사 및 공석 사태의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솔직한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종호: 이 토론회가 지금 열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국공립 예술단체 인사에 정치적 입김이 작용하는 현상이 정권의 성향과 무관하게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입니다. 둘째, 현재 주요 국공립 무용단 세 곳이 예술감독의 임기 만료와 후임 인선을 동시에 앞두고 있어, 이 결정적인 시기에 현장의 목소리를 공식화할 필요가 있다는 절박함이 컸습니다. 문체부가 이 목소리를 수용할지는 미지수이나, 지금 아니면 이야기할 기회가 없다는 판단이었습니다.
한 가지 더 제안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주로 '선임 구조'의 문제에 매몰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본질적인 문제는 "국공립 단체들이 공적 예산을 지원받는 만큼 과연 그에 걸맞은 예술적 성과를 내고 있는가"입니다. 솔직히 관객의 입장에서 국립 단체들이 매번 훌륭한 명작을 내놓고 있는지 묻는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만족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단체 측에서는 행정적 제약이나 내부 사정을 호소하겠지만, 일반 관객은 그러한 변명보다 결과물로 말하는 예술단체의 역량을 보고 싶어 합니다.
물론 박경숙 단장님이 이끄시는 광주시립발레단처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괄목할 만한 예술적 성취를 증명해 내는 모범 사례도 있습니다. 이처럼 구조의 문제를 넘어, 결국 단체의 본질인 '작품의 질'과 '예술적 가치'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합니다. 오늘 주어진 시간이 부족하여 깊게 다루지 못하는 점이 아쉽지만, 향후 이 부분을 반드시 심도 있게 논의해 보고 싶습니다.
김채현: 공교롭게도 예술감독 자리가 공석이 된 경우가 세 건이나 겹쳤기 때문에, 시기적으로도 이 문제를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상황이 여전히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오히려 더 낙후되고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체부는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행정의 질은 퇴보했고, 예술감독과 단체장 자리가 제때 임명되지 못한 상황도, 문체부의 낙후된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냉정하게 말해, 지금의 행정 수준은 부처 출범 당시와 비교하면 치욕적일 정도로 퇴행했습니다. 우리 예술인들 역시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지금은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예술감독 선임이나 국공립 예술단체 운영에서도 국민주권정부의 정신에 걸맞게, 제도를 보다 명문화하고 보완하는 작업이 문체부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있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점이 여전히 실망스럽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문체부 자체의 자성, 쇄신분발을 기대합니다.
국립 예술감독 선임방식을 챗 GPT에 물어보는 현실
예효승(안무가): 저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현대무용 안무가 예효승입니다. ‘긴급토론회’라고 해서 필드에 계신 많은 창작자분들이 와서 한목소리를 보태실 것 같았습니다. 저도 늘 궁금했던 부분이었고, 어떻게 해야 이런 국공립 단체장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어서 오게 됐습니다. 저는 지난해 국립현대무용단과 국립무용단에서 신작 안무를 맡으면서 “요즘 단장 준비하는 거야?”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오히려 마음이 더 무거워졌습니다. 행정, 정책, 여러 세부적인 내부 사정과 운영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술감독이라는 자리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더 커졌습니다.
홍승엽 선생님이 초대 단장을 맡으셨을 때부터 지금 5대에 이르기까지, 저는 1대 때부터 트레이너로 있었고, 안애순 선생님 시기에도 트레이너이자 무용수로 참여하면서 행정적인 부분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차기에 부예술감독과 같은 역할을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여러 상상과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사실 저는 국공립 무용단체장의 선임 방식이 궁금해서 챗지피티에 물어보기까지 했습니다. 비공개로 선임해야 하는지, 공채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국립현대무용단과 10년 넘게 관계를 맺어오면서도, 예술감독이 되는 것에 대한 해결책이나 어떤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들어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자리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역시 한목소리를 실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용 장르가 연극과 비교했을 때 여러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씁쓸함도 느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저 역시 이 문제에 대해 조금 더 공부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예술감독이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더 커졌습니다. 저는 세미나든 토론회든 이런 공개적인 자리에 처음 와봤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이런 참여가 절실히 필요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다만 오늘 이 자리에서도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는 못한 채 돌아갈 것 같습니다.
현장 예술가들 연대의 목소리 필요
김서령(문화예술기획 이오공감 대표): 예효승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더 많은 분들이 와서 함께 이야기를 듣고 논의하는 자리였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큽니다. 또 이렇게 긴급하게 자리를 마련하시느라 굉장히 애를 쓰셨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늘 이런 자리가 허공에 흩어지는 이야기로 끝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도 3시간 가까이 함께했지만, 뭔가 분명한 결론이나 외부에 전달할 만한 내용을 만들어내지는 못한 것 같아서요. 그렇다면 이 이후에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무용 쪽 기획을 해왔고, 지금은 저 자신을 무용 기획자라기보다는 다원예술 기획자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 논의되고 있는 문제와 같은 맥락에서, 현장 예술가들과 함께 ‘예술인의 목소리’라는 계정을 만들고 목소리를 모으고, 성명서를 내는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계속 연락을 받으면서 왔습니다.
저희는 현재 ‘예술인의 목소리’라는 계정을 통해 국공립 예술단체장 선임 문제와 예술 생태계 정상화를 위한 현장의 목소리를 모으고 있습니다. 결성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뜻을 함께하는 50명의 대표 발의자와 748명의 예술인이 연명에 동참해 주셨고, 여러 매체를 통해 공론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활동을 하며 가장 절감한 것은, 예술인들이 자신의 실명을 걸고 정치적 사안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점입니다. 창작자들에게 이 서명은 단순한 참여를 넘어선 용기였습니다. 당초 문체부 정상화 관련 의견 접수 창구에 목소리를 전달하려 했으나, 창구가 사라진 탓에 현재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정식으로 접수한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현장에는 무관심이 존재합니다. “기관장은 원래 정치적으로 내려오는 자리 아니냐”며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인식, 그리고 당장 자신의 작업 환경만 유지된다면 누가 오든 상관없다는 체념이 우리 예술계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이러한 모욕과 농락을 묵인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저희는 카드뉴스를 통해 “우리가 바라는 리더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 논의를 더 대중적으로 공론화하기 위해 오는 6월 22일 월요일, 별도의 공론장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장소 추후 공지) 이 자리에서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토론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오늘 이 자리를 빌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무용계의 참여가 다른 장르에 비해 유독 저조한 상황입니다. 선배님들이 앞장서서 경험과 정보를 공유해 주시고, 후배들이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십시오. 문체부와 산하 기관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장의 예술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의 언어'로 받아들이는 연대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작업자로서 긴 호흡을 가져가기가 쉽지 않지만, 이 목소리만큼은 흩어지지 않게 계속 모아낼 것입니다. 6월 22일, 현장의 연대를 위해 많은 분이 꼭 함께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김혜라: 소수 정예로 3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오늘 저희가 생각했던 주요 내용이 세 가지 있었는데, 세 번째 주제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나온 목소리들이 단지 허공으로 흩어지는 이야기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논의들이 하나하나 쌓여서, 우리가 희망하는 어떤 지점까지 나아가는 데 의미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한국춤비평가협회와 국제무용협회가 함께, 미래 방향에 대한 보다 긍정적이고 실천적인 방식의 논의를 이어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