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연속 해외취재_ 춤 자료의 재탄생 2
공유할수록 살아나는 춤 자료들
김채현_춤비평가

1. 2019년 여름: 대출 카드


2019년 8월 뉴욕공연예술도서관 3층에서 뉴욕 공공도서관 자료 대출 카드를 발급받았다. 이 카드가 있어야 도서관 소장 자료를 대출받을 수 있고, 특히 콜렉션 자료를 도서관 내에서 열람할 수 있다.




지난 8월 발급받은 자료 대출 카드, 앞면은 싱어송라이터 록가수 이미지로 디자인되었다 ©김채현




 자료 대출 카드는 인터넷 사이트로 신청한다. 미국 시민이 아니어도 3개월간 유효한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https://catalog.nypl.org/selfreg/patonsite). 발급 비용은 없다. 이 카드로 뉴욕시 92곳에 소재한 공공도서관의 사실상 무진장한 책과 자료를 이용할 수 있다.
 춤 자료는 뉴욕공연예술도서관에 집중되어 있고 소장 자료들은 다음 사이트에서 모두 검색할 수 있다(www.nypl.org/locations/divisions/jerome-robbins-dance-division).
 인터넷 검색창(www.nypl.org/books-music-movies)에서 예컨대 Kim Chae-hyeon 또는 Kim Chae-hyŏn을 입력하면 필자가 기증한 책 두 권(‘춤과 삶의 문화’ ‘한국춤통사’)의 한글 제목 발음이 영문으로 표기된 상태로 떠오를 것이다. 그 아래 ‘영생불멸의 주체 사상’은 편집 집필자가 김재현이고 아마도 북한에서 기증한 자료인 것 같으며, 필자와는 무관하다.
 춤 자료관으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이 곳에 웬만한 춤 자료는 다 있다는 말이 성립하는지는 모르겠다. 일례로 한국의 춤 관련 자료를 검색(#dance korea)해보면 소장 자료가 충실치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독일이나 프랑스 춤 관련 자료를 대충 검색(#dance germany, #dance france)해보면 소장 자료 규모가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dance new york으로 검색하면 규모는 급증한다. 이는 뉴욕공연예술도서관이 미국과 유럽 중심으로 자료를 소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지역의 춤 자료가 필요하다면 우선 여기서 검색하고 다른 곳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여기서 열람해야 할 것이다. 뉴욕공연예술도서관은 자료 소장에서 일단 한계가 있으나 아무튼 세계 최대이며, 충실도가 낮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2.
1993년 여름: 복사 동전


1993년 7월 뉴욕공연예술도서관에 갔다. 지금부터 26년 전이다. 거기에 소장된 자료 목록을 복사하러 갔다. 뉴욕공공도서관의 목록집은 수많은 책들로 제본되어 있었고, 그 가운데 dance, ballet 항목을 찾아 복사하였다. 복사한 것을 귀국한 다음 제본으로 엮었는데, 100페이지쯤 된다.




1993년 7월 복사한 자료의 일부 ©김채현



1993년 뉴욕공연예술도서관 앞에서의 필자, 지금은 배낭이나 당시엔 숄더백을 메고 다녔다 ©김채현



뉴욕공연예술도서관, 2019년 ©김채현




 당시에는 복사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 장에 20센트 정도(?) 지불해야 하는 유료 복사기에는 동전을 넣어야 한다. 복사할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대로 복사해야 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계속해서 장시간 복사해대는 것은 공중 예의에 어긋나므로, 한 번에 웬만큼 복사해야 할 것이다. 웬만큼 복사하기도 전에 동전이 떨어지면 자기 차례는 자동으로 끝난다. 그래서 주머니 속에 동전을 수북이 넣고 작업해야 할 것이다. 그때 뉴욕공연예술도서관은 12시에 문을 열었다. 복사 작업은 하루에 다 끝나지 않고 결국 이틀 걸렸다.
 지금은 응당 그럴 필요가 없어진 시대다. 그동안 세상은 디지털 때문에 상전벽해(桑田碧海)를 넘어 천지개벽(天地開闢)하였다. 자료 목록을 손에 넣으려고 온갖 비용을 들여 그곳에 갈 일은 없고, 더 더욱 춤 관련 갖가지 디지털 영상까지 내 컴퓨터와 모바일로 접할 수 있으니 말이다.


3.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춤이 영원히 살게 하는 마법


뉴욕공연예술도서관 사이트는 부탄 댄스 프로젝트의 동영상들을 제공한다. 어마어마하게 방대하다(https://digitalcollections.nypl.org/search/index?filters%5BrootCollection_rootCollectionUUID_s%5D%5B%5D=Bhutan+Dance+Project%2C+Core+of+Culture.%7C%7C6e78bb70-0d19-0131-2cea-3c075448cc4b&filters%5Btopic%5D=Dance&keywords=).
 2004~06년 24개월 동안 500 시간 동안 부탄 지역의 모든 의례춤을 기록한 동영상이 641개의 파일로 정리되어 2017년부터 디지털 사이트에서 제공되고 있다. 이로써 사라져가는 부탄의 춤은 앞으로 영생할 발판을 얻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기록은 영생에 이르는 첫 걸음이다. 그것은 겨우 첫 걸음일 뿐이다. 기록이 사장(死藏)되면 의미도 없어진다. 기록은 공유되어야 영생할 수 있다. 기록을 공유하는 장소로서 도서관, 자료관 등속이 있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뉴욕공연예술도서관이 자료를 어떻게 공유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난 8월 현장을 방문하였다. 2층에는 자유 열람이나 일반 대출이 가능한 자료들이 비치되어 있다. 이는 여느 도서관과 엇비슷하다. 다만 자료 소장 규모에서 차이가 날 것이다. 특수 취급 자료는 3층으로 가야 관내에서만 열람이 가능하다. 일종의 대표적 테스트 사례로서 제롬 로빈스를 염두에 두었다. 지난 3월호 〈춤웹진〉에 제롬 로빈스의 기록 습관, 기록 규모, 그리고 그가 뉴욕공연예술도서관에 기증한 문서 파일을 일렬로 세우면 100미터를 훌쩍 넘는다는 사실을 소개한 바 있다.(참조: http://www.koreadance.kr/board/board_view.php?view_id=239&board_name=plan&page=1&search_category=&search_field=subcontents&search_text=%EC%A0%9C%EB%A1%AC+%EB%A1%9C%EB%B9%88%EC%8A%A4&search_operator=and)




제롬 로빈스 자료 소장 상태를 알리는 사이트 알림판, 뉴욕공연예술도서관




 3층의 직원에게 용건을 말하니 제롬 로빈스 자료를 사이트에서 한참 검색하더니 컬렉션의 문건과 사진 자료 박스 3개가 적당할 것 같다고 추천해 주었다.




 




 그런 다음 해당 박스를 관내 대출 받으려면 카드를 발급받아야 한다고 일러주어 앞에 소개된 순서대로 카드를 발급받았다. 카드를 발급받고 곧 컬렉션 열람실로 가니 15분마다 자료를 대출하는데 대기하라는 말을 들었고, 곧 테이블에서 자료를 받아 열람하게 되었다. 자료는 파일 박스에 담겨 나왔다. 자료가 담긴 박스 상태로 보아 제롬 로빈스가 평소 보관하던 박스 상태 그대로 도서관에 소장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제 그 박스들을 하나씩 열어 본다.




 




 박스들 속에 링 파일이 들어 있고 비닐 파일에 해당 자료를 넣은 목록이 있다.




 




 대개의 문건 자료는 박스 속에서 도서관의 규정 폴더로 나눠져 담겼다.




 




 제롬 로빈스의 대표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제작 당시 사진들이 들어 있고 그걸 영화로 제작하던 때 찍은 스틸이 들어 있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연출 장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영화 스틸 컷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음악 작곡자 레너드 번스타인(중간)과 제롬 로빈스(오른쪽)




 B. 브레히트 원작 음악극 〈억척 어멈과 그 아이들〉(1963년)의 연출 당시 주연 앤 크로프트와 상의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억척 어엄과 그 아이들 연출 당시




 제롬 로빈스는 자신의 모든 자료를 뉴욕공연예술도서관에 기증하였고, 어마어마한 물량의 그것을 도서관은 받아주었다. 자료가 차지할 공간도 만만찮을 것이고 보관 책임도 당연히 따를 것이다. 그런데도 도서관이 응한 걸 보면 춤(?) 자료에 대해 서로 죽이 맞았다고나 할까.
 제롬 로빈스는 말하자면 자신을 도서관에 기증한 셈이었다. 기증한 자료는 세무 회계 자료까지 있으나 필자는 이번에 그것까지 확인할 시간 여유가 없었고 굳이 그럴 동기도 없었다. 대출 받은 박스를 계속 훑으니 아래서 보듯이 어디로부터 공연 제안을 받은 편지, 작품 연출 문건, 공연 순회 관련 문건, 그리고 잡다한 사진들을 담은 봉투가 나왔다.




 




 뉴욕공연예술도서관에서 자료를 보니 궁금증이 일고 궁금증은 호기심으로 이어진다. 제롬 로빈스 연구 전문가가 이들 자료를 본다면 그에 관해 새로운, 다른 이야기를 마구 하고 싶을 테고, 이걸 텍스트화하면 책 같은 것으로 만인과 더욱 공유하게 될 것이다. 기증된 제롬 로빈스 자료는 지금도 거기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 같은 존재가 뉴욕공연예술도서관에는 엄청나게 있는 것이다.
 자료를 접하면 호기심이 일어나도록 자료는 보존되어야 한다. 또한 호기심을 갖는 연구자들이 있어야 자료는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이는 자료가 다시 태어나는 거나 마찬가지다. 잠자는 자료는 영영 깨어나지 못한다면 죽은 거나 매한가지다. 호기심을 갖도록 하는 보존 방식, 호기심을 가질 역량을 갖춘 연구자와 방문관람자... 역량이 있어야 적절한 호기심도 발동한다. 

 뉴욕공연예술도서관에 과거에도 자료를 찾아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방문하였다. 이제는 디지털 장치에 힘입어 몸으로 힘들일 것도 없이 디지털 사이트로 방문해서 그곳의 온갖 자료를 섭렵할 수 있고, 특수 콜렉션 자료와 실물 자료도 현장에서 훨씬 효율적으로 접할 수 있다. 이에 비추어, 이 도서관의 자료가 가히 전세계 곳곳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고 한다면 과장된 생각일까. 디지털 시대에 전세계 곳곳에서 공유되어 살아 숨쉬는 것이 현실로 되고 있다. 

 아무튼 춤 자료가 살아날 수 있는 조건은 이처럼 매우 복합적이며, 따라서 상식보다 훨씬 다각적인 작업이 수행되어야 자료는 공유되어 생명을 누리게 된다. 오늘날 고급예술이 죽어간다고들 말하곤 하는데, 뉴욕공연예술도서관에서는 그 말이 잘 통하지 않는 것 같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19. 11.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