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기획연재_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17)
한국춤이란 용어와 민족춤, 전통춤
채희완_춤비평가

한국춤은 넓게는 한국에서의 춤 일반을 뜻하고, 좁게는 전통사회의 춤과 이를 이어받은 한국적 특성을 지닌 춤 양식을 일컫는다.

  해방공간 이전에는 같은 뜻으로 조선춤이란 말이 주로 쓰였고, 북한이나 중국에서는 오늘날도 여전히 조선춤으로 불린다.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이란 말이 대한민국의 줄임말로서 통용되는 계기가 된 ‘대한제국’이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시기에도 ‘조선’이란 말이 더 일상적이었다. 특히 일제강점 시기인 1920년대 후반 지식인 사회에서 일기 시작한 “조선무용진흥론”과 조선향토예술론“에서는 민족정신, ‘조선 정조’를 새삼 불러일으키는 ‘조선춤’을 앞세우기도 하였다. 한국춤 역사에서 근대시기를 열게 되었다는 1930년대 이른바 신무용도 외래춤의 양식으로 새롭게 창작된 조선풍의 춤으로 당시 ‘하나의 조선춤’으로 평가되었다. 1960년대 국학에 대한 열기와 함께 일어난 탈춤부흥운동은 ‘한국민속춤’ 또는 ‘조선민중춤’의 역사적 지속성을 이끌어내었다. 요컨대는 통일이 되기까지는 가릴 때는 가리더라도 한국춤, 조선춤이 혼용됨이 순리인 셈이다.

  한국에서의 춤 일반은 상고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춤의 역사적 맥락을 수직적으로 고찰하는 통시적 관점과 현재의 다양한 춤현상을 수평적으로 보는 공시적 관점을 함께 아우르고 있다. 말하자면 한국문학에서 고대 ·중세문학, 근대문학, 현대문학 등 역사적 맥락에 따른 문학사적 위상도 다루고, 오늘날 대중문학, 한국에서의 서양문학, 동양문학, 제3세계문학, 번역문학 등도 아울러 다루는 것과 같다. 또 한국음악에서는 향악, 당악, 민속악, 궁중악도 다루고, 오늘날 한국에서의 양악, 대중음악, 종족음악 등도 다룬다. 마찬가지로 넓은 뜻의 한국춤은 한국전통의 고유한 춤뿐 아니라 중국 남북조·수·당 송 및 서역 등에서 들어온 외래춤, 1910년대 이후 일본이나 러시아에서 전래된 포크 댄스, 볼룸 댄스, 그리고 그 이후 신무용, 예술춤으로서 현대춤, 발레, 재즈, 오늘날 대중취향의 각종 유흥춤, 각종 종족춤 등이 포함되며, 이와 함께 오늘날 춤에 대한 교육문제, 춤에 대한 사회적 인식 등도 고려의 대상이 된다. 즉 한국춤이라는 넓은 개념 속에는 춤의 한국적 현실상황까지 모두 포함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좁은 뜻의 한국춤이라 하면 현대춤이나 발레 등 외래의 것과 대비되는 '한국적' 춤 양식이나 기법을 지닌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때의 한국춤은 전통춤과 무대양식의 조선풍인 신무용, 오늘날의 '창작 한국춤'을 포괄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것을 바탕으로 한, 양식이나 기법상 '한국적' 특성을 지닌 것을 좁은 뜻의 한국춤이라고 하더라도 한국적 특성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판단기준의 문제는 계속 남는다. 이를테면 신무용을 조선춤의 하나라고 평가할 때의 판단기준 문제도 그 하나이다.

 넓은 뜻의 한국춤에 포함되는 한국발레에는 '한국에서의 발레'와 '한국적 발레'가 포함되고 각기 지칭하는 대상은 비슷하나 그러나 그것이 지닌 민족미학적 가치 이념의 지향성에 있어서는 강도의 차이가 크게 나 있다. 한국적 발레는 외국인이 한국무대에서 추는 발레도 포함되는‘한국에서의 발레’와는 달리 한국에서 한국인이 추고 즐기는 발레이지만, 한국인의 체질·기질·민족성·품성·정조·미의식, 세계관 등이 발레 언어나 양식 속에 깊이 내재되어 있을 때만 쓸 수 있다. 말하자면 발레라는 양식 속에 '한국적'이라는 속성이 얼마나 의도적으로 반영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는 한국춤의 사회문화사적 판단기준의 문제인 동시에 춤의 민족미학적 가치평가의 문제이어서 문화철학적 규범학의 영역에 속한다.

 

  또한 한국춤은 일본춤, 중국춤, 인도네시아춤, 아프리카춤, 서양민족춤 등과는 변별되는 민족춤의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민족춤이란 종족춤의 하나로 춤 일반의 보편적인 성격과 민족적 특수성을 아울러 지닌 춤이다. 즉 한국의 민족춤은 한국의 풍토 위에서 생성·전승된 전통춤이 중심이 되며, 이를 계승하여 비판적으로 수용한 근대이후의 춤도 포함한다. 국무(國舞)로서 민족춤은 첨예한 계급적 관점이 아니더라도 양분된 사회구조에서는 민족문화의 토대인 기층문화권 속의 민중춤을 중핵으로 한다. 이때 민중춤의 상층유입과정이나 궁중춤 · 외래춤과의 접합양상 속에 관통되는 민중적 응전상을 살피는 것이 민족춤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열쇠가 된다. 오늘날과 같은 다변화한 현대 사회에서 ‘민족춤’은 종족적 특성보다는 민족 주체적 자기동일성에 좀더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성격을 밝히자면, 일반대중의 사회의식과 민족적 세계관의 반영으로서 춤의 내용 및 사상, 신호체계로서 춤언어, 양식적 차별성으로서 춤형식, 연행 장르의 특수성으로서 연행 시공간 등이 과제로 떠오른다. 1958년 평양 조선예술출판사에서 발간된 최승희의 무보집은 『조선민족무용기본』이라는 이름의 책이다. ‘조선민족춤’의 기본적인 춤동작체계를 정리한 이 책에는 입춤을 비롯하여 부채춤, 탈춤, 수건춤, 소고춤, 칼춤의 기본춤사위가 그림으로 정리되어 있고 조선춤 동작에 필요한 조선장단과 춤의 기본 반주곡이 붙어있다.(한국에서는 1991년 3월 1일 동문선 문예신서 16으로 『조선민족무용기본』이 동문선에서 발간됨) 이 ‘조선춤기본’은 북한에서의 춤과 중국조선족춤의 기본이 되어왔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1987년 2월 무용표기집단이 15년간의 연구 끝에 독특한 자모결합식 춤표기법을 고안해 내었다. 이 자모식춤표기법은 조선춤의 특성을 내용과 형식에서 운동과학적 접근을 통해 밝히고자 애쓴 성과에서 비롯된 것임을 간과할 수 없다.  

   그리고 진보적 성향의 ‘민족춤’은 민족의 현실과제 해결에 기여하는 변혁운동으로서의 춤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 민족춤은 1960~70년대 민속극부흥운동과 창작탈춤에서 비롯되었는데, 당대 민중적 세계관과 새로운 민족양식을 추구하는 마당극운동 및 민족극운동과 중심내용을 같이하는 이 시대의 민중춤이라 하겠다.

 

  전통춤은 그 연원, 창작층, 향수층, 지지 기반, 물적 배경 ,형태, 내용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눌 수 있다. 흔히 궁중춤과 민속춤으로 크게 나뉘는데 이는 전통음악을 분류하는 방식에 따른 것이다. 또 역사의 시대구분에 따라 원시춤․ 고대춤․ 중세춤․ 근대춤․ 현대춤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밖에 고전주의춤, 낭만주의춤, 사실주의춤, 표현주의춤, 초현실주의춤, 추상춤 등 예술사조에 따른 구분, 또는 굿춤, 일춤, 놀이춤, 교육춤, 통과의례춤, 예술춤 등 목적이나 쓰임새에 따른 구분, 사대부춤, 전문예인춤, 두레춤 등 연행자의 신분에 따른 구분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그러나 전통춤의 한 종목도 빼놓지 않고 자료화할 수 있는 가장 포괄적인 구분으로는 춤(음악)이 연행되는 장소에 따라 ①굿판, 판놀음, 일터 등의 마당춤, ②사랑방이나 도시 상공인의 공청, 풍류방 등의 방안춤 ③왕실, 관아, 지방관아, 오위영, 종묘, 문묘, 사찰 등의 전정(殿廷)춤 등으로 나누는 방식(이보형의 「한국전통음악자료의 십진분류자료표」, 『월간문화재』 제 9호, 문화재보호재단, 1985 참조)이 있다. 이 분류는  공연 장소 그 자체가 이미 연행의 계기나 춤의 기능, 춤꾼의 신분관계를 그대로 나타내기 때문에 분류체계가 지니는 의미연관성의 진폭을 함께 고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전통적 의미에서 마당춤은 사랑방이나 기방에서 추던 풍류방춤과 궁정이나 문묘, 지방 관아, 사원 등의 대뜰에서 추던 전정(殿庭)춤과는 달리 분류되는 전통춤의 한 갈래이다. 마당춤은 서낭당이나 굿당, 들판이나 언덕바지, 마을의 빈터나 집 안팎의 뜰, 장터나 광장의 가설무대 등에서 추던 굿판의 춤, 판놀음의 춤, 일터의 춤으로서 위의 풍류방춤이나 대뜰춤 과는 성격을 달리하면서 여러 가지 양태를 보인다. 집단 신명의 자족적인 춤문화를 이루는 토대가 된 마당춤은 두레춤, 마을굿춤, 향토춤의 여러 갈래인 굿춤 · 풍물춤 · 탈춤 · 허튼춤 · 장기자랑춤 · 소리춤 등 기층사회의 민중춤을 대표하는 춤이다. 전통사회의 마당춤은 소인적(아마츄어)이고 함께 추는 춤이 중심을 이루나 무당패나 창우패, 사당패, 유랑예인패 등 전문예인의 보여주는 춤도 끼어든다. 1900년대 이후 새로운 춤 공연 공간으로 극장무대가 이땅에 개설된 이후로는 전통춤의 실연자와 연행의 계기, 나아가 관중층의 변화와 유통구조와 사회적 기능이 이전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새롭게 창작된 조선풍의 춤이라는 신무용도 주로 극장무대 공간에서 활동공간을 마련하였다. 

채희완

현 한국춤비평가협회 회장. 부산대 명예교수, 〈(사)민족미학연구소〉 소장, 〈부마항쟁기념사업회〉 이사, 〈창작탈춤패 지기금지〉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한국의 민중극』(엮음), 『탈춤』, 『한국춤의 정신은 무엇인가』(엮음), 『춤 탈 마당 몸 미학 공부집』(엮음), 『지극한 기운이 이곳에 이르렀으니』 등을 펴냈고, 그밖에 춤, 탈춤, 마당극, 민족미학에 관련된 논문과 춤 비평문이 있다.​ ​ ​ ​ ​ ​ ​ ​ 

2019. 1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