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5월의 저녁 어스름과 밤을 도와 벌이는 해원상생 대동굿의 자리는 정신대에 끌려간 분들의 대한해협과 현해탄에서 뿌린 피와 눈물이 거센 파도가 되어 밀려오는 부산의 해운대 백사장입니다.
해원상생대동굿은 일제 강점기 군국주의 일본의 사슬에 묶여 위안부 노릇으로 꽃다운 몸과 정신을 송두리째 짓밟힌 정신대 할머니들의 떠도는 원혼을 천도하고, 생존해 계시는 분들의 한맺힌 삶을 위무해 드리기 위해 마련하는 범민족적 문화행사입니다.
우리는 이 행사를 통해 정신대 문제가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 모두의 문제이고,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민족의 통한임을 다시금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일본정부가 정신대 문제를 비롯해 강점기의 만행 사실을 은폐, 호도한 사실을 결코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근자에 와서는 자위대를 강화하면서 P.K.O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군국주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음을 부릅뜬 눈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부산을 비롯한 곳곳의 민족문화예술활동가들이 고이 접어 바치는 연행물과 함께, 신내림을 받고 신의 일을 수행하고 있는 오영숙씨의 진중한 해원상생굿이 어우러지는 이번 행사는 정신대 할머니들을 위해 온국민이 작은 정성을 드리는 민족예술대동마당굿입니다. 온 시민이 동참하는 이번 대동굿은 이땅에서 더 이상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고 문화적 자존을 지켜나가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는 결의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위는 지금부터 26년 전 1993년 5월 8일(토) 3시 부산 해운대 백사장에서 펼친 정신대해원상생대동굿의 취지문의 일부이다. 이날 대동굿은 하오 3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14시간에 걸쳐 연인원 3천여명이 모여들어 펼쳐졌다. 부산민족운동협의회의 단체들과 발족한 지 얼마 안되는 민족예술인총연합 굿분과위원회가 주관하였고, 본 행사에 출연진과 진행요원이 300여명에 이르렀다.
신내림을 받은 부산 태생의 춤꾼 오영숙이 주재하는 해원굿이 행사의 중핵이 되고, 여기에시와 이야기 노래 마당, 춤, 마당극이 결합하였다. 이듬해에도 5월 13일(토) 하오 3시부터 해운대 백사장에서 몰아치는 비바람 속에서 연희자, 관중 모두 비에 흠뻑 몸을 적시며 이튿날 새벽까지 해원상생굿을 올렸다. 이 두 번째 행사부터는 중요무형문화재 82호로 지정된 〈동해안 별신굿〉의 김석출선생 일가가 펼치는 해원상생굿이 중심이 되고, 이에 각종 현대판 산악백희가 어우러졌다.
그후 이태에 한 번씩 올려지는 해원상생굿이 거듭될수록 굿에 대한 일방적인 편견이 깨뜨려지고, 그것으로 민족예술의 근원적 힘임이 재삼 확인되는 과정이 되었다. 한 때 저질 퇴폐 일본문화의 교두보 노릇을 해온 부산지역에서 해원상생굿이 열리면서 정신대할머니 수송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 어두운 역사를 되돌이켜 보고, 부산지역에서부터 민족정기를 바로 잡고 불우한 민족역사를 씻어내면서 건강한 민족의식을 고취시킨 바가 된 것이다.
일본군위안부 해원상생한마당 ⓒ김정희 |
1991년 8월 14일, 열여섯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가 당한 성노예로서 치욕적 삶의 실상이 김학순 할머니의 입과 몸으로 세상에 처음 밝혀짐으로써 민족적 진실이 공론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를 계기로 이옥분, 이기분,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이 이어졌다. 여자 정신대로 끌려간 이가 15만에서 16만에 이른다고 추정되는 숫자에 비해서는 어림도 없는 숫자지만 239명의 할머니가 용감하게 정부 당국에 등록을 하였다. 민족적 민중적 삶의 문제를 무엇보더 먼저 제기해온 민족민중예술인로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충격적 실상이었다.
일본군 성노예와 정신대 피해자 문제를 주제로 떠올릴 문화예술행사를 한국민간 고유신앙 체제인 현시대 대동굿으로 착안한 것은 적절한 것이 아닐 수 없다고 문화패 사이에서 의견 일치를 보았던 것이다.
한국사상의 기반이자 미적 표현의 기저인 굿을 중심 기틀로 놓고 여기에 풍물, 민요, 판소리, 마당극과 각종 촌극과 퍼포먼스들, 그리고 시, 노래, 미술, 춤, 영상 등 현대적 표현매체 사이에 고립 분산적 관행을 벗어나 장르 이산, 집산을 아우르는 분담과 병진의 총체예술을 시도한다. 이를 통해 되살아오는 ‘큰 마당굿판’으로서 오늘날 공동체 연행, 민족예술총체연행으로 자리를 잡아 간다는 것이다.
1993, 95, 97, 99년, 그리고 2002, 04, 05, 07, 09, 11, 12, 13, 14, 15, 16, 17, 18년에 부산 해운대와 용두산공원, 광안리 해수욕장, 서울 청계천 광장, 부산 수미르공원, 자갈치시장 친수공간 등지에서 올린 정신대해원상생대동굿은, 그 이름이 “일본군 위안부 해원상생한마당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그 의미가 좀더 역사적이고 그 내용이 좀더 현실적이고, 그럴수록 더욱 실천적인 예술적 성취를 얻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일본군위안부로 강제 동원된 참담한 역사를 확인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전쟁과 여성 폭력, 여성인권의 문제를 함께 제기함으로써 일본당국의 역사적 사죄를 통해 아시아의 화해와 새로운 인권연대를 위한 미래전망을 내다보게 되는 것이다.
일본군위안부 해원상생한마당 ⓒ김정희 |
지난해 들어 여덟 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2018년 7월 1일 상오 4시에 통영의 김복득할머니가 101살에 돌아가시면서, “내 죽기 전 일본으로부터 잘못했다는 사죄를 받는다면 소원이 없겠소” 하시었다. 올해 들어 1월 28일 상오 10시 41분, 나이14살(1940년)에 일본군에 끌려가 중국, 홍콩, 말레지아에서 8년간 위안부 노릇을 한 김복동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고국에 돌아와 1992년부터 위안부피해자로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전세계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한 이래 여성 인권운동과 평화운동에 몸을 다하시면서, “하루라도 서로 좋게 지내려면 아베가 나서야해” 하는 말씀을 남기셨다 이제 위안부 생존자는 21분만 살아계시고 모두 아흔이 넘으셨다.
더욱이 2015년 12월 28일 밀실에서 피해자와는 상관없이 맺은 한일정부당국간 협정내용은 새삼 할머니의 여성 인권과 민족적 자존과 생명을 짓밟고 있다.
1975년 5월 22일, 유신독재 권력으로 민주와 민권을 압살하는 박대통령에게 보내는 마지막 글을 읽고 교정에서 자결한 김상진 서울농대생의 민주대학장이 당시 대학가에서 치루어진 적이 있다. 상여행렬을 앞세우고 시위행진이 거행되려던 것과도 닮은 듯 김복동할머니의 오구굿을 실천적 민족예술한마당의 깃발로 앞세우고 이 나라와 일본에게 진정한 사죄와 역사적 배상을 요구하는 민족예술행동의 집회를 하려는 뜻도 있을 터이다..
8월 23일, 24일 부산민주공원 중극장과 소극장, 그리고 앞마당에서 올려지는 2019 열 여섯번째 일본군위안부해원상생한마당은 열림굿을 필두로 해원마당, 상생마당으로 나뉘어 시와 음악과 춤과 마당극의 작품엮음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예술적 성취를 위해 운동성을 약화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성을 강화하는 예술적 깊이를 이 시기에는 더욱 요망한다는 점을 이 행사를 통해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채희완
현 한국춤비평가협회 회장. 부산대 명예교수, 〈(사)민족미학연구소〉 소장, 〈부마항쟁기념사업회〉 이사, 〈창작탈춤패 지기금지〉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한국의 민중극』(엮음), 『탈춤』, 『한국춤의 정신은 무엇인가』(엮음), 『춤 탈 마당 몸 미학 공부집』(엮음), 『지극한 기운이 이곳에 이르렀으니』 등을 펴냈고, 그밖에 춤, 탈춤, 마당극, 민족미학에 관련된 논문과 춤 비평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