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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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시
- 2019년 7월 12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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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소
- 예술가의집(서울 동숭동)
한국춤비평가협회가 주최한 2019 여름 포럼에서는 한국창작춤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국내외에서 활동의 폭을 확장하고 있음에 주목하여 “오늘의 춤 창작경향과 비평 2”을 주제로 한국창작춤 현장을 논했다. 〈춤웹진〉은 현장스케치와 발제문에 이어 2부 순서로 진행된 패널과 함께한 토론 내용을 게재한다.
한국춤비평가협회 2019 여름 포럼의 토론 현장 ⓒ춤웹진 |
장광열(사회):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들과 2부 토론을 진행하고자 한다. 1부에 있었던 김채현, 권옥희 춤비평가의 발제에 대한 의견 및 오늘의 주제인 국내 춤 창작경향에 대해 자유롭게 논의해주시길 바란다.
김미영(무용칼럼니스트): 서울뿐 아니라 지역 여러 곳에서 열린 무용공연을 많이 보러 다녔다. 어떤 작품은 안무가의 사상이나 윤리적 배경이 드러나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작품도 굉장히 많았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춤 공연이 많은데 안 좋은 작품이 왜 더 많게 느껴지는지 전문가 분들께 여쭤본 적도 있었다. 해외에서도 실패한 작품들이 많고 그 중 선택받은 소수의 좋은 작품이 국내 초청되기 때문에 국내에만 있는 현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저는 글을 쓰기 전에 안무가의 창작배경을 많이 알고 싶어서 인터뷰를 먼저 진행하고 주제를 갖고 글을 쓰려 한다. 그러다 보니 인터뷰 도중 안무자의 윤리적 배경이 확인되는 경우도 많았고, 안무자가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인터뷰에서 명확히 전달하지 못한 경우 여지없이 작품 결과물도 펼쳐져만 있고 하는 이도, 보는 이도 어렵고 힘들게 되더라. 작품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것인지, 관객과 진정으로 소통하고 싶었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어떻게 보면 다른 목적으로 무대에 서는 것은 아닐까 싶다. 청년예술가들에게 여러 지원사업이 열려있고 기회가 많다보니 무대에 서는 것도 어렵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안무자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것이 작품활동인지 혹은 지원금 수혜인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명확했으면 좋겠고 그것을 끈질기게 파고들어 무대에 펼쳤으면 한다.
김민관(공연칼럼니스트): ‘아트신’이란 웹 매체를 2009년부터 운영해오고 있고 대부분의 글을 써왔다. 취재를 통한 저널리즘의 성격에서 시작해 현재는 리뷰나 비평 같은 예술 현장에 대한 기록 및 아카이브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주로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무용축제 공연을 보고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주목하는 몇몇 안무가의 작업을 보게 되는 것 같다. 단순히 움직임의 심미적 표현에만 주안점을 둔 작업들에서는 어떤 의미를 찾기 어렵고, 춤에 대한 메커니즘이 드러나는 작업을 주목하고 있다. 춤의 기표와 기의, 표층과 심층의 관계가 이분법적으로 분리되는 게 아니라 하나의 기호와 그에 대한 감각으로 다가오는 작업으로, 그런 의미에서 명료하고 강렬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안무에 대한 사유와 성찰이 중요한데, 이는 안무에 대한 사고 안에 안무에 대한 질문을 도출하는 것 역시 요구된다는 뜻이다. 최근 작업으로서 황수현 안무가의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와 최강 프로젝트(최민선, 강진안)의 〈여집합 강하게 사라지기〉를 인상 깊게 봤고, 그 안무 방식에 대해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재영(시나브로 가슴에): 권옥희 춤비평가의 발제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안무가들도 많이 동의할 거라 본다. 지금 저도 젊은 안무가 중 한명이고 대학 동문단체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저희들의 생계가 달려있기 때문에 어떨 때에는 지원사업 공모가 뜨면 지원금을 받아내기 위해 작업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작업을 시작했지만 진행하면서 기존 작업을 발전시키기도 한다. 제가 하고 싶은 작업과 지원사업 주체가 원하는 작품의 성향을 맞춰야 해서 내가 표현하고자 했던 작업이 틀어지는 상황도 있다. 요즘 다원예술 지원사업이 많고 지원금도 큰 편이다. 제가 생각하는 작업을 다원예술에 끼워 맞춰서는 안 되지만 내 몸에 더 집중하여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업계획서를 쓰다보면 지원사업에 맞춰 다원예술과 연관시켜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될 때가 있다. 억지로 끼워 맞추려다 보면 의도치 않은 테크닉이 들어오게 되고, 작품에 도움 되지 않는 불필요한 것들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내가 하고 싶은 작업과 지원사업을 위한 작업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조금 더 경각심을 갖고 작업에 임해야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아무래도 먹고사는 것과 관련 있다 보니 가끔은 그런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가 생긴다. 저를 비롯해 많은 안무가들이 이런 자리를 통해 창작 태도를 가다듬었으면 한다.
사회: 한국 창작무용계를 반영하지 않은 기관의 일방적인 지원정책, 이를 쫓아다니는 국내 안무가들의 시류가 오히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안무가들의 경쟁력과 지속성을 헤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지점이 많다.
김미영(무용칼럼니스트), 김민관(공연칼럼니스트), 이재영(안무가/시나브로 가슴에) |
표상만(제이제이브로): 오늘 포럼에서 발제자 분들의 말씀을 공부하는 마음으로 들었다. 사실 한국 창작춤의 흐름, 시장 유통의 문제가 저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 같지는 않다. 능력이 되어야지만 그 안에 끼어들어갈 수 있으니 열심히 노력할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시간이 지나 저희 다음 세대 아티스트들이 나오고 저희가 시대에 뒤처지게 되는 것이 가장 두렵다. 이재영 안무가의 언급처럼 의도하지 않은 것들을 억지로 끼워 맞춰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극복해 나아갈 것인가에 대해 저 또한 고민하고 있다. 이런 점이 한편으로 안무가들에게 좋은 자극이 될지도 모른다. 각자의 성향에 맞게 현재를 살아가고 있고 얼마간의 두려움은 있겠지만 용기를 내어 해결해 나가야겠다. 다양한 예술작품이 있고 작품 중에서도 주류가 되는 것이 있다. 유튜브 채널이라던지 대중매체에 의해 스스로 일반화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평소 조심스럽게 자문해보고 있다. 저에게 자연스럽게 남은 잔상에 쏠려 작업하는 것을 지양하기 위해 현시대 빠른 흐름에 한 발짝 물러서 있거나 작업을 많이 하지 않더라도 내 안에서 생산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게 스스로를 내려놓고 천천히 가자는 다짐을 하고 있다. 누구에게 보여지는 작업보다는 주변 지인들과 함께 공유하며 작업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최원석(모므로움직임연구소): 오늘의 춤 창작경향과 비평이라는 포럼의 큰 주제에 맞는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의 경우를 빗대어 춤계 현실을 말씀드리면 어떨까 한다. 제가 처음 춤을 접했을 때는 입시위주의 춤이었고 대학에서는 무용수가 되기 위한 움직임을 배웠다. 졸업 후 무용수로 활동하다보니 어느덧 다음 단계를 생각하게 됐고 다른 선배들처럼 춤을 포기하거나 안무자로 나서는 것 중 선택해야 했다. 2013년도부터 안무를 시작했다. 경연에 참가하기 위해서 졸업작품 이외 안무작 한편이 필요했는데 처음 안무자로 나서는 신진에게는 힘든 부분이었다. 안무자로 활동하다보니 그동안 무용수로서의 습관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작가정신, 철학이 작품에 들어있어야 하지만 그런 것 없이 대학시절 배웠던 움직임을 나열하거나 유명 안무가의 좋은 작품에 빗대어 창작하는 것으로 안무를 배우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창작한다는 것, 몸을 통해 표현한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이었다. 어느덧 사회에서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는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의 욕구를 채우는 인간으로서밖에 존재하고 있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소득을 이뤄내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내가 춤을 지속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고 안무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해보자 해서 뮤지컬로 전향한 적도 있었다. 2~3년 뮤지컬계에 종사하다보니 경제적으로는 안정되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춤을 추는데 한계를 느꼈다. 이후 춤으로 돌아와 조경 일을 하며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모므로에 소속된 다섯명의 아티스트들은 저처럼 다른 직업을 병행하며 활동 중이다. 우리는 예술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예술가이길 원한다는 방향을 설정하고 활동하고 있다. 삼십대 후반의 나이, 사회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경제활동을 하며 창작자로 살아가고 있는데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나마 지인들이 있어 끊이지 않고 작품을 하고 있다. 더 나은 작품을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마음가짐만은 변치 않고 갖고 있다.
김채현(춤비평가): 이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공공무용단의 안일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민간단체의 열악한 현실과 비교해 안정적인 공공무용단이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황을 지적하고 문제를 들추어내야 한다.
사회: 참고로 국립국악원 무용단원 초봉이 연간 3200만원에 달한다. 다음으로 창작작업 외에도 일반인 춤교육 프로그램, 해외안무가들과 네트워킹을 통한 수업을 활발히 하고 있는 이세승 안무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세승(쌍방): 쌍방은 접촉즉흥의 저변을 넓히고자 전공자와 일반인 분들에게 워크숍이나 즉흥잼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주로 공연 바깥에서 많이 이뤄지고 있는데 공연을 잠시 지양했을 때 할 수 있는 것들이 꽤 많았다. 오늘 포럼의 발제를 들으며 배울 것도 많고 창작자로서 반성되는 부분도 많아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김채현 발제자께서 20년 동안의 춤계 흐름을 짚어주셨는데 이와 연계해 창작자로서 생각나는 것들을 말씀드리고 싶다. 최근 5년간 다양한 현상들이 많이 일어났고 이전의 거대했던 것들이 무너졌다고 본다. 현대무용에서 마사 그레이엄이라는 영웅적 인물이 국내에서 의미를 잃었고 소위 말하는 다원적인 동시대 창작이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저는 한예종 창작과에서 수학했는데 포스트모던 계열의 현대무용 교육을 받았고 다행히 실험적인 무용을 접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창작자로서 다원화의 흐름을 어떻게 따라야 할지 여전히 혼란스럽고 다양성을 추구하고 남들과 다른 정체성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이것이 객관성을 지니며 유효한 지 의문을 갖게 된다. 현대무용의 큰 흐름에서 본다면 테크닉 기반의 춤을 추다가 미디어를 접목한 컨템퍼러리 댄스로 즉각 이행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관객들도 지금의 춤을 더욱 이해하기 힘든 것 같다. 저희에게는 현대무용 테크닉과 컨템퍼러리 댄스 사이의 공백을 메워야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 그 공백은 무용사에서 자주 언급되나 교육으로서의 실천이 미흡했던 포스트모던 계열의 작업일 것이다. 교육과 창작활동은 순환을 이룬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국내의 컨템퍼러리는 그저 표피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비롯된 동시대성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 앞으로 얼마간은 대중에게 재미없는 작품일지라도 이전보다 더 다양한 작품이 나타날 것이라고 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다시 수렴되는 지점이 생길 것이다. 그러기 위해 저도 창작자로서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
권옥희(춤비평가): 앞서 예술가의 생계가 언급되었고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창작자로서 가져야할 예술관이나 춤 창작의 경향이 이번 포럼에서 조금 더 논의되어야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원화라는 용어에 너무 몰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창작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쫓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흐름을 바꾸고 먼저 앞서가는 사람들이다. 예술가가 만든 흐름을 비평가나 연구자가 쫓아다니며 정리하고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 제도화시키는 것이다. 따라가려 애쓰지 말고, 용기를 갖고 앞서 나아가는 예술가이길 바란다.
이종호(춤비평가): 국내 지원제도에 대해 덧붙여 말하면, 개인적으로는 국내에서 커뮤니티댄스에 대한 개념도 무용가들마다 다르고 어설프다고 생각되는데 한때 지원금이 마구 몰리면서 커뮤니티댄스를 몰랐던 사람들조차 지원에 앞서는 현상이 일어났다. 앞서 언급과 같이 지원금을 쫓아 작업의 방향이 바뀌는 것이었다. 한편 예술창작에서 다원예술, 레지던시, 국제공동창작 이 세 가지는 오늘날 피해갈 수 없는 아이템이라 할 수 있다. 축제를 만들면서 수없이 많은 레지던시 제안을 받고 30건 넘는 국제공동창작 작업을 해왔지만 여기에 들어가는 시간과 돈, 엄청난 투자를 고려한다면 매우 믿을만한 안무자 한 사람에게 창작을 제안하는 편이 낫다고 본다. 다원예술, 레지던시, 국제공동창작이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너무 유행처럼 번지는 경향을 지양하고 이런 굴레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필요가 있음을 말씀 드리고 싶다.
장혜림(Ninety9 Art Company): 한국춤을 기반으로 컨템퍼러리 작업을 추구하고 있다. 저희 무용단은 한국춤을 전공했던 무용수들이 함께하고 있고, 시간을 들여 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일주일에 네 번씩 정기적으로 연습하고 있다. 저희의 색깔이 전통을 기반으로 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보니 올해 국립현대무용단 ‘스웨덴 커넥션’에서 안무가로 작업했을 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국제교류 안에서 한국춤으로 무엇을 이뤄낼 수 있을까 였다. 춤뿐만 아니라 우리의 문화를 그들과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 고민했고 이를 주제로 형성하면서 두 달여의 시간을 보냈다. 동시에 스웨덴에서 그들의 문화, 시스템을 보고 느끼고 배웠다. 특히 관객과 무용단이 굉장히 가까웠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워크숍과 오픈리허설을 진행할 때도 관객은 특별한 이벤트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방금 나온 것 같은 자연스런 느낌으로 함께했고 우리나라와 다르게 예술을 수용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유럽의 난민, 실업 문제 등 시대를 반영한 여러 워크숍이 즉각적으로 만들어지고 활발히 이뤄지는 분위기였다. 한편 민간단체로서 작업할 때는 안무자의 역할이 다양하고 많은 것을 수행해내야 하는데 국립단체에서는 작품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 안무자로서 가장 좋았던 점이다.
표상만(안무가/제이제이브로), 최원석(안무가/모므로움직임연구소), 이세승(안무가/쌍방), 장혜림(안무가/Ninety9 Art Company) |
사회: 말씀 가운데 두 가지를 짚어봐야 할 것 같다. 우선 국립현대무용단과 작업해보니 안무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라고 했는데 예산과 무용수, 극장을 지원받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원시스템이 보완된다면 우리나라 민간무용단, 전문무용단의 안무자도 안무에만 전념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두 번째, 관객과 가깝다는 것은 스웨덴 문화가 컨템퍼러리 댄스라는 장르에 대해 거부감이 적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송성아(춤비평가): 원래 저는 현대무용을 전공했고 오랫동안 춤을 췄었다. 현재는 그것과 연장하여 부산지역에서 춤이론을 하고 있다. 특히 한국무용 단체가 하는 활동을 중심으로 글을 써왔다. 흔히 많은 단체들이 전통의 현대화, 재구성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전통의 무엇을 안무하고 있는가, 무엇을 창작하는가에 대해 근거를 명시할 수 있는 안무자가 부재하다는 생각이다. 당대성을 담고 있는 작가의식이 불투명하다는 생각도 든다. 시각적 비주얼이나 외형적 세련됨이 아닌 작가의식, 시대·역사적 소명으로서의 작가발언이 알맹이로 존재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생기는 요즘이다.
이만주(춤비평가): 지원심의에 참여한 경험으로 보면 서류심사일 경우 여러 사람이 봐도 성의가 있고 없는 신청서는 즉각 구분할 수 있으니 창작자들은 지원에 앞서 충분한 고민 끝에 신청서를 작성했으면 한다. 저는 표현양식이 다양한 춤예술을 좋아하고 인간의 상상력을 볼 수 있는 전위적인 무대를 선호한다. 사실 권태기가 와서 공연을 흠 있게 보질 못하고 있다. 어느 날 낯선 단체에게서 온 메일을 보았는데 ‘인공지능이 예술을 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대전 카이스트에서 세미나가 열린다는 소식이었다. 관심이 생겨 세미나에 참석했다.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발전해있는 시대, 여러 예술장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공지능의 창작품과 과정이 소개됐다. 무용 역시 비보잉 동작을 인공지능으로 안무하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숨이 멎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모든 세미나에 참석하며 인공지능과 예술의 접합을 보았다. 음악, 미술 등 다른 장르에서는 인공지능 예술이 가능해보여도 인간의 몸을 쓰는 춤과 연극만큼은 인공지능으로도 대체될 수 없어 보였다. 4차 산업혁명으로 많은 직업이 사라지더라도 무용가, 안무가는 영원히 남겠구나 하는 결론을 얻었다.
김혜라(춤비평가): 최근 국내 춤창작에서 두 가지 큰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퍼포먼스의 경향이 강하게 드러난다는 점, 다른 하나는 기술의 발전양상과 별개로 오히려 몸을 중심으로 한다거나 정서, 본능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오늘 이 자리에서 안무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교육환경, 생계문제에 직면한 안무환경 속에서 작업하는 안무가들께 작가의식을 비평가로서 논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고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우리 춤 무대에서 여전히 삶의 문제는 잘 드러나지 않고 있고 이는 안무가들의 역사·사회의식이 부족하거나 혹은 우리나라의 정서상 드러내지 않는 성향에 기인한 것일 수 있겠다. 한편으로 최근 대한민국발레축제를 보면서 창작발레에 안무개념이 거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현대춤, 한국창작춤은 예전에 비해 굉장히 좋아졌다. 적어도 안무가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 작품의 방향성이 무엇인지 보인다. 축제에서 일반 관객들이 얼마나 발레를 좋아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발레계 창작역량이 증진되지 않는다면 언제까지 이런 관심이 지속될 수 있을까, 언제까지 외국 안무가들의 작품을 공연할 수 있을까 싶다. 창작발레의 안무환경이 훨씬 심각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앞서 말씀하신 공공무용단에 대해 민간단체와 비교불가한 창작환경과 작품활동을 놓고 비평가들이 더욱 심도 있게 평가하고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고 본다.
이지현(춤비평가): 저는 무용전공생들을 가르칠 때 경제적 고민을 한다면 예술을 빨리 그만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어중간하면 예술도 안 되고 생활도 안 되는 상황에 처해 고통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돈에 대한 욕구가 있고 경제적인 면이 중요하다면 다른 것으로 전환하던지, 예술성을 갈고 닦아서 굉장히 비싼 작가가 되던지 양단간에 결정을 하라고 가르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현실에서는 정말 답이 없다. 그중 하나가 공공지원금 문제인데 제가 몇 년 전부터 지원금 심사를 꽤 줄기차게 했다. 80~90년대에는 교수님들이 들어와 심사를 했고 매우 당연하게 아는 사람을 지원대상자로 선정했다. 당시엔 지원금도 많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게 기본적인 문화였다. 저는 이런 지원제도 문화에 문제를 느꼈고 그나마 공적 지원금이 공평하게 배분되면 좀 낫지 않을까, 공평성이 첨가되면 좋겠다는 나름대로의 생각으로 심사에 참여해서 가능한 한 물적 지원을 많이 받고 있는 교수님들 보다는 그런 지원을 하나도 받지 못하고 예술을 하려는 예술가들에게 지원금이 돌아가도록 기준을 정하고 열심히 임했던 것 같다. 오늘날 전반적으로 많이 공평해졌다. 독립안무가의 위상이 높아졌고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 그들이 춤계의 원동력이고 대다수라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감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질적인 문제는 지원금은 구조적으로 일부에게만 한정되는 것이다. 지원금으로 먹고 살 수 없고 지원금을 계속 받을 수도 없이 순번이 돌아간다. 아무리 내가 뛰어나도 지원금에 의존해서는 욕구를 충족시키실 수 없는 구조다. 그런 구조적인 문제를 깨닫고 나서 심사를 공평하게 했나, 이게 과연 얼마만큼의 의미가 있을까 회의감에 빠져있는 상태다. 또 하나의 문제는 국공립 직업무용단들이다. 신생 단체도 있고 관록이 쌓인 단체도 있는데 아까 말씀하셨듯이 우리 현실에서 본다면 소수에게 많은 혜택이 주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재분배를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역할을 잘 규정해야 할 것 같다. 공공무용단에 많은 지원이 들어갔을 때 우리는 추상적인 작품의 질만을 놓고 이야기할 것인가, 아니면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의 관계 속에서 평가할 것인가 이런 기준에 대해서 명확히 해야 하는데 사실 쉽지만은 않다. 오늘도 국립현대무용단 관계자께서 와계신데 그간 프로젝트 열심히 해왔고 다양성도 고민하여 진행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안에서만 일하면 바깥의 공기를 모르기 때문에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한 거다. 한국춤비평가협회가 꾸준히 국공립무용단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자꾸 자리를 만들고 서로 모여 부딪히고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의외로 예술가들도 작업에 대한 피드백을 많이 주고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았다. 결국 지원금은 위로부터의 정책인데, 이것이 아래를 살리지 못하는 문제를 갖고 있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무용가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서 자주 모이고 소통하고 지원 방향성에 대한 의견을 도출하고 그렇게 끌어지도록 하는 게 지금 예술가들에게 주어진 과제 같다.
사회: 많은 기회를 만들기보다 예술성이 담보가 되는 공공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늘 이 자리에 국립현대무용단 관계자도 참석하셨는데, 비평가들이 국립현대무용단에 주목하는 것은 세 가지다. 기존의 독립안무가, 프로젝트그룹, 전문무용단에게 안무기회를 주는 작업, 그리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 마지막으로 어린이를 위한 무용이다. 국내 27개 공공무용단에서 하지 않는 시도를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진행하고 있다. 공공무용단으로서 갖고 있는 계획 등을 말씀해주기 바란다.
임소영(국립현대무용단 사무국장): 국립무용단체가 춤계와의 소통을 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듣고 반성하게 됐다. 저희는 전속단원이 없다보니 국립현대무용단이 하는 사업에 있어서 독립창작자 분들은 가장 소중한 파트너다. 이런 자리에 와서 창작자나 춤계의 이야기를 당연히 들어야 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안성수 예술감독께서 올해 임기 3년차로 12월 31일까지 예정되어 있다. 연임될지 새로운 예술감독이 임명될지 알 수 없는 상태다. 단체의 성장을 위해 꼭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내년 국립현대무용단의 10년을 맞아 춤계를 비롯한 공연예술계 관계자 분들을 모시고 무용단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작게나마 소규모 좌담회를 빠르면 올해 연말부터 시작해서 허심탄회하게 들어보고자 한다. 자리를 어떤 방식으로 마련할지 고민하고 있다. 다른 한 가지는 오늘 받아본 〈춤비평〉 책에서도 나와 있듯이 국립현대무용단이 단체의 내실이나 미래를 내다보는 작품을 준비하기보다 예술감독 개인의 레퍼토리 발전에 기울인다는 것인데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춤계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내부적으로는 외부 안무가들의 작품을 하려고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픽업스테이지’, ‘스텝업’ 등을 기획하여 안무가들을 모시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립현대무용단은 내년부터 2021년까지 3년의 기간을 제4기로 보고 있다. 1기 성장기, 2기 발전기, 3기 안정기를 거쳐 내년부터는 도약기가 될 텐데 그렇다 해서 단체의 몸집이 커지고 예산을 늘리겠다는 것은 아니다. 현대무용 창작작품을 만드는 창작단체로서의 미션이 있기 때문에 그 역량을 높이기 위한 고민을 해왔고 제4기에는 예술감독보다 외부초청 안무가와의 작업비율을 훨씬 높여서 국립현대무용단 플랫폼에서 공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한다. 만약 다른 예술감독이 오신다 하더라도 단체의 성장과 현대무용계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실천하려 한다.
곽아람(국립현대무용단 기획팀장): 많은 안무가가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연 공모에 지원해주셨다. 안무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3년동안 작업하면서 가장 큰 고민과 숙제라면 안무가에게 어떤 도움을 드려야 좋은 작업을 할 수 있을까 였다. 오늘 나온 이야기처럼 경제적 어려움도 있고, 무용교육 환경에서 안무가들이 자유롭게 창작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충분히 훈련되지 않거나 움직임은 굉장히 잘하지만 시노그라피를 만들어내는 경험이 많지 않기도 하다. 국립현대무용단이 독립안무가들의 창작 작업을 위해 재원을 투자하지만 무엇보다 안무가들이 실패를 감수하고 실험과 여러 프로세스를 거쳐 그 역량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작년부터 ‘스텝업’을 기획했지만 사실 과정과 결과의 측면에서 여러 취약한 점들이 드러났다. 이 부분은 창작자 및 전문가분들께 조언 받아 다음해에는 더욱 보완될 예정이다. 동시에 내년부터 리서치프로그램이 들어갈 것 같다. 일반 관객이 많아지는 점은 좋지만 사실 욕심은 컨템퍼러리 댄스를 하는 단체로서 선도적인 작품을 만드는 거다. 관객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건드려주고, 사회적 이슈를 담은 작품이던 문제작이던 만들어낼 수 있었으면 한다. 안무가에게만 그 짐을 지우는 것은 맞지 않는 일이고 단체 구성원들 스스로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 혹시 국립현대무용단은 차기 예술감독과 관련하여 문화부에서 언질을 들었는지 궁금하다.
곽아람: 들은 바 없다.
사회: 임기가 4개월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후임자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면 차기 예술감독 임용문제를 빨리 공론화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곽아람: 그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데 문화부와 속도를 맞춰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차기 예술감독의 선임 여부와 관계없이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이미 40프로 정도 세팅되어 있다.
임소영: 안 그래도 공연분과 과장께서 최소한 이번에는 한 달 전에 선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하셨다.
김채현: 국립현대무용단에 이사회가 결정기구로서 공식적인 성명을 내서 문화체육관광부를 질타하던지 권고하던지 해야 할 것이다.
사회: 최근 국립무용단의 〈색동〉 공연이 취소된 근본적인 원인은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을 1년 6개월 공석으로 만들었던 문제에서 발단되었다. 공공무용단에서 예술감독의 직책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임소영(국립현대무용단 사무국장), 곽아람(국립현대무용단 기획팀장) |
이정배(몸지 편집장): 오늘 포럼에서 나온 이야기 중에 ‘독립안무가’라는 용어가 마음에 걸린다. 물론 좋은 의도지만 영화를 빗대어 설명하자면 소위 독립영화, independent film은 두 가지로부터 독립을 뜻한다. 하나는 돈으로부터의 독립이고 다른 하나는 작품내용으로부터의 독립이다. 그런데 전체 이야기를 들어보니 독립의 독립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의도적으로라도 독립하지 않으면 독립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어렵다. 독립안무가라는 것에서만 느낀 것이 아니고 대개 무용계의 용어들이 치열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오늘 ‘혼종’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지만 보통 혼합, 혼종, 하이브리드 등을 섞어 쓰기도 하고 지금까지도 혼란을 겪고 있는 컨템퍼러리 댄스라는 용어는 치열한 논쟁을 거쳐 치열하게 작품 속에 나타나야 하는데 그런 논의들이 대충 넘어간 느낌이다. 어쩔 수 없는 우리 춤계가 가진 특징인 것 같다. 문화예술 전반의 문예사조나 이론이 세계 각국에서 빠르게 한꺼번에 밀려들어왔고 예술가가 가져온 무용스타일이 불현 듯 새롭게 유행하기도 하는 등 대개 정리되지 않은 상황으로 보인다. 이건 다른 장르도 비슷하지만 그럼에도 타장르는 층이 두껍고 그것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거쳐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있었다. 춤계는 그 과정이 적었다는 생각에 오늘과 같은 토론이 더욱 중요하게 느껴진다. 포스트모던 댄스 경우도 훨씬 치열하게 논의하여 단순히 모방하고 혼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깊이까지 담아낼 수 있었으면 한다. 조금 더 층이 두꺼워지기 위해 논쟁이 필요하다. 비평가들 문제를 많이 이야기하는데 저 역시 몇 년 동안 글을 쓰면서 웬만하면 격려하려고 했었다. 이제부터는 춤에 대한 애정을 치열하게 분석하고 비평하는 것으로 바꾸려 한다. 주례사 비평처럼 좋은 얘기로 덕담해주는 비평으로는 도저히 춤계가 발전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서다. 비평가, 안무가, 무용수 각자 나름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김명현(무용연구가): 예술계가 지원금만으로 지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용가들이 재정적으로 독립하려면 국가지원금만으로는 부족하고 다른 측면의 예술지원이 확대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민간단체들이 스스로 재원조성할 수 있는 방법이 적극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재원조성 전문가를 육성하는 등 자구책이 될 재원조성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여 정부에 요청할 필요가 있다. 춤계가 무용산업이라는 관점에서 산업화를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예를 들어 국공립무용단을 공기업, 민간단체를 사기업으로 보았을 때 공기업과 사기업에 대한 지원과 생산성을 비교하여 산업 측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추고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무용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산업화라는 화두로 제시되었으면 한다.
장승헌(춘천아트페스티벌 예술감독): 춤현장에 35년 동안 있으면서 춤이 무엇인가 새삼 묻게 되는 요즘이다. 상반기를 지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학회, 포럼에 가보면 결국은 지원금 문제, 생계 관련 문제, 국공립 단체와 상대적 박탈감 등 엉뚱한 결론으로 마무리된다. 심사에 참여해보면 젊은 예술인을 위한 지원사업이 참 많고 저희 세대가 활동할 때와 비교해 엄청난 금액으로 지원액도 상향되었다. 반면 결과물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것 같다. 젊은 아티스트들도 지원금이 예술가로서의 성장을 돕는 공적자금이라는 것을 먼저 인식했으면 한다. 한편 기본적인 수요와 공급이라는 문제에서 우리 춤계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과잉된 상태다. 7월에도 이렇게 춤공연이 많은데 다수의 공연 속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축제를 만들고자 가능한 직접 확인한 완성도 있는 작품, 전문 스텝과 함께하면 발전 가능성이 있는 작품을 선별하여 춘천아트페스티벌을 재능기부 축제로 꾸리고 있다. 아티스트들의 놀이터라고 생각하고 편한 마음으로 나들이와주셨으면 한다.
사회: 국민 총생산 대비 35세 미만의 젊은 아티스트들을 위한 지원금이 가장 많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정배(몸지 편집장), 김명현(무용연구가), 장승헌(춘천아트페스티벌 예술감독) |
김채현: 발제의 내용과 관계없이 토론이 진행되어 왔다. 포럼의 주제는 ‘오늘의 춤 창작경향과 비평’인데 언급된 지원책이나 춤산업화의 내용은 다음 기회에 조금 더 충분히 논의되어야 할 문제라고 본다. 용어 개념이 치밀하지 못하다는 이정배 몸지 편집장의 의견이 있었는데 치밀한 개념을 갖기 위해서 바로 이런 자리가 필요한 것이고 논의가 연속되지 못해 아쉽다. 그리고 이미영 칼럼니스트는 안무가가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하지 않고 애매모호하다고 말씀하셨는데 마찬가지로 상당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창작자 몇 분이 언급한 다원화의 문제에 관해, 이 세상이 다원화되어 있다는 것이지 안무가가 다원성을 이끌고 그런 작업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오늘 중요한 것은 다원성과 자기중심 간의 균형문제이다. 즉 예술가로서 자기가 어떤 균형을 가질 것인가 치밀한 고민이 좀 더 있었으면 한다. 이세승 안무가의 이야기는 마사 그레이엄과 오늘의 현대춤 사이에 간극이 있고 이를 메우는 학교 교육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현대춤 시대에 살면서도 현대춤 학습은 부족한데 앞서 이야기된 개념상 치밀하지 못한 점은 바로 이런 데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허약한 뿌리를 가지고 나무를 키우려다 보니 생각 정리가 제대로 안 된다. 생각을 단단히 하기 위해 오늘과 같은 포럼 자리에서 더욱 치밀한 주제를 갖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씀드리자면, 정부 지원이나 정책에 대해서 한국춤비평가협회가 나설 땐 나서야겠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 동안 한국무용협회가 이에 관해 한 일이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무용협회가 해야 할 일을 나머지 군소단체가 해온 것이 무용계 맹점이었다. 둘째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도 이런 점에 대해서 지엽적인 정책 내지는 시책의 수정만 있었지 무용계 공청회라든지 공론화 자리를 마련한 적 없다. 무용인들을 모아 무용계 힘을 기르기 위해 근본적으로 문예위가 할 일이 무엇인가 물은 적 없고 치밀하지 못했다. 오늘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고 이제부터 일을 해야 한다. 한국춤비평가협회가 할 일, 춤웹진이 할 일이 있을 것이다. 관련 일을 추진하게 된다면 무용인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도움 주셨으면 한다.
채희완(춤비평가, 한국춤비평가협회 대표): 오늘 한국춤비평가협회가 마련한 포럼의 주제는 “오늘의 춤 창작경향과 비평”이다. ‘창작경향’이라 함은 춤 조류, 이 시대의 양식적 틀, 예술사적 전시기조 아니겠는가. 다시 말하면 오늘 포럼은 최근 5년 정도 주조(主潮)를 이루고 있는 예술사조가 무엇인지를 논하는 자리였다. 춤 정책, 제도, 사회적 여건, 춤 창작 현실과 같은 문제에 치중해 있던 춤계 논의에서 벗어나 춤비평가협회다운 내재적 주제를 잡자는 의미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 포럼을 마련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나온 이야기들은 춤 창작 현실이 주를 이뤘고 원래의 방향과 조금 어긋난 지점에서 마무리하게 되었다. 이 시대 춤창작자, 춤꾼, 춤문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그리고 주제, 소재, 메시지, 정신적 발원의 내용적 측면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무엇을 어떻게라는 그야말로 예술의 원천적인 내용과 형식의 문제, 시대적 양식의 문제를 통해서 춤창작의 경향을 이해하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짚어보고자 했다. 김채현 발제자는 국내 춤 동향을 폭넓게 제시하였고, 권옥희 발제자는 경향을 이루는 양식적 틀과 그것을 만들어내는 창작자의 자세를 제기하였으나 토론의 내용은 발제와 비껴나 있었다. 창작경향과 발원, 내용과 형식, 수많은 표현의 모습을 총괄하는 예술사조적 시각 속에서 현재는 이런 춤의 시대라고 정리할 수 있는 비평적 논의가 다음 기회에 다시 이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