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탈춤은 처음엔 사람사는 일과 자연과 신과의 갈등을 풀어내는 것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근세에 와서는 사람사는 일과 사회와의 갈등을 풀어내는 것으로 근대화되었습니다.
인간과 자연, 인간과 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와의 관계 조정은 사람 사는데 필수적인 것이고, 갈등관계를 깊이 파고들고 한껏 풀어낼수록 삶도 숨통이 트이고, 삶의 질도 깊어지고, 사회관계도 융숭해진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것이 농경사회에서는 사람 못살게 구는 살과 못된 것(적폐)을 물리치고 경사스런 일을 맞이하는 벽사진경(辟邪進慶)의 의미인데요. 세시풍속의 뜻이 그러합니다. 탈춤은 새해맞이, 씨뿌리기의례, 성장의례, 수확의례, 해넘이 등 농경의 시절을 좇아 한해살이의 굴곡지점에서 놀아왔습니다.
진주탈춤한마당 |
오월에 펼치는 진주탈춤 한마당(5월 24일~26일, 진주 남강가람 야외무대)은 현대진주고을 벽사진경의 세시풍속인 셈입니다. 진주땅 오늘을 사는 이들의 인간적 사회적 갈등관계를 풀어 좋은 곳으로 넘어가는 현대문화복합공간의 진주 봄 축전인 것입니다. 1996년 이래 24년 22회를 맞는 그것으로 진주고을의 의기로움과 예향으로서의 품격을 갖추는 문화도시 창의도시로 나아가는 토대를 이루려는 것입니다.
진정한 축전이 그렇듯이 어울림과 한풀이와 씻김이 곁들여져 해원상생(解寃相生)을 풀어먹이는 한마당은 고단한 이들의 삶의 애환과 분노와 갈등과 피맺힌 호소가 짙게 배여져 나오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탈춤에서는 이를 한마디로 일컬어 ‘불림’이라 하여, 탈춤을 추는 첫머리에 둡니다.
“낙양동천 이화정”, “흑운이 만천 천불견”, “저 물레파도는 뉘 파도”, “소나무장작은 왜장작”, “금강산이 좋단 말은 풍편에 넌즛 듣고”, “청노새 청노새, 음박 캥캥”, “망했네 망했네, 양반집이 망했네”, “쳐라 쳐라 처얼 철, 처리 철수” 등 몸짓을 내고 소릴 질러 춤장단을 청하는 대목입니다.
불림으로 신을 감아올려 다시 풀어내는 춤을 보면 보는 이에게도 어깨짓이 절로 나게 합니다. 보는 이의 속깊이 숨은 신명에 불을 지르는 것이지요. 숨겨져 보이지 않는 신명을 깨우치는 일은 신명을 은폐시킨 살을 드러내어 도려내는 일입니다.
올해는 3ㆍ1 혁명 백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3ㆍ1 정신인 민족의 자주독립정신과 민중민주인권사상과 아시아 생명평화물결은 우리 삶의 실천 덕목이 되어 2017년 이래 촛불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또 올해는 진주탈춤한마당을 불러 일으켜 진주오광대를 현재진주고을에 부활키신킨 고 김수업 선생님의 일주기가 되는 해입니다. 선생님의 남긴 뜻은 문화축전도시, 의향(義鄕), 예향(藝鄕)의 진주입니다.
오늘날 어떠한 불림이 있어 숨어 잠자는 신명을 일깨울 것인가..
오늘날 어떠한 불림이 있어 적폐가 날뛰는 곳에서 촛불혁명을 살려내 끝내 이룩할 것인가.
오늘날 어떠한 불림으로 의향, 예향, 문화축전도시, 창의도시 진주를 이끌어낼 것인가.
채희완
현 한국춤비평가협회 회장. 부산대 명예교수, 〈(사)민족미학연구소〉 소장, 〈부마항쟁기념사업회〉 이사, 〈창작탈춤패 지기금지〉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한국의 민중극』(엮음), 『탈춤』, 『한국춤의 정신은 무엇인가』(엮음), 『춤 탈 마당 몸 미학 공부집』(엮음), 『지극한 기운이 이곳에 이르렀으니』 등을 펴냈고, 그밖에 춤, 탈춤, 마당극, 민족미학에 관련된 논문과 춤 비평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