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지난번 대만편에 이어, 이번부터 2회에 걸쳐서 태국의 춤 인프라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태국의 춤과 춤 인프라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한국에 많은 것들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러므로 이번 편에서는 태국의 궁중 춤인 콘(Khon)을 중심으로 태국의 춤 문화와 태국 사회와의 관계 대한 특징들을 간략하게 알아보고, 다음 편에서는 이를 중심으로 한 태국 춤 인프라에 대해 논하여 보고자 한다. ‘태국’하면 떠오르는 상징들 중 아마도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이미지는 콘(Khon)일 것이다. 궁중의 가면춤인 콘은 태국인들 스스로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전통문화 유산이다. 특히 콘은 태국의 왕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 그 영향력은 태국 사회 곳곳에 미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콘에 대한 이해 없이, 태국의 춤 문화와 인프라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콘이란 무엇인지, 콘의 사회적 위상은 어떠한지를, 콘과 왕실과의 관계 가운데서 알아보자.
태국의 왕권(王權)과 콘
태국의 궁중무용인 콘(Khon)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태국의 왕권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태국은 입헌군주제 헌법을 기초로 하고 있는 나라이다. 태국은 수코타이 시대부터 70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전제 군주제였다. 그리고 1832년 입헌군주제로 체제가 바뀐 이후 비록 표면적으로 절대 왕권을 행사하지는 않게 되었지만 현재도 태국의 국왕은 이상적인 세상의 통치자를 뜻하는 ‘차크라바틴(산스크리트어 Chakravatin, 팔리어 Cakkavattin)’ 즉 전륜성왕(轉輪聖王)으로 혹은 ‘살아있는 생불(生佛)’이라 불린다. 이러한 태국의 왕권을 이해하는 데는 두 가지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탐마라차(Dhammaraja)”와 “테와라차(Devaraja)”라는 개념이다.
우선 탐마라차라는 개념을 간단히 살펴보면, 이 개념은 버마에서 전래된 상좌부 불교를 받아들인 수코타이 왕조의 람캄행 왕 시대로부터 이어져온 것으로, 그 의미는 ‘정법왕(正法王 kingship under Dharma)’이다. 이 개념은 불교의 계율을 지키는 이상적 국왕을 가리키는 것으로, 태국의 국왕들은 탐마라차를 준수하고, 이를 통해 그의 통치는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즉 불교의 법을 시행하면서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으로 국왕은 이를 지지하면서 자연스레 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는 국왕들의 출가를 들 수 있다. 역대 태국 국왕들은 탐마라차를 시행하기 위해 즉위 전 혹은 즉위 후 반드시 출가를 하는 관례를 들 수 있다. 여기서 태국 국민은 90% 이상이 불교신자들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은 불교도 왕권의 절대성을 지지하는 기반이 된다. 탐마라차는 태국 헌법 제 8조에 “국왕은 불교도로 종교의 수호자이다(The King is a Buddhist and Upholder of religions)”라고 규정함으로써 단순히 전통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도 실질적인 가치를 지닌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테와라차(Devaraja)’ 는 왕의 신성(神聖)을 강조하는 것이다. 사실 테라와차는 불교적이라기 보다는 힌두적인 개념으로 왕을 비슈누(Vishnu)와 같은 신적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즉 왕은 신이 세속에 나타난 화신으로 절대적인 경외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절대적 통치권을 행사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왕이 쏨뭇띠텝(Sommuttithep) 즉 현인신(現人神)으로, 신과 같은 지위에 있어, 왕은 절대적 통치권을 행사하는 절대군주의 정당성을 가지게 된다. 지극히 힌두적인 개념인 이 개념은 본래 태국의 것이 아니라, 힌두교 국가였던 크메르 제국(오늘날 캄보디아)에서 먼저 시작되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크메르 제국의 부용국이었던 아유타야 왕국 즉 오늘날 태국이 크메르 제국의 혼란을 틈타 1431년 크메르의 수도였던 앙코르를 점령하고, 많은 앙코르의 학자들과 지식인들이 아유타야로 납치하면서, 힌두적인 통치 개념인 테와라차가 불교국가인 아유타야(태국)에 이식되게 된다.
이 개념을 가장 쉽게 살펴볼 수 있는 사례로, 태국의 모든 공공건물과 일반 거리는 물론 거의 모든 일반 가정집까지 국왕의 사진이 걸려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테와라자에 의한 신적인 존재인 국왕에 대해 태국에서는 내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모욕하는 말은 용납이 될 수 없으며 입에 담는 것 자체가 큰 불경에 해당한다. 테라와차 역시 그냥 관습적인 것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이를 보장하고 있다. 바로 ‘왕실모독죄’가 그것인데, 태국 헌법 6조는 왕은 지존의 존재이며 누구도 왕의 지위를 침해할 수 없고, 왕을 비난하거나 고소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테라와차가 태국의 궁중무용인 콘(Khon)에서 아주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전통 춤 예술에서 왕실의 역할과 정부 기관들
다음으로 태국의 궁중무용인 콘을 살펴보기에 앞서서 우선 문화 예술에 있어 왕실의 역할에 대해 잠시 알아보자. 2011년 재편된 태국 정부 조직구성에서 문화예술을 담당하고 있는 부서는 문화부로 모두 6개 실무국과 3개의 직속기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중 태국의 궁중춤(콘)과 직접 관련 있는 곳은 기초예술국(Fine Arts Department)과 특히 반딧파타나신 연구소(Bundipatanasilpa Institute)이다. 기초예술국은 문화예술 특히 전통예술과 시각예술의 보존과 보급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또 국립극장(1,000석)을 운영하며 정기적으로 예술국의 음악가와 무용가들의 공연을 올린다. 또한 왕립 태국 전통무용단(Royal Thai Classical Dance Troupe)의 이름으로 국내외에서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한편 반딧파타나신 연구원는 국립전통공연예술학교이자 연구소로, 전통예술 특히 태국의 궁중 춤의 연구, 교육 및 전수와 보급을 담당하고 있다. 이 연구소의 명칭인 “반딧파타나신”은 바로 태국의 현 국왕의 딸인 마하 짜크리 시린톤(Maha Chakri Sirindhorn) 공주의 이름으로 왕실의 문화에서의 직접적인 관심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시린톤 공주는 현재 태국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일 것이다. 그녀는 푸미폰 국왕의 국가개발계획인 ‘왕실 프로젝트’ 실현에 가장 열심이다. 10대 때부터 이미 푸미폰 국왕을 따라다니며 수자원개발 등 각종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독신으로 왕 주위를 떠난 적이 없으며, 국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사랑을 얻고 있다. 태국 국민들은 시린톤 공주를 ‘쁘라텝(Phra Thep)’이라고 부르는데, 그 의미는 ‘천사 공주님’이란 뜻이다. 이러한 국민의 그녀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는 각종 왕실 프로젝트 참여 이외에도 그녀가 태국 전통 문화의 보호자임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녀 자신은 태국 궁중가면무 콘을 직접 배웠고, 공연하는 무용가인 동시에 보급에 힘쓰며 이를 후원하는데 가장 앞장서는 존재이다. 이러한 그녀의 모습으로 인해 자연히 태국 사람들은 그녀가 태국의 전통문화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이자 후원자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러한 이미지의 구축은 국가의 적극적인 홍보도 한 몫 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녀의 콘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후원에는 콘이 태국의 왕조의 정당성을 나타내는 테라와차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에서 궁중가면무 콘은 단순히 궁중에 있는 하나의 예술 작품을 넘어서 태국의 전통 문화 예술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태국의 궁중 가면무 콘과 테라와차
콘(khon)이란 무용수가 가면을 썼다는 의미로 가면무이라는 뜻이다. 예전에는 모든 무용수가 가면을 썼다고 알려져 있지만 현재 신과 인간의 역할을 맡은 무용수의 경우 가면을 쓰지 않고 있다. 콘의 줄거리는 일종의 태국의 창조신화로도 취급 받는 라마끼안(Ramakien)이다. 본래 라마끼안은 인도의 산스크리트로 된 힌두교의 대서사시 중 하나인 라마야나(Rāmāyaṇa)에서 유래한 것으로 짧은 역사를 가진 태국은 이 인도의 서사시 라마야나를 태국 왕조의 당위성을 설명하는데 사용한다. 인도의 서사시 라마야나는 또 다른 대서사시인 마하바라타(Mahābhārata)와 함께 인도의 2대 서사시 중의 하나로서 인도의 고대 역사에 있어서도 상당히 중요한 고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태국의 라마키엔은 내용은 인도의 라마야나와 전체적인 줄거리와 등장인물들이 상당히 일치하지만 불교국가인 태국의 실정에 맞게 각색된 부분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라마키엔 즉 궁중 가면극 콘이 태국왕조의 정당성과 대의명분을 나타내는 테라와차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태국의 국왕이 신(神) 혹은 부처의 환생으로 여겨지는 이유를 화려한 가면과 의상 등 시각적인 요소와 화려한 음악과 청각적으로 그리고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은 태국에서 국왕을 칭할 때 “라마”라는 칭호가 바로 이 콘의 줄거리인 라마키엔에서 유래했다는 것에서 우선 알 수 있다. 즉 태국에서 왕의 칭호인 “라마”는 라마키엔의 주인공인 라마왕자를 가리킨다. 그런데 라마키엔에서 주인공 라마왕자는 바로 세상의 혼란을 평정하기 위해 비슈누가 환생한 인물이다. 힌두교에서 비슈누는 세상이 혼란해질 때 여러 가지 아바타라(Avatara)로 세상에 나타나 세상을 구원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불교국가인 태국에서는 비슈누 대신의 라마왕자를 부처의 전생으로 변용하였다. 이는 마치 많은 힌두 설화들이 자타카(Jataka 즉 본생경 本生經)이라는 형식을 통해 부처의 전생담으로 변모한 것과 유사하다. 그러므로 태국의 왕은 테라와차의 개념에 의해 힌두교의 비슈누의 경우처럼 현세에 부처로써 환생하여 타락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을 평안하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궁중 가면극인 콘이다.
콘과 그 사회적 위상과 권위
콘은 태국의 전통 춤의 정수이다. 문제는 현재 태국에서 콘에 대한 해석이다. 현재 콘은 태국 궁중 예술의 정수로 왕실은 물론 일반인들과 관광객들에게도 선보이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콘을 소개할 때, 이 춤이 캄보디아에서 유래하였다는 사실은 감추고, 마치 인도에서 직접 유래한 것처럼 소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사정에는, 아마도 테와라차에 대한 손상을 염려하는데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태국에서 왕은 생불(生佛)이거나 혹은 인간 신(神)으로 경외와 복종의 대상일 뿐 어떠한 비판도 하락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종교에서나 볼 수 있는 경직되고 엄숙한 왕권의 신격화가 왕의 절대적 권위를 믿는 순결한 믿음을 강조하는 쪽으로 발전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러한 엄숙하고 신격화된 왕권은 종종 진실이나 진리보다도 앞선다. 신성하고 존엄한 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궁중 춤과 음악은 바로 국왕의 권위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태국 전통 공연의 정수이자 왕권과 직접 연관이 있는 콘이 바로 이웃국가인 캄보디아에서 약탈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콘과 왕실의 권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를 2016년에 있었던 한 스캔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젊은 예술가들이 태국 관광 촉진을 위해 제작한 광고 영상이 문제가 되었다. 그 영상의 내용은 이들이 콘에 대표적인 등장인물 중 하나인 톡사칸(Thotsakan: 콘에서 악마들의 왕 역) 가면과 의상을 입고, 태국 곳곳을 누비며 제트스키를 즐기고, 툭툭(오토바이를 개조한 일종의 택시로 주로 서민들의 교통수단이나 요즘에는 관광 명물로도 자리 잡고 있음)을 타기도 하고, 카트 라이딩을 하고, 지역 음식들을 만드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문제는 궁중 가면무인 콘의 톡사칸이 무엄하게도(!) 제트스키나 툭툭을 타고 저속한 곳들을 돌아다니는 것으로 설정하였는지 태국 문화부에서 지적하며, 영상의 40%를 편집하라고 명령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호응하여 태국 궁중 공연 예술의 최대 지원 단체인 반딧파타나신 연구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강력하게 표명하였다. 이에 이 영상물은 아무런 비판의 목소리나 저항도 없이 거의 즉시 ‘콘의 고귀함만을 보여주는 장면’만으로 재편집 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콘의 태국에서의 위상은 어떠한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즉 콘은 태국 전통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자 태국왕실의 신성한 권위을 들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콘을 비롯한 태국의 전통 춤은 태국 사회에서의 위상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경직되고 권위적인 형태로 종종 나타나기도 한다.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 교수. 태국 Mahidol 대학교 국제대학 강사, 국립대만대학교 초빙교수, 런던대학교 SOAS 연구원을 역임하였다. 한국춤 연구를 통해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및 중앙아시아의 문화 교류에 대한 역사 연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