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진주탈춤한마당이 1996년에 생겨나 횟수로 20회를 넘기면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봄철 탈춤을 중심으로 오월을 맞이하는 진주시민의 현대세시풍속으로 자리를 잡는가하더니, 그 성장의례의 몫을 전승탈춤을 넘어 마당극으로, 각종 민속예술로, 현대연행물로 넘기고 있다. 오늘을 사는 사람들과 함께 살기 힘든 현실국면을 놓고 다투면서 발언하고 이를 놀며 살을 뽑아 뿌리치면서 새 삶의 밝은 전망을 예측하는 것이 민중살풀이 축전의 본령이기에, 그것이 오늘에 ‘살아나는’ 민중연행이라면 온당한 방향이다. 그것이 어렵고 고단한 삶에 깊은 현실인식과 함께 공동체적 신명을 불러일으킨다면 현대민중살림굿판으로 바람직한 진주시민예술문화복합공간이 될 것이다.
여기에 몇 년 전부터 간간이 일본의 신악 가쿠라와 중국 귀주성과 운남성 소수민족의 가무악이 합세하여왔다. 올해엔 대만,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스리랑카, 터키, 몽골 등지의 가무악이 프린지(주변부, 비정규) 공연물로 이에 더하고 있다. 비록 짧고 경쾌한 가무악의 단편이거나 경희극의 모둠일지라도 그들이 아시아의 하늘과 땅 아래 위에서 인간의 놀이정신이 이루어낸 산물들로 한마당을 펼치는 것이기에 문화교류와 나눔으로서 의의가 깊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이러한 판이 해가 깊어가 아시아 민중문화예술박람회로서 번듯한 규모를 갖추게 될수록 자국 내의 민중생활문예운동의 보폭을 넓히고 활로를 열어젖히는 기능으로 작동되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진주시민이 자발적으로 교습받아 춤 한자리로 참여하는 진주덧배기가락 한마당은 이 진주탈춤한마당이 자생적 진주시민예술한마당이라는 본원의 의미를 되살려주는 모처럼의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사람마다 제 신명을 돋구어 춤으로 풀어낼 수 있고, 또 그것이 오래된 미래의 진주땅 민중의 숨결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면 이야말로 진주시민 축전의 혈맥이 아니겠는가. 축전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고된 일상을 뒤집고 날잡아 한판 벌여 실카장 죽도록 배기고 두드려 고무진신하는 데 진국이 있는 것이라 본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울려 억압을 물리쳐 삶의 그늘과 상처를 씻어내고 자연에너지를 주고받고 지극한 기운이 우리 속에 있음을 깨쳐 이웃과 어울려 지역사회가 한 몸뚱아리 공동체임을 몸으로 확인하는 풍류마당인 것이다.
접화군생(接化群生), 여러 살아있는 것들마다 서로 만나 교접하고 나누어 서로 변화하고 진화하고, 감화하고 지극한 기운 속에 살아 생동하는 생명과 평화의 세계, 그것을 두고 최치원은 풍류라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풍류는 음풍농월하는 앉은 반의 것만이 아니다. 진주시민이 고무진신하는 떼춤마당이야말로 세계를 맑고 환하게 하는 집단풍류마당이고, 새 세상이 오고 있음을 실증하는 실제상황이라 하겠다.
그 춤이 16세기 임진 계사년의 진주성싸움, 19세기 중엽 진주민중봉기, 일제하 형평사운동의 진주역사정신을 새삼 불러 모신 제의 후의 춤이라면, 이제는 사라질 뻔 한 예향진주의 악가무 멋이 속깊이 배여있는 춤이라면, 오래된 미래 진주 고로의 어르신부터 청장년, 청소년 어린아이까지 높고 낮음 없이, 잘나고 못나고 없이, 아니 못나고 없을수록 민족신명에 겨운 것이라면, 그러한 춤이 흐드러진 시민덧배기 춤 한마당이야말로 진주탈춤 한마당의 절정일 터이다. 그러한 풍류한마당으로 진주 삶의 한복판 남강가에서 벌어지는 진주탈춤한마당이야말로 풍류도시로서 진주가 창의도시임을 확증하는 살아있는 예가 될 것이다.
현 한국춤비평가협회 회장. 부산대 명예교수, 〈(사)민족미학연구소〉 소장, 〈부마항쟁기념사업회〉 이사, 〈창작탈춤패 지기금지〉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한국의 민중극』(엮음), 『탈춤』, 『한국춤의 정신은 무엇인가』(엮음), 『춤 탈 마당 몸 미학 공부집』(엮음), 『지극한 기운이 이곳에 이르렀으니』 등을 펴냈고, 그밖에 춤, 탈춤, 마당극, 민족미학에 관련된 논문과 춤 비평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