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송년기획_ 2017 춤계를 말한다(3) 춤비평가 방담
  • 일    시
    2017년 12월 16일(토) 10:30
  • 장    소
    예술가의 집 세미나실(서울 대학로)
  • 참석자
    한국춤비평가협회 회원
― 국정농단으로 인한 촛불정국과 대통령 탄핵, 새 정부 출범 등과 맞물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적폐청산 등이 이슈가 되면서 춤 현장의 여러 문제들이 수면 위로 부상된 한해였습니다.
 광역시와 몇몇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국제 무용축제들이 여럿 생겨났고, 새로 개관한 마포문화비축기지와 삼성동 SAC 아트홀 등 춤 공연장소의 확장, 무용 협동조합 출범 등 춤 네트워킹 확산 등등 춤 예술을 둘러싼 내 외부의 변동이 어느 해보다 가시적으로 드러난 한해였습니다. 지역 춤계의 경우는 광역시를 중심으로 활성화의 속도가 빨라지는 양상을 보였으나 공연의 양이나 질적인 면에서의 편차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댄스 필름, 장애인 무용, 무용치료, 커뮤니티 댄스, 환경 춤 등 여타 예술장르와 일반 대중들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예술창작과 교육과 연계된 춤의 영역이 사회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는 흐름은 올해 가장 주목해야할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공 지원금 결과발표가 3월이 넘어 이루어지면서 공연이 10-12월에 특히 집중되는 현상을 보여주었으나 특별히 빼어난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서울무용영화제가 새로이 태동했고 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 행해진 장소 특정형 공연, 지난해 개원한 서울무용센터의 레지던시를 포함한 몇 개의 국제 협업 프로그램이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새로운 신작 작업 못지않게 우수 레퍼토리들이 재공연 되는 등 유통이 확대되는 흐름은 올해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직업 발레단과 전문 무용단을 중심으로 인기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작품들이 서울과 지역에서 수차례 공연되었고, 독립 안무가들의 우수 작품의 경우 창작산실 지원사업, 노원국제코믹댄스페스티벌, 모다페 등의 축제와 플랫폼 성격을 시댄스의 ‘후즈 넥스트’, 서울안무가페스티벌 등을 중심으로 재공연 되는 빈도가 높아졌습니다.


 

 

― 올해 대한민국은 문화 분야에서도 지난해 연말부터의 촛불 정국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국정 농단을 정지시킨 데 이어 대통령을 탄핵한 3월 이후 촛불 민주주의가 가시화하면서 춤계에서도 자유로운 기풍이 얼마간 회복된 것 같습니다. 블랙리스트에 의한 직접적 피해가 춤계에 얼마나 있었는지 아직 진행되는 정부의 블랙리스트진상조사위에서 밝혀지겠습니다만, 작품 지원을 중단하는 식의 직접적인 탄압으로 크게 문제된 사례는 드물었더라도 그 외에 수면에 드러나지 않은 탄압이 적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2017년 연초부터 이런 탄압 작태가 중단된 것을 많은 무용인들이 함께 느꼈던 것 같고, 그래서 대화 등에서도 자유롭거나 여유가 감지되었습니다. 이후 특히 올 연말에 이르러 눈길을 끈 작품이 더러 나온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먼저, 〈구토〉를 발표한 미나유를 올해 특별히 주목하고 싶은 무용인이라 생각합니다. 70대 중반 나이에 〈구토〉에서 30대 감성으로 노령의 완숙한 시선을 표현하는 모습이 우선 인상적일 뿐더러 제 판단으론 무엇보다도 낡지 않은 나침반으로 춤에 몰두하고 지금 세상의 현실을 끈질기게 판별하는 구도자적 자세가 후진들에게 어려움을 헤쳐 나갈 또 다른 용기와 감동을 주는 듯합니다.
 올해 춤계는 춤 생태계의 어려움을 환기하는 여론이 산발적으로 전개되면서 새 정부의 정책과 연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창작 측면에서는 전부터의 세대교체가 이어졌습니다. 공공무용단이 여전히 이전의 문제를 해소하지 못한 채 답보 상태에 머물고 심지어는 실망을 산 데 비해 인디 춤꾼들의 활약이 강세를 보였습니다. 전반적으로는 춤 예술이 대중들과의 접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현실과 현실 속 인간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는 작품이 늘어나야 한다는 아쉬움을 남긴 한 해였습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관찰하는 작품 완성도에 비추어 보아 춤 교육은 진작부터 실기 중심의 교육이 한계에 이르렀고 창의적, 인문적 교육은 부실하다는 것이 재확인되고 있어 대학 교육이 대폭 손질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한공연을 가진 해외 작품도 꾸준히 늘어났고 이중 주목할 만한 공연도 여럿 있었습니다. LG아트센터가 초청한 스페인국립무용단의 요한 잉예르(Johan Inger)가 안무한 〈카르멘〉은 파격적인 3인무와 심리묘사를 곁들인 군무, 움직이는 무대장치를 활용한 공간변화 등이 압권이었습니다. 마린스키발레단 수석 무용수 김기민과 빅토리아 테레시키나를 주인공으로 한 마린스키 블라디보스토크 프리모스키극장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공연은 두 무용수의 빼어난 춤에 비해 군무와 솔리스트들의 춤이 빈약 반쪽 공연 논란을 빚는 등 안타까움을 남겼습니다.
 탄츠테아터 부퍼탈 〈스위트 맘보〉, 웨인 맥그리거의 〈아토모스(Atomos)〉, 모다페 폐막공연작 키부츠컨템포러리무용단 〈Horses in the Sky〉, SPAF에서 공연한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의 〈위대한 조련사〉와 아크람 칸 컴퍼니 〈언틸 더 라이언즈〉, 시댄스의 폐막 공연작 라 베로날의 <죽은 새들>> 등이 기억될 만했습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무용수들의 국내 공연도 활기를 띠었습니다. 허용순이 광주시립발레단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스페인국립무용단의 김세연이 대한민국발레축제에서 〈죽음과 여인〉 등 자신의 안무작을 공연했습니다.
 발레 부문에서는 창작발레 작품으로 강효형이 안무한 국립발레단의 〈허난설헌-수월경화〉와 문병남이 안무한 〈처용〉이, 그리고 해외 안무가의 작품으로는 크리스티안 슈폭(Christian Spock)의 〈안나 카레리나〉(국립발레단)가 해외 최신 전막 작품의 국내 유입이란 면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유니버설발레단에 2000년과 2002년에 각각 입단한 엄재용과 황혜민은 〈오네긴〉으로 고별무대를 가졌습니다.
 현대무용 부문에서는 안성수 예술감독을 새로운 수장으로 맞이한 국립현대무용단이 3명의 안무가들을 초청해 만든 〈볼레로〉와 초청 무용수들의 토크를 겸한 ‘댄서 하우스’ 등이 화제를 모았습니다. 국립무용단은 신작으로 선보인 〈리진〉(안무 김상덕)과 〈춘몽〉(안무 배정혜) 모두 예술적인 완성도에서 미진했고, 서울시무용단 역시 〈로미오와 줄리엣〉(안무 김충한) 등 대형 작품 제작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대구광역시에서는 아시아무용축제, 대구국제무용제 등 국제 무용행사가 늘어나긴 했으나 운영과 성과 면에서 문제점을 드러냈고, 부산광역시에서는 부산국립국악원의 영남춤축제, 10회를 맞은 부산국제즉흥춤축제가 주목을 끌었습니다.
 10주년을 맞은 (재)전문무용수지원센터가 직업 전환 프로그램으로 실시한 파킨슨 환자 무용치유교실 ‘댄스 포 피디’도 무용의 사회적 기여란 점에서, 무용수의 직업 전환의 또 다른 가이드란 점에서 기억하고 싶습니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서울세계무용축제 국제 춤시장에서 한국 춤계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한 공로 등이 평가되어야 합니다.
 해외무대에서 한국 안무가들의 역할과 관련, 11월 홍콩에서 열린 동아시아댄스플랫폼HOTPOT에 참가한 김보람과 정철인의 안무 작품이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젊은 안무가들의 신작과 우수 작품의 재공연 등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산실 지원 프로그램도 해를 거듭하면서 점차 자리를 잡이 가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으레 그랬듯이, 춤 활성화를 중심으로 해서 춤 생태계 살리기뿐 아니라 협동조합 등 무용 단체들의 자구책, 예술인 복지 등을 주제로 청사진들이 점차 공론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시야를 더 넓혀 새 정부가 특히 촛불 정국의 연장선상에서 탄생했고 촛불 민주주의를 다지거나 완수해야 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촛불 민주주의는 시대정신입니다. 그리고 촛불 시민들이 적폐를 청산하라고 선사한 기회를 잘 살려야 합니다.
 따라서 춤 정책을 비롯해서 새 정부의 문화정책 기조는 무엇보다도 촛불 민주주의에서 앞장세운 적폐청산을 바탕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새 정부의 춤 정책 방안 수립과 춤계의 적폐청산은 동전의 양면을 이룹니다. 오랜 경험에 비추어 아무리 훌륭한 정책을 펼쳐도 적폐가 누적된 환경에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일 가능성이 크며, 한국춤비평가협회가 주최한 11월 포럼에서 이런 우려가 표명되었습니다. 요컨대 현시점에서는 새 정책 수립과 적폐청산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하겠는데, 정책을 거론하는 자리에서는 대부분 장밋빛 청사진이 앞설 뿐 연말에 이를수록 적폐청산은 실종되는 것은 아닌지 크게 우려되었습니다.
 춤계 공익을 위해 춤계 여론을 모아 정책과 현안을 제안하는 책무를 한국무용협회는 그동안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춤 지원 및 지원 사업의 선정 구조를 개선하는 일, 그리고 새로운 사업을 입안할 때 춤계 여론을 널리 모으지 않았습니다. 공공 무용단들은 구시대의 운영 방식을 그대로 유지할 뿐 변신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것이 대표적 춤계 적폐일 텐데, 이에 대해 한국춤비평가협회도 나름 복안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봅니다. 문화부는 새 정부 들어 협치를 강조하고 있으나 구체적 청사진은 아직 불투명한 상태입니다.
 11월 중순 한국춤비평가협회가 주최한 포럼에서 한국무용협회의 그런 문제점이 공개 거론된 이후 12월 어느 공개 토론 자리에 한국무용협회에서 나와 한국무용협회의 또 다른 시작을 간략히 소개하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도 춤계 공익을 위해 한국무용협회가 향후 춤 정책 전반에 대처하는 방안은 사실상 제시되지 않았고, 국립무용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있음을 소개하였습니다. 국립무용박물관, 자료관, 공연장, 행정업무 공간으로 구성되며 무용 교과를 개설한다는 3줄 분량의 국립무용센터 설립 방안이었고, 국립무용센터의 비전, 구체적 규모나 설비, 추정 예산은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국립무용센터 설립과 같은 대의에 무용인이 동참해야 마땅하지만, 국립무용센터 설립 추진 과정 또한 대의에 부합해야 합니다. 국립무용센터 설립과 관련한 구상이 있으면 먼저 춤계에 방안을 제시하고 춤계의 공론을 물으면서 춤계 대다수가 찬동할 청사진으로 센터를 구체화해서, 설립 실현을 위해 춤계의 시너지를 모으는 것이 정석일 겁니다. 앞으로 어떻게 추진할지 두고 볼 일이겠으나, 관계자들은 대의를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무용협회는 또 다른 시작을 말하고 있으나, 아무튼 구태의연함부터 탈피해야 합니다.

앞서 두 분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과 맥을 같이하는 내용입니다. 대구광역시의 경우 국제행사뿐만 아니라 무용협회가 주관, 주최하는 공연 외에도 ‘수성아트피아’ ‘문화예술회관’ 등 극장 기획의 무용공연이 많았습니다. 당연히 무용관련 예산도 늘었는데, 문제는 늘어난 예산만큼 성과가 있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습니다. 몇 년 째 좋은 작품을 볼(관람할) 수도,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지도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예산 문제가 아니라, 사람문제인 것이지요.
 지엽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모든 문제의 근원이기도 하기에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대구의 경우 무용협회(한국무용협회 대구시지부)가 대구무용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필요이상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힘이라는 것이 대구춤 발전의 요체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협회에 대학 무용과 교수들이 이사진으로 포진해 있고, 그 많은 공연을 하면서도 촉망받는 신인 무용가 한사람을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는 것, 대구문화재단이라는 곳은 해마다 대학의 교수들 위주로 지원금을 우선 배정하는데, 어이없는 것은 형편없는 지원금을 받은 독립안무가나 그들의 몇 배가 넘는 지원금의 받은 이들의 작품수준이 별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공연을 보고 있자면 자괴감마저 듭니다. 편견을 가진, 타성에 젖은 심사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좋은 작품을 보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몇 해 전 한국춤비평가협회가 대구에서 주최한 포럼 때, ‘프렉탈’ 구조로 제가 이 현상을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무용계의 문제는 그동안 숱한 폐해를 끼쳐온 ‘한국무용협회’의 행태와 그 규모만 다를 뿐, 전국의 지부(무용협회)가 같은 구조와 내용으로 운영되고, 개인 무용인들이 또 그것을 답습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체인 사람들(수장)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변화는 고사하고 발전가능성이 낮다는 것. 보이는(물적, 양적), 서류로 남아있는 실적만을 들어 발전하고 성장하고 있다고 자족하고 작은 이익에 서로 눈감아버리는 일들은 이제 그만해야 된다는 생각입니다.
 반면 부산은 여타 지역보다 전통춤 인구가 많은 부산의 특성을 감안, 부산국립국악원이 부산 춤계 발전을 위한 실질적인 ‘영남춤축제’의 기획 프로그램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특히 영남춤학회와 연계, 학술대회를 통해 춤계의 여론을 듣는 토론의 장을 마련한 것. 그리고 발전하는 부산국제즉흥춤축제와 부산시립무용단의 활발한 활동. 대학 동문단체에서 배출되는 스타 무용가와 안무가들, 특히 지난해 한국춤비평가협회의 베스트 작품으로 선정된 박근태가 ‘창작산실’ 지원금을 받고, 작품을 발전시켜 올해 다시 부산에서 공연한 〈광장〉은 창작작업을 하는 젊은 안무가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 좋은 무대였습니다. 그리고 개인 무용단들의 발족 등 그 성장이 눈에 띄게 발전한 한 해였습니다. 2018년에는 새로 부임한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 김성용의 활동과 앞으로 더 성장할 부산 무용계에 대한 기대가 높습니다.


 

 

앞서 적폐청산 논의에 동의합니다. 올해 촛불정국이 정권교체로 이어지고 전사회적으로는 적폐청산이 실현되고 있는 가운데에도 무용계에는 적폐에 대한 논의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느 매체 좌담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안무가들이 자신의 대학생활이 얼마나 부실했는지 얘기하는 수준이라고 할까요. 새로운 발전적 대안들이 대부분 정권의 기호에 맞춘 제안으로 흘러가고 있는 가운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내용을 바꿔가며 생존하고 있는 집단들이 여전히 설치는 것을 보면 지금 논의되는 정책적 제안들에 대해 그 진정성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무용협회는 지난번 저희 협회의 정책포럼에 참석했다는 것이 신선한 사실이나 좀 더 깊이 있게 새로운 제안에 대한 준비와 설명이 미비하여 무용계 전반의 현안을 담아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제가 정책포럼 때 제안했던 것처럼 무용계 전체 공공의 목소리를 모으자. 다른 말로 하면 무용계 안에서 ‘집단지성’을 구성해보자는 제안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본질적 차별성도 없는데, 또 하나같이 무용계를 위한다고 하는데 왜 현실에서 우리는 무용계를 위한 공동의 한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관심이 없는 걸까요? 분리에서 오는 이중적이고 소모적인 노력도 방지하고 가능한 한 서로 반목하지 않고 함께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정책이 없어서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운영할 때 문화적 마인드, 관계에서 오는 시너지를 함께 만들어가는 그런 분위기가 부족한 게 우리를 현실적으로 건조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공연에서는 발레 분야에서 창작발레 안무가들이 출현하고 약진하는 징후들이 보였습니다. 국립발레단 〈허난설헌-수월경화〉의 강효형, 광주시립발레단 〈로미오와 줄리엣〉의 허용순, 한국발레협회 〈처용〉의 문병남까지 어느 때보다 한국적 발레에 대한 완성도 높은 시도가 돋보였습니다. 김용걸 교수도 창작 열의가 식지 않은 채 <볼레로>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고요. 매우 고무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내년에는 국립발레단이 부진에서 헤어 나와 본연의 공공무용단으로서의 기능을 해내길 기대해 봅니다.
 또 하나 두드러진 현상은 무용영화로 4월에 〈댄서〉가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서울무용센터가 작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댄스필름 제작과정이 확대 지속되는 가운데 서울무용영화제가 생겨 앞으로 무용영화에 대한 비중이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춤을 공연 뿐 아니라 영화로도 만난다는 것은 저변을 확대하고 춤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반가운 일로 보입니다.

국립발레단의 〈안나 카레니나〉에 예산이 20억 원 투입되었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은 일입니다. 극적 구조의 작품으로서 웬만한 수준이라는 평가가 중론인 것 같고 전반적으로는 작품을 보고 실망한 반응이 역력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작품에 그 만한 예산을 투입할 가치가 있는지 검토해볼 일입니다. 평창겨울올림픽의 붐업을 위해 갑작스레 결정된 점을 얼마간 고려해도 작품 수준, 작품성을 보면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평창겨울올림픽과 〈안나 카레니나〉가 평창, 겨울, 올림픽 측면에서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게다가 20억 예산이 작품 저작권료로만 소요되지는 않고 서울에서만이 아닌 강릉에서의 문화올림픽 공연 등을 위한 전체 집행 경비를 포함한 금액이라 하더라도 투자에 비해 성과가 낮다고 판단됩니다. 특히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번의 경우, 국가적 이벤트가 있을 적에 국립발레단이 순발력 있게 내세울 레퍼토리가 매우 빈약하다는 점이 노출되었습니다. 창작 발레 또는 컨템퍼러리 발레를 등한시한 결과로서 준비되지 않은 국립발레단이 아닌가 싶고, 국립발레단이 레퍼토리 개발에서 서구식 고전 발레에 치중해온 저간의 풍토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이 공론으로 환기되어야 합니다. 국립발레단 55년 역사가 무엇이었는지, 무엇을 살려야 하는지 자성하는 노력이 국립발레단 내부에서 있어야 할 거로 봅니다. 또한 문화올림픽을 계기로 선의의 기획에서 시작되었을 일이 이런 결과에 이르도록 한 탁상행정도 문제가 큽니다.


 

 

행정이 늦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이런 기회에 국립발레단이 보여줄 수 있는 창작적 역량 국립오페라단 같은 경우는 〈카르멘〉 각색해서 흉내를 냈는데 88올림픽 때는 이태리 작곡가 부탁해서 이순신 스토리를 오페라로 만들었습니다. 국립발레단만 유난히 외국작품을 사다가 공연한 것입니다. 연장선상에서 얘기하자면 강수진씨가 스타고 잘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은, 임기 중에 기대한 두 가지, 안무가를 초청하던 키우던 한국적 창작발레를 보여주고 유럽에서 오래 활동했기 때문에 네오 클래식을 넘어 모던한 작품을 많이 선보여주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늘 볼 수 있었던 정도를 그냥 가져왔습니다. 한국창작발레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더라면 20억이라는 예산을 갖고 다른 것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 국립발레단 〈안나 카레니나〉의 경우 복합적인 인물표사를 필요로 하는 안무의 특성상 주요 배역을 맡은 무용수들이 연기나 캐릭터 창출에서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드라마 발레와 컨템포러리 발레의 요소를 결합한 스타일에, 원작의 방대함을 담아낸 다른 안무 성향의 최신 작품을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이 경험하고 또 관객들에게 감상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은 그리 나쁜 시도였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평창 올림픽 기간 중에는 외국 작품으로만 공연한다는 아쉬움을 보완하기 위해 창작발레인 〈허난설헌〉을 함께 공연하기로 한 것은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의 전막 창작발레 작품을 새로 만드는 것은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전막 창작발레 작품은 이미 준비를 하고 있고, 2019년에 초연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간이 없어 수입을 한다 하더라도 굳이 이 작품이어야 했는가, 레퍼토리를 다른 것을 고를 수도 있지 않았나하는 것이지요.

시간의 문제이지요. 예산이 일찍부터 편성된 것이 아니고 정부에서 갑작스럽게 예산을 편성해 올림픽을 위한 기념공연을 하라는 식으로 떨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년에 150회 이상의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국립발레단으로서는 짧은 시간 안에 장편 작품을 새로 준비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특히 발레의 경우는 더욱 그렇지요. 그보다는 방금 지적하신 데로 국립발레단이 대표할 만한 창작발레 작품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더 문제이지요. 〈왕자호동〉의 경우는 뜨거운 감자입니다. 대본이나 음악 연출 안무 등 작품의 예술성 등 여러 부문에서 빈약합니다. 그런 작품을 올림픽을 기념한 문화예술 공연으로 올리는 것은 부끄럽지요. 해외에서 한편의 전막 작품을 초청하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립니다. 좋은 작품은 이미 오래 전에 계약이 되어 있어 작품 섭외에서 계약, 그리고 성사까지 최소한 3년이 걸린다고 보면 됩니다. 의상이나 무대장치 그리고 안무자나 지휘자의 스케줄 등이 이미 꽉 짜여져 있기 때문이지요.
 국립발레단은 강수진 예술감독 부임 이후 레퍼토리 확충 면에서나 단원들의 질적인 성장 그리고 공연의 완성도, 공연 횟수의 증가 등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실력 위주로 경쟁을 통해 과감하게 캐스팅 되는 프로페셔널한 단체로서의 시스템이 구축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변신이지요. 동계 올림픽과 〈안나 카레니나〉 작품 하나로 국립발레단의 전체적인 성과들이 부정적으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감독의 임기가 3년이란 체제가 가져오는 제도적인 문제들을 시정하는 것이 더 급선무입니다.


 

 

서울에서 하는 것을 많이 못 봤기 때문에 뭐라고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그러나 분위기를 느끼고는 있습니다. 촛불정국과 함께 춤계에서도 많은 무용인들이 예술행동으로서 무엇인가를 이루어냈다는 것은 예술성 여부를 떠나서 역사적, 사회적 의미가 다대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거리예술제, 소녀상 보전과 함께 석달 넉달 육개월씩 매주 작품을 올리는 지속적 행동, 87년도 이애주 선생의 이른바 시국춤, 춤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 의미와 기능을 발휘했던 것에 못지않게 이번에는 개인 작업이기보다 집단작업으로, 집단지성의 하나의 에너지 표출로서 사회의 물결과 함께 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동참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입니다.

국립발레단의 〈안나 카레니나〉가 평창 올림픽과 연계된 프로그램으로 썩 들어맞지는 않는다는 의견에는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제가 걸렸던 부분은 초등학생 관람가라는 등급이 실제 공연에서 나타난 선정성에 비해 느슨하게 매겨졌다 싶을 만큼 연령대를 초월하여 즐길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던 레퍼토리에서도 마땅한 것이 없었거니와 평창 올림픽 개최 자체가 국내에서 찬반양론이 첨예한 가운데 선정되면서 서둘러 준비하는 분위기가 팽배했기 때문에 이것은 국립발레단 측에만 책임을 묻기 어려운 일이라 생각됩니다. 만약 국가 전체적으로 올림픽을 정말 중요한 행사로 여겨 큰 그림을 가지고 차근차근 준비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더라면 국립발레단이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조금은 다른 선택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요? 단적인 예를 들어 가리왕산 500년 숲을 파괴하며 스키점프장을 짓는 일도 극렬한 반대여론이 나오니 겨우 기존 안에서 30퍼센트 정도 손실을 줄이는 방향으로 되었는데, 이와 같이 올림픽을 준비하는 행정 전반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졌다는 느낌입니다.
 88년 개발도상국 시절에 올림픽을 개최하던 것과 지금은 거기에 기대하는 사회적 감수성이 다르다고 봅니다. 올림픽을 치른다고 돈 잔치를 하고 껍데기만 남게 되는 폐해를 몇몇 나라에서 보아왔기 때문이지요. 실질적인 것을 따지자면 그 20억이라는 예산을 뚝 떼어 국립발레단에 맡긴 과정이 오리무중이라는 것, 무용계에서 여론을 모으고 협력할 기회조차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비판의 방향이 가야할 것 같습니다. 국립발레단 입장에서는 올림픽으로 인해 추가된 거액의 예산으로 하고 싶던 작품을 가져오는 좋은 기회였을는지 모르겠지만, 평소에는 지원받기 힘든 예산이 이번 기회를 통해 민간발레단과 다른 장르의 알짜배기 무용단체들에 고루 분배됐다면 어땠을까요? 무용계의 파이 전체를 키우고 다양성을 살찌우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을 겁니다. 외국 손님들에게 한국 춤예술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했을 때 무조건 국립단체에 맡기는 식의 행정감각이 구시대적인 발상 아닐런지요. 안목 있는 예술행정가가 부재하고, 또 그럴 때 보완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전무한 상황이 가장 큰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국립단체가 평소 지원받은 만큼 국가적 행사에 더욱 애를 써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국립무용단의 깊고 오랜 침체는 더욱 안타까운 일입니다. 작년 연말 의혹이 제기되었던 〈향연〉의 창작산실 예산 전용 문제는 속 시원하게 밝혀진 바가 없고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전반에 대한 검찰 수사를 통해 윤곽이 드러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적폐청산이 제대로 되기도 전에 올해도 〈향연〉은 작품성이나 그 의혹에 대한 시비를 새롭게 하지 못한 채 무대에 올랐습니다. 의혹이 있는 작품을 흥행성적 위주로 포장시켜 홍보에 열을 올린 국립무용단 측의 언론플레이가 참으로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올림픽 문화행사에 관련된 것이나 국립무용단 문제 모두 소수의 결정권자의 임의에 의해 공공성이 훼손되었다는 데 방점을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느 누구의 입김에 쉽게 흔들리지 않을 만큼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낼 수 있는 구조, 결정과정의 투명성이 확보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2018. 0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