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사례]
A는 무용학 박사 학위를 받고 무용학 박사로서의 식견과 경험을 바탕으로 무용 관련 다양한 분야의 주제에 관한 다수의 게시물 및 연재물을 창작하여 자신의 SNS 또는 저널 전문가 연재란에 게시하거나 연재하였다.
B는 A가 게시하거나 연재한 글을 SNS에 복사하여 개인적으로 소장하거나 A에게 부탁하여 건네받고는, A가 SNS 계정을 닫은 후부터 약 3년 6개월 동안 무단으로 자신의 SNS 게시판에 A의 게시글을 저작자인 A의 성명을 표시하지 않은 채 마치 자신의 저작물인 것처럼 게시하거나 임의로 내용을 더하거나 구성을 변경하여 게시하였다.
B가 위와 같이 A의 글을 게시한 이후 B의 SNS 친구들이 칭찬 댓글을 달았고 이에 대하여 B는 마치 A의 글이 자신의 글인 것처럼 답글을 달기도 하였다. 그런데 B가 A의 글에 더하거나 그 내용을 변경한 내용 중에는 B의 주관에 따른 사회비판적인 인식 등이 드러나거나 잘못된 상식에 기반한 경우도 있었다.
저작권법 제136조 제2항 제1호는 저작인격권 또는 실연자의 인격권을 침해하여 저작자 또는 실연자의 명예를 훼손한 사람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A는 B가 자신의 저작인격권인 성명표시권과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하여 자신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가 침해될 위험이 있는 상태를 야기함으로써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였으므로 저작권법위반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B는 A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의 글을 포함하고 있지 않으므로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볼 수 없어 저작권법위반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A와 B의 주장 중 누구의 주장이 타당할까?[본 사례는 대법원 2023. 11. 30. 선고 2020도10180 판결과 그 하급심 판결(대전지방법원 2020. 7. 9. 선고 2019노3475 판결, 대전지방법원 2019. 10. 31. 선고 2019고단1486 판결) 및 각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해설]
저작권법 제136조 제2항 제1호는 저작인격권 또는 실연자의 인격권을 침해하여 저작자 또는 실연자의 명예를 훼손한 사람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136조(벌칙)
②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다. <개정 2009. 4. 22., 2011. 6. 30., 2011. 12. 2.> 1. 저작인격권 또는 실연자의 인격권을 침해하여 저작자 또는 실연자의 명예를 훼손한 자
문리적으로 해석해보면, 위 조항에 따른 범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저작인격권을 침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저작자의 명예를 훼손’하였을 것까지 요구되는 것이다.
위 규정에서 정한 저작권법위반죄는 저작인격권 또는 실연자의 인격권과 함께 저작자 또는 실연자의 명예를 보호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여기서 저작자 또는 실연자의 명예란 저작자 또는 실연자가 그 품성∙덕행∙명성∙신용 등의 인격적 가치에 관하여 사회로부터 받는 객관적 평가, 즉 사회적 명예를 가리킨다(대법원 2009. 5. 28. 선고 2007다354 판결 참조).
여기서 저작인격권 또는 실연자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통해서 저작자 또는 실연자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가 현실적으로 침해될 것까지를 요구하는지, 아니면 침해될 위험이 있는 상태를 야기하기만 하면 충분한지 여부가 문제된다.
이와 관련하여, 위 사실관계의 1심 판결에서는 “저작인격권을 침해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저작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으로 추정하는 합리적 근거를 찾아볼 수 없고, 저작인격권을 침해하는 글이 그 안에 저작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데도 단순히 파급력이 높은 SNS를 통하여 공중에 공개되었다는 사정만으로 저작자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보아 저작인격권 침해를 넘어서 저작자인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점을 이유로 저작인격권 침해로 인한 저작권법위반의 점에 관하여 무죄로 판단하였다.
이에 대하여 2심에서 검사는 위와 같은 무죄부분에 대하여 파급력이 높은 SNS를 통하여 공중에 공개된 이상 진정한 저작자인 피해자에 대한 진실하고 공정한 사회적 평가가 어렵게 되었다는 점, 피해자는 해당 저작물을 바탕으로 저서 출간을 계획 중이었으나 이미 피고인 B의 저작물인 것처럼 퍼져 있는 상태여서 그 계획에 상당한 지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서 저작자인 피해자 A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할 것임을 주장하였고, 이에 대하여 법원은 “저작권법 제136조 제2항 제1호에서 규정한 저작권법위반죄는 저작자의 명예를 훼손할 만한 저작인격권 침해행위만 있으면 성립하고 그로 인하여 저작자의 명예가 실제로 훼손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하는 한편 사회적 평판이 훼손될 위험에 처하게 됨을 이유로 원심판결의 무죄부분을 파기하였다
이에 대한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면서, “본죄는 저작인격권 또는 실연자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통해서 저작자 또는 실연자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가 침해될 위험이 있으면 성립하고, 현실적인 침해의 결과가 발생하거나 구체적∙현실적으로 침해될 위험이 발생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판시하였다. 아울러 “다만, 저작인격권 또는 실연자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바로 저작자 또는 실연자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가 침해될 위험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저작인격권 또는 실연자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저작자 또는 실연자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침해할 위험이 있는지는 저작자 또는 실연자의 주관적 감정이나 기분 등 명예감정을 침해할 만한 행위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침해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침해행위의 내용과 방식, 침해의 정도, 저작자 또는 실연자의 저작물 또는 실연과 관련된 활동 내역 등 객관적인 제반 사정에 비추어 저작자 또는 실연자의 사회적 명예를 침해할 만한 행위인지를 기준으로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요컨대 저작인격권 침해에 따른 저작권법위반죄는 이른바 ‘위험범’으로서 법익침해의 결과가 실제로 나타나지 않고 위험이 생긴 것 자체만으로도 범죄가 성립하게 된다. 따라서 불특정 다수인이 실제로 명예훼손의 행위를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 있었더라면 실제로 다수가 인식할 정도의 명예훼손 행위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항변은 통하지 않게 된다. 결국 B의 명예훼손 행위가 성립하고, 저작권법 위반죄는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이예희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변호사. 한국춤비평가협회 고문 변호사.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각각 연극과 문학을 전공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현재 문화, 예술, 엔터테인먼트 등 콘텐츠 IP와 관련된 분야에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