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부산국제즉흥춤축제가 올해로 10회 째를 맞았다. 2003년 경성대학교 정보소극장에서 시작한 축제는 2004년까지 열렸고, 이후 2010년에 다시 시작되어 매년 개최되고 있다. 올해 축제는 새로운 공간에서 더욱 다채롭게 열렸으며 KBS TV를 통해 특별 프로그램이 방영되기도 했다. 17회 째를 맞은 서울국제즉흥춤축제는 올해 처음으로 프로젝트형 즉흥 프로그래밍을 시행했고 그중 한 프로젝트는 큰 방향을 불러 일으켰다. 현장 스케치와 함께 두 축제에서 화제가 된 무용가들을 만났다. (편집자 주)
■ 현장스케치_ 제10회 부산국제즉흥춤축제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
무대 위, 한 남자가 두 손에 쥔 흔하디흔한 주황색 비닐 봉투는 알 수 없는 우리의 마음처럼 천천히 부풀어 오르기도 하고, 다시 오그라들어 경직되기도 하며 다양하게 변모한다. 라벨의 ‘볼레로’가 점진적으로 고조되는 가운데 연이어 흰 티셔츠 차림의 남녀노소가 열을 지어 대형을 만들며 각자의 비닐 봉투로 공간을 메운다. 때론 엄청난 집중이, 때론 아쉬운 탄성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어느덧 일상의 소품은 사색적인 몸짓과 어우러져 수많은 상상과 은유를 그려낸다.
춤의 화려한 구성이나 기교보다는 내면의 움직임을 느끼고 다루는 진지함은 공연자와 관객 개개인의 마음속에 대화를 만들고 순간의 동화와 몰입을 경험케 한다. 바로 즉흥춤이 주는 묘미이다.
부산국제즉흥춤축제(예술감독 박은화)가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F1963, 해운대 백사장, 부산대 등지에서 열렸다. 전공자와 비전공자, 배움과 공연이 함께 하는 자유로움을 지향하며 해마다 꾸준히 진행되었던 축제가 2017년 어느덧 10번째를 맞이하였다.
10회를 거듭하며 축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국내외 참여자와 다양한 즉흥 작품을 선보였지만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틀은 일관성을 유지하여 왔다. 이는 축제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분명히 하고자 하는 주최 측의 노력이라 볼 수 있다.
즉흥춤축제는 즉흥이라는 몸의 심층적 탐구를 매개로 전문인과 일반인의 경계를 허물고, 교육과 공연을 통해 예술적 경험의 지평을 넓히는데 그 목적을 둔다. 그리고 부산이라는 지역성을 반영하고, 남녀노소를 불문한 부산 지역의 예술가와 일반인이 자유로이 참여하는 소통과 치유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이번 축제에는 옹양록(Ong Yang Lock), 실바인 메렛(Sylvain Méret), 가에 구라치(Kae Kurachi) 등 홍콩, 프랑스, 일본 즉흥 전문가와 함수경, 김정향 등 부산 지역 예술 치료 및 교육 전문가가 함께 하여 교육과 공연이 긴밀히 연계되는 작업들을 보여주었다.
언제나 해운대 백사장에서 축제의 시작을 널리 알렸던 부산국제즉흥춤축제는 10주년을 맞아 특별히 ‘배틀 즉흥’이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유쾌한 서막을 열었다. 지금껏 해운대 야외 공연이 부산이라는 지역적 상징을 잘 반영해왔다면, F1963 야외 스퀘어 극장에서 이루어진 배틀 즉흥은 박진감 넘치는 즉흥적 퍼포먼스를 통해 즐거운 유희를 담았다.
스트릿 댄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배틀’ 형식의 공연은 ‘경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이번에는 축제의 이념에 부응하여 자유와 소통이 돋보인 작업이었다. 전문 힙합 DJ와 MC가 배틀의 기본적인 틀을 잡아주면서, 지역 내 활발히 활동 중인 스트릿 댄서, 한국무용 및 현대무용 전공자들이 함께 어울려 즉흥적인 무대를 만들어 낸 배틀 즉흥은 장르의 특성을 넘어 몸의 무한한 리듬과 감각을 느껴보게 하였다.
특히 한국무용 특유의 흥과 장단을 즉흥적 몸짓으로 재현한 부분은 압권이었으며, 이는 사회자의 친근한 진행과 어우러져 관객의 적극적인 호응과 참여를 불러일으켰다. 열 번째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첫무대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튿날은 해운대 백사장에서 자연과 함께 하는 야외 즉흥, 그리고 다시 F1963으로 자리를 옮겨 즉흥 Jam과 릴레이 즉흥공연이 펼쳐졌다. 해마다 빠짐없이 열렸던 해운대 야외 즉흥은 축제의 상징과도 같은 공연이다. 백사장은 전통적인 극장무대가 주는 획일성에서 벗어나 보다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움직임을 시도해보게끔 하는 훌륭한 환경일 뿐만 아니라 부산이라는 지역성과도 연계되어 일반인들을 직접 찾아가고, 또 ‘지금-여기’를 스쳐가는 사람들을 관객으로 머물게 만드는 공연이기에 소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
저녁 공연의 중심이 된 100분간의 릴레이 즉흥은 부산의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인 F1963에서 열렸다. 실내 및 야외극장의 요소를 동시에 갖춘 흥미로운 구조의 공연장에서 10개의 그룹이 10분씩 중단 없이 이어간 공연은 보다 다채로운 즉흥의 세계를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폭넓게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시간으로 다가왔다.
마지막 날은 열린 즉흥, 커뮤니티 즉흥, 접촉 즉흥이라는 세 가지 종류의 공연이 하루 종일 이어졌다. 경성대, 부산대, 부산예고, 거침없는 우다다학교, 신라대, 영산대, 부산 교대 등 학생들이 주축이 된 열린 즉흥은 학생들의 진취적인 표현과 참신한 감각을 엿볼 수 있었고, 때론 즉흥을 매개로 참여자의 전공 혹은 관심 분야를 확장시켜보는 시도나, 움직임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자세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홍콩 안무가 옹양록이 함께 만든 커뮤니티 즉흥은 교육과 공연이 함께 하는 본 축제의 특성을 훌륭하게 살려낸 공연이라 할 수 있다. 안무가와 처음 만난 일반인들은 축제기간 콜라보레이션 즉흥 워크숍을 통해 약 20분간의 작품을 창작하였으며 그 결실을 무대에 올려 감동을 선사하였다.
모로코 출신 ‘경계 없는’ 뮤지션 오마르(Omar Benassila)와 전문 무용수들이 60분간의 무대를 밀도 있게 채운 접촉 즉흥은 축제의 대미를 장식하였다. ‘접촉 즉흥’은 즉흥춤 역사에서 가장 전통적이고 본질적인 형식의 즉흥 공연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즉흥을 진지한 탐구의 대상으로, 그리고 대중적인 형식으로 보급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전문 무용인들이 즉흥의 진수를 보여주는 접촉 즉흥은 언제나 축제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근원의 속성을 반추하게 하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즉흥춤을 통해 누구에게나 잠재된 몸의 예술적 본성을 찾아내어 보다 창조적 삶을 경험하고 행복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본 축제의 가장 근본적인 취지이다. 올해로 10회째를 맞이한 부산국제즉흥춤축제는 지역에서 그 의미가 더 발한다고 볼 수 있다.
시작은 전문인을 중심으로 이미 서구에서 활성화 된 즉흥춤을 보급하고 탐구하는데 중점을 두었지만,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전문 장르의 경계를 넘어 지역의 대중과 소통하고 지역성을 담고자 하는 모습으로 발전해 나갔기 때문이다. 이는 전시성 공연 위주의 구성보다는 공연, 교육, 치유의 세 분야를 균등히 배분하여 전공과 연령을 불문한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결과 해를 거듭할수록 참여자들의 자발성과 적극성이 뚜렷이 감지되고 있음을 현장에서 느낀다. 관객 또한 수동적인 감상이 아닌 계획되지 않은 순수한 몸짓을 함께 관찰하고 느껴보는 작업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10회를 거듭하며 내실을 다져온 부산국제즉흥춤축제는 이를 바탕으로 더 깊이 또 더 넓게 지역에 뿌리내리는 작업을 쉼 없이 고민하고 계획 중이다. 춤과 삶이 함께하는 본연의 취지가 보다 많은 이들의 가슴에, 그리고 몸짓에 전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노영재
University of California, Riverside에서 박사를 취득하였고, 인문학적 관점에서 무용문화를 조명하는 비평적 연구와 자유로운 글쓰기를 즐겨한다. 현재 사)대한무용학회, 한국무용예술학회 이사, 사)한국발레협회 부산경남지회 상임이사이며, 부산예술정책위원과 부산국제즉흥춤축제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