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춤비평가 지상 방담
촛불 민주주의 시대, 춤계 현안과 대안을 말한다

 거국적으로 사회 각 부문에서 극심한 비정상과 적폐를 도려내어 헌법 정신에 충실한 국가와 정부를 회복해야 한다는 여론과 동시에 광장의 소망을 수렴하여 국가 시스템이 정비되고 공공 시책이 재편성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분출하고 있다. 춤계에서는 비정상과 적폐의 청산, 공공 시책의 재편성 여론이 이전부터 공론화되어 왔으며, 그 선상에서 보다 적극적인 전망과 해결책을 마련하고 실현할 것이 강력히 요청되고 있다.
 한국춤비평가협회는 ‘대통령 하야 시국에 즈음한 시국선언문’을 지난해 11월 4일 발표하였다. 이어 11월 12일에는 춤계의 당면 현안과 공론을 라운드 테이블 형식으로 진단한 바 있다. 시국선언문 채택과 공개 좌담은 지난 늦가을 이후의 촛불집회로 상징되는 범국민적 여망에 적극 부응하는 맥락에서 추진되었다.
 2017년 1월 18일 춤계 신년대화모임 때 배포된 한국춤비평가협회에서 발간하는 「춤비평」지에는 한국춤비평가협회 회원들의 진단과 라운드 테이블 발언을 재구성한 ‘촛불 민주주의 시대, 춤계 현안과 대안을 말한다’가 권두 특집으로 다루어졌다. <춤웹진>에서는 춤계에 일고 있는 비정상적인 것들에 대한 정상화에 대한 바람을 담아 이를 함께 게재한다. (편집자 주)




 문화예술행정·문화예술위의 전면 혁신 요구된다

- 2016년도 몬도가네상으로 문화예술 기관 및 그 행정 정책에 대한 춤비협의 대략적 평가는 이미 내려진 편이다. 춤계 여론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블랙리스트에서 보듯이 단적으로 비선이 난무하고 단적으로 영혼 없는 문화예술 기관과 정책이 문화예술을 오히려 더럽히고 문화예술인들의 지탄 대상이 되고 있다. 차라리 없어져라 하는 극단적 반응마저 있지 않은가. 이를 문화예술 기관 책임자들이 뼈아프게 받아들일 양식(良識)이 있기는커녕 조금이나마 자책이라도 할까 싶다.
 무용인과 가장 가까운 기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고, 춤 관련 정책 평가는 대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시책을 기준으로 하기 마련이다.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출범하였다. 그 이전 30년간 존속해온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관료적 체제를 혁파하고 말하자면 효율적인 문화예술 진흥을 기하기 위해 문화예술위 체제로 개편되었다. 위원장과 각 예술 장르의 위원들로 구성되는 문화예술위 체제가 각 예술 장르의 발전에 기여할 바가 클 것으로 기대되었음에도 지난 10여년을 결산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여론이 드세다.
 문화예술위는 존재하고 있으나 정작 그 이름이 무색하게 문화예술계에서 존재감이나 있는가. 지난 10년 각 지자체에 문화재단이 신설되어 문화예술진흥 업무를 이양 받은 점도 문화예술위의 존재감에 영향을 끼쳤을 테지만, 이보다는 문화예술위가 검열을 대행하는 등으로 스스로 자초한 점들을 주목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역시 무슨 시책을 펴는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문화예술인들은 아예 관심을 기울이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실정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예술위의 시책과 사업이 도리어 누군가의 농간에 농단될 가능성만 커지는 것은 아닌지 적잖이 우려된다. 심지어 문화예술계가 비선과 정치권력의 먹잇감이 되었다는 개탄도 잦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예술위의 방향과 시책을 춤의 시각에서 해부하고 대안을 모아가는 실천이 요구된다.

- 박근혜-최순실게이트에서 나타났듯 문화관광체육부가 고유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휘둘린 점, 그리고 문화예술위원회나 예술경영지원센터, 국립중앙극장 등 산하단체의 업무에 지나치게 간섭하고 관여해 그 고유성과 독자성을 훼손시킨 점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청와대의 부당한 지시에 휘둘린 문체부, 문체부의 부당한 지시에 휘둘린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예술경영지원센터, 국립극장 책임자의 무소신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문화예술 융성을 국가의 정책기조로 내세우면서 인프라와 소프트웨어 모두에서 편파적으로 예산 전용과 잘못된 인사 등 예술가들과 예술 생태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실정(失政)들이 곳곳에서 밝혀지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하나하나씩 드러나고 있는 박근혜-최순실게이트와 문화예술계의 정권 유착은 이 땅의 국민들과 예술가들에게 저지른 중대한 범죄이다.
 예술가들과 예술단체들을 위한 문화행정 서비스의 중심에 있어야 할 인력들이 어느 순간 자신이 권력의 핵심에 있다고 판단, 지시하고 감시하며 예술계 현장을 누비는 데 익숙해져 버린 문체부와 산하단체 일부 직원들의 작태는 대한민국의 예술 생태계를 좀먹고 있는 나쁜 바이러스에 다름 아니다.
 냉정히 바라보면 박근혜 정부의 실정과 박근혜-최순실게이트가 남긴 더 큰 문제점은 권력의 잘못된 지시를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불의를 받아들이고 어느새 복종하는 데 익숙해진, 직무의 전문성을 스스로 포기해 버린 문체부와 그 산하단체 공무원들의 실종된 자부심과 의무감이 가져올 잘못된 예술경영과 예술행정의 폐해이다.

 

 




 춤 생태계 훼손, 경악스런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 지난 십여 년 사이 너무 낙후되었다. 의식수준이 예전보다도 못하다. 이명박 정부 때 아, 이제 문화예술도 공안정국으로 가는구나 하다가 박근혜 정부가 되면서 좀 나아지겠지 했는데, 웬걸 참 경악스럽다. 군부독재 시대를 제하면 이런 경우는 없었다. 검열도 그렇고, 블랙리스트도 그렇고... 글자 그대로 잃어버린 십년이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게 다 드러난 이상 빠른 속도의 회복도 가능하다고 본다. 워낙에 바닥을 치면 올라갈 일밖에 없는데다가 과거에 이미 수준 있는 자유를 누린 기억들이 있으니 다시 회복하는 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저급한 정부에서 억지로 망쳐놓은 것뿐이다.
 물론 공무원이나 문체부 산하기관이 먼저 나서지는 않겠지만 사회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잘 돌아가면 자연스레 회복되리라고 본다. 지식인들은 글로, 예술가들은 작품으로 권력을 조롱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는 건데, 그래서 카타르시스를 통해 시민들도 불만을 대리해소하곤 한다. 바보처럼 이걸 억누르다 보니 더 튀어 오르는 거다. 정치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무지하고 속 좁은 사람들이 정치를 하다 보니 우리 사회 전체가 비참해진다. 먹을 게 없어서가 아니라 정신적, 지적, 정서적으로 비참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 SIDance를 뺏어 가려고 한 적이 있었다. 정말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누굴 만나서 거세게 항의했다. 개인이 그토록 애써서 키워놓은 걸 그냥 빼앗아 가겠다는 게 그 정부의 천박성을 얼마나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일인지 보여준다. 항의하니 그런 행태를 멈추더라. 그런데, 만일 지금 박근혜 정부에게 그런 식으로 항의했다면 아마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천박하다고 경멸했던 MB 때보다 더하다.

- 문화재청에서는 공식적으로는 문화재위원들이 최고이지만 거기에서도 해결되지 않을 때에는 비공식적으로 자문위원을 찾는다. 그전에 종종 자문위원을 한 사람을 요즘 잘 불러주지 않는다. 문화예술위원회나 문화재단 관련 심사도 사라져서 한 번도 연락받은 적이 없다. 춤비협 회원들이 블랙리스트가 되어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이명박 정부 때 문화예술계 권력 가진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자기 라인에 있는 사람들만 기용하고 나머지는 다 배제시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보았다. 정말 괜찮은 기획, 작품이더라도 자기들이 추천하는 단체가 아니면 지원혜택을 받기 힘들었다. 그전에는 그렇게까지는 아니었다.

- 이명박 정부 때 이미 억압하는 시스템 밑자리를 깔아두었다. 이후 2013년 11월에 김종 차관이 임명되었고 유진용 장관이 면직된 게 그 다음해 2014년 7월이다. 장관 내쫓고 사실상 차관이 문화부를 진두지휘했다. 헌법에 위배되는 문화예술 활동은 법으로 규제하는 민주적 방법이 있다. 이 모든 것을 아예 무시하고 문화예술인의 성향을 기준으로 은밀히 제재·재단하려는 것이 블랙리스트이다. 청와대가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예술위가 이것을 거리낌 없이 수용해서 현장에서 지원 배제와 검열을 자행했다는 정황이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다.
 문화예술 진흥의 책무 의식은 흐릿한 반면 허접한 블랙리스트나 뒤적이는 작태가 돋보이는 정부기관을 누가 신뢰하며 무슨 시책을 기대하겠는가. 이게 무슨 나라냐 하는 질타가 당연히 쏟아진다. 이런 풍토는 공공 지원과는 무관하게 스스로 표현 활동에 진력해온 대다수 문화예술인들에게마저 자기 검열의 억압 기제를 퍼뜨릴 것이고, 지원 배제와 불법 검열은 그것을 겪은 문화예술인들에겐 트라우마로 작용하기 일쑤다. 표현을 가로막아 예술의 기반을 뒤흔들고 선별 편파적 지원으로 예술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블랙리스트와 불법 검열을 추방하고, 아울러 주모자에 대해서는 법정에서 그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본부가 2010년에 거의 해체되다시피 했다. 문화예술계 전체로 보면, 민예총의 활동이 상당히 후퇴한 결과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해 감시할 기구가 거의 없어진 편이다.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려면 집단이 되어야 하고, 그 집단이라 함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져야 하는데 민예총의 부진으로 인해 예술계에서 비민주적 환경이 득세하는 현상도 초래되었다고 본다. 지역 민예총은 나름대로 활동기반을 잡아서 형평성과 민주성에 어울리는 작업을 적극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전국적인 민예총 조직은 촛불집회에서의 참여 활동 이외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상황이다. 더 더욱 2013년 현정부 들어서는 정부나 권력이 국민의 간을 보는 그런 정도를 넘어, 블랙리스트 작태에서 보듯이, 안하무인이 되어서는 노골적으로 드러내놓고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 블랙리스트 문건이 언론에 공개되었다. 블랙리스트를 들고 나주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서울의 예술경영지원센터를 방문한 문화부 사무관의 실상이 이미 해당 기관에 몸담았던 직원들의 증언으로 드러났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청와대나 산하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내려 보낸 문화부나 그것을 받아 문화예술 불법 검열 및 감시를 획책한 문화예술위원회와 그 리스트를 받아 심사위원에 배제시킨 예술경영지원센터, 1년이 훨씬 넘게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공백 사태를 야기 시킨 국립중앙극장 등은 모두 잘못된 예술정책과 행정을 자행한 셈이다.
 문화연대·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등 12개 문화예술단체들, 한국춤비평가협회가 시국선언을 통해 박근혜 정부의 문화정치 공작에 대한 규탄과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수사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할 것이며 특검에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를 수사 대상에 올려놓은 것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춤웹진>은 정영두 안무가의 예술검열에 항의하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비중 있게 다룬 적이 있다. 그 후부터 어쩐 일인지 춤비협 회원들은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하는 사업의 심사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되어 왔던 것 같다. 언젠가 예술경영지원센터 직원 중 한 사람이 심사위원 풀에 대해 어려운 점을 호소하더라. 예경은 국제교류 업무가 많다. 전문성을 요하는 부문인 만큼 국제교류 사업과 관련한 심의, 평가, 자문을 해 줄 수 있는 전문가들이 많지 않다는 거다.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던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와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의 임기 중 퇴진에서부터 시작된 문화예술 부문의 본격 파행과 정책운용 실패는 날이 갈수록 그 부패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의 문화예술계를 오염시킨 악취들은 한국의 춤 환경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 정부가 바뀔 때마다 자행된 문화예술계의 코드인사, 정권유착에 대해 이를 경계하기 위한 예술가들과 관련 공무원들 스스로의 도덕적 재무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 지금이 나치 시대의 독일이냐, 문화대혁명 당시의 중국이냐? 21세기 한국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운운하기에 일종의 유언비어라 여겼었다. 그런데 그 실체가 사실로 드러나고 있어 경악을 금할 수 없다. 그것도 거의 1만 명에 가까운 숫자라니 기가 막힌다. 지원 정책에 행정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쓸 데 없는 일에 행정력을 소모했으니 말이나 되는가? 철저히 수사하여 다시는 전근대적인 독재국가나 전체주의 국가에나 있었던 그런 유치한 발상이나 국가적 통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아르코예술극장은 예술가를 검열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 작품에도 손을 대는 듯하다. 얼마 전 아르코에서 작품을 봤는데 작품 영상 중에 어떤 특정부분에서 말을 하다 만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예술가 본인이 예민하게 생각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중간에 그 부분만 도려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중에 창작자 본인과 나눈 이야기를 새겨보니 극장 측에서 영상의 일부에 대해 압력을 넣은 것 같다.

- 무용계의 구조적 문제는 두 가지로 생각되는데, 이번 사태에서도 드러났듯이 대통령과 행정부가 전혀 간격유지를 못하고 있는 상태, 아예 밀착되어서 커넥션이 되어있는 문제이다. 이는 이번에 블랙리스트 문제로 드러났다.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선임문제가 그 부정적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현장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행정이 진행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무용협회가 시대 흐름을 감지하지 못하고 세력 싸움이나 하면서 무용계 발전에 대한 비전을 갖지 못한 단체로 전락한 문제이다. 이 두 가지 문제가 때론 크게 때론 소소하게 무용문화를 좀 먹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 국정 농단 사태에 독립무용가들 240여명이 시국선언 성명서를 낸 것은 신선한 움직임이었다. 젊은 무용인들 중심으로 짧은 시간 안에 SNS를 통해 서명이 이뤄졌는데, 무용계 안에서도 이제 현실 인식을 하는 새 세대가 등장하나 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무용협회가 구태의연한 작태로 서로 싸움만을 일삼고 세대교체 상황에서도 차기 회장에게 새로움을 기대할 수 없다면 협회는 무용계 대표성을 잃었다고 본다. 건강하게 현실 인식하면서 무용계를 걱정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움직이는 무용인이 무용계를 위해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흥과 지원에 역행하는 문예진흥기금 및 공공 지원금 운용

- 우리나라에서 가장 민주화가 안 되고 장기집권이 이뤄지고 있는 집단이 예총과 무용협회 및 지방 하부조직이라고 생각한다. 지방은 더 심하다. 다른 무용인들은 그 고장에서 돈 한 푼 못 받는다. 지회장들이 예산을 모조리 좌지우지 한다.

- 불과 1년 전인 2015년 연말연시에 한국의 춤계와 공연예술계 현장은 2016년 새해를 걱정하는 이야기가 유난히 많았었다. 당시 많은 무용가와 기획자들이 “도대체 2016년 공연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며 흥분했었다. 극장대관에서부터 공공 지원금까지 불투명한 상태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2016년도 지원사업 신청 공고를 12월 29일에야 했고, 그것도 축제형식의 전국행사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일반지원 사업은 해가 바뀌고 보름이 지난 시점에도 공고조차 나지 않았었다. 서울문화재단의 경우도 12월 29일이 되어서야 지원사업 설명회를 가졌었다. 6개의 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공연예술센터는 2016년 대관 신청을 2015년 12월 21일이 되어서야 공고했고 2016년 2월 들어서야 그 결과를 발표했다.
 4월에 국제 무용축제를 시행하는 주최 측은 국제 행사가 두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도 일정이 정해지지 않자 발을 동동 구르며 해외 초청 아티스트들에게 연신 사죄의 말을 건네야 했다. 예년보다 모두 2개월 이상 늦어진 것이었다. 한 마디로 한국의 지원정책과 예술행정은 혼비백산의 상태였다.
 이 같은 늑장 지원행정은 2016년도에도 예외가 아니다. 2017년도 문화예술위원회와 서울문화재단의 지원금 신청은 12월 중순을 넘어서 공지되었다. 예술가들과 단체들의 창작과 국제교류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돈(지원금)과 시설(공연장)을 담보로 오히려 예술 활동을 저해시켰다.
 돈만 준다고 해서 예술지원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지원정책의 성공은 그 내용 못지않게 타이밍이 중요하다. 국민의 세금을 집행하는 공공 예술기관의 잘못된 예술정책과 운용은 한국의 문화예술을 진흥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행시키고 있다.




 문예진흥기금 및 공공 지원금, 심사·선정 구조부터 바로 세워야

- 지원 시책들이 시대 추세를 빠르게 반영해서 지원의 목적 달성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은 항상 가능한 지적이다. 이런 원칙뿐만 아니라 블랙리스트 같은 왜곡된 요소의 개입을 차단해야 할 필요성이 늘어나는 데 비추어 공공 지원금은 지원금의 규모, 지원 항목의 적정성, 지원 기준의 합리성, 지원 심사의 투명성 등 면에서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특히 지원 심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점에서는 지원심사위원을 선정하는 과정이 매우 중시되어야 한다. 심사위원 선정에서 이런저런 블랙리스트들이 작용한다는 여론도 적지 않다. 심사위원을 제대로 선정했더라도 지원심사과정이 이렇다 할 토론 없이 기계적으로 진행된다면 역시 문제라 생각된다.

- 지난 50여 년 동안 행해진 공공 문화예술 지원금 운용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심사위원들의 비전문성과 지원 단체 선정에서의 불공정성, 그리고 지원금 배분에서의 비효용성으로 요약된다.
 2010년 연초 한국춤비평가협회 결성 직후 권영빈 전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을 방문해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정책에 대한 문제점과 해결 방안 등을 전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어쩐 일인지 춤비협 회원들이 문예위 심사라든지 평가, 자문 등에서 지금까지 배제되고 있다.
 행정자치부 기관평가에서 계속 D급을 받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한국국제교류재단이나 예술경영지원센터 등 다른 기관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유사한 사업들을 이름만 바꾸어 마치 신규 사업인 것처럼 시작하면서 벌인 비생산적인 사업 운용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로운 사업으로 인해 등급이 C로 상승되는 대신 하지 말아야 할 지원사업으로 인한 폐해는 고스란히 한국의 문화예술계가 짊어지게 되었다.
 춤 창작의 거점 극장인 대학로의 주요 공연장을 한국공연예술센터로 귀속시켜 지원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직접 관리, 운용하면서 극장 경영 경험이 전무한 직원들을 파견시켜 잘못된 운영으로 공연예술계 발전을 퇴보시키고 있는 것도 실패한 예술지원과 예술정책의 한 사례이다. 문예위에서 아르코예술극장을 운영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지원정책을 담당하는 곳에서 극장을 운영하는 경우는 없다. 극장운영은 전문가 집단의 영역이다. 전 세계적으로 댄스 하우스나 무용센터를 만들고 이를 중심으로 공공 지원 정책을 시행해 효율성을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생산적인 지원정책을 총괄해야 할 문체부나 문화예술위원회가 비효율적으로 지원 정책을 운용하고 있는 점은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2015년 말 갑작스럽게 5억 원이 넘는 예산을 국립무용단의 <향연> 작품 제작을 위해 내려 보낸 문화관광체육부의 선심성 예산이, 알고 보니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용하는 창작산실 사업의 무용부문 예산에서 수억을 전용한 것이라는 사실 역시 잘못된 예술행정의 사례이다. 독립 무용가들이나 전문 춤 단체를 위해 배정된 예산을 국공립 무용단의 예산으로 사용한 것을 숨기고 집행했으니 문체부와 문화예술위원회는 이 땅의 무용가들과 예술가들, 그리고 관객들을 속이고 불법에 의한 범죄행위를 저지른 셈이다.

- 문화예술인들 블랙리스트 작성이 지극히 유치한 기준에 의해서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세월호 관련 시국선언에 서명했거나 상대방 후보 지지선언을 한 것이 기준이 되었다는 것이다. 순수예술과 참여예술, 진보적인 생각과 보수적인 생각, 민주국가의 예술에는 다양성이 공존하고 백화제방해야 하는데 한쪽 경향의 사람들만이 심사위원이 된다면 지원금 심사도 단순해질 수밖에 없고, 선정 작품의 수준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공공무용단 운영, 춤계에서 지탄받는 이유부터 직시하라

- 2015년 상반기 춤비협은 여론 조사를 통해 공공무용단의 무기력증세를 밝혀낸 바 있다. 공공무용단에서 예술감독 선임절차 규정, 예술감독의 무용단 운영 관리 규정이 부실하고 레퍼토리 선정 관련 규정은 더욱 부실한 것이 최우선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공공무용단 운영 해법이 대부분 다 제시된 것 같고, 이를 거울삼아 대비했더라면 근자의 파행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근 2년 세월이 흐르는 사이 일부 무용단에서 예술감독의 선임이나 교체가 있었긴 하나 전보다 더 악화되었다는 세평이 드세다시피 전반적으로 상황이 호전될 기미는 고사하고 무사안일이 만연해 있다. 아직도 공공무용단은 역량 있는 예술감독을 만나는 게 상책이라는 막연한 요행수에 기대고 있다. 국립무용단, 서울시무용단을 비롯해서 제도적 미비점을 혁파하고 단원들의 무사안일을 쇄신하는 방안부터 강구하도록 춤계에서 지속적 압력을 가해야 할 것으로 본다.

- 국공립 단체장들의 장기 공석상태는 2016년 내내 핫이슈였다. 국립무용단은 1년 2개월 만에 예술감독이 임명되었고, 국립국악원무용단은 5월부터 지금까지도 공석상태이며, 국립현대무용단도 예술감독이 5개월 동안 공석이었다가 얼마 전에야 선임되는 등 파행을 겪었다.
 1년이 훨씬 넘도록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무용단의 예술감독 한 명을 선임하지 못한 채 방치하다 결국 수차례의 공모에서 1차 탈락한 인사를 선임할 수밖에 없었던 국립극장 운영 책임자들의 실정(失政)에 대해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국립무용단 단원들과 노조는 예술감독 장기 공석 상태가 1년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는 데도 선임 촉구를 위한 공개적인 요구를 하지 않았다. 본 협회가 2016 한국춤비평가상 몬도가네상 수상자로 현 국립극장장을 뽑은 것도 국립무용단의 파행 운영으로 단체의 발전을 저해했기 때문이다.
 국립무용단의 <향연> 공연과 최근 예술감독 선임과 관련한 것은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향연> 공연은 연말에 갑작스럽게 신작이 공연된 것에 의아해 했는데 최근 들어 이 공연이 비선실세들과 관련이 있었다는 지적과 함께 제작비 배분 내용이 알려지면서 더욱 의혹을 낳고 있다. 국립무용단의 일 년 전체 공연 제작비가 7억 원 정도인데 갑자기 문화부에서 한 작품 제작비로 5억8천만 원을 내려 보냈고 국립극장 자체예산 4천만 원을 더해 총 6억2천만 원으로 한 개 작품을 만든 것이다. 특정한 사람이 연관된 부문에 과다한 제작비가 배정된 것이 의혹을 낳고 있다. 특히 이 사람은 국립극장장이 연임하는 과정에서 계속 국립무용단의 작업에 관여해 왔던 터라 이와 관련해서도 여러 의혹이 있던 상황이었다.
 공공무용단들 중에는 선임된 예술감독을 연습실에조차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곳도 있다. 무력한 공공무용단의 이사회와 자문위원회 등의 운영도 쇄신되어야 한다. 단원 고령화 문제, 검증된 오디션을 통한 철저한 프로페셔널리즘의 재무장과 예술감독의 임기보장 및 선임 절차의 투명성 확보도 공공무용단들의 해결 과제들이다.

- 최근 국립무용단과 관련해 주목해야할 기사 두 가지가 있었다. <향연> 제작과정에서 정구호 감독과 관련된 예산 지정 및 운용의 문제와 현 예술감독 인사 관련기사였다. 특히 예술감독 관련 기사는 심사과정을 비롯해 인사와 관련된 투명하지 못한 커넥션의 문제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거 같다. 국립무용단 감독 자리가 오랜 공석으로 있을 만큼 인선에 쉽지 않은 상황은 이해가 가지만, 지금 상황에서 전혀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기사에도 나왔듯이 예술적 역량에는 관심도 없었던 거 같고, 예술감독으로서의 행정, 기획 능력을 본 거 같지도 않다. 단순히 무용단 경험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빈약한 설명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참으로 걱정스럽다. 만약 국립무용단이 그런 정도의 처방이 필요한 단체라면 이번에 쉽게 봉합하지 말고, 누적된 많은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고민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첫 단계일 것이다.




 공공 무용제전, 쇄신 여론이 따갑다

- 30년 넘게 열려온 서울무용제 등 공공 지원금으로 열려온 행사를 공공 무용제전이라 분류할 수 있다. 공공무용단이 안정된 기반을 갖춘 것처럼 공공 무용제전도 춤계에서는 안정된 기반의 무용제전으로 꼽힌다. 공공 지원금의 성격과 규모에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해서 말하자면, 우선 공공 지원금을 일정 규모 금액 이상 받는 춤 페스티벌들을 공공 무용제전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공공 무용제전이 춤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판단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이와는 별도로 여러 공공 무용제전이 제 구실을 하는지 이 시점에서 되짚어봐야 할 점이다. 공공 무용제전의 운영 또는 심사 구조의 투명성 그리고 운영 또는 심사 관련 인선의 춤계 대표성부터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198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찬찬히 대한민국 춤 문화의 변동 과정을 객관적인 시선에서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의 춤계는 여타의 소위 춤 선진국이라는 나라와 비교해 보았을 때 무용예술을 둘러싼 지원‧교육‧창작‧공연의 여건 등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아시아 여러 나라와 비교했을 때는 훨씬 우위에 있다. 공공 무용제전 또한 다른 나라에 비해 그 숫자나 지원금에서의 혜택 또한 결코 적지 않다.
 서양의 현대무용이 들어온 지 100년이 되어 오고, 대학에 무용과가 개설된 지 50년이 훨씬 넘었다. 매년 2천5백여 건의 춤 공연이 무대 위에 오른 지 오래이지만, 국제무대에서 당당히 경쟁할 만한 작품들이 부족하고 세계무대에서 한국의 춤계를 대표할 만한 안무가를 배출하지 못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첫 번째 요인은, 외형적인 것에 비해 운용에서의 질(質)이 뒷받침 되지 못하고 정작 무용예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것들이 탄력적으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요인은, 새 작품 위주의 지원제도와 춤 유통의 부진, 전문 인력의 부재와 함께 중요한 행사를 주최하고 적지 않은 공공 지원금을 집행하는 기득권 집단의 아마추어리즘과 매너리즘에서 그 요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요인은, 춤계 전반에 퍼져있는 촘촘한 인맥들의 제 식구 챙기기와 교육에까지 손을 뻗친 지도자들의 도덕 불감증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모든 것에 공공 무용제전의 비효율성이 연계되어 있다. 좁은 지형 안에서 10개가 넘는 국제 무용 페스티벌과 그 보다 더 많은 공공 무용제전이 열리고 있으나 적지 않은 페스티벌이 성격상 중복되며 여타 축제와의 차별성의 부족과 비효율적인 운용에 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무용예술과도 연계가 있는 서울아트마켓(PAMS)의 경우 한국의 공연예술 상품을 팔기 위해 매년 수백 명이 넘는 외국의 공연예술 전문가들을 불러 모아 놓지만, 정작 수준 이하의 개막식 행사를 3년이 넘도록 계속 되풀이하면서 오히려 한국의 문화예술계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다. 행사 취지는 좋지만 중요한 행사의 프로그래밍과 운용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그 책임을 기관 책임자에게 물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생산적인 공공제전의 운용은 무용가들의 창작 유통에서 중요한 인프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춤계 자립 대책, 청년 세대 현장에 초점 맞춰야

- 춤계 자립은 매우 넓은 주제이며, 제 입장에서는 무용인이 무대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런 뜻에서, 지난번 춤비협의 2016년도 결산 방담에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최근 몇 해 독립춤꾼들의 활동 비중이 굉장히 빠르게 높아가는 추세를 주목해야 한다. 춤계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있어 인디 춤꾼들의 역할은 거의 절대적이다. 공공무용단이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실정에서 인디 춤꾼들의 활동이 더 부각되는 면도 있다.
 다시 말해, 인디 춤꾼들을 포함해서 청년 세대의 활동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고 후원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커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지원금을 늘리면 그들의 활동도 더 활발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지원금이 절대적 요인은 아닌 듯하다. 인디 춤꾼들이라는 말의 원래 취지는 지원금과는 무관하고, 현실적으로도 지원금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어려움을 감내하는 춤꾼들이 주변에 많은 줄로 안다. 춤 생태계 조성에 중점을 두어 그들의 자발적 활동을 후원하고 상상력을 끌어내는 경로가 향후 다양해져야 할 것으로 본다. 공공 지원금이 한정된 때문에 오히려 춤계의 현안 가운데 주요 현안에 선별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지원금뿐만 아니라 공공의 연습실 같은 스튜디오, 공공의 워크숍 같은 프로그램, 지적 역량 함양 공개강좌처럼 마음만 먹으면 저비용으로도 다채로운 플랫폼을 개발할 수 있다고 본다.

- 최근 몇 년간 공연된 우수 작품들을 보면 독립 안무가들이나 전문 춤 단체에 의한 작업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우수 작품들이 유통을 통해 더욱 업그레이드되고 해외 춤 시장에서도 통용될 있도록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단계적인 지원정책이 필요하다.
 돈만 쥐어주는 것이 무용가들을 위한 지원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도 바뀌어야 한다. 춤 공연장에 우수한 기술 스태프들이 상주하도록 하고 대관료를 낮추어 주고 춤계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축제나 기획공연의 경우는 차별화된 지원으로 인프라로서의 기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지도급 무용가와 무용 관계자들, 특히 국민들의 세금, 공공지원금을 받아 행사를 하는 책임자들은 공공성을 담보하는데 더욱 정성을 들여야 한다. 기획 인력과 기술 스태프 인력을 지원받고 있는 춤 전용극장의 제 역할 회복도 중요하다. 공간 운영 책임자들의 인맥 안에서 안주하는 기획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춤계 활성화에 기여하고 부가가치를 높여주는 공연들로 채워나가야 한다. 독립 안무가들과 전문 춤 단체의 공연을 활성화 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체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공연예술센터의 제 기능 회복도 창작 활성화와 춤 문화의 발전을 위해 중요하다. 2016년 4월에 출범한 서울무용센터가 창작 공간과 국제교류를 위한 전진기지로서 춤계에 유용한 인프라로 기능하고 있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 개인적으로는 기본소득제 찬성론자이니 기본소득제를 주창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공공의 연습실 같은 스튜디오나 공공의 워크숍 같은 프로그램은 현재 지자체마다 가진 문예회관의 유휴 공간을 적극 활용하여 인디 춤꾼들에게 무료나 적은 비용으로 빌려 주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듯, 지자체에서 주민들에게 제공 가능한 유휴 공간을 등록하도록 하여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21세기 방식의 춤예술 현장 협의체로 시너지 모을 필요

- 춤계의 현장 시너지를 모을 기구가 시급해 보인다. 이미 절감하듯, 고급예술이 계속 코너로 몰리는 추세 속에 춤계가 방비책을 세워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앞서 지적했듯이 춤 경쟁력 강화나 청년 세대 활동 후원을 고려하면, 그에 적절한 기구로서 공동 협의체 같은 것을 상상하게 된다. 규모를 갖춘 체계의 기구를 앞세우기보다는 우선 춤 현장 활성화를 염두에 두고 의견을 교환하고 집약하는 형태의 장이 공식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촛불집회가 일사불란한 조직으로 진행되진 않았어도 탄핵이라는 소기의 목표에 이른 것을 거울삼아 유연하면서도 심지 있는 협의체를 현장 활동인들을 축으로 조성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 대한민국 전역에서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촛불시위에 참여하고 대통령을 탄핵에 이르게 한 것은 비단 박근혜-최순실게이트로 인한 국정농단 그 자체에 대한 분노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부정과 부패, 잘못된 관행에 대한 항의와 분노의 표출이다. 국민들이 두 손에 쥐었던 촛불은 이제 건강하고 정직한 대한민국을 향해 그 빛을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 춤계에서도 이 같은 건강한 바람이 조금씩 불고 있다. 촛불과 맞물려 시행 3개월째를 맞고 있는 김영란법은 그동안 묻혀있던 한국 춤계의 잘못된 관행과 부끄러운 민낯들을 급기야 수면 위로 부상시키고 있다.  
 권력을 등에 업은 경험도 없는 무용가가 아시안게임의 개막식 행사 책임자로 내정되고, 적지 않은 지원금을 증액 받은 후 부실한 사업수행으로 지탄받는 축제 책임자, 공연과 춤 지도를 빌미로 학생들과 젊은 무용인들을 자신의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하는 지도급 무용가, 박사학위 입학에서 취득까지 1억 원이 넘는 돈이 든다는 실상의 중심에 서있는 한 대학 무용과의 석·박사 학위장사, 병역특례 혜택이 걸린 국제 무용 콩쿠르와 직업무용단 입단, 국제 발레 콩쿠르 출전을 둘러싼 추악한 실상들이 꽤 구체적으로 하나둘씩 증언되고 또 제보되고 있다.  
 춤계 전체의 이익보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자신의 제자들과 젊은 무용인들, 공공 무용단을 악용하는 일부 원로 무용가들의 과욕에 대한 질타의 목소리, 언론의 기본 책무인 감시기능을 상실한 채 제대로 검증도 안 된 작품과 아티스트들의 홍보에 열을 올리며 귀한 지면을 낭비하는 일부 언론과 저널리스트들, 아직도 주례사 같은 비평을 남발하는 일부 평론가들의 한심한 작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그 강도가 만만치 않다.
 이런 잘못된 관행들이 대통령 탄핵정국을 계기로 대수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춤계에서 빠르고 강하게 분출되고 있다. 아르코예술극장을 무용 중심극장으로 운영한다는 정부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고, 가장 중요한 춤 공연장인 한국공연예술센터와 지원정책을 총괄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문제 등 한국 춤계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제도적 문제들을 시정하고 잘못된 관행들을 종식시키기 위한 공적 협의체는 필요하다. 다만 협의체 구성과 그 운용 방법에서는 춤계의 중지를 모으는 공개되고 단계적인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

- 인디 춤꾼들의 협의체 같은 것을 만들도록 권장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이 단체로서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

- 젊은 독립안무가들을 중심으로 무용인 240여명이 서명한 것은 무용계 초유의 사태이지 싶다. 문화예술인들이 섞여서 한 적은 있지만 무용인들이 따로 서명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한국춤비평가협회가 시국성명을 발표했고 전체 상황을 보면 어쨌든 무용계도 변화의 국면을 맞고 있다. 여기서 한국춤비평가협회가 해야 할 역할이나 감당해야할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우리가 적절하게 해내지 못한다면 우리 시국선언문의 효과도 굉장히 약해질 것이라고 본다. 나름대로는 한 발 앞선 성명이었지만 건의 내용이 무용인들이 공감할 만큼 우선 디테일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하는 이야기들을 과연 누구한테 할 것인가. 정책 담당자들에게 할 것인지 아니면 행사 주체에게 할 것인지 선별해서 제안하고 구체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럴 때 무용가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움직이려는 무용인들과 단합된 에너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런 변화 상황에 춤비협은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2017. 0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