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허성임이 2013년 발표한 〈Philia〉와 2015년 발표한 〈Nymf〉는 마치 연작 같은 느낌을 준다. 앞의 작품은 소녀시절 두 소녀의 우정과 성장을 생생한 감성으로 풀어 놓았고, 후자는 유치원 졸업사진이 걸려 있는 유리방 안에 임신한 몸이 되는 한 여자의 삶의 시간과 흐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허성임은 몸으로나 이야기의 골자에서 소녀에서 성인 여자가 되어가는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여성을 은유하는 ‘님프’를 제목 삼았으나 지금의 여성이 어떻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위협적인 환경에서 살고 있는가를 비틀어 보여주고 있는 〈Nymf〉는 훨씬 더 구체적이고 집요하게 여성 현실을 여성의 몸 상태로 은유해 보여준다. 붉은 색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유린의 느낌을 주는 차가운 스테인리스 수술대, 구부려진 채 랩에 싸인 여자의 몸, 임신한 몸, 생명이 기운이 빠져나가 시신인 듯한 몸... 자연스럽게 연결된 장면에서 충분한 연상의 근거들이 제공되면서 무대의 몸에 객석의 몸은 반응한다.
이런 강한 동화력을 끌어내는 허성임 작품의 매력은 자신에 근거해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의미에서 현실의 자신의 몸을 적극적으로 등장시켜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얘기를 하는 데 매몰되지 않기에 보편으로 확장될 수 있는 이중의 탄력성에 있다. 이 절묘한 균형 지점은 자신을 온전히 작품 안에 몰입시키는 장치이면서도 자신에 연민하지 않을 수 있는 적절한 온도를 유지시킨다. 이 적당한 온도가 관객 역시 자신 안에 스며들어 있는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심스럽게 벗겨내고 자신의 역사를 뒤척일 수 있게 만든다.
벨기에에 근거를 두고 현지 예술가와 협업을 통해 독특한 작품의 색조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허성임은 2015년 당시 임신한 몸으로 출연했고, 지금은 아이와 두 몸으로 나눠져 있을 것이다. 여성으로서 겪는 경험들이 여성에게 잔혹하기 짝이 없는 이 현실 안에서 성스러움과 어떻게 충돌할지 무대에 선 허성임의 몸과 그 작품으로 기대하게 된다.
“이 작품의 놀라운 지점은 출연자들이 감정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방식이다. 어떠한 거리낌 없이, 꾸밈도 없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은 그들의 거침없는 표현에서 나온다. 여성에게 스테레오타입으로 짐 지워진 행동 패턴이나 포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아마 그들 이야기의 시발점이 사회의 젠더 역할에 물들지 않을 소녀시절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녀 둘은 시원하게 저 뱃속부터의 이야기를 끌어내어 목청껏 지르면서 울고 웃고, 눈물과 콧물과 땀을 버무리는데 열중한다.” (〈Philia〉 리뷰, 2013년 11월호. 춤웹진)
“여성의 몸을 주제로 다루는 작품은 많지 않을뿐더러 몸을 포함한 여성 존재, 외부로서의 환경, 그곳에서의 세밀한 지점을 포착하여 드러내는 작품은 더욱 귀하다. 말하자면 춤에서 여성의 몸은 주체가 되어 말하는 몸이라기보다는 시선을 받는 객체로 전시되어질 뿐인 경우가 많거나 남자와 분리되어 조망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몸으로 풀어내는 여성이야기의 다양한 층위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속에서 〈님프〉는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충분히 만족할 만큼 여성의 몸 이야기를 관객에게 지각시키고 있다. 한 사람으로 태어나 천진난만한 미소와 까르르 넘어가는 웃음을 간직한 소녀시절부터 이미 조작된 미소로 갑옷을 입은 현실이 여성이 살고 있는 환경이라는 것을 몇 가지 설정과 연기자들의 행위를 통해 재현(representation)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고도 풍부하게 드러낸다.”
“안무가 허성임은 주제의식을 품는 힘이 상당해 보인다. 뚜렷한 여성 정체성에 대한 자신으로부터 출발한 화두를 잘 움켜지고 있으며, 실현의 방향성도 별 혼란이 없다. 게다가 그것을 자신의 몸과 자신의 감성을 쭈뼛거리지 않고 전시하는 것을 당연시 한다는 것도 허성임이 가진 매력이다.” (〈Nymf〉 리뷰, 2015년 9월호.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