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춤 공연이 어느 때보다 많아졌다. 정부의 지원을 받은 국제장애인무용제가 태동했고, 상주예술단체로 지정된 전문무용단은 시각장애인과 함께 하는 춤으로 화제를 모았다. 국내외 장애인무용단과 안무가들의 다양한 작업은 장애인 춤이 한국 춤 문화의 영역으로 본격적으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축제 및 공연 현장스케치와 함께 참여 안무가를 인터뷰했다. (편집자 주)
(1)표지공연_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 & 안은미컴퍼니 〈안심땐쓰〉
의미있는 작업, 그 뒤에 남는 아쉬움
2016 대한민국 장애인국제무용제
“모두의 심장은 뛴다”는 모토로 남미대륙에서 처음인 패럴림픽이 개막되었던 2016년 9월 8일은 제1회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Korea International Accessible Dance Festival, 약칭 KIADA)의 개막식 날이기도 했다.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과 소극장에서 사흘 동안 펼쳐진 이번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를 첫날 낮에 있었던 국내초청 소품작 공연을 제외하고 모두 관람하였다.
한때 장애인을 장애우로 부르자는 운동이 일었었지만, 장애인에 대한 동정을 내포한 그 단어 또한 차별이기에 이제는 법적 공식 용어인 장애인으로 통칭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장애인을 처음 만나면 그들의 장애를 먼저 신경 써서 배려를 해주어야 하는지 아니면 일반인과 똑같이 대해도 되는지, 혹은 똑같이 대해야 맞는 건지 묻지도 못하고 속으로 고민을 하게 마련이다.
필자가 알고지내는 지체장애, 청각장애인들은 장애에 개의치 않고 오히려 더욱 적극적인 사회활동으로 존경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 그들의 장애를 내가 과하게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시간이 좀 필요했었다. 그러나 그들이 일일이 불편을 호소하지 않는다 해서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기에 마음을 편히 놓아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번 장애인국제무용제 소식을 접하고서 모르는 새 장애인들의 춤 문화가 축제를 꾸릴 만큼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 미안한 기분이 든 것은, 그들의 당연한 열정과 의지를 간과하고 새삼스럽게 여겼다는 점 때문이었다.
9월 8일의 개막식에선 공연 전 행사로 아르코 대극장 로비에서 우광혁 교수의 진행으로 작은 콘서트, 핀란드 무용가 Minni Hirvonen의 퍼포먼스 등이 펼쳐지면서 비교적 자유롭고 순조로운 분위기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극장에 자리를 찾으러 들어갔을 때 객석의자 두 줄에 큰 글씨로 ‘귀빈석’이라 붙어있던 점, 팜플렛에 여러 단체장과 정치인들의 축사가 들어있음에도 다시 영상을 틀었던 점 등은 축제집행 중 옥에 티로 느껴졌다. 정식으로 출범하는 축제로서 인정과 축하를 받기 위함임은 이해되지만 그 어느 곳보다 ‘차별’이 없어야 할 자리에서 너무나 무심하게 구태를 반복한 모습 같았다.
첫 공연은 룩스-빛(The Lux-Light) 시각장애인 무용단과 선화예술고등학교 무용부의 〈시그널: 춤의 속삭임〉으로 시력이 완전히 상실된 전맹 시각장애인 무용수 세 명이 한가운데 자리하고 양쪽으로 선화예고 무용부들이 늘어선 형태의 이고무(二鼓舞)였다. 장애인들이 어디 있는지 처음에는 알아차리기 어려웠을 정도로 초반까지는 흐트러짐 없이 동작을 맞춰냈다. 한 자리에서 몸의 방향만 바꾸면 되는 이고무인지라 아무래도 거동이 불편한 시각장애인들에게 적합했겠지만 갈수록 빠르게 진행되어야 하는 장단은 녹록치 않았을 테다.
안무가 이정윤이 휠체어를 탄 빛소리친구들, 코리아댄스시어터와 함께한 〈공존〉은 가면과 오방색으로 처용무를 접목한 아이디어가 주제의식과도 맞아떨어져 돋보인 작품이었다. 빛소리친구들은 이방인인 처용이 인간이라면 결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문제를 달관했던 그 방식대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성무용수들을 들어 올리고 휠체어채로 바닥에 몸을 던지기도 하고 은빛 바퀴를 굴려 무대를 종횡무진 하는 등 열연을 펼쳤다.
독일의 장애인안무가 Gerda König의 〈Body Realities〉는 인간의 몸이 소속된 지역과 문화를 반영하는 살아있는 상징이라는 관점에서 각국의 다양한 풍광들의 영상을 함께 놓았다. 무용수들의 장애를 거의 알아차리기 어렵다가, 고목의 뿌리들이 얽혀 있는 영상에서 무용수가 자신의 굳고 짧은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려 보여주면서 이미지를 병치시키는 장면에서 저절로 탄식이 나왔다.
서정춤세상의 〈봄, 따스한 바람으로 다가오는〉은 한국춤의 바탕에 청각장애인들의 수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품이었다. 수화동작들이 단순히 응용만 한 것인지 아니면 구체적인 대화를 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사실 무슨 내용인지 파악할 수 없다는(어느새 나도 모르게 자막이라도 있었더라면 바라게 되는) 답답함은 원래 그들의 몫이었을 것이다. 청각장애인들의 슬픔과 고통을 봄바람 같은 몸짓으로 날려 보내면서 역지사지도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었다.
9월 9일 오후 4시에는 ‘국내 장애인 무용수 솔로공연’이라는 타이틀로 아르코 소극장에서 네 명의 공연이 있었다. 이중 이광석을 제외한 세 명은 전날 공연의 무대에도 섰다. 강성국은 필자가 보지 못한 첫날 국내초청 소품작에 출연했는데 〈Keep Going〉이라는 제목으로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묵묵히 길을 가는 자신만의 투쟁을 그렸고, 〈봄, 따스한 바람으로 다가오는〉에 주역으로 출연했던 김영민은 살풀이를 추었다. 역시 전날 공연한 빛소리친구들의 멤버로서 국내 휠체어 무용의 선구자로 불리는 김용우는 〈回路... 돌아가는 길...On the returning path〉이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광석은 이제 그가 가진 장애를 논할 필요가 없을 만큼 어떤 선을 넘어 자유롭게 존재하는 듯 했다. 2014년의 〈쿰바카〉 이후 비교적 오랜만에 무대 위 모습을 보는 셈인데 여전히 잘 관리해 살아 움직이는 근육들, 객석을 홀리는 미묘한 표정연기까지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주었다. 장애인들이 다른 일반무용수나 안무가의 도움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오롯이 전달했던 이 소극장공연이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측면에서 아주 좋았는데 객석에 빈자리가 많았던 것은 안타까웠다.
이날 저녁 대극장 공연에서 안무가 홍혜전이 함께 작업한 춤추는 은평재활원의 〈가능한 춤〉은 개인적으로 만약에 춤에도 ‘바람직한’ 춤이 있다면 이런 형태이리라 싶을 정도로 좋았다. 동작은 여러 단계로 구성되어있어 결코 쉬운 안무는 아니었지만, 내면에서부터 흥을 서서히 끌어올리도록 그리고 움직이기 편한 방향으로 고려되었다. 진심으로 행복하게 들썩이는 몸들은 그들 특유의 둥글둥글한 선으로 귀여움을 자아냈고, 맑고 순수한 표정은 더없이 사랑스러워 객석의 호응도 높을 수밖에 없었다. 2014년부터 사라 헨드렌의 제안으로 장애인 표지에 handicapped 대신 accessible을 강조해서 쓰게 된 취지대로 이번 축제의 영문명도 정해진 것인데, 그 accessible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 〈가능한 춤〉이었다.
지우영의 댄스시어터샤하르는 사)디티에스행복들고나(지우영은 장애인예술인 공연기획, 복지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기업의 대표이기도 하다)와 함께 〈헬렌켈러-기적의 사람〉을 올렸다. 이 작품은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 반주에 헬렌 켈러의 회고 형식으로 극을 구성하여 청각장애 위인들의 삶을 거듭 강조한 셈이다. 하지만 주역을 돋보이게 하는 구조로 집중되어있는 발레극에서 결국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장애인들의 참여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소재도 참신함이 떨어졌지만 기존 발레극의 빤한 공식에 묻어간 작품은 감동을 자아내기에는 부족했다.
일본의 KAORUCO가 안무한 〈도깨비가 사랑한 숲〉은 자연을 지키려고 도깨비가 되어 인간에게 벌을 주는 젊은이의 이야기로, 장애인들은 꽃나무와 동물들, 자연의 정령으로 분(扮)했다. 일본 특유의 호들갑스럽고 떠들썩한 연기가 혼을 빼놓을 정도이긴 했지만, 장애인들이 무리 없이 맡을 수 있는 역할로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또 순수로 회귀하고자 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도 축제에 색다른 재미를 더했다.
폐막날인 9월 10일에는 해외초청작들이 집중적으로 소개되었다. 핀란드의 Minni Hirvonen이 안무한 〈Miss Catastrophe〉는 그녀가 플라스틱과 실리콘으로 만든 거대한 흰 드레스를 입고 도망가는 모습의 동영상으로 시작했다. 환경오염으로 인해 닥쳐올 지구의 불행한 미래를 경고하는 그녀의 캐릭터를 빛소리친구들과의 이번 공연에서 어떤 의도로 접목시켰는지는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 다만, 작품의 마지막에 PET물병을 끼운 전선을 몸에 감아 무대에서 퇴장하는 김용우의 모습에서 안무가가 어떤 영웅적인 이미지를 부여하려 한 것 아닌가 짐작했다.
스페인 안무가 Jordi Cortés의 〈Petit Cyclamen〉는 다리가 불편한 두 여성무용수의 강인함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휠체어무용수가 아닌 다른 한 사람이 왼쪽다리의 의족을 분리해 세워두면서부터 그들만의 아름다운 드라마가 시작된다. 두 사람이 한 몸이 되어 서로의 팔다리가 되어주는 단단한 우정, 결코 고난에 꺾이지 않겠다는 의지는 숙연한 감동을 불러일으켰고 기립박수 하는 관객도 있었다.
이어진 미국팀의 공연 역시 두 여성무용수가 출연한 작품이었다. Douglas Scott의 〈Tenement〉는 완벽한 몸매의 흑인무용수와 백인 휠체어무용수를 통해 차별과 소외를 경험하기엔 마찬가지인 그들의 연대를 이야기하려는 것 같았다.
폐막작으로는 트러스트무용단의 〈Come! Come!〉이 무대에 올랐다. 이미 15년 넘게 다양한 장애를 가진 이들을 단원으로 받아들이고 장애인무용교육 지원사업을 해온 김형희 단장이 이끄는 트러스트무용단은 이 작품에서 그리스 같은 이국의 마을잔치를 설정하였다. 원래 단원들에 룩스-빛 무용단이 합세해 결혼잔치에 모여든 한 마을의 남녀노소를 영화처럼 그린다. 더러 소소한 갈등과 멈춤도 있지만 떠들썩한 노래와 흥겨운 춤으로 한 가족이나 다름없이 어울리는 그들의 모습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을 허물면서 축제가 마무리되었다.
2016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 대극장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유튜브에서 감상할 수 있는데 참고로 스페인과 미국팀에 대한 소개가 바뀌었다(https://www.youtube.com/watch?v=52oxrzffD4g).
안은미컴퍼니의 〈안심땐스〉
한편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와는 별도로, 안은미컴퍼니는 시각장애인과의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올림픽공원 내 위치한 우리금융아트홀의 공연장상주단체로 협약을 맺으면서 첫 사업으로 〈안심땐쓰〉(9월 9-11일 우리금융아트홀, 평자 11일 관람)를 올린 것이다.
그동안 〈조상님께 바치는 땐쓰〉, 〈사심없는 땐쓰〉,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쓰〉 등의 공연으로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의 어울림, 그 짧지만 뜨거운 연애(?)를 공연으로 풀어놓곤 했던 안은미이다. 지난 프로젝트들을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들을 끌어안는 안은미식 노하우가 이번 공연에 이르러 완성된 형태를 갖춘 느낌이었다.
애국가와 특유의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시작된 공연은 올림픽공원이라는 환경과 맞물려 특별한 맥락이 더해진다. 엘리트체육 말고 모든 국민, 춤이라곤 접해본 적도 없던 시각장애인마저도 몸의 한계를 넘어볼 수 있는 그런 실험이 과연 이곳에서 가능할까?
한빛 맹학교를 통해 인연을 맺은 참가자 6명의 대부분은 가까운 물체를 희미하게 볼 수 있는 저시력 장애인인데, 바닥을 더듬는 흰지팡이를 떼고 대신 안은미컴퍼니 단원들과 사이좋게 짝을 이루어 놀이에 동참했다. 이전 땐쓰 시리즈에서는 전문무용수들이 대부분의 파트에서 활약하고 참가자는 분리가 되어 한 판 난장을 끝내고도 뭔가 모를 허전함을 남겼다면, 단원들과 장애인들이 한결같은 호흡으로 나란히 움직인 〈안심땐쓰〉는 의미상으로 큰 발전을 이뤄낸 셈이다.
패럴림픽 기간에 나흘 동안 연달아 펼쳐진 장애인 공연들을 보면서, 우리 장애인무용의 현주소와 지향점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적지 않은 해외단체까지 섭외하여 첫 축제의 한 상을 차려냈다는 점에서는 무척 고무적인 출발이라 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15분에서 20분을 넘지 않는 길이였다 하더라도, 룩스-빛 무용단이나 빛소리친구들, 강성국과 김영민은 다른 안무가의 두 가지의 공연을 소화해내야 하는 겹치기출연의 문제가 있었다(심지어 빛소리친구들의 김용우는 세 개의 무대에 서야 했다). 때문에 어쩌면 실제 장애인 무용인구 숫자에 비해 무리하게 프로그램을 구성한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되는 것이다.
안무가와 참가자들이 어떻게 인연을 맺고 작품을 만들게 되었는지, 또 어떻게 이 무용제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출연한 장애인무용수들 중에 직업적으로 혹은 취미로 활동하는 사람의 상황은 어떤지. 저간의 사정이 제대로 알려진 바 없기에 공연장을 찾는 관객의 입장에서도 다소 난감했다. 장애인이니까 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완성도를 따지지 않고 박수를 보내기엔, 이곳은 학예회가 아니라 세계 최초이자 유일이라고 홍보한 규모 있는 무용제이다. 온전히 그들만의 춤으로 세워내 저절로 공감대를 형성시킨 작품도 있었지만, 어떤 공연들은 심하게 말하면 장애인들도 노력하면 비장애인과 섞여 비슷하게 춤을 ‘따라할’ 수 있다는 정도에 그쳤다. 그것만도 대단하고 그 노력 자체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장애인의 수행능력을 확인하는 것보다 우리의 관계맺음을 돌아보고 그것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리우 패럴림픽 개막식에서 산업용다관절로봇 쿠카와 미국 장애인무용수 에이미 퍼디가 같이 삼바를 추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갈고리처럼 생긴 의족을 착용한 그녀의 모습은 최첨단로봇과 함께 있으니 장애를 넘어 전위적으로까지 보인다. 장애를 가진 신체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엎고 자유로움을 재정의하는 듯 했다.
안무가들이 춤을 추면서 맛본 자유를 장애인친구들도 누렸으면 해서 시작하게 된 협업이라면, 그리고 자유도 다 같은 자유가 아니라 질적인 수준의 확장이 일어날 수 있음을 생각해본다면 참여하는 안무가들끼리 축제의 상에 대한 고민과 연구, 토론이 먼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난 다음 작품준비를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전시나 토크 프로그램 등 무대에 올리는 작품 숫자를 줄이더라도 관객과 소통하는 경로를 다양하게 여는 것도 필요하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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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터뷰_ 은평재활원과 〈가능한 춤〉 공연한 안무가 홍혜전
“장애인도 춤을 통해 행복할 권리가 있다”
방희망 은평재활원의 전담예술가로 되어있던데 은평재활원과 작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요? 언제부터 맡으셨는지, 그리고 원래 관심이 있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홍혜전 은평재활원 형들과의 첫 만남은 2015년 서울댄스프로젝트 사업 중 춤바람 커뮤니티의 전담예술가로 조인하면서부터입니다. 올해로 은평재활원 친구들과 나는 서울댄스프로젝트 첫 회인 2013년부터 춤바람 커뮤니티에 4년째 참여중이고 그중 우리는 2년째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나는 평소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2010년부터 전통의 재해석에 관심을 두고 판소리를 컨템포러리화 하는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또한 교육적 측면에서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을 실천하고자 비전공 아동 대상 창의움직임 수업과 치매노인과 뇌졸중 노인 대상의 신체기능 회복을 위한 무용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2014년부터는 발달장애인의 자기표현력과 행복 추구를 위해 무용교육과 커뮤니티 댄스 활동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구요.
우리의 헌법에는 인권, 교육권, 노동권, 문화예술 향유권 등의 권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춤을 통해 자신을 표현할 권리가 있으며,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를 실현시키고자 나는 장애인과의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늘 그래왔듯이, 현 사회를 살아가는 예술가로서, 한 예술가의 움직임을 시작으로 여러 사람들과 함께 뜻을 모아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확장할 예정입니다.
이번 공연에서 안무에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국내팀 중에선 은평재활원의 공연을 가장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장애인들의 참여도, 춤의 내용, 객석과의 호흡 등에서 특히요.
이번 작업의 목표는 지적장애를 가진 그들의 자유로운, 그리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가능하도록 제목 그대로 〈가능한 춤〉으로의 도전이었습니다.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는지 등 어떠한 것으로부터의 제약을 받지 않는 그들의 가능한 춤 말입니다. 나와 음악감독인 료는 은평재활원 형들이 춤을 추며 행복해하길 바랬지요. 춤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고, 세상으로부터 좀 더 당당해 지길--- . 아직까지 우리 형들은 동작을 외워 움직이기가 쉽진 않습니다. 이것이 다음 단계의 우리의 도전이 될진 모르겠지만, 과연 동작을 외워 진행하는 작업이 자연스러운 춤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번 작업에 나와 료는 그들의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춤을 위해 다양한 동기를 부여하고, 즉흥적 움직임과 음악을 통해 함께 발전된 도전이었습니다.
처음엔 다른 참여 무용단과 마찬가지로 비장애무용수와 장애무용수가 함께 진행하는 작업을 고민한 적이 있었습니다. 비장애, 장애무용수와 함께 하는 작업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하고자 하는 뜻에서의 작업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애인무용제인 만큼 장애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작업을 통해 장애인무용의 활성화를 위한 모델을 제시하고 싶은 생각에서 은평재활원 형들과 함께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업이 진행되었는지요?
2015년에 처음 만난 은평재활원 형들은 춤추는 것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k-pop과 아이돌 춤만을 추길 원했습니다. 나는 자신의 생각을 움직임으로 표현할 줄 아는 형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요. 그래서 즉흥춤이 가능하도록 목표를 설정해 수업을 진행했고, 지금 생각해보면 뜻대로 진행되지 않아 참 많이도 울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지적장애인이다보니 소통의 어려움을 얘기 안할 수가 없습니다. k-pop과 아이돌 춤에서 자신의 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춤을 추라는 우리의 언어가 형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형들의 언어가 익숙하지 않았던 우리 역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그들의 몸에서 자유스러운, 그리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이끌어내기가 쉽진 않았습니다.
올해 본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다시 연습을 시작하면서 형들이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제일 먼저 작년 작업에 이어 음악의 무게와 질감에 따라 스스로 가능한 움직임 안에서 선택하여 표현하도록 즉흥춤 방법을 유도하고 시도했습니다. 거의 6월과 7월은 자유롭게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다양한 음악과 상황 등을 통해 동기를 부여하려고 노력했지요. 무용수들이 지적장애인이다보니 일반인에 비해 동기를 부여하고 움직임을 뽑아내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불가능하진 않았습니다. 게다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았고, 특히 은평재활원의 형들은 신체적 구조가 움직이는데 편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키가 작고, 다리가 휘고, 평발에 발가락 기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선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끌어내는데도 중요했지만 지속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재활이 선행되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직 전문무용수로 갈 길은 멀지요.
이번 축제에 참가하는 다른 안무가들과는 축제 전에 교류가 있었나요?
올 초 트러스트무용단의 김형희선생님께서 장애인 국제무용행사를 처음으로 개최하게 되었는데, 은평재활원 분들과 춤작업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니 혹시 참여할 의사가 없느냐는 전화 한통으로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참여 안무가들 중에는 평소에 안면이 있던 분도 계셨고, 처음 뵙는 분도 계셨습니다. 장애인과 함께 작업을 하고 계시는 안무가분들이 계시는지 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간 서로 소통할 시·공간적 공간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축제가 생긴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번 축제에서 유일하게 장애인들만으로 구성된 공연을 했습니다. 그것도 지적장애를 가진... 축제를 진행하는 기획단과 극장스태프들 모두 가장 걱정했던 단체였다고 들었습니다. 이 점에 대해 감히, 춤의 힘을 알고 있다면 걱정할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다만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공연을 앞두고 긴장하는 모습은 인지상정일 뿐. 여하튼 올해 〈가능한 춤〉은 지적장애를 가진 우리 형들의 인간의 자유로운 몸짓과 무용수로의 발전 가능성을 알리는 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다른 참가 단체들을 생각해보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공연을 만들고 싶었던 안무가분도 계셨고, 장애인과의 첫 작업으로 걱정스런 마음에 비장애 전문무용수와 함께 작업한 분도 계셨습니다. 무엇이 옳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안무가가 설정한 작품의 주제와 표현방법에 의해 장애무용수만으로 작업할 수도 있고, 장애, 비장애 무용수와 함께 작업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앞으로 이 축제가 어떻게 진화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행사를 계기로 장애인무용수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함께 살아갈 의무가 있습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그 다른 상태에서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공유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만났을 때 아직까지 어색해하고 심지어 피하기까지 합니다. 아마도 싫어서가 아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번 축제를 계기로 장애인이 활동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으면 좋겠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다양한 워크숍이나 행사가 더 많아지고,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