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방희망 안녕하십니까. 서울세계무용축제(이하 시댄스)가 끝나고 처음 뵙습니다. 올해 시댄스는 19회를 맞았습니다. 내년에 20주년 기념으로 인터뷰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전에 먼저 결산하는 의미로 이런 자리를 갖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인터뷰를 요청하였습니다. 어쩌면 ‘건강한 춤문화 정립을 위한 정론지’를 표방하는 저희 <춤웹진>이 한국춤비평가협회 공동대표를 맡고 계신 이종호 예술감독님께, 죄송하지만 마치 역차별처럼, 이런 발언의 기회를 드리는 것을 저어한 측면도 있는 것 같아 말입니다. 들어오면서 보니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이 꽤 여러 명입니다. 평소에도 이렇게 운영되고 있나요?
이종호 원래는 저 포함 상근인원이 넷인데 축제가 가을이니까 여름부터 인턴을 뽑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다 합쳐서 열 명 정도 되구요, 또 사무실 살림을 위해서는 이런저런 외부 일들을 해야 합니다. 지금은 외부 문화행사 하나를 의뢰받아서 준비하느라 임시인력이 더 많아진 거죠.
그렇군요. 올해 시댄스는 공연장을 방문할 때마다 자원봉사자들도 북적북적거리고 예년에 비해 한층 활기차진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예산은 좀 늘어난 상황이었나요?
문체부와 서울시에서 지원금을 받는데, 문체부는 문화예술위원회의 심사를 통해 받도록 제도가 바뀌었습니다. 금년 심사에서 좀 올랐어요. 서울시 것은 서울문화재단을 통해 심사를 받도록 되어있는데 그쪽도 좀 올랐구요. 이번이 역대 가장 예산이 많은 해였습니다.
그러면 예산이 늘어난 만큼 불러오는 공연 단체의 급이 올라간다고 볼 수 있을까요?
프로그램의 수준이나 규모가 달라진다기보다는 적자폭이 다소 줄어든다고 봐야겠지요. 예산이 약간 늘어났다고 해서 갑자기 거액이 소요되는 단체를 불러올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니까.
그 말씀은 상당히 중요하면서 가슴 아픈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첫 마디부터 돈 얘기를 하게 되는 게 좀 쑥스럽지만, 올해까지 19년 동안 적자를 면한 적이 딱 두 번입니다. 적자는 제가 개인적으로 다 메꿔야 하는데, 사실 그 때문에 행사 규모에 대해 늘 생각하게 되지요. 올해까지만 이렇게 하고 내년부턴 무슨 수를 내자, 아니면 행사 규모를 절반으로 줄이자. 해마다 반복하는 생각이지만, 예산을 더 얻어올 능력은 없고, 행사 규모를 줄이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어서, 관성의 법칙처럼 계속 비슷한 규모로 가는 거죠. 일 욕심을 버리는 게 내게는 거의 불가능하더군요. 한 번도 공개적으로 얘기해본 적은 없지만, 지금까지 누적 적자액이 20억원 안팎입니다.
이 부분은 내년이 20년째이기 때문에 저도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합니다. 정부지원금이나 기업협찬을 더 받을 능력이 없다면 20회까지만 지금 규모로 하고 21년째부터는 성격이나 규모를 바꿔야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이건 꼭 예산문제 뿐만 아니라 제가 축제를 시작했을 때에 비해 환경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10주년, 20주년처럼 딱 떨어지는 숫자에는 쓸데없이 집착하잖아요?(웃음) 20년까지는 크고 쎈 거, 이렇게 가다가 21년차부터는 규모를 줄이는 대신 개성을 더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겠다고 몇 년 전부터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면서 시댄스 프로그램북 뒤에 실려 있는, 제 1회 시댄스를 준비하면서 쓰신 글을 다시 읽어보고 새삼 감동받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글에서 목표로 삼았던 것 중에 예를 들면 무용감상을 사회운동 차원으로 확산시키려는 노력, 그것이 예전 ‘춤추는 도시’ 프로그램, 이번 디큐브광장에서의 야외공연 그리고 만 36개월 이상 관람 가능한 어린이용 공연들을 유치하는 것 등으로 지속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특히 만 36개월 이상 관람 가능한 공연들-이번에는 〈수궁가〉, 〈고래, 거인들의 이야기〉가 있었지요-은 시댄스만이 배려하고, 구성할 수 있는 특별한 프로그램이라 생각합니다. 공연장에서 페이스페인팅 서비스를 했던 것도 마치 야외 축제장을 그대로 실내로 들여온 것처럼 독특했습니다.
무용문화의 확산이라는 건 사실 출범 때부터의 이념입니다. 우리 무용계 행사들이 만날 ‘집안잔치’에 불과하단 말을 지긋지긋하게 들어왔기에 시댄스만은 그러지 말자, 무용과 학생들 단체동원 부탁하지 말자, 우리가 관객 개발하자, 기왕이면 무용에 관심 없는 일반관객을 끌어들이자, 그 얘기 다하자면 좀 긴데, 하여튼 올해는 기업체 직원들을 관람객으로 끌어들이는 새로운 시도를 펼쳤고, 상당한 희망을 보았습니다. 전문공연장이 아닌 장소에서의 공연(춤추는 도시)이나 커뮤니티 댄스 프로그램, 어린이-청소년용 공연 등이 모두 그런 발상에서 비롯된 겁니다.
관객을 배려한 공연장 서비스는 대부분 실무팀들에게서 나온 겁니다. 나보다 훨씬 젊은 그들 나이대의 눈높이로 생각해낸 것이지 내가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니었어요. 이번에 유독 현장 분위기가 좋았다면 그건 좋은 작품에 대한 관객반응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세심하게 분위기를 띄우는 아이디어의 90% 이상이 실무 스태프들에게서 나온 겁니다. 젊은 세대이고 트렌드를 잘 알기 때문이지요.
그렇다 해도 예술감독님이 적절하게 판을 풀어주셨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 있었지 않을까요? 지휘하는 분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은 어디서나 마찬가지일 듯합니다.
작품 얘기로 들어가면, 개막작으로 초청된 프렐조카주 발레단이 갈라 형태로 공연한 것이 의외였습니다. 이것은 프렐조카주 측의 아이디어였는지, 프렐조카주는 예전에도 초청하셨던 적이 있는데 이번 초청은 어떤 방향으로 기획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올해 프랑스 단체들을 많이 부른 건 정부의 한불교류의 해 취지에 부응하자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 같은 민간축제와 정부 프로젝트는 서로 관계가 없어요. 하지만 민간축제로서는 좋은 점이 있습니다. 예년에 비해 지원금을 받기가 수월하다는 겁니다. 특히 정부지원금에 비해 몇 배나 큰 규모로 꾸려가는 시댄스의 경우 이런 과외 지원금이 제법 큰 도움이 되지요.
다른 하나는 특정 지역이나 나라에 대한 시댄스의 관심입니다. 예전부터 시댄스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동유럽 포커스라든가 노르딕 포커스, 덴마크 포커스 등 국내 무용인들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던 지역의 무용작품들을 집중 소개해왔어요. 세계문화의 다양성을 좀 느껴보시라는 취지에서. 올해 프랑스 포커스와 스페인 포커스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보시면 됩니다. 난 기본적으로 아무리 현대무용이 개인성 혹은 개별성(individuality)의 표현이라 할지라도 어쨌든 거기에는 나라, 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있다고 생각해요. 전통예술만큼 뚜렷이 드러나진 않겠지만요. 예전에 시댄스와 별도로 ‘세계음악과 만나는 우리 춤’이라는 행사를 10년 가까이 했는데 가령 ‘스페인 음악과 만나는 우리 춤’ 하면 한국 안무가들이 스페인 음악만 사용해서 안무하는 거죠. 다음해에는 아프리카 음악, 동유럽 음악 하는 식으로 진행했었죠.
포커스 프로그램의 장점은 그 나라와 관계가 좋아진다는 겁니다. 한국 작품을 내보내거나 공동제작, 협업을 하는 경우에도 순조로워집니다. 예전에는 어떻게 하면 우리 것을 내보내나 하면서 다소 조급하게 굴었는데, 이젠 나도 달라졌어요. 내가 먼저 초대하고 내가 먼저 주자, 그러면 언젠가 그들도 열 거라는 거죠. 지금 시댄스에서는 1년에 몇 차례, 많게는 열 번까지도 우리 무용을 외국에 내보내는데, 이게 다 그런 네트워킹의 소산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프렐조카주 얘기로 돌아오면, 사실 프렐조카주가 아니어도 큰 상관은 없었어요. 프랑스에 좋은 단체가 많이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전부터 얘기가 오가던 참이었고, 프로그래밍의 전략이랄까, 프렐조카주나 카롤린 칼송 같은 이른바 ‘빅 네임’ 두 단체, 토메오 베르제스나 〈(ㅁ)ㅣ모사, 스무 가지 모습 또는 파리는 저드슨 교회에서 불타고 있다〉를 공연한 팀처럼 한국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력 있고 개성 있는 중견 두 단체, 이은영과 얀 뢰뢰처럼 한불 상호 공동작업의 의미로 두 단체, 그렇게 프랑스 포커스가 여섯이고, 안성수와 리케이댄스(이경은)도 처음부터 한불교류를 염두에 두고 준비되었던 것이라 총 8편 정도가 한불교류 프로그램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행사라는 것은 일반 관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그런 면에서 프렐조카주나 카롤린 칼송을 초청한 데 대해 일각에서는 ‘새롭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는데, 그건 전문가를 자처하는 극히 일부의 시각이라고 봅니다. 외국에 자주 나가 트렌디한 작품들을 봐온 일부 전문가들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축제란 전문가들만을 위한 게 아니니까요.
저는 오히려 그래서 이번 프로그래밍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분명 한국의 안무가들이 작품을 잘 만들어내고 나름의 개성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어떤 트렌드를 따라간다는 느낌을 받곤 하거든요. 누가 뭐라 해도 자신만의 세계를 확고하게 구축한 사람들의 다채로운 작품이 프랑스 포커스에 들어가 있어 이런 다양성이 시댄스의 장점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초반부터 프렐조카주나 카롤린 칼송 등으로 그런 분위기를 짱짱하게 잡아주었던 것 같습니다. 프렐조카주의 경우, 갈라를 구성하면서 그 이음매를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연출한 능력이라든가 특히 이번 공연은 제가 지금까지 CJ토월극장에서 관람한 공연들 중 가장 음향이 뛰어났다고 기억되는데, 섬세한 뉘앙스까지 전달되게끔 자기 작품에 대한 아주 강한 열정과 애착을 갖고 컨트롤하는 예술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프렐조카주는 완벽주의자예요. 축제 개막 불과 열흘 전에 연락이 왔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프로그램에 앱스트랙트 계열의 작품이 빠진 것 같다면서 세 편을 더 넣자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대가는 지금까지 쌓아온 명성에 그냥 기대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에게 한국 공연이 유독 더 중요한 것도 아니었을 테고 당시 호주 공연, 프랑스에서는 신작 〈Fresque〉 초연 등 무지무지 바쁜 상황이었는데 그래도 최종단계에서 점검해보고 더 넣자고 한 거지요. 그 때문에 무용수들이 불만을 토로했다지만 그래도 강행군. 내가 프랑스측에 공연 제목을 <갈라 프렐조카주>로 제안했고, 그도 동의한 이상 글자 그대로 프렐조카주의 모든 것을 압축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죠.
〈백설공주〉에서 유명한 말러 5번을 쓴 왕자와의 파드되가 나올 줄 알았는데, 예상을 비껴 독사과를 먹이는 장면이 나왔지요. 1부에서 갈라 프로그램들과 2부에 〈수태고지〉를 보면서, 동화, 소설이나 성경 등에서 아름답게 치장하느라 스쳐지나갔던 삶의 비극적이고 폭력적인 측면들까지도 섬세히 다루어 보여주는, 프렐조카주 식의 혁신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우리 측과 상의를 많이 한 부분입니다. 내가 너무 러브스토리 위주로 가는 것은 좋지 않겠다고 했어요.
카롤린 칼송의 경우도 오히려 이제는 잊혀져버린 ‘예술가의 초상’을 상기시키는, 아주 고전다운 고전을 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대마다 무용수가 한 명씩 섰을 뿐이지만 꽉 차서 비어보이지 않았어요. 방금 말씀하신 프렐조카주의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카롤린 칼송의 경우도 그러한데, 건강상의 이유로 내한하지 못하게 되면서도 아주 정성을 다해 관객에게 사과하면서 진심을 전달하려고 하는 그런 예술가의 모습은 처음 본 것 같습니다. 손편지 뿐만 아니라 영상도 보내왔지요. 카롤린 칼송 공연에 출연한 한국인 무용수 원원명에 대해 얘기해볼까 합니다. 따로 섭외를 하신 게 아니라 그가 원래 카롤린 칼송과 작업을 하던 터라 오게 된 것이지요?
원래 제가 원했던 작품은 카롤린 칼송이 직접 안무 출연하는 〈로스코와 나의 대화〉라는 한 시간짜리 솔로였습니다. 하지만 의사가 74세 할머니가 한 시간 동안 춤을 추는 것도, 열 시간 넘는 비행을 하는 것도 너무 위험하다고 말렸다고 해서, 저는 아예 포기하려고 했어요. 그러나 카롤린 칼송이 오랜만에 한국에서 꼭 공연하고 싶다고 원했고, 노대가의 열정에 마음이 약해져서 레퍼토리를 새로 짰지요.
실은 제가 70년대 말 카롤린 칼송의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보고 매료됐었고, 2~3일 뒤 당시 회현동에 있던 알리앙스 프랑세즈엘 갔었는데 마침 그녀의 공연 포스터가 아직도 붙어 있길래 몰래 떼 왔던 추억이 있지요(웃음). 10년 전 쯤 짐정리를 하다 보니 그 흑백 포스터가 약간 변색이 된 채로 있더군요. 그 생각도 나고, 지금 아니면 못 오겠다 싶어서 레퍼토리를 바꾸는 것은 맘에 안 들었지만 초청하기로 결정한 거지요.
원원명은 워낙 춤을 잘 추고 카롤린 칼송 뿐만 아니라 마리 슈이나르 등 다른 안무가와도 작업을 많이 했어요. 카롤린 칼송이 운영하는 아뜰리에 드 파리에서 두 사람이 우연히 처음 만났고, 거기서 바로 캐스팅되어 작업을 한 걸로 알고 있어요. 이번에 솔로 세 편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면서 하나는 한국 무용수 출연으로 하자, 그래서 예전에 원원명을 위해 만든 〈불타는(Burning)〉을 프로그램에 넣은 것입니다.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고 하셨지만, 원원명의 경우도 그렇고 누나 무용단의 안무가 조영순, 고무신 무용단의 재불안무가 이은영 등 유럽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지만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한국인 무용가들을 역수입하여 소개한 것도 이번 19회 시댄스의 특징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듯합니다.
저는 해외에 있는 동포 창작가들을 한 자리에 모으고 싶은 생각이 늘 있어요. 허용순, 허성임이나 장수미, 김윤정, 전인정 등은 비교적 자주 소개되는 편이지만 나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장광열 대표가 진행하는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처럼 발레단에 입단한 댄서들을 위주로 하는 기획공연도 있지만, 나로서는 창작가 위주로 해봤으면 하는 겁니다. 여건상 한 자리에 다 모을 수는 없으니 기회 될 때마다 한 사람씩 부르는 정도가 되는데, 재불 안무가 이은영씨 경우는 마침 한불 상호교류의 해 프로그램에도 들어가고 외국에 사는 한국인의 정서를 바탕으로 나름대로 견고하게 만든 노력이 돋보였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누나 무용단의 조영순씨는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현지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안무가예요. 내년쯤 초청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9월말에 중국 공연이 잡혔다고 해서 오는 김에 이번에 넣었습니다. 조영순씨는 원래 전미례 재즈발레단에서 활동했던 특이한 이력을 지니고 있어요. 스위스인 부군이 아주 훌륭한 분이에요. 로잔 예술학교 도서관장인데, 그러니 당연히 예술관련 서적을 많이 읽었고 탁월한 드라마투르그 역할을 한답니다. 조영순씨가 작품 아이디어를 얘기하면 그 자리에서 책을 꺼내주면서 “당신이 말하는 게 여기 있어” 한답니다. 철학적 배경을 제시하고 도움 될만한 자료를 갖다 안긴다고 해요. 결혼 잘 하셨네요 했지요(웃음).
조영순씨는 스위스의 불어권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데 나는 실제공연과 비디오를 많이 봤어요. 작품들이 특이하고 현지에서도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안무가입니다. 그만하면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할만한 동포 ‘누나’다(웃음) 해서 초청하게 된 거지요. 이번 두 작품을 어떻게 보셨는지요?
〈수궁가〉는 보통 스토리텔링을 기대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단발적인 의성어 위주로 전개하니까 툭툭 감각을 건드리는 느낌, 거기에 다양한 질감의 무대 장치들이 갖는 유선형, 인체공학적 곡선들이 친숙하게 다가왔습니다. 마치 유아들이 가지고 노는 교구들, 장난감 속에 놓인 것처럼 독특한 경험이었습니다. 물론 스토리텔링을 기대하고 온 관객들에겐 실망스러운 부분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오히려 그래서 36개월 이상 관람가가 되고, 유아들 눈높이에 맞추어 감각적으로 먼저 경험하게 하고, 다 보고난 다음 원래 〈수궁가〉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유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탁 탁〉은 쌓은 다음 무너뜨린다는 큰 그림이 결국 예상되는 방향으로 전개되긴 했지만, 역시 방 안에 형형색색의 장난감을 늘어놓고 놀고 싶은 어린 시절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 같아 공감되는 바가 있었어요.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신선한 공연 양식이었습니다.
〈수궁가〉는 스위스에서 봤는데 시작 전에 줄거리를 불어로 적은 종이를 나눠줍디다. 현대무용과 요들송이 나오긴 하지만 관객들은 ‘수궁가’ 이야기를 모르니까요.
이제는 디큐브광장에서 열렸던 야외공연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많은 장소 중 그곳으로 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일단 유동인구가 많아 관객을 자연스럽게 유치할 수 있고, 확 벌려진 느낌이 아니라서 분위기도 좋았습니다. 객석도 상대적으로 편하게 만들어져 있구요. 내년에도 그곳에서 공연할 생각인데 다만 요즘은 날씨가 하도 변덕스러우니까 비가 올 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곳에서 공연한 팀들은 만족했는지 궁금합니다.
네, 스페인 세 팀에다 얀 뢰뢰(프랑스)가 한예종 학생들과 작업한 것까지 네 팀이었죠. 관객들도 매우 좋아했고, 이번 스페인 포커스의 단장 격인 후안 데 토레스(〈고래, 거인들의 이야기〉 안무자)가 마드리드 주변에서 여러 축제를 하고 있는데 내년 여름에 얀 뢰뢰-한예종 작품을 초대하겠다고도 했습니다. 그동안 시댄스는 <춤추는 도시>(옥외공연)를 하면서 합정동 메세나폴리스몰, 이태원, 대학로 등 안 가본 데가 없는데 디큐브광장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앞으로 종종 애용해볼까 하는데, 다른 무용가들도 이번 공연을 보고나서는 자기들도 거기서 하고 싶다고들 하더군요.
‘후즈 넥스트’가 이번에는 동아시아무용플랫폼 한국대표 선발공연으로 열렸습니다. 이 동아시아무용플랫폼은 무엇인지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선발된 결과도 궁금하네요.
원래 ‘후즈 넥스트’는 2014년부터 서울공연예술마켓(PAMS) 기간에 맞춰 외국 프로그래머, 큐레이터들에게 한국 작품을 많이 소개해 해외진출 기회를 만들어주자고 시작한 건데 이번에는 동아시아무용플랫폼(EADP) 예선전의 성격이 보태진 겁니다. 예선전의 두 꼭지 말고도 전미숙, 안성수, 이경은 등 기성/중견들도 후즈 넥스트라는 이름으로 묶었지만 어쨌든 큰 목표는 국제무대 진출입니다. 이경은은 내년 에딘버러, 전미숙 안성수의 작품도 몇 군데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EADP 예선전에 관해서만 얘기하자면, 내년부터 한·중·일 3국의 무용을 한 자리에 모아 소개하는 동아시아무용플랫폼(EADP)이 출범해요. 2017년 11월 중국 광동무용축제 기간에 제1회가 열릴 예정이고 2018년엔 한국과 일본 가운데 어디서 할지 아직 정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일본과 중국은 제1회 EADP에 내보낼 작품을 공모를 하지 않고 그냥 뽑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첫 회부터 공모로 가자 싶어 이번에 후즈 넥스트를 거기 내보낼 팀을 뽑는 자리로 겸하게 한 것이지요. 체코, 독일, 러시아, 중국 등 외국 프로그래머/디렉터들에게 심사를 맡겼는데, 이번엔 준비기간이 짧아서인지 심사위원들이 뽑은 작품이 전체 아홉 팀 가운데 셋 밖에 없었습니다. 개최국은 공연시간이 4시간, 나머지 두 나라는 각각 2시간이 할당되는데, 이번에 선정한 세 작품만 가지고는 부족해서 추가로 한두 팀을 더 고를 예정입니다.
12월 초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아이스핫(ICEHOT. 북유럽 5개국의 격년제 댄스플랫폼)에서 EADP의 출범을 알리는 특별 세션이 있을 예정입니다. EADP의 출범에는 아이스핫 동료들의 권유와 자극도 상당 부분 작용을 했기 때문에 기왕이면 거기서 첫 홍보를 하자, 그렇게 된 거죠. 실제로 앞으로 북유럽은 물론 유럽 전반과 동아시아 3국간 무용교류가 매우 활발해질 겁니다. 상호초청은 물론이고 레지던시, 협업 등 다양한 형태로 교류가 확산될 거예요. 이미 폴란드 자비로바냐 안무대회를 비롯한 몇몇 축제와 경연대회 감독들은 EADP 한국 예선에 직접 와서 좋은 작품이 있으면 초청하겠다고 하네요. 아시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서양의 프로그래머들에게는 제법 유용한 채널이 될 겁니다.
북유럽과 연결되는 것도 참신하지만 ‘아이스핫’이라는 명칭도 재미있습니다.
그게 북유럽이라 추우니까 ‘아이스’지만 열정만큼은 뜨겁다 해서 ‘아이스핫’이라 붙였다고 해요(웃음). 여담이지만, EDPA도 사실 그쪽에서 계속 밀어붙여서 만들게 된 측면이 있습니다. 우린들 만들고 싶은 생각이 왜 없었겠어요. 그러나 아시아간 협력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각국의 무용수준, 경제력, 지원제도 등이 다 제각각이니까요. 그런데 엉뚱하게 북유럽 사람들이 우리더러 왜 안 만드느냐 하고, 우린 당신들이 왜 그걸 신경쓰냐고 그랬는데, 나중에야 그래야 서로 교류할 것 아니냐고 속내를 보여주더군요.
핀에어(핀란드 항공사) 아시죠? 다른 항공사들보다 요금이 저렴해서 많이들 이용하죠. 난 그게 핀란드의 전략이라고 봅니다. 싱가포르가 아시아와 유럽의 중개를 표방했듯이 핀란드는 동아시아와 유럽의 중간역할을 하겠다는 거지요. 핀란드의 한 문화기업은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중국의 극장들을 상대로 서양 공연프로그램 공급사업을 하고 있어요. 중국은 지금 돈도 많고 덩치도 크지만 솔직히 서양을 비롯한 외국 공연물들에 대한 정보는 많지 못해요. 작품을 보는 안목도 아직 높은 수준이라 말하기 어렵구요. 그걸 이 핀란드 기업이 노린 거죠. 나도 똑같은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진 못했는데, 핀란드 사람들이 먼저 했어요.
EADP도 핀란드를 중심으로 한 아이스핫 동료들이 유럽과 협력하기에 비교적 수월한 동아시아 3국부터 플랫폼을 만들라고 자극을 주면서, 이런저런 국제행사에서 만날 때마다 그들이 우리에게 만나자, 회의하자 하면서 동아시아무용플랫폼을 만들어보라고 권했던 겁니다.
아직 우리 무용가들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지만, 여기에 뽑히면 중국과 일본에서 공연하는 건 물론이고 향후 유럽과의 교류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겁니다. 일단 이번 심사에서 뽑힌 세 팀은 정철인, 최영현, 김보라이지만 앞서 얘기한대로 두세 명을 더 선정할 여유가 있기 때문에 이번에 응모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도 좋은 작품을 뽑을 생각입니다. 아울러 신진 위주로 갈지, 여러 연령대를 섞을지도 생각할 문제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3국의 입장이 조금씩 달라요.
제가 관람하지 못한 공연이지만 상당히 궁금했던 게 〈(ㅁ)ㅣ모사, 스무 가지 모습 또는 파리는 저드슨 교회에서 불타고 있다(M)〉인데요, 현장분위기나 관객반응이 어땠나요?
보다가 중간에 나가는 사람이 많을 걸 각오했는데 의외로 객석이 밀도 높게 집중하면서 나중엔 기립박수까지 나왔어요. 동성애 코드가 들어 있다 해서 관심을 받았지만 꼭 성적인 것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 여러 측면에서 소수자 문제, 문화적 차이를 느끼게끔 춤과 노래, 연기가 다양하게 어울렸어요. 출연자들이 무대와 객석 사이를 너무 자주 들락거려서 정신없기도 했지만 반응이 매우 좋았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일종의 연작 가운데 하나인데, 그걸 모조리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주안무자인 트라잘 하렐의 발상이 신선합니다.
토머스 눈 무용단의 〈메데아〉 공연 때 무대에 나와 시댄스 역사상 처음으로 마이크 잡는다면서 내년에도 스페인 특집을 하기로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017년은 한-영 수교 130주년이라 하는데 영국도 포함되어 있는지, 그 외 예정된 나라의 작품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번 스페인 특집은 정부행사가 아니라서 프랑스 포커스만큼 관심을 받지 못했고 또 다섯 팀 중에 야외공연이 세 팀이나 되는 등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지만, 작품성으로 보면 다섯 작품 모두가 균질하게 좋았습니다. 우리의 문화예술위원회와 비슷한 스페인의 ACE(Accion Cultural Española) 담당자가 그전부터 스페인 특집을 해달라고 부탁했었는데 제가 이번에는 후안 데 토레스와 일한다고 했더니 그럼 내년에 다시 하자는 겁니다. 한 나라 특집을 2년 연속하기가 좀 뭣하기도 하지만 스페인 현대무용은 충분히 그럴 가치도 있고, 그래서 내년에는 영국특집과 스페인특집을 할 겁니다. 체코, 이탈리아, 포르투갈, 멕시코 등 몇 나라가 그 이후로 협의중이구요.
영국은 사실 대륙 유럽에 비해 몇 개의 빅 네임을 제외하면 좀 약하지요. 시댄스에서는 과거 아크람 칸, 웨인 맥그리거, 러셀 말리펀트, 쇼바나 제야싱, 쇼반 데이비스 등 다섯 ‘빅 네임‘을 5년 연속 초청했었어요. 그런데 그 다음에 브리티시 카운슬에서 자기네 예술가들에게 지원하던 항공료를 끊은 거에요. 그래서 이후 지금까지 부를 수가 없었죠. 내년에는 그동안의 공백도 보충할 겸 영국 무용을 몇 단체 불러보려고 합니다. 로열 발레나 잉글리시 내셔널 발레 등 대형 발레단들이 컨템포러리 쪽으로 극적인 방향전환을 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국내 관객들에게 소개할 만하다고 봅니다. 잉글리시 내셔널 발레는 아크람 칸을 초빙해서 현대판 〈지젤〉을 만드는 등 아주 적극적이구요, 로열 발레도 웨인 맥그리거를 상주 안무가로 발탁하는 등 체질 바꾸기에 열심입니다. 하기야 모든 대형 발레단들이 일대 변신을 통한 ’현대화’를 꾀하고 있는 판에 이들만 가만있을 수는 없었겠지요. 두 단체 모두 시댄스의 재정능력으로는 사실상 초청 불가이지만, 어떻게든 하나만이라도 소개하고 싶습니다. 거기에 젊은 안무가들 몇 명을 합치고, 한영 합작을 추가해서 영국 포커스를 만들어보려구요.
관객 반응은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 시댄스에서 프랑스에 유학가서 마임을 전공한 친구와 〈쪼그라드는 신〉을 봤는데, 둘이서는 상당히 올드 패션드 작품이라고 봤는데 객석 반응은 예상외로 너무나 좋은 거에요.
맞아요. 그건 정말 그래요. 프로그래밍의 비밀을 맞추기란 너무 힘든 문제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프렐조카주나 카롤린 칼송을 불러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비판하는 사람이 있지만 일반 관객은 그 이름만으로도 열광하는 걸요. 한국의 일부 무용가들(주로 외국을 드나들면서 최신 작품 좀 봤다는 사람들)은 프로그램에서 그 두 이름만 보고는 올드 패션이다 뭐다 하면서 뒤에 나오는 다른 이름들은 아예 보지도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피나 바우쉬도 무조건 퇴물이지요. 게다가 자기가 모르는 이름이 나오면 어떤 단체인지 궁금해하는 게 아니라 실력 없는 단체를 불러왔다고 비난합니다. 참 기가 막힙니다. 일부 무용가들, 평론가들, 기획자들의 이런 무책임한 태도가 공연계 전반을 오도하고 있어요. 모든 축제는 그 나름의 필요와 철학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짭니다. 물론 아무 생각없이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축제들도 많지만요. 우리 공연계는 트렌디한 것, 새롭고 실험적인 것, 다원예술, 공동제작, 레지던시, 뭐 이런 것들과 관계가 있어야만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정말 이상한 풍조가 있어요.
한국의 현대무용들이 요즘 너무나 개념 위주의 추상적 표현들로 어렵게 가고 있어서 관람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지치고 내가 너무 보수적인 관객이라 그런 걸까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기교를 강조하려고 해서 그런지 과하게 관절을 비틀고, 그런 데서 모두 의미를 찾아내려고 애쓰는데 막상 남는 것은 없으면 허탈하고. 이런 상황에서 아기자기하고 풍성한 질감을 지닌 무대 세트, 섬세한 감정 표현, 과잉되지 않고 감정의 서사에 필요한 만큼만 움직이는 자연스러운 몸짓 등을 가진 외국의 작품들을 보면 오히려 이게 신선해보일 정도거든요.
고전적, 예술의 향기, 본질과 속성, 이런 얘기하면 노인네 취급 받기 십상이지요. 자주 느끼는 터이지만, 우리 공연계는 구상화도 그려보지 않고 추상화부터 손대는 화가들이 설치고 다니는 꼴입니다.
보통 우리는 전통춤은 나이 들어서도 추지만 발레나 현대무용은 나이 들어서는 추기 어렵다고 구분짓곤 하는데, 카롤린 칼송이나 마르 고메스를 보면 자기 나이대에 맞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풀어가고 있거든요. 저는 그런 면에서 우리가 가진 생각 또한 편견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올해 ‘힙합의 진화’나 전통춤 영역을 다루던 프로그램들이 빠졌는데 이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요?
과거엔 꼬박꼬박 했는데 요즘은 여력이 있으면 한다는 정도입니다. ‘힙합의 진화’의 경우를 얘기하자면, 우리나라 힙합 댄서들이 워낙 출중해서 국제대회를 휩쓸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그냥 ‘춤기술’ 뿐이었지요. 이른바 예술무용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어요. 외국에선 이미 힙합과 현대무용의 만남이 시도되고 있었는데 특히 프랑스가 눈에 띄더군요. 그래서 우리도 배울 필요가 있다 싶어서 ‘힙합의 진화’를 기획하게 되었고 우선 프랑스의 힙합 베이스 현대무용단인 케피그를 불렀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그때 일부러 힙합댄서 몇 명을 초대해서 보여주기도 했고요.
꼭 그게 계기가 된 것은 아니겠지만 그때부터 힙합에 현대무용을 접목하는 시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초기에 김설진, 이인수, 이우재 등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여기서 발표된 작품들이 나중에 유럽에 초대받기도 했구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춤들이 자주 나오니까 굳이 계몽을 목적으로 계속할 필요는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나눈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열아홉 해 동안 시댄스를 진행해오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글쎄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어려운 점은 돈과 인간관계가 아닌가 합니다. 물론 행사를 더 잘 만들기, 더 좋은 프로그램 짜기 등등 축제 본연의 과제도 만만치 않지만, 이런 문제들은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겼습니다. 외람된 말이지만 시댄스는 지금 국내에서의 역할은 차치하더라도 국제 무용계에서 한국의 체면을 지켜주는 가장 중요한 존재입니다. 기본적으로 한국에도 이런 축제가 있었구나 하는 새삼스런 인식과 더불어, 외국 무용인들이 한국을 알고, 접촉하고, 교류하는 통로의 상당 부분을 시댄스가 제공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더 이상 얘기하면 자랑이라고 할 것 같아 생략하겠습니다만... 그런데 문제는 지금까지 축적한 정보, 지식, 인적 네트워크, 노하우를 활용해서 더 좋은 축제를 만들고 또 새로운 일들을 하고 싶어도 언제나 돈이라는 걸림돌에 부딪힌다는 얘기입니다. 새로운 일은커녕 지금 하고 있는 축제도 언제나 쩔쩔매는 형편이라는 말이죠.
저도 직장생활을 30년이나 했지만 부끄럽게도 제 연봉이 얼마인지 한 번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적이 없어요. 월급 받으면 기본적인 생활비 외에 음반이나 책 사고, 한국에 안 오는 공연 보러 외국 가고, 종종 술 마시고, 뭐 그렇게 살았죠. 그렇게 이재에 어두운 사람이었는데 시댄스를 시작한 다음에는 내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필요하니까 돈을 찾게 된 거에요.
두 번째는 한참 뒤늦게 깨달은 건데, 돈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가 사람들의 질시였어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편단심 질시와 방해를 일삼는 사람들 때문에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2008년 늦여름이었는데, 정확하게 금토일 72시간 불면을 한 적이 있어요. 그전부터도 얼굴이 형광등처럼 퍼래지고 계속 불안증상에 시달리다가 그렇게 사흘 동안 한잠도 못자고 나서 월요일 새벽 병원에 갔어요. 그때는 돈 걱정 때문이라고 생각했었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평소 알고 지내던 어떤 분에게 전화를 했지요.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 분이 먼저 말씀하시더군요. “제가 그동안 시댄스를 한 번도 도와드린 적이 없는데 이번에 1억원을 지원하겠습니다.” 그 한 말씀에 아픈 게 싹 나았어요. 잠도 다시 잘 왔구요. 그런데요, 보름쯤 지나니까 불안, 대인기피, 불면 등 각종 증상이 재발하는 거예요. 돈 문제가 해결됐는데 이건 말이 안 되는 거거든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한참을 지나서야 그게 아마도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스트레스 탓이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평론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무용계에 들어선 이래 나도 모르게 시달렸던 거예요. 예술가와 평론가 사이에 생기게 되는 어쩔 수 없는 긴장, 그것까진 견딜 만했어요. 내가 쓰고 싶은 글 쓰고, 평론을 쓸 적에도 근거 없이, 무례하게, 감정적으로 쓰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누구와 패거리를 지은 적도 없고 무용가에게서 봉투를 받은 적도 없고, 나름대로 흠잡히지 않게 처신하느라 신경썼습니다. 그런데도 자기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자기가 내민 봉투를 정중히 사양했다는 이유로, 자기와 경쟁관계에 있는 무용가의 공연에 호평을 썼다는 이유 등등으로 질시와 모략이 시작되더군요.
하지만 그런 정도는 시댄스를 만든 이후에 겪은 질시와 중상모략에 비하면 약과였어요. 순수한 예술가들은 시댄스에 열광하고 감사했지만 무용권력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눈엣가시였던 거지요. 그걸 난 바보처럼 아주 늦게야 깨달았어요. 나로서는 본디 큰 관심도 없었던 무용계와 어찌어찌 인연을 맺어 적잖이 사랑도 받았으니 보답하는 의미에서 축제를 만들었던 건데... 권력지향형 무용가들은 물론이고 일부 동료 평론가들도 그랬어요. 무용가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를 은근히 깎아내리는 거야 애교라 쳐도 지원금 심사에서 시댄스에는 절대로 주지 말자고 주장하거나(이런 형태의 질시는 이제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심지어는 최근까지도 매체를 통해 어떻게든 시댄스를 평가절하한다든가...
규모가 작던 크던 어느 사회에서나 특히 권력을 지향하는 사람이 있긴 합니다만, 사실 보통 사람들은 예술가가 자기 예술에만 온 신경을 집중해도 시간이 모자랄 거라고, 대부분 세상물정 모르고 순진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습니까. 아주 가끔씩 예체능계 비리가 터져 기사화되면 조금 짐작할 뿐입니다만, 속속들이 곪은 부분에 대해서는 그 실체를 알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무용계도 스스로 ‘고인 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도, 아마 누가 입을 열어 잘못된 것들을 얘기하지 않는 한 그런 현상은 묵인 속에 계속될 지도 모릅니다. 다시 떠올리기에 불쾌한 기억이시겠지만, 몇 가지만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그걸 다 얘기하자면 정말...오죽하면 내가 <무용계 저질열전>이란 제목으로 춤웹진에 연재라도 해야겠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하곤 합니다.
무용계의 큰 어른으로 불리는 어떤 분이 1998년 3월 문체부 공무원을 찾아갔습니다. “이종호씨가 시댄스 국고지원금을 횡령한 게 분명하니 조사해보라”구요. 그 공무원이 나중에 나한테 “ooo 선생님과 사이가 나쁘십니까? 하더군요. 시댄스는 1998년 9월에 제1회를 치렀습니다. 3월이라면 정부 지원금이 시댄스 통장에 들어오기 한참 전입니다. 횡령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시점입니다. 그 어르신 무용가께서 한 마디로 개념 없이 무지하셨던 거죠. 그 분은 문예진흥원(현 문화예술위원회) 이사회에서도 시댄스는 절대로 도와주면 안 된다고 연설을 하고 다니셨습니다. 그리고는 제자, 후배들 다 불러놓고 엄명을 내리셨지요. 시댄스에서 출연요청이 들어오거나 티켓 팔아달라고 하면 거절하라고. 아마도 그 분은 당신 제자들 말고도 시댄스에 출연할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과, 시댄스는 학생 단체동원은 시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셨던 모양입니다. 짐작컨대 무용계에서 국제활동은 자신이 넘버원인데 갑자기 웬 대형 국제행사? 뭐 그런 질시였겠지요.
서울 소재 모대학 무용과 여교수는 “이종호씨가 시댄스에 출연시켜준다며 젊은 여자 무용가들을 건드렸다”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한동안 학력위조 전과 때문에 뉴스에도 자주 등장했던 사람인데, 그 주제에 반성은커녕... 그런가 하면 유네스코 제정 ‘춤의 날’을 공동주관하기로 했던 한 국제무용기구의 한국지부 회장단은 본인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문제를 일으켜놓고도 마치 내가 그들을 따돌리고 혼자서 무슨 음모라도 꾸민 것처럼 무용계 내외를 돌아다니며 나를 아예 파렴치범으로 만들더군요.
무슨무슨 협회니 하는 관변단체 사람들도 문체부나 예술위원회 같은 곳에 가서 끊임없이 제 험담을 합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그리 많이도 저질렀는지... 공무원들은 그걸 곧이곧대로 믿고 내게 불이익을 줍니다. 그들은 단순해요. 내 경험으로는 공무원과 기자들이 제일 순진하고 잘 속아요. 누군가 찾아와서 말만 그럴 듯하게 늘어놓으면 그대로 통괍니다. 공연계에선 다 아는 사기꾼 기획자들도 공무원들은 전혀 식별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속아 오히려 도와줍니다. 한평생 예술가들을 돕기 위해 전재산을 바쳤다고 울먹이면 기자들은 감동적인 장문의 기사를 써줍니다. 한심하지요. 의외로 현실을 모른다는 얘깁니다.
지금 와서 후회되는 게, 그런 수준 이하의 몰상식한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단호하게 대응했어야 하는 건데, 하는 겁니다. 나는 잘못이 없으니까, 내가 그들에게 피해를 끼친 바 없으니까, 혹은 상대반의 수준이 너무 떨어지니까, 무용계 내부의 지저분한 모습을 외부에 보이는 것 자체가 부끄러우니까...그런 생각에 무대응으로 일관한 것이 잘못이었어요. 오해는 오해대로 증폭되고, 나는 나대로 마음의 상처만 도지고...우리 무용계의 부끄러운 실상을 기록으로라도 남겨두자는 생각에서 <무용계 저질열전> 연재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요즘 전 국민이 ‘최순실 게이트’로 분노와 허탈함, 상실감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더욱 뼈아프게 들리는 말씀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에 지목됐을 때 특정 지역에서 상을 주지 말라고 집단적으로 편지 보냈던 일화도 떠오르고요. 무용계가 예술계에서 가장 입지가 좁으니 서로 도와 잘 되게 해도 모자랄 일인데 왜 그런 현상들이 벌어진 것일까요?
모든 걸 권력의 잣대로 바라보는 시각이 문제입니다. 시댄스를 시작한지 4-5년 되던 때였는데, 한 무용가가 그러더군요. “기자로, 평론가로 그만큼 펜대를 휘둘렀으면 됐지 무슨 권력욕이 그다지도 많아서 축제까지 하느냐”구요. 이 말을 듣고도 한동안은 이해를 못했어요. 몇 해 지나서야 곱씹어보게 된 거지요. 나로서는 나름 사명감을 갖고 시작한 일인데 그걸 권력이라고 보는구나. 물론 결과적으로 권력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권력은 축제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권력이 아니라 봉사가 될 수도 있고, 평론도 마찬가지로 권력이 될 수도, 헌신이 될 수도 있는 거거든요. 무용과 교수는 권력이 아닙니까? 무용가가 춤만 추면 됐지 교수는 왜 하고, 협회는 왜 만들며, 대회는 왜 여느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뭐라고 대답할까요. 이제 그런 촌스런 수준에서는 우리 무용계가 벗어나야지요.
사실 이런 지저분한 얘기를 하는 것도 이 자리가 처음입니다. 그런 구체적인 예를 밝히는 것 자체가 나 자신까지 불결하게 만드는 것 같아 공개된 자리에서는 한 번도 말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떻게든 그런 ‘부당한 괴로움’에서 벗어나야 내 몸과 마음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무용계를 위해서도 치부를 드러내는 게 나쁠 것 없다고 생각되구요.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며 일부러 외면하던 지금까지의 태도를 바꾸어 보려고 합니다.
어쨌든 내년 20회 시댄스를 잘 만들어볼 계획입니다. 한국무용 수출사업(?)도 두 배 정도로 늘려볼 생각이구요.
네, 두 시간 동안 긴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외국에 나가지 않고도 다채로운 공연들을 볼 수 있게 선보이는 시댄스가 관객 입장에서는 고마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19년 동안 시댄스를 개최해오시면서 생각보다 깊은 어려움이 있으셨다는 것을 듣고 마음이 무겁기도 합니다. 이종호 예술감독님께서 뜻하신 대로, 시댄스의 스무 살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