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발레 감상에 입문하면서 ‘볼쇼이’라는 이름에 매혹당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볼쇼이발레단은 필자가 중학생이던 1990년대 초반까지도 비교적 자주 내한한 편이지만, 지방에 사는 학생으로서 상경하여 공연을 관람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발레단의 전 세계 투어를 따라다닌다는 일본 팬의 이야기는 꿈에서나 가능한 것이었다. 대신 일간지 지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주역무용수들의 인터뷰와 사진을 스크랩해서 들여다보는 것으로 갈증을 달래곤 했다. 인민예술가, 공훈예술가가 넘치는 볼쇼이발레단은 구소련의 자랑이자 ‘커다란 별’이었다.
그렇게 도도한 볼쇼이였지만, 2000년대 들어 자본주의의 물결이 몰려드는 상황에서 볼쇼이는 티켓 판매방식을 바꾸고 무려 6년간에 걸친 대대적인 극장 공사로 변화에 발맞추려 하였다. 2011년, 화려하게 정비된 모습으로 재개관 기념공연을 성공적으로 올리면서 아직 건재한 세를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볼쇼이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2013년 초, 예술감독 세르게이 필린이 염산테러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스캔들에 휘말리게 된다.
지난 7월 8일, 제 1회 충무로뮤지컬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볼쇼이 바빌론〉(2015)은 그 끔직한 테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만한 ‘범인이 누구이고 왜 그런 끔찍한 일을 꾸몄는가’에 대한 설명을 서두르지 않는다. 32년간 600회 가까이 볼쇼이의 공연을 관람했다는 열성 팬과, 무대에서 관객의 박수로 먹고 사는 단원이 입을 모아 ‘신전’이라고 표현하는 신성한 볼쇼이 극장 내부에 실은 여러 층위의 갈등이 누적되어 있었고 염산테러 사건은 곪고 썩은 부분이 터져 나온 결과라는 것을 차근차근히 보여준다.
이 ‘신전’의 붕괴위기- 그런 뜻에서 〈볼쇼이 바빌론〉이라는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먼저 볼쇼이단원들이 생존경쟁에 내몰린 상황을 읽어내야 하는데, 싱글맘으로서 공연수당을 한 푼이라도 더 벌고자 하는 솔리스트와 부상 끝에 겨우 복귀하고도 주역무용수의 자리를 다시 얻어내려 고군분투하는 마리아 알렉산드로바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여기에 단원들의 복지에 무관심한 경영진과 정치권의 압력이 얽힌 풍경이 점차 드러나고, 의혹에 불과할 뿐 제대로 밝혀진 것은 없지만 여성단원들이 권력자들에게 성접대를 했어야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당초 배후로 지목되었던 스베틀라나 룬키나와 달리 러시아 경찰이 범인으로 구속한 사람은 단원노조의 선봉에 섰던 파벨 드미트리첸코였다. 하지만 단원들 중 반수 이상이 파벨을 옹호하는 탄원서를 쓰기도 했다는 점에서 피해자인 세르게이 필린을 동정하는 데는 발레단 안과 밖의 온도차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혼란에 빠진 볼쇼이를 수습하기 위해 새로 극장장으로 부임한 블라디미르 유린이 단원들에게 투명한 배역선정과정을 약속하는 자리에서, 단원들이 원하는 헬스장 대신 필라테스 프로그램을 밀어붙이려하는 세르게이 필린의 모습을 보면 그의 독단적인 성격도 그동안 갈등에 한 몫 했음을 짐작하게 된다.
감독 닉 리드는 세르게이 필린이 테러를 당했다는 뉴스 장면과 〈라 바야데르〉 니키아의 죽음 장면이 겹치게 하고, 예술감독의 권력을 둘러싼 암투와 관련해서는 〈스파르타쿠스〉를 오버랩 시키는 방식으로 편집하여 작품을 연기하는 무용수들이 현실 속 갈등과 음모에 휘말리고 그것을 재생산하는 희생양이 되는 아주 기묘한 상황을 암시한다.
국내에서(특히 교향악단에서)도 단체 내부 경영진, 예술감독과 예술단원 삼자간의 갈등이 다반사고, 그들이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자정(自淨)과 개혁을 이루어내면 좋으련만 추악한 폭로전으로 여론몰이 하다 상처만 남기는 모습을 목격하곤 한다. 예민한 감성과 개성을 가진 예술인들의 집단에서 충돌 대신 조화를 이끌어내는 일은 어디서나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결국 지도자가 경청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는지. 오는 8월 25일 정식개봉을 앞둔 〈볼쇼이 바빌론〉이 주는 여운이다.